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들과의 치열한 치킨 게임이 시작된지 벌써 한달 하고도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정부와 의사들과의 격한 대립사태가 40일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의대정원 일년에 2천명 확대 발표로 시작된 의정갈등은 전공의들이 대거 의료 현장을 벗어나면서 현실화됐고 전문의에 이어 이제는 의대 교수들까지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차원이 아닌 이번 의정갈등을 살펴보면 참으로 미숙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부입장에서 의사들의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점차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의사들이 가진 면허를 움켜지고 그것을 정지 또는 취소를 시키는 강경책을 사용하면 의사들이 불복을 철회하고 원대복귀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참으로 의사들을 제대로 모르는 처사사 아닌가 여겨집니다.
정부는 새정권이 들어서자 마자 건설노조와 한판 대결을 벌였습니다. 정부는 2022년 12월 건설노조의 불법행위와 부조리를 근절하겠다고 선언하고 구체적인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건설노조는 처음에 저항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강한 공권력을 동원해 상대의 부조리의 증거를 대거 확보한뒤 밀어붙이면 승산이 높다는 것도 체득했습니다. 그런 자신감으로 이번 의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입니다. 의료개혁을 내세워 건설노조처럼 압박을 가하면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결국은 무릎을 꿇지 않을까 판단한 것입니다. 건설노조보다 의사협회가 상대적으로 합리적이고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배운 것도 많은 집단이기에 더욱 그렇게 될 것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당연히 의사협회를 상대로 한 정부의 강경 조치에는 다양한 전략이 동원됐을 것입니다. 총선을 불과 두달도 남겨놓지 않은 시간을 택한 것도 다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냥 생각난다고 정부 정책을 발표하지는 않을테니까 말이죠. 도상훈련도 다양하게 실시했을 것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사회적 혼란을 빚을 정책을 발표하는데 그 성과를 놓고 갑론을박도 이뤄졌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자칫 역효과가 날 수 있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아닙니까. 그런데 강행하기로 최종 결론이 났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의사협회 간부들을 비롯한 의사들의 리더격인 인물들에 대한 성향 파악도 이뤄졌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손자병법에 가장 기본적인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즉 상대방의 상황을 알고 나의 상황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 아닙니까. 또한 의사세계의 일반적인 상황도 면밀히 파악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의료개혁을 하려는데 의사들의 성향과 그들의 사고방식 그리고 생활방식 등도 자세히 들여다 봤을 것입니다. 예전 정부때의 상황도 당연히 참고자료로 활용했을 테지요.
그래서 드디어 의료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의대정원 대폭 증원이라는 칼을 꺼내 들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젊은 그룹인 전공의들이 의사가운을 벗어던졌습니다. 전문의들도 가세합니다. 대규모 집회도 열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역대 정부에서도 경험한 일들입니다. 정부측도 당연히 이 정도는 충분히 감안했던 상황입니다. 여론과 언론도 정부의 편인 것도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강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정부는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복귀를 강하게 명령합니다. 일정 시간까지 복귀하지 않을 경우 면허정지를 강하게 내리겠다고 말입니다. 정부의 최고 권력자도 나서서 강한 톤으로 의사들의 복귀를 요구하고 의료 이탈행위를 나무랍니다. 이제는 정말 조금의 법적 용서는 없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천명합니다. 어떠한 협상도 없고 선처도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습니다. 퇴로를 차단한 것입니다. 정부의 정말 강력한 의지가 읽혀집니다. 아마도 태어나 누구에게 강하게 저항한 적이 거의 없는 온상에서 성장한 것같은 의사들이기에 상당히 겁을 먹었으리라 정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를 받으러 온 의사협회 간부들은 자세가 조금 다릅니다. 법적 저항을 할 것이며 현 정부 퇴진 운동에 나서겠다고 주장합니다. 의사들의 입에서 현 정부 퇴진 운동이라는 말은 상당히 이례적인 멘트입니다.특히 보수정권을 탄생시킨 대표적 보수적 집단이 바로 의사협회 아닙니까. 하지만 못을 박은 기일이 다가오지만 전공의들의 복귀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도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전국 대부분 의대의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조금 놀란 표정입니다. 여당의 대표가 의대 교수들을 만나고 정권의 최고 책임자가 유연한 조치를 주문하고 정부도 의료계에 대한 대화제의를 하지만 의사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의사들 가운데 정부와 협상을 하라는 입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의대정원 증원 계획 백지화가 대화에 전제 조건입니다. 먼저 의대 정원 증원 계획을 백지화한 뒤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것입니다. 의대 교수들은 여당의 대표와의 간담회 결과 알맹이가 없고 공허하다는 말로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의사들의 주장을 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이미 각 대학 의대에 정원 배정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대 정원을 한해 2천명 늘리겠다는 것은 절대 협상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의대 정원 계획을 백지화한다는 것은 정부가 의사들 앞에서 무릎을 꿇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 관계자가 매일 언론앞에 나서서 의사들과 불필요한 협상 그리고 양보는 절대 없다고 강하게 밝혀 온 것을 갑자기 뒤집기는 불가하기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의대 증원은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사와의 대결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양측이 내세우는 협상조건이 너무도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의사측은 증원계획의 백지화를 대표 카드로 꺼내들고 있는 반면 정부는 의대증원은 협상 상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기 때문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정부의 전략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현상황이 결코 정부편에 유리하게만 흘러가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여론도 조금씩 변화하는 것 같습니다. 의정 갈등 국면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에서 타협과 협의로 방향을 튼 것같은 모습에 정부가 잘한다는 여론이 있는 반면 이번에도 결국 의사들에게 굴복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존재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정부가 의사들의 세계를 너무 가볍게 본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2022년 강행했던 노조와의 전쟁에서 상대였던 건설노조와 의사협회를 동일 선상에 놓고 정책을 구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정부가 의사들의 세계를 정확하게 분석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의사들은 이 사회의 최고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제대로 의사로 활동하기 위해 10년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대체하기가 결코 쉽지않은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갈등을 빚는다고 의사 조직을 부정적으로 거론한 것에 의사들은 심대한 심적 피해를 입었다고 보입니다. 언론들도 마찬가집니다. 예전 있었던 일들도 다시 꺼집어내서 흠집을 낸 것도 의사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존심과 명예로 의사직을 수행했다고 자부하는 의사들에게 엄청난 굴욕을 준 것에 의사들은 분개하고 있습니다. 비록 몇달 아니 몇년 의사직을 수행하지 못해도 그 자존심과 명예만은 되찾고 싶은 것입니다. 정부는 이 부분을 간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법을 내세워 힘으로 압박하면 그냥 밀릴 것이다라고 판단한 것이 패착의 한 부분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입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정부가 면밀하게 의사들의 세계를 분석한 것 같지는 않다고 보입니다. 또한 퇴로를 완전 차단한다는 것이 협상과 대화에 얼마나 걸림돌으로 작용하는가에 대해서도 제대로 숙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부와 의사의 대결이 과연 어떻게 진행될지가 상당히 우려스럽습니다. 정부와 의사의 지리한 갈등과 대립속에 생명의 위협을 받는 환자들과 가족들의 마음은 지금 이시간에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2024년 3월 2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