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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원식 선생님 댁에 도착!
그런데 이 여인 심상치가 않네요.
설레는 마음으로 선생님을 뵈러 갑니다.
밥상은 이미 차려져 있고, 그 선물을 맛있게 받는 사람은 바로 나.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내려앉은 장독들과
땀과 세월이 어려있는 농기구들이 먼저 반겨줍니다.
바로 이 분!
숨이 멎을 듯!
두더지 길을 걷다가 하신 말씀,
"순천에 오면 가장 먼저 뵈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분이 한원식 선생님이신데 이제야."
인연의 끈은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이어지는 법이겠지요.
선생님께서 직접 개량하신 볍씨랍니다.
건강한 나눔의 밥상을 일궈낼 소중한 씨앗
전기도 들여놓지 않고 사시는 댁에
희미한 빛을 가져다준 유일한 태양광 덕에
겨우겨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습니다.
예를 갖추어 선생님을 뵙습니다.
"우리 집에 오셨으니 노래 하나 불러드릴까요?"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우리가 아는 많은 선생님이 이 노래를 애창하십니다.
우연이 아니겠지요. 상선약수(上善若水)
"그래도 커튼이 삐에르가르뎅이네요."
효건파의 한마디에 파안대소(破顔大笑).
모든 세간살이는 주워 온 거래요.
그 물건 안에는 원래 주인의 일(事)이 들어있대요.
그래서 그 물건을 쓰면서 놀 수가 없대요. 허투루 살 수가 없대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저는 30년간 농사만 지은 농사꾼입니다. 서른네 살에 깨달았어요. 밥을 사고 팔지 않는 농사꾼이 되어야겠다.
그 이후로 30년 동안 단 한 번도 먹는 것을 거래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자랑할 만도 하지 않나요? (웃음)"
"먹는 것을 거래하지 않는 것은 나눔입니다. 함께하는 삶이에요.
함께 해야 재밌잖아요! 어릴 적에 우리는 놀이를 하였고, 요즘 얘들은 게임을 합니다.
놀이에는 나눔이 있어요. 남을 이기는 법이 없지요. 그런데 게임은 어떻습니까?
나누는 삶은 날마다 잔치입니다."
"이 사진을 보세요. 여름에 밥이 세균 때문에 쉽니까? 아니에요.
세균이 달라붙을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때 쉬는 거예요!
땅은 뭇 생명을 맞이하는 일을 합니다.
씨앗을 뿌리면 뿌리부터 제일 먼저 내립니다. 그다음이 이파리와 꽃이에요.
진흥청에서는 거름 땅에서 잘 자라는 씨앗만 줍니다.
저는 퇴비 없이 메마른 땅에서도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 그런 씨앗을 뿌립니다.
뿌리가 깊이 발달해 있으면 흐린 날에도 태풍이 불어도 메뚜기가 먹어도 (메뚜기가 먹으면 얼마나 먹습니까?)
문제가 되질 않아요. 땅이 내게 주는 게 뭔지를 알면 농사짓는 거 얼마나 쉬운지 몰라요.
귀농학교에서 뭘 가르쳐달라는데 이것만 알면 가르칠 게 없어요."
"의・식・주란 말은 틀린 것이에요. '食・住・衣'가 맞아요. (식・의・주도 아니고) 밥이 가장 중요해요.
밥은 ‘받든다’라는 뜻입니다. 밥이 첫 번째니까 나눠야 해요. 밥을 나누고 나면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정신이 생겨요."
바로 이때,
우리 사모님 밥상을 내어주십니다.
아~
어찌 받들어야 할지 모를
이 소중한 밥상 앞에 할 말을 잊습니다.
"밥은 내 님을 내 안으로 맞아들이는 겁니다.
그 길을 살리는 길로 갈 것이냐, 저버리는 길로 갈 것이냐.
흰 쌀은 저버리는 길이에요. 자녀들에 저버린 것을 먹일 것이냐? 온전한 것을 먹일 것이냐?"
"밥은 150번 씹어서 드세요.
우리 집의 밥은 일부러 뜸을 들이지 않은 거친 밥입니다. 씹고 또 씹어서 녹여서 드세요.
밥은 내 님을 맞아들이는 거라고 그랬죠?
님은 녹여야 하잖아요. 그래야 하나가 되잖아요? (아!)"
한원식 선생님 댁에서 밥 모심 하는 법을 잠시 소개할게요.
우선 첫 숟갈은 물김치로 목을 축입니다.
그리고 밥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고 150번 이상 씹습니다.
정말 신기하게 씹을수록 단맛이 나며 살살 녹아 굳이 삼키지 않아도 넘어갑니다.
현미, 흰콩, 검은콩, 조, 옥수수, 흑미, 밤...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곡물이 담겨있으니 그럴 수밖에요.
일단 입속에 음식물이 있으면 숟가락은 내려놓습니다.
밥을 다 먹은 다음에 반찬 한 가지를 넣고 음미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만 집중하여 마음을 모아 느낍니다.
밥과 반찬을 섞어 먹는 데 익숙한 저는
따로따로 한 가지씩 맞아들이며 먹는 게 쉽지 않았어요.
150번 씹느라 턱이 아파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희 집사람은 하루에 한 끼 먹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그래요.
일이 고통이냐 놀이냐 그것이 문제예요.
우리에게 농사는 놀이입니다. 놀이는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것입니다.
먼동이 터서 해 질 녁까지 말 그대로 삼매경에 빠집니다. 씨앗 뿌릴 때는 설렙니다."
"저는 아침을 먹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음양의 이치를 말하며 아침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맞나요? 저는 온도의 이치로 봅니다.
겨울에 나무가 자랍니까? 여름에 곰이 여름잠을 잡니까?
움츠림과 펼침입니다.
새벽에는 우리 몸이 어떻습니까? 움츠러듭니다. 밥은 펼침입니다.
일은 펼침입니다. 그래서 일을 한 후에 밥을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몸이 펼쳐질 때 밥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펼침과 펼침의 조화입니다.
어제 먹은 밥이 아직 소화가 안 되었는데 어떻게 또 먹습니까?
넘침은 고통을 부릅니다. 쓸데없이 먹기 때문에 이웃과의 관계가 깨집니다.
지금 여러분과 나도 밥이 있어서 이렇게 관계가 형성되는 겁니다."
"이 친구들도 제 아이 잘 키워보겠다고 모였습니다. 한 말씀을 해 주시죠."
"다른 거 없어요. 밥 모심만 잘하면 돼요."
낮 12시 반이 넘어 시작한 밥 모심.
시간이 어찌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듭니다.
(얘기 끝나고도 상을 치우지 않는다고 사모님께 혼도 나고)
이날 선생님은 총 열한 시간이나 말씀을 하셨다네요.
대단한 체력과 열정.
"병을 우리말로 하면 뭐라고 합니까? '앓이' 아닙니까? 안다는 거예요.
내 몸에 있는 것을 잘 내보내는 것,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풀어주셨어요.
'네 믿음이 너를 구원케 하리라'라고 하셨잖아요.
네 안에서 '앎'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너를 살린다는 말씀이에요.
아픔 그 자체가 나를 살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흐름이 좋지 않을 때 아픈 거예요. 흐름을 트이게 해 주는 것이 앓이입니다.
흐름이 막히면 만사가 귀찮습니다. 그러면 얼이 빠져요. 어울림이 안되는 삶이 되는 거예요."
출발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준이 엄마는 결국 이렇게 앓이를 합니다.
선생님 댁에서 앓이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선물이 아닐까요.
그 선물 잘 받고 제대로 앓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장일순 선생님과의 인연에 대해 한 말씀을 해 주시지요."
"어느 날 사경회에서 이현주 목사님을 뵈었는데 '통'의 말씀을 하시는겁니다.
그날을 계기로 목사님과 가까워졌는데 어느 날 목사님께서 장일순 선생님을 꼭 뵈었으면 좋겠다 하시는 겁니다.
선생님을 처음 뵙고 제가 그랬죠. '농사꾼은 저밖에 없습니다.'
'네 말이 한마디도 그른 게 없다.'라고 하시며 장 선생님께서 다 들어주셨어요."
"병석에 계실 때였어요.
제가 가는 길이 바른길이라 세상이 그냥 놔두지 않을 거라시며
세상이 칼로 너를 찌를 때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시더군요.
저는 대답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을 선생님 입을 통해 듣고 싶어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칼을 빼 들고 피를 닦는 상대방에게 “나를 찌르느라 네 마음이 얼마나 아팠었겠느냐.”라고 위로해 주는 삶, 그런 삶이 바로 너의 삶이라고 풀어주셨어요. “지금 네가 사는 삶이 그런 삶이지 않냐.”라고 말씀하셨어요.
"88세 장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다리를 못 쓰셨어요.
'어머니, 돌아가실 것 같은데 왜 드십니까' 그랬죠. (웃음) 밥은 살 사람이 먹어야 하는 거라고.
그래서 굶으셨어요. 그런데 굶으신 지 3일 만에 뒷간 출입을 하시는 겁니다. 나들이도 하시고요.
그래서 '어, 이제 사실 분이니 잡수셔야겠네' 그랬죠. (웃음)
다음엔 보식을 시작했어요. 단식하면 어린아이처럼 깨끗한 몸이 됩니다.
그 이후 장모님은 순환 단식을 하셨어요. (엿새 먹고 하루 굶고, 닷새 먹고 하루 굶고)
그렇게 석 달을 하니 밭을 매러 다니셨답니다. (웃음) 그래서 이제 일부러 굶읍시다! 그랬죠.
6일 동안 단식하니 몸이 날아갈 듯하셨다네요. 그렇게 하고 나서 한 달은 과일만 드셨어요.
지금은 3천 평 밭을 혼자 다 지으세요.
장모님을 모시려고 오시라 했었는데 지금은 장모님이 우리를 모십니다. (웃음)"
"저희 어머님도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시고
평생 열심히 농사짓고 사시는 데 백미만 드십니다. (웃음)
왜 선생님처럼 그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시는 걸까요?
그 차이가 대체 뭘까요 선생님?"
"아 아마 이걸 겁니다.
5살 때 아버지를 여의시고 당신 혼자 다 해야 했어요. 가진 것 없고 아프고.
그때 저의 할머니께서 기도해 주셨어요. ‘잘 되게 해 주라’가 아니라 '바르게 살게 해 달라'고요.
참나무는 그루터기에도 숨은 눈이 있어요. 그래서 죽은 것 같았던 나무에도 새순이 돋아납니다.
할머니의 그 기도가 내 안에 (참나무의 숨은 눈처럼)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술도 하시고 담배도 하세요. 뭐든 과하지 않게 하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즐겨 태우시는 이 곰방대 덕에 많이 웃었습니다.
(아침에 눈 떠 이부자리 속에서 태우시는 담배 맛이 그렇게 좋다고.
월매 삼인방도 탄생했구요.)
