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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리 한반도 둘레길 한반도 5호 경계비 길
백두산 산골 송강하에서 새벽을 맞이한다.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는데 시가지를 하얗게 덮고 고구려 사극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숙소를 나서자
눈의 깊이는 발목을 잡고 온도계는 영하 20도를 가리키는데 체감 온도는 더욱 차갑다
송강하 시가지
눈 길의 사람들과 차량이 백두산 산골 송강하 새벽을 열고 있다.
이곳에도 새벽 식당이 열려 있고 장백현과 같은 뷔페식으로 죽 종류와 만두 찐빵 등 다양한 메뉴들이 식탁에 가득하다...
강넹이 죽을 퍼 담는다, 백두산 산골의 추위 속 따뜻한 온기가 더해 한층 맛을 더 낸다.
날이 밝아오자 거리에는 더 많은 사람들로 활기차다.
숙소에 돌아오자 2층식당에서 조식이 시작된다.
도라지, 고사리, 야채, 깻잎 무침 등 우리식 정갈한 상차림으로 찬이 비워지면 무한리필 서비스까지
그간의 인연으로 호텔 측의 배려가 돋보인다.
오늘은 서백두 5호 경계비 천지 전망대 일정과 북백두 천문봉에서 갑오년 마지막날을 보내는 해넘이 일정이 잡혀 있다..
조식이 끝나고 곧바로 숙소를 출발한다.
거리에는 무궁화 꽃송이만 한 함박눈이 쏟아지며 우리 팀을 반기고 있다.
송강하를 출발해 30여 분 지나 백두산 횡단도로 사거리에 도착한다, 도로 우측 한편에 백두산 횡단도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안내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남백두까지 110km의 표기는 남백두 산문까지며.
남백두 삼거리에서 산문까지는 16km다 이 거리를 빼면 94km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장백현까지는 41km다, 이 거리를 보태주면 이곳에서
장백현 백두산 횡단도로 시발점까지는 135km의 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북백두까지 98km를 더해 주면
233 km(600리)가 나온다 이 거리가 중국령 백두산 횡단도로의 총 거리다.
서백두는 직진이다. 산문까지는 10km의 거리다..
송강하를 출발해 40여 분 지나 서백두 산문에 도착. 문표를 구매한 후 산문으로 들어간다
데크를 따라 눈길을 잠시 걷자 환경버스 승강장이 나온다. 여름 시즌 승객을 가득 채워 출발하던 차는 우리 팀이 타자
곧바로 출발한다.
자작나무 사이 도로 길 좌우에는 눈이 터널처럼 쌓여 있고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빙판길인데 차는 시속 60km가 넘는
과속이다, 이제 빙판길을 즐기는 여유까지 생긴다.
백두령 학습 효과다.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 고도가 높아지면서 침엽수 지대에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들로. 자연 트리 그대로 다가온다.
고도 1.800m가 넘자 식물 한계점 주변은 삭막한 벌판 같은 풍경이다.
고도 2.000m 지점 백운봉 산자락에 자리한 서백두 친환경 자연 스키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부터 더 많은 눈이 쌓여 오늘 차량 운행은
여기 까지라며 차는 멈춘다. 차에서 내리자. 스노모빌과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고 지프차는 바퀴를 다 빼고
체인 바퀴가 장착돼 있어. 흡사 탱크 같은 형태로 국내 스키장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 차들이다..
백두산 자연 스키장은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활용 한 스키장으로. 리프트 등 기본 시설이 없다. 동양에서 가장 긴 자연 슬로프로
2012년 서백두 수목 한계점 이곳 산기슭 아래 문을 열었다 베이스캠프에 30여 평의 스키 렌털 하우스 하나가
시설의 전부다. 매년 10월에 오픈해 다음 해 4월까지 문이 열려 있다.
렌털 하우스에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대여받아 지프차에 탑승. 잠시 후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차에서 내려야 한다, 이곳은 전진 캠프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스노모빌로 갈아타고 좌측 산기슭으로 10 여 분 오르면
청석봉(2664m)과 백운봉(2559m) 사이 안부(2.500m)에 올라선다, 이곳에서 꽁꽁 얼어붙은 겨울 천지를 조망한 후.
하산 길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고 삼거리 전진 캠프까지 약 3km의 자연 슬로프를 활강하는 코스로 중급 이상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전진 캠프에서 다시 스노모빌을 타고 천지를 오르내리며 오후 3시까지 연속 스키 활강이 가능하다.
이곳이 중국 측이 2012년 겨울 서백두 개방 당서 야심 차게 내놓은 동양 최대의 슬로프를 가진 백두산
친환경 자연 스키장이다, 5월에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할 무렵 스노모빌만 철수하면 스키장은 폐쇄되고 슬로프는 다시
자연의 본모습을 돼 찾아주는 백두산 친환경 자연 스키장이다.
스키 활강이 어려운 사람은 삼거리 전진 캠프에서 특별 제작된 지프차를 타고 우측길로 10여 분 오르면
5호 경계비 주차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내려 1402 계단을 걸어 천지 전망대 5호 경계비에 올라서면
꽁꽁 얼어붙은 하얀 겨울 천지가 펼쳐진다...
국내에서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아 우리 한국인은 거의 없다.
겨울 백두산 여행은 늘 변수가 따른다. 폭설이 내려 산문에서부터 입장 자체가 불가한 경우가 있고
입장이 가능하더라도 백운봉 정상 주변에 많은 눈이 내리거나 강풍이 일면 스노모빌 운행이
중단되고 오늘처럼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작년 1월 한 차례 경험 했는데 오늘도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간밤에 무서리가 그렇게 내리나 보다..
