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라일락
고선경
아무도 나랑 놀아 주지 않았을 때 언니도 묘연했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 학생이었고 엄마 아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급식을 누구와 먹는지 배드민턴을 누구와 치는지 같은 반 아이들이 어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지 언니는 왜 나를 보러 오지 않는지
언니는 나보다 한 살 위고 이효리처럼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췄다
언니의 친구들은 나를 몰랐지만 나는 알았지; 마리 제니 소이 그런 이름을 가진 언니들 나도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운 발음의 이름이고 싶었는데
언니는 딱 한 번 나와 급식을 먹어 주었다 내가 배식 당번이 되었을 때 언니의 식판에는 요구르트 두 개가 놓였다 언니와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하면 어디까지 해줄 수 있어?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나를 길러낸 다음에도 울퉁불퉁 사춘기가 잘 접히지 않아서 바나나 우유랑 초콜릿 사 먹었다 모모코*가 “달콤한 것들로만 배를 채우고 싶어” 말할 때는 솔직히 좀 감동이었다
나는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고집했다 바구니는 잡동사니로 꽉 채웠다 왠지 마음이 든든해지니까
그리고 넘어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조심한다고 했는데 구슬을 너무 많이 꿴 팔찌가 툭 끊어지듯
나를 쏟으면 개중에 몇몇은 분실했다
나는 속이 상해 언니 때문에 진짜 속상해 죽겠다 언니만큼이나
여름도 오지 않는데 나는 자꾸 우거져 거대해져 가려운 부위가 점점 번져 비가 내렸다 진흙과 돌부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 자전거가 나동그라지고 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다치고
이제 작은 상처는 돌보지 않게 돼
밖에는 라일락이 폈다는 향기로운 소문으로 가득했다
이때까지 나는 잘도 말라 죽지 않았구나 무심코 거울을 봤다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꽃을 좋아하는 언니가 서 있었다 비가 그치고 묽어진 얼굴로
흰 꽃잎 한 장 나부끼지 않지만 언니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며 서로의 가지가 되어 주었다
*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
—사이버 문학광장 《문장웹진》 2022년 7월호 --------------------- 고선경 / 1997년 안양에서 나고 전주에서 자람.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