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아멘!!♥
20231211 날마다기막힌 새벽 #1403
"스스로 속기 쉬운 소명을 가장한 야망 "
요한복음 5장 41절 ~ 42절
"토요일에 cnp집회를 하고 토요일 녹화를 해야하는데...
좀 피곤하고 힘에 붙여서 주일 새벽에 녹화를 하고 있습니다...
81년에 ㅇㄹ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제 목회의 영적신 성장을 가져다준 좋은 교회였는데....
이 교회는 성경공부반을 하나씩 맡게 되어있었습니다...
부목사들이 성경공부반을 개강하면 교인들이 선택을 해서 공부를 하는데
성경공부를 하고 예배를 드리든가 아니면 예베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든가
하는 식의 성경공부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는지....
저는 펜을 들고 칠판에서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와 성경공부반이 잘 맞았는지 저의 성경공부반의 숫자가
많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작은 방에서 큰방으로 옮기고 교인들이 더많이 차서
복도의 창문을 뜯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일이 소문이 나기 시작을 해서 젊은 나이에
빨리 담임목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 속에 교만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무의식속에서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더 여기에서 인기도 좋은데 기다리고 있으면
더 큰 목회지가 나올텐데 벌써부터 담임을 할려고 하냐?
할때 내가 너냐?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를 만들어야지
더 멋져 보이지 않냐는 내면의 교만으로 꽉 차 있었던것 같습니다...
첫번째 담임목회지에서 154명 출석을 하셨더라구요...
부임하고 나서 첫번째 한 일은 교인 배가 운동이었습니다..
연말동안 열심히 해서 150명 교인을 300명 교인으로 한번
만들어보자...하면서 교인들을 선동하고 열심히 표어를 걸고...
게획을 짜고 계획짜는 것을 좋아하는데 있는 힘것 교인배가 운동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교인들이 모두 좋아하시더라구요 젊은 목사오더니 교인 부흥시키겠다고
열심을 내는거 보니까 그것을 좋게 봐주셔서
교인들과 한마음 한뜻이 되어 교인 배가운동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새벽기도후 기도를 하고 있는데 제 마음에 왜?300명이냐하고
물으셨어요....
그런데 그 느낌이 별로 좋지를 않았어요 못마땅한 듯한 느낌...
그래서 당황을 했어요....저는 하나님이 저를 칭찬해주셔야 하는데...
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몇번을 계속 물으셔서 저는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저에게 교인늘리라는 얘기를 하신적이 없다는 것을요...
그때 깨달았어요 소명을 가장한 야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도 속았어요....교회를 부흥시키고 교인을 늘리는 일은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는 것이라고 나도 속았어요..
교인들 다 속았어요 그런데 하나님만 안 속으셨어요...
너 자랑할려고 그러는 거잖아 나 김목사야 하면서....
교인늘리고 예전에 성경공부때 창문뜯은 목사잖아 라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은 거잖아라고...
나는 아 속는다라는 주님의 마음의 음성
그때 철저히 내가 속았구나라는 것을 ......
그리고는 다집하고 주님께 말씀 드렸어요
다시는 목회할때 숫자로 목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그리고 교인들에게 선포했어요...
교인배가운동하지 않겠다고 이런 마음을 주님이 깨우쳐주셨다고..
중지를 하니까 교인이 정말 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4년반정도 있다가 다시 ㅇㄹ교회로 돌아왔는데...
그 당시 한 210정도 정말 건강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인들을 정말 잘 돌보는 일들을 하고 있으니 주님이 저에게
상을 주셨습니다....그때 제가 교회오는것을 반기지 않는 분들이
몇몇분 계셨어요....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나이가 너무 어려서...
그 당시 나이가 34살 이었으니까요....
재가 운돌을 넘추고 정말 교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목회를 하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한번은 남선교회 주체로
시골교회 심방을 가는데 휴게소에 잠시 들렀는데...
그 불편해 하시던 분이 저에게 커피를 타서 오셔서
주시면서 목사님 나는 예수는 믿어도 사람은 안 변하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틀렸습니다..사람이 변합디다....라고..
아무개 아무개 집사도 변했구요 그런데 정말 중요한것이 무엇인줄 아세요?
제가 변했습니다....그 말을 들었을때 행복하고 기뻤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리네요....
정말 내가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 교회 교인을 진짜 생각하고
목회를 해더니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보게 해 주시는 구나라고...
아 이게 진짜 목회구나 하는 것을 그때 한번 깨달았어요...
그럼 그 이후에 김목사는 야망에 속지 않고 소명에만 충실했냐?
고 물으시면 그것은 자신이 없어요.....
지금까지도 자신 없어요 늘 숫자에 연연하고 그것에 관심가지고..
그리고 은근히 자랑하고...
그런데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네요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않는다고..
사람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너희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휘하려 하는구나...
그걸 보니까 너희는 정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은 없어...
하나님사랑해라 헛된 야망에 속지마라..
사람들에게서 영광받을려고 하는 마음 버려라...
이 말씀은 날기새식구들에게 보다 오늘 저에게 주신
말씀이라 생각이 되어서 반복을 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정말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가
이것이 정말 하나님때문에 하는 일인가를
하나님을 위하는 것 처럼 하면서 결국은 내 잇속을 차리고
내 헛된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가를
잘 분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야망에 속지않고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사시길.....
날기새...."
애쓰셨습니다..
"평안할찌어다 "
"내가 변해야
직장이 교회가
세상이 변한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기회를 누릴 믿음이 부족할뿐..."
주님의 마음으로
기대하며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히브리서 2:14–15은 강림절 묵상에 있어서 2분의 분량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생애의 처음과 끝을 연결해 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믿지 않는 친구나 가족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당신의 기독교적 관점을 한 걸음 한 걸음 소개해 주는 데에 있어서도 대단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구절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자녀들"이라는 용어는 앞에 나오는 절에서 따온 것이며,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영적 자녀를 말하는 것입니다(이사야 8:18; 53:10 참조).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구원을 특별히 생각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으셨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요한복음 11:52 참조). 하나님의 디자인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내놓으시고, 그의 "자녀들"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4:10 참조). 당신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될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12).
"...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전에도 존재하셨습니다. 그는 영이셨습니다. 그는 영원한 말씀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1; 골로새서 2:9). 그러나 그는 살과 피를 입으시고 그의 신성에 인간성을 옷입히셨습니다. 그는 완전한 인간이 되셨고 그럼에도 여전히 완전한 하나님으로 남으셨습니다. 이것은 여러 면에서 대단한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믿음의 중심에 있는 진리이며 또한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죽음을 통하여..."
그가 인간이 되신 것은 죽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으로서, 그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그러실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죽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인간으로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는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성 금요일은 크리스마스의 이유입니다. 오늘 크리스마스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죽음 안에서, 그리스도는 마귀를 무력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덮으심으로써 사탄이 더 이상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정죄할 수 있는 타당한 근거가 없게 만드신 것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로마서 8:33)—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근거는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입니다(로마서 5:9).
우리를 맞서는 사탄의 궁극적인 무기는 우리의 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운다면, 사탄은 그의 주요 무기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재판관께서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무죄판결을 내리셨기 때문에 사탄은 우리의 죽음의 형벌을 이제 주장할 수 없습니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따라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궁극적인 안전이 우리 삶에 즉각적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을 뜻하십니다. 그는 행복한 결말이 지금의 종 노릇과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을 뜻하십니다.
만약 우리의 최후의 가장 큰 원수인 죽음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할 수 있습니다. 기쁨을 위해 자유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얼마나 큰 크리스마스 선물인지요! 그리고 이 선물은 우리가 세상에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