국화 옆애서 시구가 떠오른다, 또 갈 것이다.
서백두 자연 스키장은 3월이 가장 안정된 날씨로 중국 스키 마니아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동양 최대라는 중국 측 홍보와는 달리 아주 작은 렌털 하우스 내부에는 중국 스키 마니아 한두 명이 전부다.
80년대 초기 당시 용평이나 진부령 알프스 리조트 시설의 10분의 1 이 되지 않는다
국가 경제 수준이 레저 인구와 비례한다고 한다.
배가 불러야 즐기고 찾는데. 중국 인민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또다시 아쉬움을 남기고 차에 오른다
차는 스키장을 출발해 10여 분 후 금강 대협곡 산문에 도착한다.
산문 내 좌측으로 난 데크를 따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약 1km의 거리로 중간지점에 금강 대협곡 일부가
공개 돼 있다.
또 다른 겨울로 들어간다
좌측 데크를 따라 5분 여 걷자 발아래로 거대한 금강 대협곡이 펼쳐진다
협곡 전체가 기묘한 용암석들로 하얀 눈을 덮고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다.
대자연의 걸작으로 동화 속 나라 같다.
이곳에서 천지의 아쉬움을 다소 해소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금강대협곡
2차 5월
비수기에는 24인승 환경 버스가 운행한다. 차가 출발하자 바로 자작나무 사잇길 도로다
30여 분 지나 고도 1.700m 침엽수 지대에 접어들자 전방에 5호 경계비 천지 전망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아래사진에 가장 우측 봉우리가 북한의 제운봉(2603m)이다 제운봉 좌측 안부(2470m)가 5호 경계비 천지 전망대며
좌측으로 마천우(2559m) 청석봉(2660m) 백운봉(2691m) 순이다 백운봉은 중국령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수목 한계점 고도 2.000m가 넘자 도로변에 아직 잔설아 많이 남어있다. 차는 5호 경계비 주차장까지
논스톱으로 운행한다 산문에서 40여 분 소요되고 5호 경계비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 바로 앞에 돌계단과 데크 계단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돌계단은 서백두 개발이 시작된 1999년 초기에 시공됐고 우측 데크 계단은 베이징올림픽 이후 생활이 윤택해진
중국 인민들이 떼거리로 몰려오자 중국 측은 2009년 새롭게 하나 더 시공했다, 왕복 1차선에서 2차선으로 보면 되고 천지 전망대까지는
1402 계단이다. 주차장 한편에 가마도 대기하고 있다.
가마 타고 천지 가는 길. 상상만으로 즐겁다, 요금이 만만치 않다, 1인에 우리 돈 10만 원이 넘는다.
우리 한국인이 타는 것을 보지 못했고 고객 대부분 중국 인민들이다.
중국은 지금 기득권층들의 천국이다. 연소득이 가마 한 번 타는 금액에 못 미치는 중국 인민들이 현재 수억이 넘지만 중국의
기득권층은 지금 그들만의 황제 리그전을 벌이고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를수록 눈은 아직 만년설처럼 쌓여 있고 30여 분 지나 천지 전망대에 올라선다
현재 데크 계단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돌계단 (1408 계단)과 거의 같은 숫자나 고도차에서 팔공산에 못 미쳐
경사도가 완만해 이곳 계단이 많이 편하다.
변덕스러운 천지 날씨가 또 심술을 부리지 않을까? 다들 빨리빨리를 외친다. 한 사람이 숨을 몰아쉬며 많이
처진다. 1차 당시 국내성에서 만난 탈북자다. 다음 차에 만나 남북의 형제가 함께 손잡고 백두산을
함께 오르자라고 약속한 탈북자로. 입국 당시 동강항에 마중을 나와 지금껏 일정을 함께하고 있다.
건강한 신체로 보이나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 후미에서 같이 호읍을 맞추며 5호 경계비 천지 전망대 비로 아래서
손을 맞잡고 천지 전망대에 함께 올라선다, 가슴이 찡하다. 천지는 남북의 형제들을 환영하듯
환하게 열려 있다.
1402 계단
천지
백두산 천지는
수면 둘레 14km 남북 길이 4.55km 동서 길이 3,35km 평균 수심 213m 최고 수심 384m로. 수면이 차지한 면적은 9,82㎢다
천지는 불규칙한 타원형의 형태로 수면 고도 2257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지대 분화구에 생겨난 호수다.
천지를 연꽃처럼 감싸고 있는 23개의 산봉우리는 하나같이 다 해발 2.500m가 넘고 용암석이 함께
어우러져 청록색의 천지 호수를 한층 더 아름답게 하고 있다.
중국 측 천문봉에서 천지 건너편 장군봉을 바라볼 때 장군봉에서 좌측으로 천지를 따라 순서대로 나열한 23개의 봉우리
정보다.
장군봉(2750m)은 백두산 최고봉으로 한반도 영토에 우뚝 솟아있다 장군봉에서 백두대간이 발원되고
백두대간은 지리산 천왕봉까지 길게 뻗어 있다.
향로봉(2712m)은 망천우라고도 부르며 23개 봉우리 중 세 번째 높은 봉우리다.
비류봉(2580m)은 천문봉에서 바라볼 때 천지 물가에 가장 근접해 솟아있다.
쌍무지개봉(2626m)은 한반도 영토에서 마지막 봉우리며 중국 측 자암봉과 사이 안부에 북, 중 국경비 6호 경계비가
자리하고 있다.
