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새 출발로 아름다운 가족의 달☜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마5:6-7절) 새로운 욕망(慾望)
유명한 영화배우(映畵排優)나, 탤런트 중에서 아프리카나, 동남아 오지(奧地)에 촬영을 하러 갔다가 그곳 아이들이 너무나 굶주리고, 병(病)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돌아와 어려운 지역 어린이들이나, 사람들을 돕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옛날 배우(俳優)중에 오드리 햅번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려운 지역에 있는 어린아이 돕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죽었습니다. 우리나라 유명한 탤런트 중에서도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아예 퇴직(退職)하고, 전기(電氣)도 없고, 물도 부족한 지역에 가서 그들을 도우면서 비로소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소록도에 1950년대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20대 두 여성 마가렛과 마리안느가 간호사 수녀(修女)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은 처음 5년 계약으로 오게 되었지만, 그 5년이 42년으로 늘어나서 이들의 나이 70이 되어서 더 이상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까지 소록도의 한센 환자들을 돕게 됩니다.
이분들은 떠날 때에도 송별회(送別會)같은 것도 없이 비행기에 들어갈 가방만 달랑 하나 들고, 광주에서 떠났다고 편지 한 장만 보냈다고 합니다. 이분들은 이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잘 사는 것보다 수천 배 더 가치(價値)있는 일을 소록도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영국(英國)의 유명한 강해(講解)설교자였던 마틴 로이드 존즈 목사는 영국에서 유명한 성 바돌로뮤 병원(病院)에서 심장(心臟) 전문의로서 성공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주임교수의 진료 카드를 정리하던 중, 영국에서 잘 살고, 성공한 사람들이 타락(墮落)한 삶을 살고, 병(病)드는 것을 보고, 육체의 병(病)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정신(精神)과 영혼(靈魂)을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醫師)의 길을 내려놓고, 웨일즈 시골의 아주 작은 교회(敎會)에 전도사(傳道師)로 부임해서 목회(牧會)를 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무조건 음식(飮食)을 먹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살 수 있듯이 우리는 이 세상의 성공(成功)과 출세(出世)에 목말라하게 됩니다. 그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이 세상에서 성공(成功)하고, 출세(出世)하는 것과는 다른 배고픔과 목마름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배고픔과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Ⅰ.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들
6:6절)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悲慘)한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놀랍게도 굶주린 사람이 가장 복(福)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悲慘)한 것이 굶주리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물을 마시지 못해서 목까지 마른다면,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굶주린 자가 가장 복(福)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배가 고플 뿐 아니라, 목가지 마른 자가 가장 복(福)이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어떤 미스터리(mystery)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중에, 그 비밀(秘密)을 찾아서 깨닫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미스터리(mystery)를 풀 수 있는 근거(根據)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단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은 복(福)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가 주리고 목말라하는 대상(對象)은 양식(糧食)이나, 돈이 아니라, 의(義)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것입니다.
주리고 목말라 하는 전형적(典型的)인 사람들을 찾는다면, 큰 환란(患亂)을 당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난(患難)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위험(危險)에 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빨리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이 사람들도 죽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자체가 그 사람이 살아 있으며, 건강(健康)하다는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 중병(重病)에 걸린 사람이 여러 날 아무 것도 먹지 못해도 전혀 배고파하지 앓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들은 몸이 병(病)들어서 배가 고픈 것이나, 목이 마른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병(病)들어서 링거(ringer)만 꽂고 있다가 어느 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배가 고프니까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서 물을 달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병(病)에서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祕密)
그러나 사람에게는 또 다른 배고픔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배움에 대한 배고픔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똑똑해지고 싶은 욕망(慾望)이 있습니다. 대개 너무나 가난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배움에 대한 굶주림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든 후에라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거나, 대학에 입학을 해서 공부를 마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배고픔이 있는데, 그것은 성공(成功)에 대한 배고픔입니다.
