2024년07월28일(일요일) 북한산 [개연폭포&원효봉] 산행일정
산 : 북한산 [개연폭포&원효봉]
산행코스: [북한산성 입구 버스 정류장~(1.8km)~개연폭포~(0.9km)~북한산성 북문~(0.3km)~원효봉~(0.5km)~원효암~(1.4km)~서암문~(1.4km)~효자원~(0.9km)~효자치안센터 버스 정류장] [7.2km]
산행일 : 2024년07월28일(일요일)
산행코스 및 산행 구간별 산행 소요시간 (총 산행시간 4시간 소요)
12:00~12:25 연신내역 정류장에서 704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 정류장으로 이동 [25분, 15개 정류장 이동]
12:25~13:15 북한산성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출발하여 북한산의 4대 폭포 중 하나인 개연폭포(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1-1)로 이동
[개연폭포
북한산의 원효봉 자락에 있는 폭포.
북한산의 원효봉과 백운대 갈림길 아래로 흐르는 이단 폭포로서 북한산성계곡에 합류한다. 구천계곡의 구천폭포, 평창계곡의 동령폭포, 정릉계곡의 청수폭포와 더불어 북한산의 4대 폭포로 꼽힌다. 북한산성계곡 입구~새마을교~개연폭포 구간은 계곡 오염방지와 생태계 보호를 위하여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2029년까지 계곡 출입을 금지한다.]
13:15~13:25 청수폭포, 구천폭포, 동령폭포와 함께 북한산의 4대 폭포 중 하나로 꼽히는 개연폭포를 사진촬영
13:25~14:00 북한산성 북문으로 이동
[북한산성 14대문 종주] 메마른 도심 벗어난 15㎞ 옛길...발걸음 발걸음마다 '에코힐링'
서울경제 기사 입력 : 2017-06-07 18:23:03 수정 2017.06.07 18:23:03
박성규 기자
시구문서 대서문까지 '12대문'에
일반에 덜 알려진 중성문 등 포함
발길 닿는 곳마다 조상의 숨결이
용혈봉~나한봉 이르는 초반코스
경사 가팔라 힘들지만 경관 수려
■도심 속 일탈을 꿈꾼다면
‘멀리만 가야 여행일까.’
우리가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성찰이다. 하지만 멀리 가야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다못해 비행기를 타고 제주라도 가야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이곳 서울을 도읍으로 삼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한강유역을 놓고 피나는 전쟁을 되풀이한 것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그동안 모스크바에서 아프리카 잠비아까지 40여개국을 돌아보았지만 자연경관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보다 아름다운 나라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서울은 우리나라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큼 풍광이 수려한 곳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매일 사무실과 도심 속 도로에 염증을 느끼면서 서울로부터의 일탈을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 외곽의 북한산을 찾아보시라.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지난주 둘러본 북한산성 ‘14대문 종주’ 코스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조선시대 나라에 변란이 생길 때 임금이 피신하던 행궁이 있던 북한산성. 그동안 ‘12대문 종주’는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수문터와 중성문을 포함, 15㎞에 이르는 14대문 구간은 서울시민들에게도 비교적 새로운 코스라 ‘강추(강력추천)’할 만한 곳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미세먼지 경보가 내린 날 산행 일정이 잡혔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늘은 쾌청했지만 먼 곳의 시계는 불량했다. 걸음을 멈추거나 그늘로 들어가면 오싹한 한기가 밀려왔고 양지로 나가 걸으면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지도를 한 장 구입하면서 자원 봉사자에게 수문의 위치를 물어봤다.
시구문~북문~위문~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청수동암문~부왕동암문~가사당암문~대서문 12곳에 중성문과 수문터를 더해야 14대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문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아 위치를 확인해야 했다. 수문터는 등산로 옆에 있어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을 뿐이다.
수문은 성벽 아래에 문을 만들어 성안의 물을 외부로 흘려보내는 배수시설로 북한산성에 모두 두 곳이 있다. 탐방지원센터 초입과 중성문 근처에 있는 이 시설은 적의 침투에 대비해 철책을 세워 놓았었다고 기록돼 있다. 바위에서 볼 수 있는 작은 구멍들은 철책이 박혀 있던 흔적인 듯싶었다.