자암봉(2521m)은 6호 국경비를 사이에 두고 북측 쌍무지개봉과 마주한 중국령 첫 봉우리다.
자하봉(2616m)은 중국령 두 번째 봉우리다.
화개봉(2640m)은 중국령 3번째 봉우리로 천문봉에서 바라볼 때 아침해가 화개봉 뒤편에서 올라온다.
천활봉(2620m)은 천문봉에서 북동 방향으로 천지를 살짝 비켜나 있다.
천문봉(2670m)은 백두산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곳으로 천문대가 자리하고 있고 지프차 주차장 등 휴게소가 있다
천문봉은 1956년 중국 측이 천문대를 이곳에 건설하고 이후 천문의 명칭을 따 붙인 봉우리명으로
추정된다.
철벽봉(2550m)은 통천하를 건너기 직전 마지막 봉우리다
차일봉(2595m)은 마천우 기슭에서 출발해 서백두 트레킹 도착점으로 이곳에서 잠시 내리면 소천지다 지도에 따라 용문봉으 로 부르기도 한다.
관일봉(2510m)은 정상에서 잠시 내리면 백두폭포와 옥벽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병봉(2590m)은 서백두와 북백두 사이 중간 지점이다.
녹명봉(2603m)은 백운봉 사이 안부에 7월경 이름 없는 들꽃들이 만발하다.
백운봉(2691m)은 중국령 최고 봉우리다.
청석봉(2664m)과 백운봉 사이 안부는 겨울 서백두 자연 스키장 스카활강 출발점이다.
마천우(2559m)는 북한의 제운봉과 사이 안부에 북. 중. 국경을 표시한 5호 경계비가 서 있고 서백두서 북백두까지
트레킹 출발점이다.
제운봉(2603m)은 5호 경계비서 바라볼 때 북한 측 첫 봉우리다.
낙원봉(2503m)은 낙원봉과 관면봉 사이 능선에서 하나의 산줄기가 발원돼 백두령을 넘고 압록강을 따라 고구려 박장성까지
길게 뻗어 내린 하나의 큰 산줄기가 백두정간이다.
관면봉(2525m)과 와호봉사이 안부에 4호 경계비가 자리하고 있다
와호봉(2662m)은 호랑이 전설이 전해오는 봉우리다..
제비봉(2549m)은 제비봉과 해발봉 사이 능선에서 하나의 산줄기가
발원돼 혜산과 산수 갑산을 거쳐 후치령을 넘고 압록강을 따라 신의주까지 길게 뻗어 내린
하나의 큰 산 줄기가 압록강 정간이다,
해발봉(2719m)은 백두산에서 두 번째 높은 봉우리로 장군봉. 해발봉. 향로봉 등 3개의 봉우리가 백두산 1. 2.. 3 봉으로
한반도영토에 나란히 솟아 있다.
백두산 천지는 수백만 년 전 만주벌판 동쪽 끝자락 이곳에서 대폭발이 일어나 23개의 봉우리가 타원형을 그리며 솟아났고
중앙 분화구에 천지호수가 탄생했다..
23개 봉우리 중 최고봉 장군봉을 비롯 10개 봉우리가 현재 한반도 영토에 솟아있고 천문봉을 비롯 13개 봉우리는
중국에 속한다. 6호 경계비에서 남서쪽 5호 경계비까지 천지를 반으로 갈라놓은 일직선이 현재 북. 중 천지 수계로
북. 중 국경 라인이다, 5호 경계비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를 때 계단 우측 산기슭을 한반도 영토로 착각하는 여행객들이 많은데
우측 산기슭 전체는 현재 중국 영토로 돼있고., 5호 경계비 안부에 올라서면 우측 정상 능선 부분과 절벽 부분이 한반도 영토에 속한다..
5호 경계비에서 국경선은 L자 형태로 90도 꺾여 동남쪽 4호 경계비까지 일직선 형태로 능선을 따라 한반도 국경을 이루고 있다.
현재 능선 국경 라인은 가냘픈 줄로 표시하고 있다.
아래 사진에 필자는 지금 국경 라인을 넘어 월북한 것이다.
천지는 본 놈도 천지고 안 본 놈도 천지라 천지가 천지라 천지라고 한다.
3대가 덕을 닦고 100번 가면 2번 정도 천지가 열린다고 해 백두산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내게는 99번을 열어주었고 내 가족들에게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열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따라나선 막네 한태까지도
너무 환하게 열어 주었다...
대학입학 기념으로 데리고 간 막내딸 초. 중. 고 12년을 학교 방송반 아나운서로 또래들에게 유명세를 더 했고
한강 이남 최고의 명문대학 경제학도다, 가자 한라서 백두까지다...
2014년 8월 18일 서백두 천지 5호 경계비
중학교 재학 당시 대구 교육청에서 주관한 미래 차세대 리드 양성 교육과정이 하계 방학 기간 북녘의 금강산에서
있었다. 대구 소재 각 중학교 전교학생 회장 1 명식 각 학교를 대표해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관계로
당시 백두산 여행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몇 년을 더 기다려 대학 입학 기념으로 데리고 간 큰딸
막 네 딸과 같은 대학 심리학과로 인문학 의학도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학교까지 선출직으로 또래들에게 검정된 큰딸. 또 초. 중. 고 대학까지 16년을 학교 방송반 아나운서로 유명세를
더 했고 2019년 국내 대학과 대학원에서 3명이 선발돼 미국으로 날아간다.
세계 각국에서 대학생 3 명식 선발돼 자국 대표로 참가하는 미래 글로벌 리더대회 미국대회 한국 대표다.