어떤 사람은 큰 상(賞)을 받았는데도 자기는 더 큰 상(賞)에 배고파하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지금 먹은 이상으로는 성이 차지 않고, 더 큰 상(賞)을 받아야 배가 부르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성공(成功)하면 할수록 더욱 더 성공(成功)하고 싶다는 욕망(慾望)이 생기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완전한 만족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진정으로 복(福)이 있는 사람은 먹을 것이나, 지식이나, 성공에 굶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의(義)에 주려하고, 목말라 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당시 먹는 양식(糧食)에 주려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요6:27절)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廣野)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8:3절)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을 사는 목적(目的)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의(義)’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대개 우리가 보통 세상적으로 의(義)라고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의인(義人)은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행복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목숨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남이 한 것을 보고, 감동하고, 칭찬하기는 쉽지만,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의(義)’는 세상에서 말하는 그런 의(義)와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또 성경에서 말하는‘선(善)’도 세상에서 말하는 선(善)과는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즉 세상에서 선(善)은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이 선(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선(善)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일치(一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 잘 해 주기 이전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일치(一致)하는 것이 선(善)한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에서 말하는‘악(惡)’은 화살이 과녁(貫革)에서 벗어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진리(眞理)에서 벗어나는 것이 악(惡)입니다. 그렇다면‘의(義)’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의(義)’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罪)가 없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소극적(消極的)인 의(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罪)용서받지 못하면, 아무리 다른 사람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도 그것은 마치 죄수(罪囚)가 감옥(監獄)안에서 다른 죄수(罪囚)에게 잘해주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의(義)는 적극적(積極的)인 의(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 용서받았을 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무엇인가 가치(價値)있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째로 의(義)라는 것은 우리가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資格)입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원래 땜장이였는데, 예수도 믿지 않고, 성질도 고약했고, 배운 것도 없는 무식(無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어머니가 병(病)으로 죽고, 한 달 후에 누이동생이 죽고, 또 한 달 후에 아버지가 재혼(再婚)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의회군에 입대(入隊)해서 군(軍)생활을 하고, 제대(除隊)한 후, 결혼(結婚)했다고 합니다. 그때 아내가 청교도(淸敎徒)로서 책 두 권을 지참금으로 가지고 이 가난한 땜장이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그 후에도 존 번연은 예수를 믿지 않고, 멋대로 살았는데, 부인(婦人)의 간절한 기도로 드디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교회(敎會)집사가 되었고, 너무나도 설교(說敎)를 하고 싶어서 설교(說敎)했는데, 국법(國法)을 위반했다고 해서 12년 동안 감옥(監獄)에 갇히게 됩니다.
그는 감옥(監獄)에서 수도 없이 성경을 읽고, 경건 서적을 읽다가 감옥(監獄)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목사(牧師)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비국교도가 설교(說敎)했다고 해서 또 감옥(監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거기에서 불후(不朽)의 명작<천로역정>을 쓰게 됩니다. 또 그의 고백록인<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책도 쓰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福)된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영적(靈的)인 심령 부흥(復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 성도들 중에 영적(靈的)인 심령 부흥(復興)이 일어나기 위하여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늘 가지고, 기도하기를 애쓰게 됩니다.
우리 중에 영적(靈的)인 심령 부흥(復興)이 일어날 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아름답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과 이 세상에 복(福)이란 복(福)은 모두 다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罪)용서 받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용서받고, 성령 받는데, 너무나도 목말라 하셨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인정이나, 성공을 모두 다 버리셨고,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모든 고통을 받으시면서‘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모든 죄(罪)는 다 없어지게 되었고, 폭포수 같은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후에는 세상의 성공(成功)이나, 물질(物質)에 대한 배고픔은 별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단지 우리는 다른 영혼(靈魂)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데, 너무나도 배고파지게 되고, 목마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이 배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생(一生)이 결코 헛되지 않고, 진정한 만족이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영적(靈的)인 심령 부흥(復興)이 있을 때, 우리는 언제나 행복(幸福)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많은 영혼(靈魂)을 건지게 되는데, 그 가치(價値)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 있는 자는 궁창에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절)고 약속 했습니다.