다음 목적지인 중성문은 계륵이다. 산성을 따라 걷는 둘레코스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중성문을 거치려면 코스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게 번거롭다. 그나마 산행 초기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왔을 뿐이다. 만일 중성문이 코스 막판에 있었다면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서 간신히 들렀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하산했을 것이다.
시작 초기에는 코스의 난도도 만만치 않다. 용혈봉~증취봉~부왕동암문~나월봉~나한봉에 이르는 구간은 바위에 걸쳐진 난간이나 밧줄을 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만큼 힘이 있는 초반에 주파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법용사 옆 샛길로 접어들어 잠깐을 가면 나타나는 국녕사에는 철 지난 철쭉이 흐드러져 있었다.
국녕사를 지나 세 번째 대문인 가사당암문을 지나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용출봉과 용혈봉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랄 게 없고 커다란 바윗덩어리에 밧줄을 이어놓은 코스다. 사진을 찍으려고 어깨에 둘러멘 카메라는 걸을 때도 무겁지만 비탈을 오를 때는 거추장스럽기 그지없다.
카메라가 덜렁거리면서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얼마짜리 카메라인데…. 주인 잘 못 만나서 고생하는구나.’
그렇게 한 손으로 카메라를 감싸고 한 손으로 밧줄에 매달려 오르내리기를 몇 번. 유격훈련 같은 산행이 마무리되고 평지나 다름없는 대남문 일대에 당도했다.
대남문의 이름에 남녘 남(南)자가 들어간 것은 이 문이 북한산성 행궁을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이나 남한산성 안에 행궁이 있는 것과 같이 북한산성에도 1915년까지 행궁이 있었다. 행궁은 변란이 일었을 때 왕이 피신하는 임시거처로 숙종과 영조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행궁은 1915년 7월에 내린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에 매몰돼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국민의 산’ 북한산
북한산은 설악산·한라산과 더불어 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산 중 하나다. 국토의 심장부인 서울에 인접한데다 높지는 않지만 도봉산·사패산 등과 능선을 잇고 있어 영동의 어느 국립공원 못지않은 위세를 자랑한다.
이런 까닭에 북한산을 거미줄처럼 잇고 있는 웬만한 등산코스는 일반에게 대부분 알려져 있다. 산 좀 타는 등산 애호가 중에는 북한산을 씨줄 날줄로 엮듯이 섭렵한 이들도 부지기수다. ‘하늘 아래 새것 없다’는 속담처럼 이번에 기자가 섭렵한 북한산 14대문 종주 코스도 하늘에서 떨어진 코스는 아니다. 하지만 12대문 코스가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수문터와 중성문이 포함된 14대문 코스는 비교적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다. 중성문과 수문터는 산성에서 떨어져 있어 이 두 포인트를 포함시키면 코스에서 벗어났다가 되돌아올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14대문 코스가 그동안 외면받아왔던 이유다.
이런 고생을 각오하고 시작한 산행이 멈춘 것은 정오 무렵 대남문 근처에서였다.
오전에 험한 코스를 주파해서 기운이 바닥났다. 그늘로 들어가 식사를 했는데 걷기를 멈춘데다 바람까지 불어 흐르던 땀은 가시고 이내 추워졌다. 간사한 게 인간이라더니 30분도 안 돼서 햇볕이 그리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대성문으로 향하는 길은 산성을 따라 걷는 길이라 오전 코스에 비하면 산책 수준이었다.
이후 이어지는 보국문~대동문~동장대~용암문~위문~약수암~대동사~북문~원효봉~원효암 코스는 어려울 게 없다.
위문에 다다르자 백운대와 인수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구간에서는 내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산을 올랐다. 위문에서 백운대를 찍고 내려올지 잠깐 고민을 하다가 바로 대동사로 방향을 잡았다.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돼 발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번 산행에 동행하면서 안내를 한 조병이(55)씨는 마라톤 풀코스를 30여차례나 완주하고 5산종주(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를 20시간 이내에 주파한다고 해서 ‘에너자이저’라는 별명을 가진 회사원이었다. 이미 다리가 무거웠지만 이 ‘에너자이저’는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위문에 도착할 때까지는 자존심 때문에 “쉬어가자”는 말이 안 나왔는데 산행 누적거리가 12㎞를 넘어서자 30분이 멀다 하고 “쉬어가자”고 그를 졸랐다.
그래도 북문을 지나서 원효봉·원효암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한 산행이었다.