..."암 환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일 년에 손님이 천 명 정도 오신다네요.)
제가 그럽니다. '나는 못 살립니다. 하지만 잘 죽게 할 순 있어요.' 그러다 살릴 순 있지만 (웃음)"
"넘치게 저버리고 먹는 삶 속에서는 펼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경우엔 농사도 놀이가 아닌 게임이 됩니다."
일은 놀이입니다.
삶이 곧 놀이가 됩니다.
[자기 먹을 것을 자기가 해결하는 삶]
지금 우리나라 농민이 100~150만 명, 아니 150만 명. 노인 양반들까지 다 쳐서. 그런데 농협에 지고 있는 빚이 얼마죠? 35조, 거의 40조 다 되죠. 그러면 개인당 빚이 얼마요? 한 농가당 지고 있는 빚이 약 1억 5천에서 2억. 문제는 제가 농사지을 때가 천만 농민의 빚이 2억이었어요. 7~80년대 초 그때는 천만 농민이 거의 소작농 형식의 농사를 했죠. 그때는 빚이 2억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2억 하면 감이 별로 없는데 그때만 해도 돈이 없었고 2억이면 상당히 큰돈이었어요.
그러던 농사가 앞 동네에서 순이가 방직공장 간다고 떠나고, 날이면 날마다 누가 누가 간다고 하고, 떠나고 떠난 게… 지금 딱 시골에 남은 분들이 더 이상 갈 때가 서울에 생업을 꾸릴 수가 없으니까 멈춘 게 몇 년 안 됐어요. 그렇게 해서 계속 떠난 인구들이 꾸역꾸역 서울로 모여들고 이제 서울 공화국이 됐죠.
그러면 농사 변화는 어떻게 되었냐? 옛날에는 천만의 농민이 먹고살려고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는 교통수단이 그렇게까지 발전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자기 가족 그다음에 주변 지인들하고 나눠 먹는 그런 시절이에요. 먹고 살기 위한 농사를 지었죠. 지금은 150만에서 100만 농업 인구가 무슨 농사를 짓냐? 돈을 벌기 위한 농사를 지어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거죠. 옛날에는 내가 농사를 지으면 우리 가족이 먹을 거라는 공동체 개념이었고, 지금은 누가 먹을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은 거예요. 불특정 다수가 먹기 때문에 내 책임이 없어요. 그래서 내일 공판장에 가서 농약 검사에 걸리지만 않으면 오늘 농약 쳐서 내일 나가는 거예요. 그래서 불특정 다수를 위한 농사죠.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나주 화학비료 공장이라고 하나 있었어요.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비료 공장인데, 그때는 음… 그 이야길 하기 전에 비료가 무엇의 찌꺼기인지 다 알죠? 일반 상식인데… 석유, 휘발유, 경유 다 정제하고 스트레이트 마지막 전 단계에서 나오는 게 비료예요. 기름 정제된 마지막 찌꺼기 중에 제일 나중에 나오는 게 스트레이트고 그 앞 단계에 나오는 게 바로 비료죠. 그래서 박정희가 죽기 전까지 엄청나게 새마을 운동하면서 비료 공장을 세우고 화학비료를 생산했거든요. 물론 그 시절 국민이 배고픔에서 해방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갑자기 농업이 산업사회로 뒤틀려 가는 거예요. 농업이라는 특수성, 말하자면 국민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특수성이 사라지고 그냥 막 흘러가는 거예요. 배고픔을 해결했다고들 하는데, 세계에서 농약 사용량 비료 사용량 1, 2위를 다투면서 국가가 경제성장을 한 거예요. 그러면서 오천 년 동안 조상들이 가꾸어 왔던 유기농 그 전체가 한순간에 20년 동안 망가진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빨리 경제성장을 한 나라가 없잖아요. 빠른 만큼 망가지는 건 바로 땅이었어요.
지금 어느 정도 상태냐? 자, 농산물 수입이 20~30조 돼요. 그러면 얼마나 들여와야 하냐? 날마다 8톤 트럭으로 2,500대씩 들여와야 해요. 날마다. 그런데 통계청에서는 정확하게 통계를 낼 수 없는 게 우리가 먹고 있는 어떤 제품 하나를 보면 인도네시아산, 뭔 산, 뭔 산 해서 3~4개 국적이 표시되고, 그다음에 합성 감미료, 착색 1호, 뭐 뭐 해서 7~8가지가 짬뽕이 되어 제품 하나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확 땅이 뒤집어지고 배가 부르고 했는데, 우리 국민은 거기에 맞춰서 몸도 그렇게, 말하자면 그 건강했던 몸들이 아~~, 옛날에는 돈 있어도 병원에 안 갔잖아요. 돈이 있어도 병원에 아예 안 갔고 그런데 지금은 딱 일정량의 나이만 들면 모두가 다 그런 코스를 거쳐서 수술해야 하고, 뭐 주변의 2~3명은 암 환자가 있고, 가족에 있고. 그게 산업사회가 우리 농사를 망치고 산업사회로 발돋움하면서 우리 인간도 쉽게 말해서 망가진 거죠. 그래서 지금을 이야기하면, 우리가 세숫대야에 밥 말아 먹는 형식이에요, 우리의 음식이. 그 지저분한 곳에다가 밥 말아서 먹으면 그게 오장육부가 약한 사람은 10년 안에 병이 와버리고 좀 강한 사람은 20~30년이 되면 다 망가져요. 뭐 말로는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자기 발로 꿋꿋이 서서 100세를 맞이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우리 몸의 70%가 수분이고, 지구에 바닷물이 70%이고. 지구에 오대양 육대주가 있으면 우리 몸에 오장육부가 있고, 또 이십사절기가 있으면 양쪽의 갈비뼈가 12개씩 24개 있고… 그것은 뭐냐? 우리 몸이 소우주라는 것이 깨달아지고 있어요. 딱 깨달았어요. 소우주! 지구상에 70억 인구가 있습니다. 70억분의 1의 자식이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바다에 사는 고기들이 누가 임의로 줘서 그 고기가 크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어머니 뱃속에 아이가 있을 때 양수하고 바닷물이 똑같은 성분이라는 것도 알았고. 그래서 남들은 돈 주고 비싼 유기농 자재를 사다가 쓰는데 저는 바닷물 가지고 농사를 다 지었어요. 바닷물을 퍼다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주면 엄청 작물이 커질 것이라고, 또 인위적으로 만드는 유기농 자재보다도 훨씬 효과가 빨랐어요. 그래도 그런 것을 빨리 터득해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농사를 지었죠. 이제는 유기농을 접목해도 무슨 생각으로 땅을 파느냐 이게 중요한 거지 내가 그 농사를 지어서 비싸게 팔겠다, 그런 개 같은 생각으로는 절대 유기농에 성공 못 합니다.
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사를 어떤 식으로 짓고 있을까요? 최근부터 보면 조상부터 내려오는 관행농이 있고, 그다음에 농약을 안 치는 무농약, 그 위에 유기농, 그 위가 한원식 선생이 했던 4무 농법, 그다음이 자연 농사, 그다음은 자연 재배, 그다음은 방치 농사, 그 외에 수경재배.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농사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그 많은 이론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데 농사는 무엇인가? 이론은 중학교 때 다 나와요. 그러니까, 태양에너지와 땅의 지기가 있고 작물이 그 에너지를 받아서 밑에서 뽑아 올려서 광합성 작용을 해서 자기 후손을 퍼트리려고 하는데 인간이 슬쩍 하는 거예요. 이게 농사요. 우리가 도둑질하는 그런 꼴이에요. 그런데 원래 도둑질도 좀 겸손하게 하고 고맙게 해야 하는데, 욕심이 많은 나머지 이제 열매가 좀 많이 달리라고 작물이 먹어서는 안 되는 온갖 쓰레기를 놓아두고 열매만 얻으려고 하니까, 거기서 유기농의 부작용이 일어나는 거예요.
[자, 그러면 유기농이 왜 지금 사기를 치고 있는가]
화학비료가 되었든 유기농 자재가 되었든 퇴비를 만들었든 작물 입장에서는 같은 꼴로 흡수합니다. 이게 화학비료이고 이게 유기농이니까 좋고 나쁘고가 아니라 식물 입장에서는 똑같은 성분으로 양분으로 흡수한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만들어지는 모든 유기농업의 어떤 자재들은 이미 공장형 축사에서 나오는 항생제가 찌들어 있는 그 퇴비로 만드는 거거든요. 그러면 퇴비 만들 때 분해가 되어야 하는데 그 분해가 안 돼요. 옴짝달싹 못 하게 유기농 채소를 재배한다고 밭에다 깔아 놓으면 그것도 일반 관행농법의 2~3배를 뿌리거든요. 수확이 많이 나오게 하려면 많이 뿌려야 하니까. 그러면 일반적으로 관행농이 농약 치고 한 거보다는 훨씬 더 저질의 농산물이 나오는 거예요. 거기에 유기농의 맹점이 있는 거예요. 유기농은 농약 치면 안 되거든요. 법적으로 그래요. 그리고 국가에서 지정하는 유기농 자재만 써야 해요. 밑에 땅은 썩어 있는데 위에다가 점잖은 농약, 아니 오염 안 된 농약만 치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예요.
그런 오염된 퇴비를 삼 년만 쓰면 땅에서 20~30cm 밑이 전부 다 독약으로 가득 차는 거예요. 비가 오면 전문가들이 경반층이라고도 하고 비료층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밑으로 뿌리가 내려가서 저 밑에 있는 땅의 기운을 뽑아 올려야 하는데 이 오염된 층이 생겨서 절대 뿌리가 못 내리는 거예요. 그러니 뿌리가 전부다 20~30cm 안에서 뱅뱅이 잡아 돌죠.
그러니까 농민들은 어차피 씨알 하나를 뿌려도 기형으로 밖에 자랄 수 없고 작물이 자기의 온전한 씨앗 값을 못 해요. 인간이 보살펴 주지 않으면 한 치라도 자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생명력이 없는 거죠. 그러려면 처음부터 딱 주기적으로 어떤 약이 되었든 간에 벌레를 죽이는 약을 이제 쳐야 해요. 끝날 때까지. 그러면 유기농 자재라서 친환경 농약을 치면 벌레가 죽거든요. 그것 때문에 내성이 안 생길까요? 또 거기서 살아남는 벌레가 처음 어렸을 때는 잘 들어요. 한 2년까지는 잘 들어요. 근데 거기서 또 만 마리 가운데 몇 마리가 살아남으면 기하급수적으로 어느새 후손을 깔아요. 그때는 그 적정량을 치면 안 들어요. 이제 그러면 더욱더 심해져서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되는 약까지 치게 되는 거죠.