국내 s그룹에서 주관하고 전 일정 경비까지 s 그룹에서 지원한다, 인천에서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왕복 3백만 원이
넘는 비지너스 석이라며 카톡이 날아온다,
우리 아이들은 초. 중. 고 12년 내내 예능 외는 그 흔한 학원이나 과외 한 번 한 적 없다, 가족 여행 외는 내가 별로 해준 게 없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자연을 접하고 절로 큰 아이들 초, 중, 고 12년 내내 아이들 셋 모두 6년 3년 3년을 다 개근상을
받은 것이 내가 가장 자랑스럽다.
가자 한라서 백두까지다.
2013년 8월 북백두 천문봉
아들이 중학교 3학년 신학기 당시 전교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거라
하계방학 때 백두산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당선 돼 약속을 지켰다 이때까지 아들은 어느새 백두대간 몇 바퀴를 돌며
백두대간의 에너지를 가장 많이 충전했다,
국제 무역학을 전공하고 경제학을 전공한 며느리와 함께 기초를 잘 다지며 지금 우리 사회서 열공 중이다.
순정품 백두 혈통이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가자 한라서 백두까지다.
2004년 북백두 천문봉
2019년 봄날 아들은 백두대간 가장 끝자락으로 가 며느리를 데려 온다.
내게 또 하나의 축복으로 내 집 종가 며느리다. 내게는 친가 외가 양가 동생들이 41명 있다, 내 위는 없다.
부친은 8남매 장남이며 모친은 6남매 장녀다.
이것도 내게 큰 자산이고 복으로 선대가 내게 베풀이 놓은 은덕이다. 나는 준 게 없다 이 많은 복을 이제
내 아들과 딸 며느리에게 다 넘긴다
백두산은 내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주고 있다. 나는 받기만 하고 준 게 없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은 당시 한국 농경 사회에서 가장 부촌 마을이라는. 금호강변가 대구 사과로 유명한 과수원 집산촌 마을이다
5월이면 120여 호 마을 전체가 능금꽃 향기와. 아카시아 꽃향기 그득했고. 우깍단 아리깍단 장지망 속질 혈찌미 보살 매끼미
도둑굴등 매산 띠기 포도밭과 문호 띠기 참외 수박밭 등 금호강 건너 갱빈에 늘린 수박 참외 따 먹고 땅콩 밀싸리 해 먹었다.
강변가 둑길 등에서. 당시 나는 많은 추억을 갖고 있다.
당시 내 집에서도 과수원과 전답 등 적지 않은 농사를 지었고 13명의 대가족 3대가 함께 살며
마을에서 가장 많은 가족 수를 자랑했다. 머슴까지 합치면 식구는 더 많다.
당시 부친은 특무대 요원으로 안주머니에 늘 권총을 차고 다니며 외출 시 작은방에서 짚베까리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고 빨갱이 잡는 사격 연습이라고 했다, 이때 나는 마을 골목길 또래들에게 어깨를 으슥거린다
셋째 삼촌은 귀신도 잡는다는 청룡부대 1진으로 월남전이 가장 치열할 당시 파병된다
당시 내 조모님은 삼촌이 꼭 살아서 돌아오라며 매일 아침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당시 조모님은 주변 이웃과 나눔의 삶이 늘 생활에 베여 있었고. 국가 유공자 집안의 보수적 분위기 속
당시 필자는 조모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으며 자랐으나 나는 그 나눔의 삶을 물려받지 못했다..
두 번째 삼촌이 있다. 한 해 전 돌아 가시는 날까지 형제들이나 주변과 나눔을 나는 단 한 번 보지 못했다;부창부수다..
그러나 아들놈은 한국 최고의 명문대 S대 법대를 졸업하고 현직 포청천이다, 돈 잘 번다는 사자 사위까지
또 추풍령 넘어 한양에 딸이 둘이나 더 있다, 자식 농사가 대풍작이다, 당시 사과농사는 다 망쳐놓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팽개치고
단봇짐을 싸들고 도시로 다 줄 행량을 쳤다,
부모님의 은덕이 아니고는 달리 답이 없다. 내 가족사의 아이러니다,
당시 한국 농경 사회에서는 결혼 후 2~3년 부모님을 도와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다 분가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후 급속히 밀려오는 산업화 과정에서 한국농경 사회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서백두 5호 경계비를 중심으로 우측 북한 영토에서 우리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출입이 가능한 것도
5호 경계비를 중심으로 좌측 편 중국 측 천지 전망대가 협소해 밀려오는 여행객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중국 측은 5호 경계비 우측 편 한반도 영토 수백여 평을 2009년 북한으로부터 임대받아 천지 전망대를 확장했고,
이후 북한의 경계병들이 철수하고 중국 여행객들이 5호 결계비 우측 한반도 영토에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여기까지 대한민국 영토로 돼 있다, 그러나 국가 보안법이라는 별 희한한 법에 걸려
주권자가 더 이상 넘지 못한다.
중국 측이 북한 측으로부터 임대할 당시 5호 경계비 자리 모습이다. 이 당시 북한 초병들이 국경 라인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고. 여행객들은 한반도 영토에 단 한 발짝도 침범할 수 없었다 2009년 이후 서백두와 남백두에서 북한 경계병들이 몇 년의
시차를 두고 사라진다.
이후 누구나 출입이 가능했다..
