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님의 은혜는 날로 새롭기에
또 할 말이 많은 것이다.
“주님... 이제 할 말 다한 것 같은데요?”
“아니다 너 나 얼마나 아니?”
성령님과 기도하면서
“성령님 제가 주님을 얼마나 알죠?”
얼마 전 후배 전도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때 목사님이 잘 가르쳐줬잖아요!
그 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신학교 때를 생각하니까
그때는 유치원생이었고,
목회할 때는 초등생, 지금은 중학생정도?
“주님! 우리 교회는 주님을 얼마나 알죠?”
평균? 한 50? 40? 30?
행사도 없고 진리만 가르치고
주님 사모하는 우리교회가 이정도면
다른 유명한 교회는 어쩌죠?
더 참혹하다.
주님을 알면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대요!
“주님~ 주님” 하지만 예배 후에
“주님~” 안 한 대요.
주님이 마음에 뜨겁게 있지 않고
세상에 있대요. 그건 뭐냐?
지식만 가득할 뿐 날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2
그래서 은퇴한 유명한 신학교수에게
“너 나 아니?” 그 말 이었대요.
그도 나를 그렇게 모른대요. 그래서
주님 자랑을 그렇게 안 했던 것이래요.
알면 하게 되어있다.
하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르다.
하라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 하루 종일
주님을 얼마나 생각하십니까?
조혜련에게 주님이
“너 하루 종일 나 얼마나 생각하니?”
“24시간 중에 얼마나 생각하니?”
할 말이 없더래요.
“너 나와 함께 있는 것 얼마나 좋아하니?”
“여러분은 얼마나 좋아하십니까?”
주님과 함께 있는 것? 좋아해서 해야지
처음엔 조금 억지로 하죠.
3
여러분이 주님 사랑을 안 만큼
주님을 사랑하게 되어있고
그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 외에는 다 밑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 끝나면
덜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건 어디로 가버려요~
아직 모른다는 것이다.
이건 그만큼 알려고 애쓰고,
몸부림치고,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알려 기도하고, 고난도 받고, 무시도 당하고,
별소리 다 듣고 하면서
점점 알아지는 것이지
쉽게 알아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배부르고 따뜻하면
주님을 알려 하지 않기에 주님을
더 알게 하려고 고난에 집어넣는 것이다.
결국 그 무한하신 하나님께
갈수록 경탄하게 되니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면
하고 싶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멘!
조호남 목사
23. 3. 19 주일 낮 말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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