자, 우리가 애들이 좋아하는 통닭은 다 아시죠? 자~ 육계, 통닭 육계는 어떠냐? 1평에 400마리를 집어넣어요. 1평에 250~400마리를 입식하는데 그러면 병아리가 움직이지 못해요. 그 자리에서 먹고 그 자리에서 싸고 그 자리에서 살만 찌우는데, 그러면 45일 만에 나와요. 제일 처음 딱 깨어나자마자 병아리 항생제부터 시작해서 45일 동안 3일 거리로 프로그램해서 45일 만에 병아리가 출하되려면 거기에 맞는 약을 써야 해요.
국가에서 지정하는 닭 출하 공문을 보면 출하하기 1주일 전에는 항생제 사료를 먹여서는 안 된다고 나와 있어요. 법적으로는. 그러면 1주일을 닭 새끼를 굶겨서 죽어날 일 있어요? 1주일을 굶겨서 항생제 빠지게 하라는 말인데, 그런 농가도 없고, 그다음에 케이지 닭장에서 우리 생눈으로 보면 온 닭털 속에 이가 득실거리고 그래. 그러니까 닭이 몸살을 앓는데요. 닭을 케이지에서 키우다 보면 1~2년 동안은 벌레가 없어요. 그런데 오래 키우다 보면 어디서인지 닭에 이가 옮아 와서 닭이 운동할 수도 없고 털갈이를 하면서 목욕도 해야 하는데 딱 그 자리에 앉아서 알만 낳으니까 이가 한번 올라가면 털자리가 없어요. 그러니까 농가에서 닭에 살충제를 뿌리는 거예요. 옛날에 달걀 파동이 그것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은 안 뿌리냐? 안 뿌리면 달걀을 얻을 수가 없는 거예요. 구조적으로.
그러니까 지금 정부에서 하는 일은 완전 국민 속이는 행위에요. 다들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데 진실을 말하지 않을 뿐이지. 이것은 대혁명이 일어나야 만이 행해져요. 국민에게 올바른 먹거리를 먹이고 병 안 들게 하려면 어떤 조직이나 단체가 와서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하고 그 지지를 국민한테 전해야 하고 또 외국서 들어오는 무분별한 수입농산물을 제어해야 하고 국가가 난리가 나야 해요. 그런데 어느 정치권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요. 알고도 안 하는 거죠. 그러면서 국민을 방치하는 거예요.
옛날 쿠바가 미국 놈들 경제 봉쇄정책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고생했는데,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아직도 존경받는 인물이잖아요. 쿠바는 어떻게 했냐? 세계에서 유기농 1위 국가에요. 국민에게라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여야 한다고 농업을 유기농으로 바꿨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모든 약들이 쿠바에서 먼저 실행해 보고 들어온 거예요. 국민을 95% 이상 병원 안 보내고 깨끗한 나라로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서 결국 쿠바가 지급도 떵떵거리고 있어요. 미국 놈들 밑에서 살아남을 때 외국에서 돈 한번 벌어 올 수 없게 봉쇄를 시켜 놓고 미국 놈이 그 안에서 살게 막았을 때 체 게바라가 땅에서 나오는 것만큼은 깨끗하게 관리해서 지금까지 국민 전체가 건강하게 살고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그런 혁명 없이는 이미 망가져서 더 이상 되돌아서 올 수 없는 강까지 건너갔어요.
지금 제일 심각한 문제는 땅도 망가졌지만, 이제는 GMO.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유전자를 조작해서 오로지 씨앗을 뿌리면 풀도 필요 없고 벌레도 필요 없고 그냥 옥수수만 딱 커야 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결국 다음에 씨를 받아도 유전자 조작된 형태로 나온다 이 말입니다. 리콜이 안 돼요, 리콜이. 설사 농민이 농약을 썼더라도 다음에 심으면 정상적으로 돌아오는데, 유전자 조작 콩이나 옥수수는 변형된 씨앗으로 내린다는 그 사실이 엄청나게 다가올 대재앙이에요.
내가 알기로는 인도에서 목화를 많이 경작했다고 해요. 그런데 유전자 조작 목화를 수확하고 나머지는 양 떼를 방목해서 싹 설거지했어요. 그런데 그 많은 양 떼 수백만 마리가 피를 토하고 다 죽은 거예요. 그래서 다국적 기업에 소송했는데, 다국적 기업이 뭐라고 했냐면, 괴질이다, 과학적 근거를 대라. 아니, 이미 죽은 양들한테 과학적 근거가 뭔 상관이 있어요. 옛날 목화 종자를 키웠을 때는 안 죽었는데 유전자 조작을 해서 목화를 잘 키웠는지는 몰라도 그걸 먹은 양이 죽었다는 것은, 쉽게 생각해서 양은 죽었는데 우리 인간은 괜찮을까요? 지금 식용류 등 모든 것들이 이미 우리 밥상을 차지하고 있어요.
제가 스무 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면 50년 지었는데 50년 농사를 지었으면 몇 번이나 지었겠어요? 농사 딱 50번 지었어요. 1년에 한 차례. 거기에 농사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뭐 내가 짓고 싶다고 일 년에 5~6차례 짓는 거 아니에요. 봄부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벼농사 한 차례 딱 한 차례 짓고 겨울이 오고, 농사는 생산 공장이 아니에요. 원료만 집어넣으면 나오는 공장이 아니에요.
그래 지금 뜻이 있는 농부들이 어디까지 농사를 짓냐? 일본에서 광고로 나왔는데 SBS 썩지 않는 사과 이야기도 있고, 저기 광주 가면 송광일 농부라고 일본의 자연 재배 농사법을 똑같이 하는 분도 계시고, 그분들은 그렇게 정부나 지자체 도움 안 받고 자기 스스로 자기 세계를 구축하면서 농사짓는 사람들이에요. 그렇다면 어떻게 농사를 짓냐, 땅에다 퇴비 안 넣었어요. 예를 들어서 영산강에 펼쳐진 호남평야의 김제 같은 곳에서는 그 옛날에 퇴비를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그 넓은 들에 퇴비를 지금같이 했겠냐 이 말이에요. 그 넓은 들에. 우마차로 농사지을 때. 리어카 끌고 가면 하루 종일 걸렸을 것인데 퇴비를 끌고 가서 논밭에 넣었을까요?
거기서 증명이 된 것이 우리 조상들은 슬기롭게 땅을 다스렸는데 겨울에 자랄 수 있는 보리하고 여름에 자랄 수 있는 벼농사로 이모작했어요. 그래서 서로 땅의 조화를 맞췄죠. 그리고 거기서 나온 부산물만 그대로 놓아두고. 더하고 빼기 없이 미안한 마음으로 곡식만 가져오고. 땅의 조화를 이루었고, 균형을 맞췄고. 지금 농업의 대가들을 보면 더 많이 넣어서 더 많이 가져가려는 욕심을 하나도 안 가졌어요, 다들. 있는 땅에 그대로. 신이 준 그 땅에 순수함을 그대로 인정했어요. 그러기까지 엄청 어렵죠.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단위 면적당 수확량도 많아야지 그래야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데, 그 욕심 없이 땅 농사를 짓는다는 게 엄청 힘들죠. 그런데 그 땅에서 나온 농산물 먹고 암 환자는 석 달 만에 다 나았어요. 내가 알기로는. 그러니까 우리가 앓고 있는 모든 질병에서 해방할 수 있는 길은 땅에 달렸어요. 사람의 현대 의학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썩게 만들 수 있는 썩은 음식물을 안 먹어야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려면 오로지 땅이 애당초 가지고 있는 순수함 그대로 농사를 짓는 거예요. 내 욕심을 빼고. 처음에는 농사가 안 돼요. 한 2년에서 3년 동안은 농사가 안 되는데 딱 3년 자라면 이 단단했던 비료 층이 무너지고 작물이 뿌리를 2~3m까지 뻗어요. 하우스 안에서 물 한 방울 안 줘도 호밀이 우리 키 정도 자라요. 작물이 살려고 2m까지 뿌리를 내리는 거예요. 저 땅 밑에 있는 물을 뽑아 올리고 있어요, 살려고. 그러니까 작물 스스로가 살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 농사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일반 농사는 완전히 작물 비서 노릇을 하고 있잖아요. 비서 노릇을 하고 있으니까, 절름발이 농사도 나오고 솔직한 이야기로 수경재배 양육 재배는요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데이터로 방울토마토에는 뭐 뭐 얼마가 필요하니까 질소 등을 보태기 빼기해서 만들어낸 것이에요. 그것은 독약이에요. 먹으면 안 돼요. 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합성 제품은 결코 땅에서 만들어낸 것과는 비교가 안 되죠.
그러면 이제 대안은? 어떻게 해야 하냐? 여러분들이 60살 되면 다 지금 현장에서 나올 거 아니에요? 텃밭 200평만 있으면 손자까지 다 먹여 살려요. 그러면 그런 농사짓는 거예요. 나도 건강하고 요양원에 안 가기 위해서. 대안은 그것밖에 없어요.
나도 수십 년 동안 유기농 해서 학교 급식에 대고 했지만, 다른 놈보다 내가 조금 양심적이지. 엄청나게 많은 수확을 내서 많은 돈을 벌려고 한 적도 없고 그냥 자족한다고 조금씩 대고 있는데, 나는 학교 급식 좀 이렇게 출하하면서 모르겠어요. 최고로 많이 벌었던 때가 일 년에 1,500만 원 벌었을까…
집사람도 발버둥을 치고 자식들 다 키워 놓고 이랬는데, 통장이 마이너스 1,000만 원짜리인데, 나는 한 번도 넘겨서 통장을 써본 적이 없어요. 이때까지. 내 삶이 그랬어요. 나는 항상 700, 800, 500, 600 마이너스. 플라스 1,000만 원이 되어서 써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농사꾼이 아무리 부자가 되려고 해도 안 돼. 속이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런데 60세 딱 넘으니까 그도 저도 사기도 그만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2~3년 전부터 쭉 정리를 해서 올해 전부 호밀을 심었어요. 첫째는 비닐 안 씌우려고 노력했고, 비닐을 씌우면 여름 한철 비닐 속 온도 때문에, 다 망가지는데 거기다 장마가 들어 비가 오면 그때 싹 망가져요. 뿌리가 다 삭아버린다고요. 그런 피해를 알면서도 왜 하냐. 그렇지 않으면 요새 8만 원 투자해서 할머니들 데려다가 풀 매면 남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비닐을 씌우는 거죠. 심을 때만이라도 어떻게 좀 작물을 제대로 길러 보려고 심는데 그런 피해는 알고 있죠. 여름에 어떤 식으로 망가지겠구나, 결과를 알면서도 말입니다.
어느 공동체나 자기 먹거리를 자기가 해결하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농사짓고 있는 모습이다. 여름 땡볕에 호미질하다가 해가 넘어가고 밤에 찬 기운이 싹 내려올 때 등 뒤에서 나는 땀이 싹 식는 기운이, 자연이 주는 기운이 선풍기가 주는 바람하고는 비교가 안 돼. 그 맛을 느끼면 땅을 파고 있을 것이고, 덥다고 선풍기 앞에 가면 00돼.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해. 그래야 사람이 값어치 있게 보이고. 학교 앞 면적이면 학생들 실컷 먹이고도 자급자족할 수 있어. 농사라는 게 그렇게 위대한 거야. 퇴비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씨앗만 뿌려. 나면 나는 대로 먹어! 그냥, 철 따라.
