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일하는 시간 동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점심시간? 물론 퇴근 시간이 기다려지게 될 것이다.
내가 1987~1988년 호주의 AIDAB(외교무역부 산하의 개발도상국 원조 전담 관청. 현재는 오세이드[AusAID]라는 이름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음.)에서 직무연수를 받으면서 사무실 생활을 하는 동안 기다려지는 시간이 생기게 됐다. 그것은 오전 오후에 한 번씩 차나 커피를 서비스해주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 그리고 부서 간에 주고받는 문서를 전해주기도 하고 도착한 우편물을 전해주거나 우체국을 통해 보내야 할 우편물을 건네받아 발송을 대신 해주는 아가씨 한 사람이 사무실을 도는 시간이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의 경우에는 각각의 과 단위 부서 사무실에 문서 타이핑이라든지 공문서의 수발 따위의 서무업무는 물론 차나 커피를 타고 직원들의 심부름까지도 도맡아 하는 여직원이 한 명이 있었다. 그래서 우편물의 발송과 같은 일은 이 여성 직원이 담당하고 그 여직원이 마련해주는 차나 커피를 마시며 같은 부서의 직원들이 하루에 한 차례 정도씩은 모두 함께 모여 앉아 이른바 티 타임을 갖기도 하던 것이 우리 사무실의 정경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성격의 일을 하는 호주 관공서의 사무실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사무실 생활은 우리의 것과 적지 않게 다른 면이 있어 보였다.
우리의 경우 서무업무를 포함하는 일단의 모든 업무가 대부분 과(課)라는 명칭의 부서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부서의 책임자인 과장을 중심으로 다분히 한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일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약속이 없는 한 점심은 같은 과의 직원들이 함께 몰려나가 먹고는 하고 저녁의 부서 단합 모임과 같은 만남의 자리도 대부분은 과 단위로 이루어졌다.
호주에서의 사무실 풍경은 이와는 한결 달랐다. 우선 단위 부서의 구분은 있었지만, 완전히 막힌 벽으로 각각의 부서를 인위적으로 갈라놓지는 않고 있었다. 국장급 정도 부서의 장은 별도의 방이 주어졌지만, 이도 허리춤 정도 높이의 윗부분은 유리로 되어있어서 사실상 사무실의 모든 공간이 개방화되어있는 구조였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의 사무실에 자리를 얻고 나서는 무엇인가 안정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노출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가까운 동료가 모두 사라져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나는 얼마의 시간을 보내면서 곧 그런 새로운 분위기에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때때로 무언가 불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구조로 사무실이 이루어지다 보니 일을 하는 방식도 우리와는 다른 면이 없지 않았다. 과 사무실 중간쯤에 자리한 탁자나 소파가 회의나 토론의 장소가 되는 것이 아니고 창가 쪽에 별도로 마련되어있는 몇 개의 방에서 여럿이 함께하는 업무적 회합이 이루어졌다. 다량의 문서 복사나 타이핑과 같은 업무는 별도로 이런 업무만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부서가 있어서 여러 부서의 직원 각자가 이 부서를 찾아가 업무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티 레이디(Tea Lady)’라고 하는 사람과 내가 ‘포스트우먼(Postwoman)’이라고 이름을 붙인 사람도 사실은 이런 사무실의 업무 운용 방식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셀프로 각자가 커피나 차를 타서 마실 수 있는 간편한 시설이 사무실 한쪽 구석에 만들어져 있기도 했다. 또 시급한 문서의 수발과 같은 업무는 각자가 직접 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차나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이른바 티 레이디 아주머니가 흰색 리넨 천으로 꾸민 깔끔한 카트를 끌고 사무실을 도는 시간에 일어났다. 모든 사람이 티 레이디가 타 주는 차나 커피를 마시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한두 잔 정도는 이 아주머니가 마련해주는 차나 커피를 즐기고는 했다. 티 레이디는 한때 이른 아침 사무실을 돌며 야쿠르트나 우유와 같은 음료를 배달해주던 우리의 야쿠르트아줌마와는 달랐다.