5호 경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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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 백색 철재 코너점이 현재 5호 경계비 자리로 2008년 북한 경계병의 모습이다
천지 건너 6호 경계비에서 코너점까지 일직선으로
천지를 반으로 갈라놓은 것이 현재 천지 북, 중 수계다. 철재 코너점에서 국경 라인은 우측으로 L 자 형태로 90도 꺾여
남백두 4호 경계비까지 정상 부분 능선을 따라 국경 라인이 이어진다. 능선을 중심으로 좌측 능선 정상 부분과 절벽 부분이
한반도 영토며 우측 산기슭 전체는 현재 중국에 속한다.
초기 철재로 된 국경라인은 현재 철거되고 철재 코너점에 5호 경계비가 세워졌다..
북중 국경선
서백두 트레킹
서백두 트레킹은 5호 경계비 안부가 출발 기점으로 5호 경계비 좌측 편 마천우 좌측 산기슭으로
트레바스 하면서 시작된다,
천지호수는 23개의 산 봉우리가 연꽃처럼 감싸고 있고. 청옥색의 천지를 우측에 두고
마천우(2559) ~ 청석봉(2664m) ~ 백운봉(2691m) ~ 녹명봉(2603m) ~ 금병봉(2590m) ~ 관일봉(2510m) ~
차일봉(2595m) ~ 철벽봉(2550m)을 넘는데 기묘한 용암석의 만물상과 6~7월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에 늘려있다..
봉우리 간 고도차가 적어 힘들 것도 없다.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2750m)이 손에 잡힐 듯 트레킹 내내 천지와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철벽봉에 도착해 우측으로 내려가
천지 호수 물가를
거닐기도 하고 통천하를 따라 백두폭포 아래로 내리기도 한다.
차일봉 안부로 올라 옥벽폭포 능선 길을 타고 내리면 우측 저만치 천지호수는 백옥색의 물을 쏟아내고 있다, 백두폭포다.
이곳에서 잠시면 소천지가 나오고 서백두 트레킹은 끝난다, 약 13 km의 거리로
소그룹일 때 5~6시간 남녀 단체일 때는 7~8시간이면 가능하다, 한국 트레킹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처지지 않는 비경을 간직한 루트다
근래 들어 한국 트레킹 마니아들이 거의 없다.
고액의 입산료 등 까다로운 입산 절차 등이 문제다. 이곳 역시 남백두와 같이 백두산 관리 위원회 측이
지정한 현지 여행사 소속 가이드
동반이 필수며 사전 예약제다, 자연보호를 목적으로 연간 3.000명 허용되나 중국은 늘 고무줄 변수가 있다.
리드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입산료 및 가이드 포함해 1인 25만 원이 넘는 고액의 입산경비와 까다로운 입산 절차 등이
서백두 트레킹 마니아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서백두 트레킹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처지지 않는다.
서백두에서 북백두까지 백두산 최고의 환상적 트레킹 코스로 추천한다.
5호 경계비 주차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차가 가장 먼저 정차하는 곳이 제자 하다.
발아래로 4m 정도의 깊이에서 흐르는 작은 협곡으로 물길은 순간 노출되고. 금세
지하로 흘러 버리는 기이한 협곡으로 여름에도 수온이 영하에 가깝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한 느낌이다.
지하 물길은 제운봉에서 발원돼 흘러오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제자하
제자하에서 다시 차를 타고 10여 분 후 금강 대협곡 작은 산문 앞에 도착한다. 해발고도 1464m에 자리한 산문에 한자로 장백산
대협곡이라고 적혀 있으나 우리 여행객들 누구도 장백산 대협곡이라 부르지 않는다.
90년대 말 금강 대협곡이 개방되던 초기에는 중국 여행객들이 거의 없었다. 당시 한국 백두산 마니아들
사이에서 불리던 금강 대협곡이 국내 여행사 홍보물에 그대로 인쇄되고 백두산 패키지여행이
시작됐고 20여 년 지난 지금 금강 대협곡으로 우리 백두산 여행객들 사이 확고히 정착했다.
중국령 백두산에서 유일하게 우리식 명칭이다. 한중수교 이후 초기 백두산 마니아들이 꾸준히 개척 등으로 일군 성과로..
이러한 것 등이 진정한 백두산 지킴이다.
금강대협곡산문
1997년 5월 3일 12시경 서백두 밀림지대에서 큰 산불이 난다. 이때 중국 인민군들이 동원돼 산불 진화
과정에서 금강 대협곡이 첫 모습을 드러낸다.
협곡 길이 6~70km 폭 최대 100여 m 깊이 최대 200m의 거대한 용암협곡으로 현재 불난 자리 계곡 허리쯤에 200m 정도
공개되고 있다
작은 산문으로 들어가 좌측 데크를 따라 잠시 걸으면 중간쯤에 협곡이 펼쳐진다.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약 1km의 거리로 30여 분 소요되고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으나. 더 이상 진입은 불가하다. 발원지도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
탐험대 이상 팀이 꾸려지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의 그랜드 캐니언이라 일컬어지며 비경이 뛰어나. 현재 서백두를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러니하게 이곳에 산불 난 당일 필자는 북백두에 있었다. 당시 백두산은 연중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연중 3개월간
산문이 열리고 입산이 가능했으나 중국은 늘 변수가 있다, 그 변수를 따라 산불 전날 입장할 수 있었고
우리 일행 외는 북백두 산문 내 누구도 없던 시절이다, 이날 오후 산불 연기는 우리 일행이 타고 온 차를 따라 용정까지
따라오던 기억이 새롭다, 귀국 후 뉴스를 접하고 연기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서백두 산불이었다.
산문을 지나 좌측 데크 길에 접어들자
다람쥐 한 마리가 재롱을 부린다. 팔공산 다람쥐다, 백두대간을 타고 어미산까지 혼자 나들이 온 놈이다.