그 대신 땅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알아야 하는데, 첫째 어둡고 습지고 이런 곳은 토란을 심어야 하고 아무것이나 심으면 절대 작물이 되지 않고 뿌리를 못 내려요. 습지 같으면 그래야 하고. 요새 뭐 상추를 해 놓으면 요새 같으면 일주일 뒤면 뜯어 먹어. 그래서 이 식구가 우르르 그곳에 가서 한 30분만 하면 번지르르할 텐데.
문제는 농사를 짓고자 하는 농사를 쉽게 보지 말고 농사는 항상 긴장이 되는 게 살아 숨 쉬는 생물체를 키우는 행위이니까. 그래서 농민이 병원에서 허리 수술 다리 수술을 해 놓고도 참깨는 어쩌냐 하고 걱정하는 게 바로 그것이에요. 살아있거든 이게. 살아있어.
절대 땅에다 뭐 넣으려 하지 말고 씨앗만 뿌려, 씨앗만.
질문: 퇴비는 도움이 될까요?
퇴비가 베트남에서 오는 커피 껍질 어디 그러거든. 아 베트남 놈들이 우리나라 농민들한테 주려고 퇴비 재료비 안 맞게 해 놓았겠어요? 어디다 쓰레기를 몽땅 배로 싣고 와서. 그런데 해양투기가 금지되니까 난리가 났지. 그게 전부 다 밭으로 갔지. 어차피 생산해 놓은 거 농민들이 써야 할 것 아니야. 그러니까 그 근방에는 퇴비 공장 있는 데는 나무가 다 타죽어 버리고. 옛날에는 배로 싣고 가서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똥오줌을 전부 다 바다에 버렸는데 못 버리게 하니까 곳곳마다 퇴비 공장이 있어. 거름으로 처리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온 산천이 퇴비 공장이지. 퇴비 공장을 하는 놈들이 농민들 생각해서 재료의 질을 좋게 하겠어. 정부 지원받아서 싸구려로 만들든지 어떻게든지 해서 처리를 하면 되거든. 축산업자한테 돈 받고, 공장 돌려서 농민들한테 돈 받고 국가에서 돈 받고. 그러니까 아무런 의심 없이 해치우니까. 그 퇴비가 나오면 땅이 기하급수적으로 망가지는 거지.
거기서 탈피할 수 있는 길은 물론 정부에서 나오는 것은 쓰기는 써야 하는데 이런 걸 써야 해. 저수지 쪽 하천가에 그 돈 1,000만 원이 하우스로 퇴비가 들어간다 이러면, 인분을 사서 저수지 풀을 베서 마르면 하우스에 쭉쭉 깔면 다른 걸 할 필요도 없고, 자체적으로 거기서 균이 퇴비에서 나오는 가장 순수한 균이 다음에 작물의 먹이가 되는 거예요. 자로 잴 필요도 없어요. 하여간 풀만 집어넣으면 돼. 그런데 뭐 농사 몇 년 지면 전부 다 박사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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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5일 쇠날, 한옥현 선생님께서 사랑 어린 마을의 마음 밭을 일구는 농부들(마농)에게 들려주신 농사 이야기를 채록 정리한 것입니다.
글 한옥현
[자연 농법과 땅]
한원식 선생은 순천 승주의 3,000평 산밭에서 퇴비를 만들지 않고, 작물도 팔지 않으며 농사를 짓고 있다. 30년간 자연 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그의 땅과 농사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생명, 즉 자신이 키운 작물을 사고파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땅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원식 선생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의 땅과 농사 철학을 온전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미 땅은 곡식이 자라도록 준비되어 있어. 땅은 당겨주고 뿌리는 뻗지. 지난해 죽은 풀뿌리들이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지렁이와 미생물은 숨통 트이게 하는 거야.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일이지. 땅을 갈아엎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풀이 자라면 낫으로 생장점만 잘라주지. 땅속 함께살이를 해치지 않도록 뿌리째 뽑거나 땅을 뒤집는 호미질은 하지 않아.”
이근이: 오면서 보니 계단식 논이 많던데, 농사 규모가 클 수가 없겠어요.
한원식: 내가 농사짓는 계단식 논은 만든 지 150년 된 땅이지. 전부 3,000평 정도 짓는데, 논은 500평, 나머지는 논을 밭으로 쓰지.
이: 3,000평을 두 분이 짓는다고요? 기계도 안 쓰실 거 아니에요.
한: 올해는 예초기 좀 썼어.
이: 자연 농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한: 배추 농사짓다가 배추를 통해서. 배추밭에 물이 찼는데, 밭을 갈아서 심은 배추는 죽어 버리고 밭을 갈지 않고서 심은 배추는 잘 자라는 거야. 그때부터 자연 농법을 했으니까 30년 됐지. 그다음 해부터 밥을 사고팔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했고. 29년 됐어.
이: 선생님 고향은 어디인지요?
한: 충남 공주. 고향을 떠나게 된 게 자연농업 터득하면서. 그전엔 관행농 하다가, 유기농 하다가, 자연 농사를 짓게 됐지. 이렇게 산속으로 온 건 좋은 자리 찾아서 들어온 게 아니야. 나는 늘 안 좋은 곳에서 자연 농법을 했어. 좋은 곳에서는 돈이 들어가니 내가 발붙일 곳이 없어. 땅값도 비싸고. 고향을 떠난 것도 내 땅 없이 농사를 지었는데 돈을 안 버니까 세를 못 주잖아. 그런데 여기는 그 반대지. 이 집도 공짜로 지내고 있고.
이: 선생님이 여기 오기 전에 그 전 분들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 안 했겠어요.
한: 아니, 사용했지. 그런데 내가 왔을 때 한 12년 동안 묵혀 있었어.
이: 그렇게 오래 묵혀 있었으면 그전에 사용한 화학비료 같은 건 자연적으로 퇴비화되었네요.
한: 자연 농법은 상관없어. 땅은 좋고 나쁜 게 없어.
이: 그렇지만 망친 땅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화학비료나 농약으로 황폐해진 땅은 새롭게 일구어야 하잖아요.
한: 상관없어. 땅이 어떤 상태든지 작물이 적응하니까. 공해 문제가 첫 번째가 아니라 바르지 못한 문제가 첫 번째야. ‘이 땅이 나에게 무엇을 주시느냐’로 가야지 ‘이 땅에 무엇을 심어 먹느냐’로 가면 모순이지. 오염됐으면 오염된 대로. 땅을 살리기는 어떻게 살려. 땅은 이미 살아 있는데, 말부터 잘못된 말이지. 땅이 왜 죽어? 땅은 안 죽지. 땅이 산성화되면 산성화된 땅에 맞는 그런 생명이 오시잖아. 습지는 습지의 생명이 오시지, 메마른 데는 메마른 생명이 오시지. 우리가 순응해 가야 되지. 흔히 자급자족을 말하는데, 이게 잘못된 말이야. 자급이면 자급이고 자족이면 자족이지. 말을 따로 써야 해. 자급이란 말은 이룬다는 뜻이고, 자족이란 것은 저절로 된다는 뜻이야. 인간이 망쳤으면 망친 대로 스스로 가는 길로 바르게 시작하면 문제가 없어. 또 요즘 생명 농업이라고 하는데 거래가 들어가면 생명 농업이 아니야. 나눔이 돼야지. 농업인이 아니라 농사꾼이 돼야지. 자연 농이라도 농업인이 있어.
이: 그럼, 농부라는 말은요?
한: 농부하고 농업인은 다르지. 농부는 농사꾼을 높인 거야. 밥을 나눔으로 대할 때에만 농부라고 할 수 있지. 농업인들이 이 땅이 내게 무엇을 주시느냐로 가지 않고, 내가 이 땅에 무엇을 심느냐로 가잖아. 나눔의 바탕이 완전히 상실됐지. 아주 농사짓는 사람들이 장사꾼의 바탕을 깔고 가니까 참, 내가 볼 때는 마음이 아프지. 세상의 구조가 우리 뼛속 깊숙이 파고들어 와서 헤어 나가기가 힘들지.
이: 선생님은 섬김, 나눔, 이런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노동하시는 거네요.
한: 나는 해뜨기 전부터 해질 때까지 정성으로 일해. 그랬을 적에 일이 고통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일이 놀이가 돼. 나눔으로 가니까 놀이가 되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놀이가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잖아. 게임과 놀이는 달라. 게임은 싫증이 나고 놀이는 싫증이 안 나지.
이: 자연 농법에서는 밭에 씨를 뿌리기 전에 어떻게 관리해 주시는지요?
한: 김매고, 씨 뿌릴 정도로 골은 내주고 씨를 뿌리지. 그 위에 흙 덮어주고. 호미질도 될 수 있는 한 땅을 뒤엎지 않을 정도만 해 주지.
이: 땅에 유기물이라든가 따로 퇴비는 안 하시나요?
한: 퇴비는 안 하지. 변소에서 나오는 것만 처리해야 하니까 뿌려 주는 정도지.
이: 그럼, 고추처럼 소위 다비성 작물은 키우기 어렵지 않나요?
한: 고추는 다비성(多肥性)이 아니지. 거름하면 안 돼. 땅이 걸면 탄저병 오지.
이: 더 많이 수확하려고 거름하고, 거름하면 병이 오고, 악순환이네요.
한: 그러니까 땅이 내게 어떻게 주시느냐로 가야지. 거른 땅에 고추 심으면 안 되지.
이: 몇 가지 작물을 심으세요?
한: 무엇을 안 심냐고 물어봐야지. 올해는 양배추씨를 받아놓은 게 없어서 못 심었어. 웬만한 작물은 다 심은 거 같아. 지금 이밥에 한 열다섯 가지가 들어갔어. 벼, 밀, 찰보리, 메보리, 콩, 팥, 수수, 옥수수, 기장, 율무, 차조, 메조, 차수수, 메수수.
이: 수확량이 꽤 될 텐데, 사고팔지 않으니 먹고 남는 건 어떻게 하시는지요?
한: 아픈 사람들 나눠 주지. 주로 암 환자들인데, 만남이 되는 대로 나눠 주지. 그리고 우리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맞이하면서 나눠 먹고.
이: 선생님 밭에서 돌려짓기하는 원칙 있으세요?
한: 특별한 원칙은 없지. 굳이 순서를 말하라면 한 자리에 밀, 보리 심고, 다음 해에 배추 심고, 다음 해애 고추 심고, 다음 해에 땅콩 심고, 그렇게 한 바퀴 도는 데 5년 걸리지.