티 레이디가 사무실을 도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가 보관하고 있는 컵을 들고 티 레이디에게 가서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보통의 마실 것을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한 배합을 주문하기도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편안한 동네 아주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티 레이디는 차를 타는 동안 다른 부서의 특별한 소식을 전해주기도 하면서 무료한 듯이 느껴지는 사무실의 분위기에 활기와 여유를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 사무실을 오르내리며 작으나마 기다려지는 쉼과 여유와 시간을 마련해주는 티 레이디는 그 사무실의 정규 직원은 아닌 듯 했다.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마시는 차의 종류와 잔 수를 꼼꼼하게 적어놓았다가 한 달 단위로 해서 돈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격은 카페테리아나 커피숍에서 마시는 가격보다는 쌌기 때문에 사람들은 큰 부담 없이 티 레이디가 제공해주는 차나 커피를 즐겼다.
티 레이디는 100여 명이 넘는 직원들 각자의 음다(飮茶) 취향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전문가적 세심함과 감각으로 이를 파악하여 각자가 선호하는 취향을 존중해주었다. 어떤 직원은 티 레이디가 올 시간쯤 해서 자리를 비우게 되는 경우 자기 자리의 어느 부위에 본인의 컵을 올려놓으면 자기의 부재와 관계없이 차를 타 달라는 무언의 약속을 해두기도 했다. 티 레이디는 그런 세세한 것들까지 한 치의 틈도 없이 잘 해냈다.
조용하게 사무실의 통로를 따라가며 차를 타는 티 레이디와는 달리 내가 ‘포스트우먼’이라고 이름을 붙인 젊은 여성 직원은 다소 빠른 속도로 통로를 지나가며 문서나 우편물을 전해주기도 하면서 좀은 사무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수많은 문서를 주고받고 하는 잡다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무척이나 많은 신경이 쓰였을 텐데 항상 즐거운 모습으로 일하는 그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직원이 사무실에 나타나는 시간은 더욱 활기가 도는 듯했다. 새로운 문서나 우편물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탐독하는데 정신이 없었지만, 간혹 해외 사무소나 사업현장에서 전해진 소식이 여러 다른 직원들에게 전해질 때는 이따금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자칫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무실에 차 한 잔의 향기와 여유를 만들어주었던 티 레이디와 항상 밝고 즐거운 모습으로 오가며 여러 사람에게 새 소식을 가져다주는 포스트우먼. 그들은 오늘도 하루에 한두 차례, 사무실 전체에 여유로운 기운과 반가운 소식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역할을 행복하게 해내고 있을 것이다. (2003. 8. 30.)
첫댓글 우리는 독서나 여행을 통해 외국의 문화와 제도를 접하면서 독자성과 디양성 그리고 창의성을 배우게 되지요. 연간 엄청난 인원이 외국나들이를 하는데, 피땀 흘려 번 외화를 쓴 만큼 외국에서 배우고 그것을 다시 우리나라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 같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지키면서, 외국의 창의성을 수용하는 개방성이 필요하겠지요.
나역시 과거 10년간 연합근무경험이
오늘날 실생활뿐만 아니라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미군장교들의 성실ㆍ친절ㆍ겸손ㆍ경청
ㆍ진지한 토의ㆍ업무의 전문성ㆍ근검
등은 참으로 부러웠지요.
반면 극단적 개인주의ㆍ감성부족등은
다소 아쉬었습니다.
과거 10년간 미군장과 선의 경쟁은
나와 나의 미군 파트너 모두를 승
자로 만들었지요.
어쨌거나 과 안에 한 명의 여직원이 타이프를 치고 차 끓이고 책상를 정리해주던 그 시절이 아시무락 하네요.
정보 과학의 발달로 40년 전의 사회풍습은 이미 사장된지 오래 된 것 같습니다. 20세기만 해도 대부분 회사나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는 과 단위 사무실엔 타이피스트 겸 비서 아가씨가 있었지요. 그러나 21세기 들어오면서 여성 인권문제와 생활수단의 편리한 발달 등으로 각자 알아서 스스로 하게 되는 양상으로 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무실 안의 책상 배치나 부서간의 개방성, 사무보조나 티 레이디 이 모든 것이 업무효율을 지향하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형성된 유형이겠지만, 부서자의 방이 페쇄적이지 않은 것에 저는 마음이 기우는군요.
티 레이디도 왠지 신선해 보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