지금 이놈만이 38선 철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백두대간을 타고 이곳까지 나들이가 가능하다.
그래 오느라 수고했다. 이곳 여우들 조심하라며 사탕하나 던져준다.
데크를 따라 5분 여 지나자 발아래로 거대한 금강 대협곡이 펼쳐진다.
겨울 풍경과 또 다르게 다가온다.
무송현 어느 마을 이야기
예부터 이곳 마을 사람들은 6~. 7월을 기다린다.
이때가 되면 마을 앞 냇가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온갖 동물들이 냉동이 돼 떠내려 온다.
마을 사람들은 동물들을 건져 올려 마을 잔치도 하고 남은 것은 장터에 내다 팔기도 했다고 한다
1997년 금강 대협곡이 발견되고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늦가을 백두산 밀림지대에서 먹이를 찾아 헤매던 온갖 동물들이 밀림 속 중앙을 가로는
이곳 협곡에 떨어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협곡을 헤매다 겨울에 동사해 6~7월이 다가오면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떠내려오는
자연 현상으로 백두산 동물들에게는 지금도 반복되는 악마의 계곡이다
금강대협곡
산문에서 환경버스를 함께 타고 온
북경 대학에 다닌다는 여대생들 금강 대협곡에서 같이 한 팀이 돼 빨리빨리를 외치며
함께 파이팅 한 친구들이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백두산에는 지금 중국 각지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찾아오고 있다.
중국의 성장을 새삼 느끼게 한다.
상해서 배낭여행 왔다는 깜찍스러운 여대생이다. 7~80년대 설악산 토왕폭 용아장성 공룡능선 등을 헤집던 열정 넘치던
대학 산악부 시절이 얼른 스친다. 88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 산에서는 알피니즘이 실종되고 없다.
지금 한국 산에서는 20대. 만나기 힘들어지는 참 희한한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고 중노년층이 스틱 2개씩 들고 다니며
한국 산을 점령한 지 오래다.
중국도 어느새 우리들의 80년대 레저문화 수준을 넘고 있다, 자연을 접하는 순수함이 문득 그립다.
1차 1월
금강 대협곡을 출발해 산문까지 20여 분 채 걸리지 않는다, 산문에서 10여 분이면
백두산 횡단도로 사거리에 도착한다, 북백 두는 우회전 길이다. 북백두 산문까지 98km라는 안내 표지판이 하나 서 있고
이곳에서 30여 분 후 도로변 좌측 편 밀림 지대에 마을이 하나 나온다.
백두산 횡단도로에 유일한 마을이다. 수년 전부터 하룻밤을 계획하던 마을로 하룻밤 정보를 얻으려던 계획이 오늘 또 허탕이다.
세차게 날리는 눈발이 마을에 차량 진입을 막고 있다
천지 아래 태고의 밀림 지대에서 흘러오는 작은 물길이 마을 앞을 지나는데 이들의 생활 식수와 작물들의
용수다, 물길이 수백 리 밀림지대를 흘러오면서 온갖 약초 등 산삼 썩은 물 등을 다 씻어올 것이다.
이 물에 매일 밥을 지어먹는다는 이곳 마을 사람들, 이들은 신선의 사람들일까? 이곳을 지날 칠 때마다 매번 궁금증이 더해 온다.
또다시 다음 기회로 넘긴다.
북백두 전진도시 이도백하가 가까이 오고 도로에는 제설 작업이 말끔히 정리돼 있다.. 차량 속도가 빨라지고 백하 시가지 우회 길을
빠져나온다, 이곳 백하에서 북백두 산문까지는 30km 남짓 거리다
이도백하는 연변의 주도 연길에서 남쪽으로 500여 리(204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임업도시로 백두산 여행 초기 당시 가장 먼저
개발된 도시다, 이곳에서 밀림 속 도로를 따라 약 30분이면 북백두 산문에 도착한다.,.
문표를 구매한 후 산문으로 들어서면 환경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차에 탑승하면 약 15분 후 삼거리 환승 구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천문봉 지프차 환승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데 보험료 포함 85원이다. 버스에 그대로 앉아 있으면 약 5분 후 백두폭포
주차장에 도착한다
환승 티켓을 구매한 후 지프차로 갈아타고 백두산에서 처음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천문봉까지 약 15km의 급경사 길을 잘 훈련된 기사들이
거의 카레이스 수준으로 속력을 내며 브레이크 작동이 거의 없다, 지프차는 약 15분 후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려 뒷걸음을 쳐도 10여 분이면 천문봉에 올라선다, 발아래로 청옥색 천지가
펼쳐지고 천지 건너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시야에 들어온다.
천지는 지구에서 가장 고지대에 자리한 큰 호수다.
천지는 연중 200일 이상 운무에 가리거나 눈비가 내려 천지 조망에 어려움이 따른다. 조선의 처녀를 닮아
얼굴 내밀기 수줍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백번 가면 두 번 정도 천지가 열린다고 하여 백두산이다.
3대가 덕을 닦아야 한 번에 천지를 만날 수 있다는 등 많은 유행어를 만들며 천지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천지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하산길은 주차장에 대기한 지프차를 타고 15분 정도 내리면 다시 삼거리 환승구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폭포행 환경버스로 환승해. 약 5분이면 백두폭포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 노상 온천에는 계란을 삶아 팔고 컵라면도 팔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 돈이 유통되고 한국 돈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다.
중국공산당은 백두공정의 일환으로 백두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유네스코 등재에 공을 들일 당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관리하던
백두산을 2009년 국립공원으로 격상시켜 현재 길림성 국립공원 관리 위원회에서 특별히 관리하고 있다.