이: 땅콩은 콩류가 땅에 질소질을 보충해 주기 때문에 심는 거죠?
한: 그렇지. 땅이 걸면 옥수수를 심어서 거름기를 빼고 고추를 심어. 걸지 않은 곳은 콩을 심어서 거름기를 보충하고.
이: 퇴비를 안 하는데, 땅이 걸고 안 걸고를 어떻게 아시는지요?
한: 농사를 지어봐야 알지. 작물이 잘 되는 건 땅심이 깊으냐, 깊지 않냐에 따라 가뭄을 많이 타기도 하고 타지 않기도 하지. 또 땅의 구조가 살이 많으냐, 살이 적냐 여기서 좌우되지. 예를 들어 물 빠짐이 덜 되는 땅은 걸지. 작물은 거의 물이 기르는 거야.
이: 물과 땅의 관계를 잘 알아야겠네요.
한: 그럼.
이: 여기는 거의 천수답 형태 같은데, 비가 안 오면 물 대기가 어렵지 않나요?
한: 아니지. 일 년 내내 솟아나는 물이 있어. 그런데 물이 차서 벼농사를 짓기에는 안 좋지.
이: 그래서 물길을 멀리 돌려서 쓴다고도 하던데.
한: 그런 거 없어. 새벽에 논물이 차갑게 식었을 때 얼른 물을 대서 해가 뜨면 따뜻하게 데워지는 원리를 그냥 이용해. 땅을 안 가니까 논은 물 빠짐이 심하지. 물을 오래 가둬두기 위해 논 두둑은 찰흙으로 막지. 또 예초기로 논바닥을 한 번 훑고 지나가면 흙탕물이 생기니까 풀은 제거되고 물도 가둬져. 흙탕물이 틈새를 메워주는 거야. 밭은 1m 80cm로 두둑 지어놓으면 물을 가둘 수 있고.
이: 보통 1m 20cm로 하는데, 1m 80cm면 꽤 넓은데요.
한: 물 빠짐이 심한 땅이니까, 거기 맞춰서 달라지는 거야. 나는 인위적으로 땅을 갈아엎지는 않지만, 만약 땅을 깊이 갈려면 밀, 보리처럼 뿌리가 깊이 내리는 작물을 심으면 되지. 옥수수를 심으면 땅의 통로를 매우 크게 만들지. 콩은 땅을 매우 부드럽게 만들고. 사실 땅을 부드럽게 하는 건 습기야. 그러니까 땅과 물의 관계를 잘 알아야 농사가 잘되지.
이: 보통 땅을 간다고 할 때 지렁이도 좋은 일꾼이잖아요.
한: 난 지렁이는 별로야. 지렁이 많으면 두더지 많아서 힘들어. 두더지 많으면 쥐가 또 많아지고. 여기 산속에는 쥐들이 파, 양파까지 다 먹어. 그러니 땅콩, 고구마는 남기지를 않아. 작년엔 쥐가 다 먹어서 고구마를 캐지 못했어. 고구마는 퇴비를 주면 안 돼. 고구마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해야 해.
이: 기후변화가 갈수록 문제잖아요. 농사지으면서 누구보다 먼저 피부로 느껴지시지요?
한: 상관없어. 올해 햇볕이 안 좋았잖아. 그 안 좋은 게 벼농사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거야. 거름을 주었을 때 상관관계가 이뤄지지. 걸었을 때 벼잎은 흡수 능력이 떨어져. 그런데 거름을 안 하면 빛이 없어도 흡수 능력이 높아지거든. 그러니까 생명이 펼쳐지고 자정 능력이 더 이루어지는 거야.
이: 어느 땅에 가서도 선생님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말씀이네요.
한: 그럼. 그게 땅의 본래 모습이란 말이야. 땅을 분류하면 안 되지. 그리고 땅을 살린다는 말도 성립이 안 되지. 시장의 논리에 맞는 감 종자를 여기 땅에 심는다고 해봐. 그러면 땅을 살려야 된다는 논리가 나오지. 내가 갖고 있는 벼 종자가 50가지는 돼. 지금 진흥청에서는 화학비료를 줘야 하는 종자를 찾아내서 농민한테 보급하는 거고, 나는 전혀 거름하지 않고 되는 종자를 해마다 심어보면서 찾아내는 거야. 이 땅은 햇빛이 짧고 물이 차가운데, 그러면 벼 종자가 땅에 맞춰 가는 거야. 땅은 그대로 있잖아. 벼 종자는 움직이는 거고. 움직이는 게 바뀌어야지, 땅이 어떻게 바뀌어. 이 땅에 맞으면 번식이 이뤄지고 안 맞으면 자기 맞는 곳으로 가야만 되고. 거름 안 해도, 햇빛이 적어도 되는 종자가 생명을 펼치기 위해서 이뤄진다는 거야.
이: 그럼, 여기 땅에서 나는 종자를 매년 채종하시면서 가장 잘 적응한 종자를 찾아내는 거네요.
한: 그래야지. 없는 것은 구해 오지만 계속 여기서 반복해서 심어보면 이 땅에 맞는 종자가 나오는 거야.
이: 그러다 보면 기후가 아무리 변하더라도 씨앗도 적응해서 나오겠어요.
한: 적응하는 종자가 또 나오지. 여기서 교배가 되면 새로운 종자가 나오는데, 그 새로운 종자는 거름을 줘도 되는 종자, 거름을 안 줘도 되는 종자, 수없는 종자가 다 나와. 그럼, 이 땅이 무엇을 주시느냐고 가는 그런 종자를 여기에 모셔야지. 완두콩 개량종자는 여기가 추워서 안 맞아. 토종 완두콩 종자는 추위에 강해서 여기서도 겨울을 나지. 아무리 수확이 많아도 개량종은 여기 심으면 죽어 버리니 수확을 전혀 할 수 없지. 반대로 저 아래에서는 얼어 죽지 않으니까, 토종을 심을 필요 없지. 토종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닌데 사람들은 토종만을 고집하거든. 농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질이 좌우되는 거지, 토종이 질을 좋게 하는 건 아니야. 토종이라고 해도 거름을 많이 하면 빛을 받는 능력이 떨어져서 쭉정이가 나오고, 개량종이라도 거름 안 하면 빛을 받는 능력이 돼서 열매를 튼실히 맺지. 거름이 넘치면 일을 안 해. 모든 씨앗은 떨어지면 뿌리가 생겨. 거름이 없으면 뿌리가 일을 잘하잖아. 깊이 내리잖아. 깊이 내리니까 땅속의 모든 생명을 모두 흡수해. 누구는 사람이 갖고 있는 씨앗은 야생을 잃었다, 이런 착각을 하거든. 씨앗은 야생을 안 잃어. 사람이 야생으로 못 가게 하는 거지. 개량종이든, 외국 씨앗이든, 모든 씨앗은 본래의 모습이 있지. 내가 잣 묘목을 몇 그루 키우고 있는데, 국산 잣을 여러 번 심었지만, 싹이 안 나서 결국 중국산 잣을 심었더니 싹이 났거든. 여기 땅에 맞는 종자를 모시면 되는 거야.
이: GMO 종자도요?
한: 그럼. 벼를 심으면 씨앗이 나고 자라나잖아. 개량종은 안 자라나? 자라는 자체가 야생이란 말이야. 땅이 스스로 뿌리가 들어가게끔 갖춰져 있는 거야. 이미 뭇 생명이 나눔의 바탕이 되기 위해서 어디서든 적응해서 펼쳐져 나온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유기농은 펼쳐지지 못한다는 말이지. 땅을 살린다는 말 자체가 펼쳐지는 걸 못 봤다는 거야. 실은 펼쳐지지 못하는 농사잖아. 시장원리에 맞춰야 하니까.
이: 세상엔 이런 농부도 있고, 저런 농부도 있고, 공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한: 공존은 공존인데, 고통의 공존이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잖아. 나만 행복하면 안 되잖아. 모두가 행복해야지. 남을 착취하지 말고.
이: 유기농을 하든 자연 농을 하든 거래하는 순간 땅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네요.
한: 나는 누구를 비판하자는 건 아니지. 바탕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알고, 참으로 가자는 말이야. 참으로 가야만 나도 살고 모두가 살 수 있다는 거야. 모두가 나처럼 세상에서 벗어나란 말은 아니야.
이: 선생님 얘기 들으면 원래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얘기 같아요. 인간이 처음 곡식을 재배했던 때처럼.
한: 그렇지. 내가 고향의 삶이 아니고 본향의 삶이라고 하잖아.
이: 결국에 농부는 순응하는 사람이 돼야 하네요.
한: 땅과 같이 놀아야지. 우리는 갖춰진 이 땅에 초대받아 왔어. 갖춰진 잔칫집에 초대받아 왔으면 놀아야지.
[밥 모심 자연 농부 한원식] [연습 없는 축제, 함께살이]
차르륵 사스락 억새 스치는 소리만 크게 들린다. 흙길을 따라 움찔거리며 덜컹거리며 밤길을 더듬어 얼마나 올랐을까. 어둠 끝에 한 사람이 들고 서 있는 작은 등이 보였다. 흙길 사이로 비스듬한 숲길을 따라 내려가니 흐릿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작은 집이 보였다. 전기도 쓰지 않는 집, 해 떨어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 뜨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 집, 손님 마중하느라 늦은 밤중까지 촛불을 세 개나 밝혀 놓았다.
[자기다워 아름다운 자연을 닮은 집]
“이 밤중에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겠네. 출출할 텐데 이것 좀 드셔 보세.” 남녘 햇살을 가득 담고 있는 단감을 한입 베어 물었다. 침샘이 짜르르 흐르도록 단물이 입안에 가득했다.
“지금 머무는 이곳이 구만 오천 평이지. 여기에는 큰 것 작은 것으로 가득하게 갖춰져 있어. 자연을 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같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야.” ‘아름다움’은 자기다움이 한 아름인 모습이라 했던가. 남녘 끝자락 조계산이 마주 보이는 전라남도 승주 땅, 깊은 산 숲 자락에 에워 쌓인 이곳에 깃들어 사는 한원식 님은 필시 자기다워 아름다우리라.
한원식 님은 고향 공주를 떠난 지 이십여 년이 되었다. 경상도 칠곡서도 살았고, 제천에서도 머물렀다. “저절로 흘러서 오게 됐어. 인연이 있어 이곳에 머물게 된 거지.” 삶의 도반인 안혜영 님과 승주에 머문 지 벌써 8년이 된다. 늘 빈손뿐이었지만 가난하지는 않았다. 좋은 인연들과 초록 생명들이 늘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유나 무소유의 문제는 아니야. 자족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어. ‘고맙다’라는 것은 ‘고루고루 맞이한다’라는 뜻이야. 몸으로 사는 일 자체가 매 순간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야.” 한원식 님은 모든 순간을 거스르지 않고 맞이하여, 몸을 받들며 공손하게 자연에 깃들어 자연이 되었다.
