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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오두막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나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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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CES)에 참여한 한 업체 임원이 “올해 와 보니 친환경은 차별화 포인트가 아니라 필수 항목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한 인터뷰 기사를 보고, ‘우리가 정말 환경과 에너지를 화두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 건축계에도 ‘친환경’이 선택사항을 넘어 필수사항이 될 날이 곧 오겠지요.
최근에 지어지는 탑상형 아파트처럼 맞통풍이 불가능한 집은 에어컨 같은 기계장치를 쓸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에너지도 낭비하고 건강도 해치게 됩니다. 땅속의 열은 계절에 관계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합니다. 김장독의 원리를 건물에 응용한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하지만 토목공사가 진행되어야 하니 부지 조건에 따라 생각해보아야 될 듯합니다. 글 가져온 곳 : 전원생활 3월호
생태란 말은 생물의 생활 상태 및 생물과 환경과의 관계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태건축은 ‘건축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삶’ 그리고 ‘건축이 주위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나가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태적인 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집이라는 건축물만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집 안에 사는 사람과 그 집 바깥의 환경을 ‘생태’라는 더 큰 틀로 아우르며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첫째 방법이 에너지를 덜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큰 집과 편리함에 대한 욕망 줄여야
토속건축(Vernacular Architectur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 세계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의 풍토에 맞게끔 지어진 건축물이 있게 마련인데, 토속건축은 그런 건축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중동 지역의 집과 북유럽의 집이 서로 다른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전통 민가도 토속건축의 좋은 예입니다. 이들 건축물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그 지역의 기후에 맞게끔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쉽게 화석연료를 구할 수도 없었고 먼 곳에서 재료를 실어올 운송 수단도 드물었으니 어떻게 하면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이고, 수백 년 축적된 지혜의 결과로 그 지역에 가장 어울리는 건물을 만들어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철근과 콘크리트라는 신재료가 만들어지고 석탄과 석유 등 여러 화석연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건물은 더 이상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만을 쓰지 않아도 되고, 추위와 더위에 취약하더라도 다른 기계장치를 이용해 이겨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건축이 주위 환경과 맺고 있는 관계’, 이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그 안에서 영위되는 인간의 삶’이라는 면에서도 편리함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다른 가치들은 무시되었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건축은 에너지 사용을 담보로 해 ‘무한 욕구, 무한 충족’으로 치달았던 것입니다.
인간이 우리 지구상에 만들어 내놓은 것 중 가장 큰 물건이 건축물입니다. 이 건축물에서 쓰는 에너지는 난방·냉방·조명 에너지뿐만 아니라 건축물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을 만들고 운반하고 폐기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30%가 건축물에서 쓰는 것입니다. 게다가 화석연료는 점점 바닥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물과 에너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건축물만큼 에너지 절약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건축에서 에너지 절약을 위한 고민은 단계적이어야 합니다. 무턱대고 태양전지를 달고 여러 기계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일의 순서도 맞지 않을뿐더러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집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고민이 있겠지요. ‘큰 집’에 대한 욕심을 줄여보십시오. 생태건축과 에너지 절약은 작은 집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크기가 작아야 만들 때, 살아갈 때, 또 버려질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한 예산을 세울 때도 눈에 보이는 장식보다 에너지 절약의 기초가 되는 단열이나 창호의 기밀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이를 설계 초기 단계부터 충분히 검토합니다. 예를 들면 겨울에는 해가 잘 들고 여름엔 해를 피할 수 있는 남향으로 큰 창을 내고, 여름철 맞통풍이 가능하도록 마주 보는 창도 냅니다. 또 겨울철 찬바람이 부는 쪽을 피해 현관을 내고, 북향에는 창고나 다용도실같이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공간을 둡니다. 이런 것들은 집이 다 지어지고 나서는 고칠 수 없으니 계획 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집에서 생활하는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편리함에 대한 욕구를 좀 줄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가 아니라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운 게 정상입니다. 실내에 온도계를 달아 수시로 방 온도를 확인하고, 겨울철 실내복도 약간 두툼하게 입습니다. 신문에 연재되는 에너지 절약 방법 기사들을 따로 모아 집에서 실천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다음이 자연에너지를 사용하는 단계입니다. 거창한 기계장치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자연에너지부터 사용해보십시오. 대표적으로 태양과 바람, 지열 같은 것입니다. 잘 만들어진 온실은 태양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발코니 확장으로 그만큼의 집들이 좋은 온실이 될 수 있는 공간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발코니는 작은 온실이자 차양 역할을 하는 공간이라 실내를 쾌적하게 만들고 에너지 소비도 줄여줍니다. 발코니 확장 시 냉난방 에너지가 1.5배 이상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식물을 키울 수 있어 정신적·육체적 건강에도 이롭고 아이들 안전에도 유용하며 화재 시 피난로가 되기도 합니다. 또 우리나라의 여름철 찜통더위를 식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람이 불게 하는 것입니다. 전통 민가의 대청마루에서 맞는 바람을 생각해보십시오.
네 번째로 이러한 여러 시도를 충분히 잘 진행한 후 기계적 장치를 동원해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보일러도 가능하면 콘덴싱 기능이 있는 것으로 설치하고, 백열전구 대신 형광등을 이용하는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장치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낮에 햇빛이 드는데 커튼 치고 효율 좋은 전구를 켠다거나, 전기를 펑펑 쓰면서 태양전지로 생색을 낸다면 이는 지구를 더 힘들게 할 것입니다.
옛집에 담긴 지혜와 미덕을 다시 보자
우리 조상들의 민가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양지에 좋은 터를 잡고, 주변의 자연 재료로 우리나라 기후에 맞는 자그마한 집을 짓고 살지 않았습니까. 여름에는 처마와 마루를 이용했고, 겨울에는 적은 양의 연료로 난방 효과를 크게 얻을 수 있는 구들을 사용하였습니다. 나무의 생김새 그대로를 살려 기둥을 세웠고, 좋은 손재주로 아담한 공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옛날 집 그대로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읽어내자는 것이지요. 그러면 지금의 집이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