이후 주차장 주변에 즐비하던 호텔 식당 등 위락 시설 등을 전부 철거시키고 현재 객실 9개 갖춘 노천 온천장 호텔(패션) 한 곳이
이곳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데크 초입에 백두폭포 1km라는 안내 표지판이 하나 서 있고 데크를 따라 약 600m 올라가면
폭포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낙석 등 안전을 이유로 더 이상 접근이 불가하다. 폭포 우측 540 계단을 따라
통천하를 지나 천지 달문까지 어어지는 천지 트레킹 루트는 백두산 관리 위원회 측의 사전 허가와 이들로부터 지정된 현지 여행사
소속 가이드 동반이 필수다 1인 20만 원 정도의 입산료를 지불해야 폭포를 지나 천지까지 트레킹이 가능하다.
폭포 조망 후 다시 데크를 따라 하산.
주차장에 대기한 환경버스를 타고 약 15분이면 북백두 산문에 도착되고 북백두 일정은 모두 끝난다.
4 시간 정도면 여유가 있으나 여름시즌은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
비시즌의 경우 북백 두 일정을 모두 마치고 서백두까지 하루 일정이면 가능하다.
2015년 백두산 관리 사무소 측의 통계에 따르면 백두산을 찾는 여행객들 중 북백두 입장객이 70%
서백두 입장객은 30%의 비율로 서백두가 상대적으로 많이 한산하다.
남백두는 현재 1%도 채 되지 않는 소수점이다.
백두산은 폭설이나 천재지변 외는 365일 늘 열려있다.
갑자기 버스 속도가 느려지고 기사가 앞을 가리킨다.
백두산 여우다, 살이 토실토실한 여우가 여유 있게 무단 횡단 하고 있다.
남쪽에서 6~70년대 쥐 잡기 운동 당시 독극물을 섭취한 쥐를 먹은 여우들이 남쪽에서 멸종한다
이후 반세기가 다가오나 백두산 여우는 돌아오지 않는다, 휴전선 철책이 백두대간의 생태계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여우들에게 대박이다
12시경 북백두 산문에 도착한다, 장백현에서 시작된 백두산 횡단도로 600리(233km) 마지막 종착지다.
오늘은 갑오년 마지막 날로 천문봉에서 해넘이 일정이 잡혀있고 천문봉 정상에서 1박 한다.
내일은 광복 70주년 되는 해이며 을미년 새해 첫날로 백두산 천문봉에서 대망의 새해를 맞이한다.
산문에서 합류하기로 한 김 교수는 아직 연락이 없다. 약속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고. 우리 팀이 너무 일찍 도착하였다.
소중한 시간들로 팀 전체가 함께 기다릴 수 없다
서백두 입장권을 재활용해 팀을 먼저 입장시키고 혼자 남는다.
전화가 온다, 김 교수다, 지금 안도현을 지나고 있다며 1시 30분경 산문에 도착할 것 같다고 한다
김 교수는 조선족으로 연변 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다. 또 대학 내 동북아문제연구소 소장으로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 다니며
북한의 김일성 대학에서도 강의하고 우리 통일부나 전국 주요 대학 등에서 초빙 교수로 특강이나 세미나 등에 자주 참석 한다.
우리 중앙 언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새해 다음 날 오후 연변대학에서 우리 팀과 두 시간여 세미나가 잡혀 있다
이번 여행길 최고의 게스트다.
산문에서 혼자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한다.
백두산의 비밀
백두산(2750m)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3000m 가까운 고산을 너무 쉽게 올라온 것에 대해 많은 여행객들이 의아해 할 수 있다.
장백현 해발 1.000m 송강하 해발 1.000m 이도백하는 해발 800m로 각 고지대에 자리한 백두산 전진 도시다.
여행객들은 이곳까지 열차나 버스를 타고 평지 같은 미세한 경사 길을 언덕 한 번 만나지 않고 너무 쉽게 해발 1.000m
고지대에 들어온 것이다.. 이도백하에서 다시 차로 이동해 산문(1130m)을 거쳐 지프차 환승구간(1750m)까지 여행객들은 어느새 설악산
대청봉 높이 이상 올라와 버린 것이다 수백만 년 전 벌판이던 이곳 환승 구간에서부터 화산 폭발이 일어나 산봉우리가
솟아나면서 23개의 산 봉우리 중앙에 천지 호수가 탄생했고.
이곳 환승 구간에서부터 가파른 언덕이 생겨 천문봉과 고도차 900m 거리차 약 15km의 급경사가
이뤄졌다
천문봉에 올러서면 발아래로 천지가 펼쳐지고 북녘 땅 동남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확 트인 평지 밀림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남북 240km 동서 180km의 광활한 평지 밀림 지대 전체가 백두산이다, 우리 한국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백두산을
찾고 있으나 백두산의 깊은 속내는 외면한 채 천지에만 올인하는 아쉬움이 있다.
백두산은 또 우리 민족만의 영산이라고 알고 있으나 우리 민족 이상 백두산을 신성시하는 민족이 또 있다.
청나라를 건국한 여진족들이다.
우리는 예부터 여진족을 오랑캐족이라고 했고. 이들은 유목민이며 이들의 생활터가 북간도와 연해주다
연해주와 북간도에는 한반도의 백두대간처럼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없다.
평야에 독립된 몇 개의 작은 산줄기 사이로 펼쳐지는 초원지대 중앙으로 백두산에서 발원된 토문강이 흘러간다.