마치 병원(病院)의 의사(醫師)들이 자신이 치료한 환자(患者)들이 건강(健康)하고, 행복(幸福)하게 사는 것을 보면, 만족스럽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선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가치(價値)가 있고, 죽어도 후회가 없으며, 자기도 모르게 구원하게 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영원히 칭찬과 상급(賞給)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려하고 목말라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배고프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수가 성 여인에게 요4:14절)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Ⅱ.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사람들
5:7절)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전에 고속도로에서 연쇄(連鎖)추돌 사고가 나서 차(車)가 많이 부서지고, 여러 사람들이 다쳤는데, 그때 이 모습을 본 외국인(外國人)특히 서양(西洋)사람들은 차(車)에서 내려 부상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었지만,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고 난 것을 보고서도 그냥 멀뚱멀뚱 보고만 서 있기만 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왜 서양 사람들은 부상당한 사람들을 보고 돌보아주는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경만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에 대하여 우리 나름대로 변명(辨明)을 하자면,‘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음속에는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런 쪽으로는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변명(辨明)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동정(同情)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實際)로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구걸(求乞)하는 사람을 보면, 도와 주어야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하다가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天國)백성의 다섯 번째 특징으로‘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긍휼(矜恤)히 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동정(同情)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보면, 너무나도 긍휼(矜恤)히 없는 세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세상은 너무나도 경쟁적(競爭的)이며, 살벌(殺伐)하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남을 배려(配慮)한다거나, 양보(讓步)하는 것은 상상하기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配慮)해서 한번 양보(讓步)하고, 밀리기 시작하면, 그 뒤에는 완전히 밀려버려서 다시는 재기(再起)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너무나도 자기중심적(自己中心的)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와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그룹(group)을 만들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은 공격(攻擊)하고, 배척(排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이 살벌(殺伐)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내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주고.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따라가’주면, 그때부터 상대방(相對方)은 나를 아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알고 대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고, 억울하게 무시(無視)를 당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순(順)하게 보이거나, 우습게 보이면, 계속 무시(無視)를 당하거나, 손해(損害)를 보는 강퍅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다른 관점(觀點)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병(病)에 걸려서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을 보면, 크게 나쁜 것 같고, 어떤 때는 죽일 놈 같은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나뿐 정권이 생존 경쟁을 시킨 토개공처럼 모두 사랑받지 못해서 마음이 병(病)들어 있고, 피해의식(被害意識)에 젖어 있어서 별 것도 아닌 성과금을 받기 위해 악법으로 한 가정을 파괴하고 교회공동체까지 흩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潛在的)인 적(敵)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다 비슷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다른 사람과 소통(疏通)할 수 있는 기초(基礎)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요즘은 무서운 무관심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즉 남이야 멸망(滅亡)하든 영생(永生)하든 전도지를 한번 줘서 거절하면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면, 너무나도 나쁜 것 같고, 도무지 용서하지 못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모두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形像)이 파괴(破壞)되어서 그런 것이고, 저도 전에 더 파괴(破壞)된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남을 비난하거나, 판단(判斷)하기 이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도 엄청난 죄인(罪人)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비유(比喩)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종이 왕(王)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졌습니다. 여기서 일만 달란트는 지금의 가치로 수십억 원에 해당되는 큰돈입니다. 아마 이 종은 나라의 큰 정책(政策)에 실패(失敗)해서 엄청난 손해(損害)를 왕(王)에게 끼쳤던 것 같습니다.
왕(王)은 이 종에게‘네 빚을 갚으라. 다 갚을 수 없거든. 네 몸과. 네 부인과 아이들을 다 종으로 팔아서라도 갚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은 왕(王)에게 엎드려 빌면서‘제발 사정을 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랬더니, 왕(王)이 이 종을 불쌍히 여겨서 그의 모든 빚을 다 탕감(蕩減)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왕궁(王宮)에서 나가면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즉 몇 만원 빚진 자를 만나서 빚을 갚지 않는다고 멱살을 잡아끌고 가서 감옥(監獄)에 집어 넣어버렸습니다.