‘얼’은 어울림을 말하고, ‘글씨’는 씨앗이 되는 글을 뜻하고, ‘말씀’은 쓰임을 받는 말을 의미한다. 사람의 말이 적절한 자리에서 쓰임이 되고, 함께 어울려 숨통 트이게 하고, 잘리지 않은 전체를 이루어 비로소 사람답게 된다. 이렇게 ‘한 통’을 이루면 어그러짐이 없어 날마다 기쁨 가득한 축제를 경험한다. 그는 지금 축제 중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일이 아니라 놀이야. ‘일로 하는 놀이’지. 사는 일에 군더더기가 없어. 쓸데없는 것을 지니면 일은 괴로움이 되는 거야. 어렸을 때 아이들은 해가 지는 것을 모르고 놀잖아. 아이들은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야.”
[밥 짓고 밥 먹는 몸]
더듬거리며 까만 밤에 들어오느라 볼 수 없었던 좁다란 앞뜰에는 가을걷이한 곡식들이 널려 있다. 아기 손바닥만 한 옥수수, 땅콩, 땅심을 받아 머리에 얹은 붉은 흙 색깔 수수, 붉디붉은 가슴을 다 내보인 고추, 단맛이 든 대추 알, 녹두와 팥, 메주콩도, 야무진 토종밤도 윤기 나게 모여있다. 참 곱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색색의 곡식들은 신명 난 농부의 가슴이며 몸인 듯싶었다. 집 모퉁이 한쪽에 거위와 토종닭들이, 집 마당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비탈에는 토종 벌통에서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갈꽃을 찾아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 한울 삶을 이루면서 느릿하고 한가로이 가을 아침을 열어가고 있었다.
“쌀로 밥을 지어 먹어야지. 아침은 몸에 쌓아둔 기운을 소비하는 시간인데 밥을 먹으면 되레 무기력해져. 점심 전까지는 일하고 움직여야 해.” 한시도 비워두지 않고 배 채우기에 허둥거리는 동안, 밥은 습관에 따라 끼니를 그저 때우는 것이 되고, 결코 제 몸이 될 수 없는 것을 삼키는 셈이다.
신발을 장화로 갈아 신고 밭일에 함께 나섰다. 폭 좁고 길쭉한 밭은 땅콩을 심었던 곳이다. 여기에 우리 밀 씨앗을 뿌린다. 농사의 원칙 중 하나는 ‘땅을 갈아엎지 않는’ 것이다. 함께살이가 깨지고 죽기 때문이다. 밭에는 땅 위 생명과 땅 아래 생명이 함께 어울려 숨을 쉬고 있다. 골을 파서 씨앗을 땅속에 묻지 않는다. 밭 위에 씨앗을 그냥 슬슬 뿌리고, 퇴비를 만들거나 발효시키지 않은, 여름내 말려둔 풀을 지게로 날라 그 위에 덮는다. 그것은 마른풀 밑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지렁이와 미생물들이 밭에서 해야 할 몫을 남겨두는 일이다. 발효된 퇴비를 직접 뿌리면 지렁이가 제 몫을 잃는다. 사람이 다 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고 교만한 일이다. 농사는 지렁이, 미생물과 함께 짓는 것이다.
“이미 땅은 곡식이 자라도록 준비되어 있어. 땅은 당겨주고 뿌리는 뻗지. 지난해 죽은 풀뿌리들이 숨구멍을 만들어 놓고, 지렁이와 미생물은 숨통 트이게 하는 거야.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일이지. 땅을 갈아엎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 풀이 자라면 낫으로 생장점만 잘라주지. 땅속 함께살이를 해치지 않도록 뿌리째 뽑거나 땅을 뒤집는 호미질은 하지 않아.” 너무 잘하려는 의욕 때문에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힘의 논리만 남게 된다. 가난한 생명체들과 함께 살아갈 수도 없고, 자기 몸까지 죽이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래서 밭에서 난 곡식들은 값을 매겨 팔지 않는다. 씨 뿌리는 일을 하지만 씨앗의 심부름을 하는 것뿐이다. 이렇게 ‘심부름 잘하면 벼와 곡식들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이미 만물이 함께 가고 어우러져 오고 감이거든. 그런데 값을 치르는 거래가 되었어. 절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거래가 이루어지니까 물질과 세상에 종속이 되는 거야.” 종속되지 않는 방법은 자연에 순응하여 자연에 깃들고, 자연에 대한 지배자의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배추가 깨우쳐준 함께 사는 삶]
한원식 님은 농사를 18살부터 배웠다. “몸이 아파서 일을 못 할 정도였어. 가난한 것,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서러움도 있었어. 농사라도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지. 축사, 원예, 논농사도 두루 배웠어.” 열심히 농사를 지었고, 수입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갔다. 그런데 34살 무렵부터 유기농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어, 그 길로 관행농을 접었다. “돈 벌기 위해서 농사짓는 걸 포기했어. 그러니 결국 그동안 끌어다 쓴 빚을 갚지 못할 형편이 되었지.”
이듬해 유기농 배추를 많이 심어서 빚 갚을 계획을 세웠다. 배추는 정말 잘 자랐고, 값도 한창 오른 때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져 배추밭은 싹 쓸려갔고, 허망한 마음만 남았다. 그런데 그 난리에도 한쪽 구석 몇 포기가 살아있는 것이 보였다. 갈아엎는 곳에는 숨통이 없어 배추가 뿌리부터 죽어갔고, 갈아엎지 않은 곳에는 숨통이 살아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급한 마음에 이듬해 땅을 갈아엎지 않고 배추를 두 배로 심었다. 예상대로 배추는 잘 되었는데, 이번에는 배추 가격이 하락했다. 팔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때 한원식 님은 자신이 못살 이유가 없는데 왜 이러고 있는지 되물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어. 자연에는 돈이 필요 없지 않은가. ‘벼와 곡식은 우리가 먹을 수 있을 뿐이지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돈은 허깨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사람들에게 한원식은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먹는 걸 바탕으로 밀 농사, 벼농사, 다양한 곡식들을 지어 자급해서 사는 방식으로 전환했지.” ‘땅을 갈아엎지 않는’ 자연 농법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물이 다 쓸어간 밭에서 만난 ‘배추’는 인생을 바꿔 준 스승이었다.
[밥 모심, 똥 모심]
모든 일은 ‘밥 모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밥이 몸이 되고 생명이 되는 일이니, 생명을 모시는 일이다. 점심시간, 이 집 안주인 안혜영 님이 단감과 찐 옥수수 바구니를 상위에 얹으셨다. 쌀로 지은 것만이 밥이 아니고, 계절 음식 하나 하나를 다 밥으로 여긴다. 무엇이든 공손히 모시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옥수수를 오래 씹으니 고소한 단물이 고였다. 이어서 마늘쫑, 호박 무침, 김치, 마른 김, 미역국, 민물조개를 삶아 무친 것, 태어나서 처음 본 호박 꽃찜, 그리고 푸성귀가 소쿠리 가득 밥상에 올라왔다. 순무, 무청, 배춧잎, 갓, 민들레, 쇠무릎, 카프리, 꼬들빼기… 가장 특별한 음식은 현미에 여러 곡식을 넣어 지은 밥이다. 현미를 기본으로 팥, 옥수수, 메밀, 율무, 통밀, 보리, 밤, 잣, 조, 검정깨, 수수, 콩 등이 들어갔다. 현미와 다른 곡식 비율이 6대 4 정도이다. 이 밥상의 모든 음식은 ‘백오십 번’ 정도 씹어야 한다. 반찬은 반찬대로, 푸성귀는 푸성귀대로 신선하고 생명 어린 빛깔을 느끼며 그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들여 멥쌀(현미)을 씹고 또 씹어 몸을 이루는 거야. 흰쌀은 오래 씹으면 무력해져. 흰쌀은 깎아 내고 쪼개서 절반을 버리는 거야. 멥쌀에서는 싹이나. 아름다운 것은 자라나지.” 현미를 먹으면 절반만 먹어도 된다. 통째로 먹어 힘이 넘친다. 흰밥은 보기엔 좋지만 둘이 먹을 수 있는 양을 깎아 내서 절반을 버린 셈이다. 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먹을 곡식을 다양하게 하면 각각 소비하는 양도 최소로 줄일 수 있고, 그만큼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게 된다. 지극한 ‘밥 모심’은 나눔의 실천이고, 생명을 나누는 일이다.
밥 모심은 똥 모심으로 이어진다. 인디언 천막집 닮은 이 집 뒷간에 앉으면 아래쪽 논밭이 보이고 먼 산이 안긴다. 뒷간은 한 해 농사를 짓는 기본이 담긴 곳이다. 뒷간에 부려놓은 똥은 거름이 되고, 풍성하고 기름진 논밭이 되어 충만한 곡식을 키워내고, 그것은 다시 밥상에 올라 나와 너의 몸이 되고 마음과 생각이 되고, 삶이 된다. 충만한 순환이 이루어진다. “마음공부가 따로 없어. 똥을 잘 누면 되지.” 똥이 밥이 되고 다시 몸이 되는 과정을 아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똥을 저버리는 삶에는 함께살이가 깃들 수 없다.
똥 장군에 똥 담아 지게에 지고
한 걸음 두 걸음 걸을 때마다 흔들흔들 흔들 춤 저절로 나고
한 바가지 두 바가지 뿌릴 때마다 너울너울 춤추며 멀리 퍼지네
멀리 퍼진 똥 냄새 땅에 잠길 때 벌거숭이 지렁이 잠을 깨우네
옆에 자던 새싹들 같이 잠 깨어 지렁이 새싹들 한 마음 되어
하늘 양식 내렸다고 소리치면서 흔들 춤 너울춤을 함께 추네
건너편 바람이 춤을 추네 (한원식, 똥 풀이)
온갖 풀과 열매와 곡식에 아무런 차별이 없고, 내 것 네 것이 없다. 사는 일은 어우러지는 것이다. 만나는 모든 것을 모시고 받들며 사는 일이다. 밥 모심, 똥 모심, 일 모심, 잠 모심… 모심이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몸에 생긴 병도 모신다. 병은 우리말로 ‘앓이’이다.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라는 말이다. 앓이를 모신 몸은 스스로 몸의 균형을 이루어 탈이 난 것을 풀어준다. 그러면 앓이는 자연스레 사라진다. ‘앓이’를 몰라보면 대적하고 물리치기 위해 싸우려고만 한다. 밥이 바르면 ‘앓이’를 대적하는 의학으로부터 해방된다. “우리 몸에 병이란 것은 없어. 통증은 몸이 알아차리는 과정이고 그건 신호야. ‘앓이’는 몸의 독을 풀고 피를 맑게 해 주지. 더 이상 ‘앓이’가 할 일이 없으면 슬며시 나가는 거야.”
