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설레는 감동이 눈앞에 아련히 다가온다. 몇 년 전 초여름이었다. 먼 나라에 대한 이상야릇한 호기심이 갑자기 솟아났다.
새장 안에 갇혔던 새가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천만리 창공을 날아간 것이다. 꿈속에서 그리던 단테의 고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를 찾았다. 유난히도 날씨가 화창하고 청명했다. 아르노 강변에 펼쳐진 주황색 시가지는 푸른 숲과 파아란 하늘이 함께 환상적인 정경을 뿜어냈다.
고색창연한 두오모 대성당과 종탑을 중심으로 피어난 '꽃의 도시' 피렌체는 르네상스 문화를 찬란하게 열었다. 단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등 수많은 천재들이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한 메디치 가문도 이곳 중심에 있었다. 예술과 학문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났고 상업과 금융업도 번창했다.
피렌체 관광 여정이 끝날 무렵, 나는 일행과 함께 단테의 생가를 찾았다. 신곡(Divina Comedia)의 탄생과 베아트리체(Beatrice)의 순결한 사랑, 정처 없는 유랑의 생활을 어렴풋이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 해질 무렵에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 깃들어 있는 아르노 강변을 거닐어 보기도 했다.
여가생활에서 여행은 언제나 즐겁고 흥미진진하다. 미지의 세계와 마주하면서 새로운 환희가 깃들기 때문이다. 머나먼 피렌체 여행에서 나는 단테의 깊은 통찰력과 상상력이 빚어낸 고귀한 신곡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신곡을 다시 탐독하기 시작했다. 신곡을 접하면 신기한 신의 나라로 여행을 할 수 있고, 태양과 별들도 움직이게 하는 고귀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영혼에 속삭이는 구원의 노래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지옥과 천국은 정녕 어느 곳에 있으며 어느 누가 지옥에 빠져들며,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지, 베아트리체는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었는지.
학창 시절 얼핏 보았던 신곡은 난해하여 참으로 읽기 어려웠다. 신곡은 명저지만 읽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좋은 책이란 저자의 영혼을 읽어낼 수 있는 사고력을 요구한다. 신곡은 사전이라도 펼치면서 꼼꼼하게 읽어야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신곡은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어 가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
이탈리아의 시인 레비(Primo Levi)는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수용소에서도 매일 신곡을 암송하였다고 전한다. 영국의 문인 베게트(Samuel Beckett)도 평생 신곡을 즐겨 읽었고 죽기 전까지 머리맡에 놓아두었다고 한다.
신곡은 고전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이라 알려져 있다. 시간의 바다 속에 서 있는 등대와 같다.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3편으로 나누어 모두 100곡의 14,223행으로 읊은 방대한 환상적 서사시다. 지옥에서 사흘, 연옥에서 사흘, 천국에서 하루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향한 1주일간의 순례를 시로 읊었다.
어두운 숲속에서 단테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평소 아버지처럼 존경했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가 나타나 지옥과 연옥으로 안내하여 구원해 준다. 물론 사랑히는 베아트리체의 간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국으로 안내는 꿈에도 그리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가 나타나 직접 길잡이가 된다. 영원토록 봄이 지속되고 장미꽃이 피어나며 천사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환희의 천국으로 여행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외롭게 자란 단테는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웃 마을 귀족 집 파티에 초대받아 갔다. 그 곳에서 눈에 띄게 예쁜 소녀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된다. 우아하고 고결한 모습에 매료된 단테는 그 순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때 첫사랑이 단테의 영혼을 앗아갔다.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베아트리체는 갓 아홉 살이었고, 단테는 아홉 살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후 마주칠 것을 고대하고 길을 걸었지만, 좀처럼 베아트리체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어느 날 그들은 아르노 강변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그의 마음은 온통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찍 고인이 된 어머니의 사랑에 굶주렸던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하는 유일한 여인이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구원자로 마음속에 살아남았다. 얼마나 사모했으면 단테는 자기 딸 이름까지 베아트리체로 개명하였을까!
다른 남자와 이미 결혼한 베아트리체는 24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간절한 마음으로 쌓아 올렸던 순결한 사랑은 모래성으로 허물어져 버렸다. 그녀의 죽음은 크나큰 슬픔으로 가슴속에 남았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통하여 단테는 신의 세계를 상상하고 신곡을 쓰게 되는 영감을 얻게 된 것이다.
어릴 적부터 싹튼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과 단테의 끝없는 유랑생활이 없었다면 신곡은 아마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어 반평생 동안 수많은나라와 도시를 유랑하며 망명생활을 계속했다.
오늘도 단테를 생각하며 나는 신곡을 펼쳐 본다.
첫댓글 Dante degli Alighie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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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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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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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gi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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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론/ 단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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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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