이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토문강에 물을 달라며 여진족들은 늘 백두산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성스러워했다.
여진족은 청나라를 건국하고 백두산과 북간도는 여진족의 발상지며 성지라고 하여 백두산을 신성시했고
백두산 북쪽 지역과 서쪽 지역등 북간도 전역에 봉금제를 선포해 인간의 출입을 금지시킨다.
봉금제가 해제되는 1882년까지 200여 년 넘게 북간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지대로 변한다
이후 청나라는 300여 년 중국 한족을 지배하고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 청나라는 역사에 사라진다. 이후 모택동 공산당이
등장해 중국을 지배하는데 여진족은 한세기도 채 안 돼 중국 한족에 동화되고 지금 민족도 글도 언어도 다 사라지고 없다.
이들은 역시 오랑캐족들이었다
중국 지질학자들은 백두산은 넓이로 말한다고 한다.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높은 산은 아닌데 면적은 세계에서 가장 넓다.
높이로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가 8848m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세계에서 두 번째로 면적이 넓다는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가 바닥 지름 100km에 달한다.
백두산 바닥 지름은 약 150km에 달하며 중국 정부는 백두산의 전체 면적을 7만㎢라고 소개한다.
남한 면적 70% 정도의 면적이 현재 백두산이며 또 이곳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백두대간이 길게 뻗어 있디
1시 30분경 김 교수가 산문 휴게소로 들어오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삼거리 지프차 환승구간에서
천문봉 막차 시간이 2시다.
서둘러 환경버스에 올라 삼거리 환승구간에 도착하는데 천문봉 막차는 떠난 뒤다.
오늘 천문봉 해넘이 일정과 내일 신년 해맞이가 1만 리 한반도길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먼저 출발한 우리 팀과 이산가족 된 기분이다.
매표소 옆에 자리한 관리사무실을 찾아가 책임자를 찾자.
2층 사무실에 있다고 한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가 김 교수가 사정 이야기를 하자 책임자는 흔쾌히 승낙한다
특별히 차를 한 대 내주겠다며 기사를 호출해 차량을 대기시킨다.
책임자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하고 차를 타고 천문봉으로 출발한다.
지프차는 기분 좋게 달린다, 천문봉까지 약 15km의, 급경사 도로에는 제설 작업이 말끔히 정비 돼 있다. 서백두와 달리 북백두에는
눈이 내리면 바로 제설 작업을 한다고 한다. 잠시 후 천문봉 주차장에 도착하자. 배 선생이 이산가족 만나 듯 달려온다.
천문봉 휴게소에 지금 박재동'화백과 안도현'시인 등 한겨레 신문사 기자들이 광복 70주년 기념 백두산 해맞이 행사
전야제를 준비하고 있다며 이들은 휴게소 내 공간을 전세 내 텐트 치고 1박 한다며..
우리 팀이 거금을 지불하고 어렵게 예약한 숙소로 안내한다.
산기슭의 많은 눈과 달리 천문봉 정상에는 눈이 거의 없고 눈 싸라기만 남아있다, 지표에 눈이 쌓이기 전 강풍이 다 날려버리는
현상이다
천문봉
휴게소에서 100여 m 떨어진 천문대 주변 한쪽 공간에 공사장 합판으로 지은 나지막한 단층 판잣집 건물이 우리 팀 하룻밤 숙소다
외부는 베니다 합판으로 된 벽면에 비닐을 덧대어 1차 냉기를 막아주는 전형적 판잣집 건물 형태다, 내부에 들어서자
3~4평 정도의 바닥에 전기온돌매트가 깔려 있고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열기와 함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기상대 공사현장 노동자들과 직원들의 임시숙소로 급조된 건물로 보이나 우리 팀 13명이 합계 1박할 소중한 공간이다
거금이 지불됐다, 1인에 600원 7,800원과 다음날 아침 지프차 요금까지 합쳐 8.840원 지불됐다. 판잣집 창고형 방하나에 우리 돈 백오십만 원 정도다, 한반도와 북간도를 통틀어 가장 고지대 고액의 숙소다
다들 반갑게 김 교수와 인사를 나눈다.
곧 해넘이 시간이다.
밖을 나서자 초강풍이 몰아치며 영하 30도를 넘고 있다. 다른 팀은 보이지 않는다.
천문봉에 올라서자 엄청난 강풍과 짙은 스모그에 천지는 가려있고 해넘이도 실패다.
생에 딱 한 번이 될 수 있어. 버티 보지만 살이 찢기 듯 강한 칼바람에 더는 버틸 수 없다.
천문봉 천지 표지석을 안고 갑오년 마지막 추억을 담는다.
하산이다. 숙소로 돌아와 각자 챙겨 온 행동식 등을 내놓고 함께 나눔으로 석식을 대신한다. 술잔이 돌아간다.
조국에서 찾아온 우리 팀을 환영한다며 김 교수가 연길에서 싸들고 온 중국의 명품주 마오타이 2병을 내놓는다.
광복 70주년 기념 대망의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자 내일 새벽 천지도 환하게 열리길 기대한다
잔을 높이 들어라 한반도 최고봉 작은 공간에서
갑오년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천 문 봉숙소
팔공산 자락에서,,,....
이 정 우
백두산과 1만 리 한반도 둘레길 어느 구간이던 정보 지원 하겠습니다.
현지정보 및 교통 숙박 숙식등 상세한 정보 나누겠습니다
모두가 함께 하길 기대합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걸으면 우리길이 된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 승리한다
이정우 E_mail : kdjj80@hanmail.net
손전화 : 010 9477 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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