[값을 매기지 않는 함께살이]
“장사하지 않고 되돌려 주어야 해. 밥과 땅은 사고팔 수 없는 거야. 현재 상업 농은 살길이 아니야. 나무를 베면 당장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견뎌낼 수 없어. 대가에 의해 신명이 좌우되면 안 돼. 곡식이 잘 팔리면 신명이 난다고 하고, 아니면 생명 같은 곡식도 갈아엎어 버리는 거야. 이거, 농심이 다 어디로 간거야.” 대가를 바라고 내 땅, 네 땅으로 나누고, 갈라놓는 동안 모든 것이 깨져버린 것이다. 경쟁하듯 땅을 가혹하게 지배하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 농업은 유기농의 역사였는데, 이것이 모두 깨진 것이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극한 상황까지 가면 다시 새로운 조류가 생기게 마련이고, 지금 그러한 질문 앞에 서 있는 것이라 했다.
“삶은 축제인데 축제가 없어진 거야. 대동과 두레의 순환이 없는 거야. 올바로 작아야지, 작다고 무조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커도 올바로 커야 하고.” 희망은 경제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나눔의 원리에 달려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일상에서 나누는 축제의 경험이다. “맛과 멋과 흥이 있는데, 혀에서 맛을 보고, 멋은 눈으로 보고, 맛은 만남이고, 멋은 머무름이고, 흥은 일어남이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것이 일상의 축제야. 각자가 축제를 한 짐 짊어지고 모여서 대동 축제가 이뤄져야 해. 여기에서 되돌림이 되는 거야. 쌀농사 중심으로 지은 사람이 쌀을 나누고, 감자를 잘 지은 사람이 감자를 나누는 거지. 이게 사랑방 문화야. 다시 되돌림이 되어 와서 자신의 자리에서 두레가 이뤄지는 거지. 이것이 대동과 두레의 순환이야. 대동은 가끔, 두레는 날마다 이루어지는 것이야.” 땅을 뒤덮지 않고 나누지 않고 더불어 축제 같은 함께살이를 짓는 일에 살길이 있다.
“모든 것이 끊어짐이 없는 거야. 나 자신은 끊어지지만, 다른 사람을 살리면 그 삶까지 포함해서 내가 사는 거야. 그런 삶으로 하루를 영원의 삶으로 살아가는 거야.” 사람의 수명은 ‘숫자’로 말할 수 없다. 나와 너의 경계가 없으면, 내 삶이 다른 사람의 생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이뤄진다. 다른 사람이 이 삶을 받아들여 80살을 산다면, 나는 160살을 사는 것이고, 그 이상도 살아가는 것이다. 작은 풀 한 포기도 한해살이가 아니다. 그 안에 몇억 년의 시간이 담겨있는 것이다. 수십 광년을 거쳐온 빛이 풀에 닿아 순간으로 담긴다. 빛은 끊어짐이 없이 오고 또 와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영원한 충만함 속에서 사는 거야. 잘랐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니야 다른 생명이 되어 살아가는 거야. 최소가 최대가 되고 다시 최소가 되는 순환을 살아가는 거야.”
한원식 님은 숨통 열린 땅에서 숨통이 트인 함께살이를 하고 있다. “삶은 연습이 없어. 그냥 사는 거지. 자연에 순응하면서 얼씨구나 절씨구나, 사는 거지.” 흔들 춤 너울춤 함께 추며 축제 같은 시간을 채워가고 있다.
[밥을 '모시고' 있습니까?] [‘자연의 농부’ 한원식]
광주에서 두 시간 거리. 시간으로만 따지자면야 그 길을 어찌 멀다고 말하랴. 하지만 비포장으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은 그 집을 세상에서 ‘저만치 떨어진 아주 먼’ 곳으로 느끼게 했다. 순천 승주 같은 행정구역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한원식(56) 씨의 주소지는 자연이었다.
지금 사는 집은 누군가 살다 떠난 집. 오랜 세월 버려져 있던 집이다. 그래서 그는 “길 가다가 주운 집”이라 말한다. 그 집을 대충 고치고 손봐서 산 지 6년 됐다.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던 옛사람의 말처럼 앞마당에선 조계산이 마주 바라보인다.
이 깊은 산 속에서 그가 가진 건 이 자연뿐.
어두운 방안엔 촛불이 켜져 있었다.
“전기가 무슨 소용 있어요?”
그는 ‘불필요한 것들이 없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전기조차도 그에겐 불필요한 것이었나 보다. 그는 흔히 말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고자 하는 걸까. “아니요, ‘자족성’이 빠진 무소유란 한갓 말장난이지요. 저는 다만 불필요한 것들을 덜고 덜어내는 ‘가난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불편하지 않은가,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는가, 그런 질문은 그에겐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불편이니 적응이니 하는 말 그 자체가 도시인들이 엄살떠는 말일 뿐. 그는 사람이 시도하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 먼저 생각만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와서 사람이 할 일이란 씨 뿌리는 일, 즉 밥 짓고 밥이 되는 일”이라고 늘 강조하는 그는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고향은 충청도. 전라도 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은 걸까. “벼농사를 제대로 지어 보려고 옮겨왔던가, 좋아하는 감을 실컷 먹으려고 옮겨왔던가,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이라고, 허허.”
감 이야기가 나왔으니 똥 이야기를 해야겠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땐 측간이 없었어요. 감나무 뒤에 가서 ‘똥 모심’을 하면서 똥을 모신 감이니 얼마나 맛이 있을까 했지요. 그런데 웬걸 너구리가 저녁마다 와서 다 잡수시네?”
원래 어린이가 누는 건강한 황금빛 똥은 개들도 알아보고 좋아한단다. 그러니 개가 똥을 모실 수 있게만 똥을 누면 그는 건강한 사람일 것. 그는 “똥은 안 늙는다”라고 말한다. 다만 사람이 잘못 살아 똥이 늙어지는 것일 뿐.
똥이 안 늙도록 잘 살려면? 그의 대답은 “밥 모심을 잘해야 한다.”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모신다? ‘밥 모심’은 단지 밥을 취하는 게 아니라 지극정성으로 대하는 것을 이른다.
“밥 먹는 시간이 10분이 뭡니까? 밥을 모시는 시간은 내가 되는 시간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시간인데….”
그는 “한 술에 140번 정도는 씹어야 한다”라고 일러준다. “에이 어떻게 140번이나?”라고 반문하는 이들에게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다면 좀 봐줘서 130번 정도는 씹어 드세요.”
그는 “소식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씹느냐 안 씹느냐의 문제”라고 말한다.
“쌀 속에는 140여 가지 미량원소가 들어있어요. 우리 혀는 이 맛을 다 느낄 수 있지요. 씹을 때마다 맛이 다르니 밥상에서 저절로 축제가 일어납니다.”
그는 밥 중에서도 “현미밥을 모시라”라고 한다. “서양의 영양학은 칼로리 개념만 있고 ‘작용’이란 개념이 빠져 있지요. 현미는 땅에 떨어지면 싹이 나지만 흰쌀은 썩어버리잖아요. 흰쌀에는 작용 성분이 제외돼 있어요.”
도시인들에게도 말한다. “당장 시골에 내려와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밥그릇 농사라도 제대로 지으며 살아라.”
그에 따르면 잘 짓는 밥그릇 농사는 현미잡곡밥을 소식(多嚼)하는 것이고, 하루 2식을 하는 것이다. 2식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게 건강에 좋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적게 먹는 삶, 과소비하지 않는 삶,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눔’이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지향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밥 모심’을 실천하고 사는 그는 과연 얼마나 건강할까. 어쩌다 사람들 앞에서 ‘밥 모심’에 대한 강의를 할 때면 그는 “제 몸이 아주 잘 빠졌어요”하고 농을 건넨다. 짓궂은(?) 사람이 있어 “한 번 웃통을 벗어 보세요” 하면 정말 웃옷을 벗는다. ‘불필요한 것이 없는 삶’처럼 ‘군더더기 없는’ 강건한 몸이 드러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의 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옷을 벗는다든지 그 모든 행위가 거칠 것 없이 자연스러운 그의 때묻지 않음이다.
지금은 그렇듯 건강한 몸이지만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스물일곱까지 몸이 어느 한구석이라도 안 아픈 데가 없이 온갖 병치레가 심했단다. 그 아픔을 통해 그는 ‘앓이’를 터득했다.
그는 세상에서 말하는 ‘병’이란 말을 쓰지 않고 ‘앓이’라고 한다. ‘내 몸이 스스로 알아차려 알아서 한다’라는 뜻. 병이라 하면 물리치고 제거하고 몰아낼 적대적 대상으로 보게 되지만, 앓이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라는 의미고, 급하게 죽지 않고 더 살게 몸속의 독소를 가장 약한 곳으로 몰아주는 의미라 한다. 그는 ‘앓이’를 통해 우리 몸의 가장 취약한 데를 알 수 있으니 ‘앓이’를 지극정성으로 잘 모시면 그로부터 ‘살림’의 힘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요즘 사람들은 그저 ‘건강’을 쫓지만 ‘올바르고 참된 삶’을 살면 ‘건강’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믿는 그는 한때 관행농으로 성공해 돈도 많이 벌었지만 서른한 살 되던 해부터 유기농을 시작했다. “이것이 사람이 먹는 것인데 농약으로 생명을 해칠 수는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우리 할머니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는데 새벽마다 기도를 드렸어요. 근데 한 번도 우리 손주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신 적은 없어. 다만 ‘우리 손주를 바른길로, 진리로 이끄소서’라는 기도였지요. 그래서 내가 우리 할머니 덕에 바른길로 이끌렸는가는 모르지요.”
그렇게 배추 농사를 짓다가 어느 해 큰물이 져서 배추밭이 다 잠겨버렸다. 상심해서 밭에 나갔는데 다른 배추들은 다 널브러져서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싱싱한 배추 한 포기가 있더란다. 바로 밭 귀퉁이 갓 자리에 심은 배추. 갈아지지 않은 땅의 배추였다. 그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가 ‘배추 스승’이라 일컫는 이유다.
“갈아지지 않은 땅에는 순환이 있고 숨통이 열려 있어 물이 차 있어도 안에서 숨을 쉰 거지요. 땅을 가는 것은 흙의 모임과 온전성을 해치고 지렁이 딱정벌레도 죽이는 일이에요.”
그때부터 그는 ‘땅을 갈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다. 다음 해에는 갈지 않은 밭에 배추 농사를 다시 지었다. 농사는 잘됐으나 배추 가격이 폭락해서 폭삭 망했다.
“배추밭 숨통은 터졌는데 왜 내 삶의 숨통은 안 터지나?”라는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숨통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돈이더란다.
“돈이 무엇이건대? 결국 날 때부터 없는 것,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때부터 그는 ‘돈을 꾸지 않는 삶’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그들 부부에겐 통장이 없고 저축이 없다. 하지만 노후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자연의 순리대로”라는 믿음이 가장 든든한 ‘빽’일 뿐.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다 보니 그는 사고파는 농사를 짓지 않는다.