그런데 원효봉을 내려오면서 조씨가 길을 잃었다. 산성 틈을 비집고 내려가는 낌새가 수상하더라니 좁은 샛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30~40분이면 시구문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행이 계속됐다.
하산 길을 잃어 신둔계곡으로 잘못 내려가는 통에 그나마 남아 있던 체력마저 고갈돼 버렸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보폭이 짧아졌다. 산 아래 도로로 자동차들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큰길은 보이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며 산길을 내려왔더니 이미 마지막 목적지였던 시구문은 많이 지나치고 말았다. 조선 말엽 조성된 내시 묘를 지나서 북한산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길은 겨우 1㎞ 남짓이었는데 그 길조차도 길고 길게 느껴졌다.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도중 벤치에 앉아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백운대와 인수봉·만경대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조씨는 “북한산의 별칭이 삼각산인 것은 이들 세 봉우리가 삼각형처럼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서 연유한다”며 “예전에는 봉우리에 아이를 업은 모습의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불렸다”고 말했다.
두어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가 하는 설명을 녹음하고 귀담아듣느라 촉각을 세웠었는데 이제는 진이 빠진 내 귓전으로 그의 말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도착한 탐방지원센터 입구로는 아침나절 산으로 향했던 인파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휴대폰의 운동량 측정 애플리케이션을 열어보니 하루 동안 걸어온 거리는 16.32㎞, 소모열량은 1,164㎉, 운동시간 8시간 51분, 휴식시간은 1시간 58분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벗어 던지고 맥주를 시켰다. 차가운 맥주를 들이켜자 목의 울대가 따라 움직였다. 빈 맥주잔을 상 위에 내려놓는 순간, ‘체내의 수분이 땀으로 날아가 하루 종일 볼 일을 안 보았구나’하는 부질 없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글·사진(고양)=우현석객원기자]
14:00~14:11 원효봉(505m) 정상으로 이동
[원효봉(元曉峰)
북한산의 원효봉능선에 있는 봉우리.
높이는 해발 505m이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속한다. 명칭은 봉우리 아래에 있는 원효암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효암은 신라시대 원효(元曉) 대사가 수도하였던 토굴이다. 원효봉능선은 북문~염초봉으로 이어져 백운대로 향한다. 효자동~시구문(서암문)~원효암~원효봉까지 산행코스는 2.3㎞ 거리에 약 1시간 15분이 소요된다.]
14:11~14:25 사진촬영 후 휴식
14:25~14:45 원효암으로 이동
[원효암(元曉庵)
소재지 : 경기도 고양시 북한동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당시 승병장 성능이 창건한 암자.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한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좌선하면서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조선 숙종 때 승병장 성능(聖能)이 원효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하고 원효암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 뒤 북한산성을 지키는 승병이 머무르는 사찰로 전승되었으며, 1734년(영조 10) 2월에 실화(失火)로 불타버린 뒤 곧바로 중건에 착수하였고, 1938년에 주지 영운(泳雲)과 그의 제자들이 법당을 중건하였다. 6·25 때 다시 불탄 뒤 비구니 월해(月海)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다. 산신각 근처의 바위에서는 석간수(石澗水)가 나오는데 뒷바위가 코끼리상을 하고 있고, 이 물은 그 앞가슴의 젖줄에 해당된다고 한다. 절에서 10분 가량 오르면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원효대가 있다.]
14:45~15:30 서암문으로 이동
[서암문(西暗門)은 북한산성에 있는 문이다.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는 7척, 너비는 7척이다. 외부와 내부를 모두 홍예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성 안의 시체가 모두 여기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해서 시구문(屍軀門)이라고 불렸다.
현지 안내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성벽의 흐름 방향과 달리 입구가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외부에서 쉽게 관찰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북동쪽의 성벽을 돌출하여 암문으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원성에 설치된 12개 암문의 외측 개구부(開口部)는 대부분 홍예식(虹霓式)이지만 제2암문과 더불어 이 암문의 개구부는 평거식(平据式)이다. 선조 15년 1월 23일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라 하여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른다.]
15:30~15:40 휴식
15:40~16:25 효자치안센터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하여 산행 완료
16:25~16:50 효자치안센터 버스 정류장에서 연신내역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버스 승차 대기
16:50~17:13 효자치안센터 버스 정류장에서 연신내역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23분, 12개 정류장 이동]
북한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