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종교의 목적은 이고득락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600년경에 마명 보살님께서 부처님의 말씀 중 불법의 진리를 그대로 드러낸 100권의 경전에서 그 중요한 뜻을 간추려 [대승기신론]을 만드셨습니다.
마명 보살은 기신론을 지은 이유에 대해 "생사고를 여의고 나지도 죽지도 않는 열반락을 얻도록 하기 위해 기신론을 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삼계가 편안함이 없는 것이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몸과 마음이 그대로 고통의 덩어리로 고통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업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업의 과보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이해할 때 부처님 법을 믿지 않을 수 없는 신심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즐거운 과보를 받고 악한 행위를 하면 고통의 과보를 받는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만히 살펴보면 마치 인과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습니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어긋나지 않도록 살고 있음에도 몸에 병도 생기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쁜 짓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하는 일이 잘 돼가는 모습을 보면 인과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맞는지 의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과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과보를 받는 데에는 세 가지의 시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순생보(順生報)라고 합니다.
순생보란 '생을 따라서 과보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전생에 지은 것은 금생에 받고 금생에 지은 것은 내생에 받는 것입니다.
지금 바르게 살고 있는데도 일이 잘 안 되는 것은 전생에 잘못한 것을 지금 받는 것이고, 지금 선한 일을 한 것은 내생에 가서 받을 것입니다.
지금 잘 못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은 전생에 좋은 일을 한 그 과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순현보(順現報)가 있습니다.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아주 나쁜 행위나 아주 선한 행위를 할 때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순후보(順後報)라는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 것을 금생에 안 받고 금생에 지은 것을 내생에 받지 않는 경우입니다.
서로 인연이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과로 얽힌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죽어 천상에 태어나고 한 사람은 인간에 태어났다면 서로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그 과보가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천만겁이 지나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아니하여 인연이 만나질 때에 서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후보입니다.
그러나 불교의 근본 뜻은 인과법대로 살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불교가 인과론과 숙명론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이 순현보, 즉 금생에 지어서 금생에 받는 데 있습니다.
사주관상학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관상이나 사주를 갖추고 있더라도 그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원력과 실천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부귀영화상이 차츰 빈천상으로 바뀌어 갑니다.
단순히 얼굴 모양뿐 아니라 주변 환경도 빈천하게 바뀌어갑니다.
관상학적으로는 비록 빈천한 상을 가졌더라도 부귀영화를 누릴 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 얼굴은 부귀상으로 바뀌고 또한 주변의 환경과 모든 여건이 바뀌어 부귀를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두고 "관상(觀相)이 불여심상(不如心相)-관상이 마음의 상만 못하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