왕(王)은 이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화(禍)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왕(王)은 이 종에게 일만 달란트(수십억)의 어마어마한 빚을 탕감(蕩減)해주어서 행복(幸福)하게 살도록 해 주었는데, 막상 자기는 다른 사람의 작은 빚(몇 만원)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은 사랑을 베풀어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왕(王)은 다시 이 종의 빚 탕감을 취소하고, 감옥(監獄)에 도로 집어넣으면서 단 ‘한 푼이라도 갚기 전에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罪)용서 받은 자라면, 이것을 언제나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에 대하여 일체 용서하지 않고,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따진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죄(罪)용서를 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불쌍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먼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더 큰 죄인(罪人)이었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이 나에게 손해(損害)를 끼친 것에 비하여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罪)는 너무나도 엄청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膳物)은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덜 미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긍휼(矜恤)을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 이익(利益)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자기 성공(成功)을 위한 수단(手段)으로 생각해서 이용(利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기에 이용가치(利用價値)가 있으면, 잘해주고, 이용가치(利用價値)가 없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며, 할 수 있으면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나만 행복해야 하고, 나만 잘되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다른 사람도 나와 똑같이 사랑받고, 행복(幸福)할 권리(權利)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나에게 나의 가족(家族)이 소중(所重)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도 그의 가족(家族)도 소중(所重)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 욕심(慾心)을 위하여 남의 행복(幸福)을 깨트리는 것은 단지 그 사람만 상처(傷處)를 입히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똑같이 만드신 하나님께 상처(傷處)를 입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기준(基準)에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욕심(慾心)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은 내 사랑을 원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는 연구(硏究)가 필요합니다. 즉 무엇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긍휼(矜恤)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는 내 자신을 훈련(訓練)시켜야 합니다.
즉 의사(醫師)가 되든, 목사(牧使)가 되든, 선교사(宣敎師)가 되든, 교사(敎師)가 되든, 내 자신이 생명의 양식으로 자격(資格)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한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긍휼(矜恤)히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긍휼(矜恤)을 베푼 사람에게 어떤 복(福)이 있게 될까? 우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많은 기적(奇蹟)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즉 오병이어의 기적(奇蹟)에서 한 소년이 자기가 먹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에게 드렸을 때,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를 긍휼(矜恤)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 사람은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존경(尊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이 자기 인생을 바치고, 자기 젊음을 바쳐서, 자신을 사랑한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映畫)를 보면, 군수공장(軍需工場)을 차려서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지 않도록 살려준 쉰들러 씨에게 나중에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금(金)이빨을 뽑아서 다윗의 별이 새겨진 금(金)반지를 만들어줍니다. 그러면서‘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미군이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그 쉰들러 씨에 의해서 구원받았던 마지막 사람이 늙어서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났습니다. 그는 돈을 쓸 줄 알았고, 사람 생명이 귀한 줄 알았기 때문에 영원히 존경(尊敬)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주는 것보다 더 귀한 사랑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많이 사랑하고, 멸망(滅亡)할 생명을 살리는 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427장 *맘 가난한 사람*
※새벽(冬)5-6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site / Kakao 선교회 안내
주님의 선교 명령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치와 아름다운 가정과 영생을 위하여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대상 : ▷불신자 ▷개종자 ▷코로나 팬디믹 시대. 바빠서 교회출석 못하는 자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 ▷영생의 선물을 받고 사망 후 천국 가길 원하는 자.
즉 허무에서 가치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멸망에서 영생으로, 권태에서 행복으로, 염려에서 기쁨으로, 어리석음에서 지혜로, 저주에서 풍요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으로, 지옥땔감에서 천국高級こうきゅうアパート을 원하는자. ※ 고집과 기질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목적 : 불신자(종교인) ⇨ 그리스도인 ⇨ 주님의 제자. 범위 : 세계 모든 사람(컴퓨터,스마트폰 소유자)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에 보물 쌓을 교갱원 創立member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 및 궁금한 내용 문의 ☞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