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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의 여행
우주의 법은 법사가 법상에 올라오기전에도 있었고,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이 순간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법이라는 것을 가닥을 지어, 이렇게 하면 법이고 저렇게 하면 비법이라고 구분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부처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살기에 중생이라 합니다.
문수보살이 갖고 있는 지팡이가 '여의봉(如意棒)'입니다.
내 뜻대로 되는 봉이라는 겁니다.
무슨 대단한 물건인 듯싶지만, 사실은 여러분들도 집에 하나씩 다 갖고 있어요.
노인들이 쓰는 '효자손' 말입니다.
이거 하나면 가려운 것을 긁지 못하는 곳이 없습니다.
여의봉이나 효자손이나 그 이치는 마찬가지입니다.
불법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니까 자꾸 부처님 가르침을 잊어버립니다.
우리생활 자체가 불법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갑속에 들어있는 지폐를 보세요.
'한국은행권'이라고 인쇄를 해놓은 것을 보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돈의 주인이 한국은행이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돈이 자기 주머니에 있다고해서 그것이 마치 자기 것인줄 압니다.
어떤 때는 부끄럽게도 한평생 수행을 해온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며칠 전에 한분이 휠체어 타고 제가 있는 축서암을 찾아와 "스님 학 천마리를 모으려 했는데 다 채우지도 못하고 그냥 가져왔습니다" 라며 단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얼핏 봐도 그분의 행색이 흔히 길에서 껌이나 뭐 그런 걸 파는 분 같아요.
그 단지안에 뭐가 들었나 하고 보니 오백원짜리가 들었어요.
그 오백원짜리에 새겨진 학 천마리를 제게 주려고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인연으로 하필 제게 이런 걸 주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스님은 거지가 오면 꼭 봉투에 돈을 넣어서 주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하고 묻는 겁니다.
그분은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 저를 꼭 만나보고 싶었답니다.
고맙게도 그날 오백원 동전에 새겨진 학들은 제가 원장으로 있는 통도사 자비원에 전해졌습니다.
제가 동냥을 오는 이들에게 돈을 봉투에 담아주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시죠?
저는 1985년에 처음 해외에서 선서화(禪書畵) 전시를 시작했는데, 어느 해는 미국 하와이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같이 여행을 하던 백인 한분이 여행이 끝나자 신문인쇄가 안 된 면을 일부러 골라 1달러를 정성스럽게 싸서 버스 운전사에게 주는 것을 봤어요.
그 순간 운전사가 정중히 일어서 인사를 하는데, 그 모습이 진심이 담긴 진정한 사람과 사람의 인사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어찌나 감동적인지 저도 다음에 그럴 기회가 되면 반드시 따라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한국으로 되돌아와 절에 있는데, 하루는 한 젊은이가 동냥을 왔어요.
하와이에서의 일은 생각나지도 않고, 순간 젊은 사람이 동냥 오니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흔쾌하지 않아요.
하도 떼를 써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얼마 안 되는 돈을 주고 언짢은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갑자기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해지는 겁니다.
한때는 스스로 일등 수좌라고 자부심을 가지던 내가, 내 것도 아닌 신도들 시줏돈으로 살면서 중생의 어려움을 모르고 그 사람의 업을 무시하는 마음을 일으킨 겁니다.
'아! 나는 진정한 스님이 아니구나. 이런 내가 무슨 수행자냐. 그냥 절 지키는 사람이지' 하는 마음에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어요.
그런 뒤부터는 비록 자장면 값 밖에 안 되는 적은 돈이지만 동냥을 오면 꼭 봉투에 담아 돈을 드리고, 시간이 되면 차도 대접합니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아저씨, 다음에 또 오이소" 하고 인사도 빼먹지 않습니다.
또 한 번은 몇 해 전 열반한 통도사 방장 월하스님께서 전화를 해서 "수안스님, 내가 사람을 하나 보내니 자비를 베풀어 주소" 라는 겁니다.
영문도 모르고 암자에 있는데, 덩치가 산만한 사람 몇이 절을 털썩 하더니, 저더러 '그림을 해내라'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냥 해주기는 뭣하고 '그럼 왜 그림을 원하느냐' 했더니, '자신들은 젊어서 죄를 짓고 형무소를 살다 불교공부를 했는데, 사회에 적응 하지도 못 하고 여러 큰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왔다'고 합니다.
뻔뻔스럽기도 하고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나 싶어 정말 싫었지만 큰스님의 부탁이 있고 하니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려주고 돌려보냈습니다.
2003년 겨울에 월하스님이 열반에 드시고 다비식을 하던 날 거화를 하려고 섰는데,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면서 저절로 무릎이 꿇어지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겁니다.
앞으로 절집에서 살면서 누가 내게 '수안이 자비를 베푸소' 하는 말을 하겠나 하는 싶은 생각이 일면서 큰 참회를 하게 됐습니다.
나도 모르게 절을 하면서 눈물이 철철 흐르는데 얼마나 환희심이 나던지 내 몸이 같이 불속으로 들어가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견, 정업, 정사유, 정어,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이 팔정도는 성스러운 성인이 되는 8가지 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다 실천하면 그냥 성불하게 되고 성인이 됩니다.
제가 동냥치들에게 '아저씨 다시 오이소' 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정명(正命)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집밖으로 나오면 다 여행입니다.
불자의 여행은 성불을 구하는 구도행입니다.
오늘 하루는 뭘 구하셨습니까?
나보다 더 나은 사람, 더 못한 사람, 어린 사람, 늙은 사람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서나 얻을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지식을 너무 맹신하지는 마세요.
오직 내 자성불을 찾아야 합니다.
#수안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