“배추가 생명인데 어떻게 값을 매기나요. 값에서 욕망이 생겨요.”
그 욕망을 없애는 것은 조금만 소비하고, 남는 것은 나누는 삶이다. 그가 ‘가난한 삶’을 살아가려는 이유다. 비현실적이라고? 그의 뜻을 따르는 이들이 이 근처에만 해도 10여 가구 생겨났다. 그렇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살아도 우리 식구 먹고 남는 게 있어요.”
그 남는 것은 어디다 쓰나? “님을 맞이하는 데 쓰지요.” 그 님은 손님이다.
그의 집에는 농사 배우러 오는 이들, 앓이를 하는 이들이 늘 들락거린다. 그가 어떻게 사나 기웃거리러 오는 이들도 있다.
그는 그 모두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누가 오든 흔연히 ‘밥상’을 차려내 ‘밥 모심’을 같이 한다. “폐를 끼쳐 죄송하다”라는 의례적 말엔 손사래를 친다. 덧붙여 “정 그러면 똥 모심을 잘 하고 가시지요.”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농사도 그렇고 밥 모심도 그렇고 사는 게 날마다 축제이다.
“노동이 아니라 놀이니까 신명이 나고 춤추듯이 하지요. 밭에서 일하는 것도 춤사위요, 똥장군 지고 가는 것도 춤사위지요. 자연의 모든 것이 춤사위에요. 똥거름 뿌리면 똥이 ‘너울춤’을 추며 날아가잖아요. 힘들 때야 왜 없겠어요. 춤추는 것도 되게 추면 힘들잖아. 다만 그 춤사위를 잘 넘나들어야지요. 쉴 때는 쉬어주고…”
마음 없이 일하는 것은 억지 춤이란다. 억지 춤을 추니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겠느냐. 뭐든지 자연스럽게. ‘자연의 농부’인 그가 들려주는 말이다.
[농부 한원식 선생과의 만남]
뜻밖의 손님을 맞았다. 전남 승주에서 자연농법과 자연 의학을 실천하는 한원식(62살) 선생이다. 나로서는 그동안 말로만 듣던 분이라 반갑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우리 집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한 선생은 하고 싶은 요점을 꺼내신다.
“이 동네 분들과 자연농법과 의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갑자기 방문한 걸음이라 이웃들에게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대신에 아내와 나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은 30살 무렵부터 자연농법을 실천해 왔으니 얼추 30년 가까운 세월을 자연과 더불어 산 셈이다. 자연에 산다는 건 일 년 아니 하루를 살아도 보고 배우는 게 있다. 그리고 그 배움은 자신만의 세계를 갖는다. 누구든 자연에서 보낸 경험이 있다면 귀 기울이면 배우는 바가 있다. 그러니 한 선생은 30년 세월의 무게만큼 이야기도 새롭다. 기계를 안 쓰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도 9만 제곱미터(대략 3,000평) 짓는다. 이 가운데 벼농사도 두 마지기 정도를 자연농법으로 짓는다.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몇 가지만 간추려 본다.
첫째 ‘참’을 강조한다. 거짓이나 꾸밈이 없어야 한다는 거다. 병이란 없는 것이며, 꾸밈이며 거짓에 불과하다. 그는 병 대신에 ‘앓이’라는 말을 쓴다. 배앓이, 속앓이의 앓이. 앓이는 “알다”에서 나온 말이란다. 자기 몸이 스스로 알아서 아픈 거니까 앓이가 된다. 병이라고 보면 참을 못 보고 자꾸 아픈 걸 몰아내려고 하지 왜 아픈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앓이’를 통해 우리 몸을 알 수 있으니 ‘앓이’를 잘 모셔야 한다. 아픈 사람이 “참”에 이르러면 단식이 중요하단다. 몸이 불편하다면 먹지 않아야 한다. 그 단적인 보기로 선생의 장모 이야기를 했다.
연세가 여든이 넘은 장모가 걸음걸이가 불편한 상태로 사위 집에 왔다.
“그 몸으로 어찌 살아요? 굶으세요.”
심지어 몸이 제대로 말을 안 듣는다면 죽으라는 말까지 했단다. 장모는 사위를 믿고 굶기 시작. 닷새를 굶으면서 다리가 정상이 되고 다른 지병도 나았단다. 그러면서 식욕도 살아나 뭐든 맛있다고 한단다. 지금은 농사일을 아주 열심히 할 만큼 건강해졌단다. 한 선생 역시 환갑이 넘은 나이인데 머리카락만 희어졌을 뿐이지 그 외는 젊어 보인다. 몸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균형이 잡혀있으며, 얼굴은 맑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한 선생은 ‘참’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게 먹고, 오래 천천히 씹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누구나 오래 씹어야 좋다는 말을 하지만 그 근거가 약하다. 한 선생은 위산과 침샘의 화학성분으로 설명했다. 위산은 강한 산성인데 침은 중성이다. 소화가 잘 되자면 충분히 씹어 침샘을 많이 위로 보내주어야 음식이 잘 중화가 되어 소화가 잘 되고 덩달아 힘도 잘 솟아난단다. 이 부분은 좀더 공부해 볼 부분이겠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침에는 탄수화물을 녹이는 소화효소가 있는데 이는 중성에서만 작용한단다. 그러니까 위로 넘어가기 전에 입안에서도 충분히 소화가 되는 과정이 있다. 이래저래 침이 중요하다. 소화는 기본이고 면역력을 높여주고, 해독 작용도 한다. 또한 침은 Ph 6.5~6.9 정도의 중성에 가깝고, 위산은 pH 2에 가까운 강산이다. )
침이 잘 나오게 하자면 씹는 횟수도 100번을 넘어 130~150번을 강조한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야말로 밥 모심 아닌가.
밥에 대한 그의 생각도 재미있다. 모든 음식을 다 밥으로 생각한다. 무나 과일 또는 먹는 풀 하나하나 다 밥으로 여긴다. 여기서 밥은 바로 몸이 되는 음식이다. 그러면서도 밥상에는 음식 가지를 있는 대로 많이 올린다. 올릴 수 있는 음식이 스무 가지가 되면 그 모두 다. 말하자면 밥상이 잔치가 된다. 그렇다고 과식하자는 건 아니다. 만일 과일을 많이 먹으면 밥을 두세 술 먹기도 하고, 밥을 더 먹으면 다른 음식을 조금 먹기도 한다. 소박함이 주는 풍성함이다. 억지로 하는 풍성함이 아닌 자연스러운 풍요.
오래 씹으면 소식도 저절로 된다. 오래 씹어 삼키면 밥 한 숟가락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위에 밥이 차는 걸 느낄 수 있단다. 소식은 양의 문제 이전에 시간의 문제 즉, 오래 씹느냐 안 씹느냐에 달려있다. 밥 한 숟가락을 100번 이상 씹는다면 식사 시간이 한결 길어질 듯하다.
한 선생은 하루 두 끼를 권장한다. 아점을 열두 시쯤 먹고, 저녁은 해가 떨어질 무렵에 먹는다. 부인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도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을 한단다.
참 다음으로 그이가 강조한 건 일이다. 일하고 나서 밥을 먹어야 한단다. 일을 무리해서도 안 되지만 일을 안 하고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 이는 내가 주장하는 거와 같다.
한 선생 이야기를 듣고 또 인터넷으로 관련 정보를 검색하면서 내 생각이 하나 정리가 된다. 바로 ‘하나를 잘하면 모든 걸 잘 한다’이다. 씹는 걸 잘하면 소화도 잘 되고, 소화가 잘 되니, 면역력이 높아 건강하다. 소화를 잘 시키니 모든 일에 의욕도 샘솟고, 힘도 잘 쓸 수 있다. 그러니 적게 먹어도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다. 생각 역시 몸이 건강하면 밝고 건강하게 샘솟는다.
손님이 돌아간 후 그동안 가볍게 먹어오던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저녁 여덟 시쯤 되니 배가 고프다. 좀만 기다려보자. 그랬더니 침이 자꾸 고인다. 침을 삼켰다. 침이 달다. 서서히 배고픔은 가셨다. 대신에 소변이 자주 나온다. 먹은 거라고는 침밖에 없는데 한 시간마다 오줌을 눈 거 같다. 내일부터 더 천천히 먹고 더 적게 먹는 실험을 해 볼 생각이다. 어쩌면 씹는 행위 자체도 넓은 뜻에서 요리 가운데 하나가 될지 모르겠다. 한 선생과의 만남은 내게 좋은 공부가 된 고마운 시간이었다.
[참된 삶을 위한 바른 “밥 모심” 故 한원식 선생 추모 영상]
▶땅을 간 곳은 숨통이 막혔고 갈지 않은 곳은 숨통이 트여 있었다.
▶땅은 떼 알로 뭉쳐서 가는데 떼 알로 만들어 주는 것이 물이다.
▶물이 들어가면 떼 알로 되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에 물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그때 순간적으로 숨통이 막히는 것이다.
▶겨울 배추는 지하 온도 때문에 숨통이 막혀도 썩지 않습니다.
▶배추는 온도가 높으면 숨통이 막힙니다.
▶배추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이원론이 아니라 일원론으로 가는 삶이 됩니다.
▶아들이 뇌염에 걸렸을 때 숨통이 트여야 한다는 이치가 딱 떠올랐습니다.
▶열이 날 때는 관장을 해서 똥부터 빼야 합니다.
▶각탕(脚湯)을 40도의 뜨거운 물에 정강이까지 담급니다. 20분씩 4번 3시간마다 한 번씩 했습니다. 12시간 만에 뇌염이 즉각 나았습니다.
▶제 마음에 숨통이 트이는 게 배추를 사고팔면 안 되는 것이구나! 이었습니다.
▶생명은 나누는 것이지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혼자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팔지 않는 삶으로 가야겠다고 즉각 결정을 내립니다.
▶생명으로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농사는 직접 농사보다 입 농사가 첫째이다. 그래서 손님들은 꼭 식사 때에 오라고 한다.
▶거래는 조건이 있지만 나눔에는 조건이 없다. 조건이 없는 만남이 이루어져야 조화로운 삶이 이루어진다.
▶씨앗은 움직이는 것이고 땅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맞춰지는 것이 농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농사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움직이는 것에 맞추려고 합니다.
▶움직이는 씨앗 그 자체가 땅에 맞춰지기 위해서 여러 종으로 펼쳐집니다.
▶사람을 빼놓고는 세상 만물이 모두 참으로 가지 꾸며가지 않는 것을 제가 발견한 것이죠.
▶자기가 씨앗을 어디서 데려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밥을 뜸을 들이지 않습니다. 반숙합니다. 반숙하면 생쌀보다 영양이 더 많아집니다. 화식이라도 자연식이 아닌 게 아니라, 우주 만물은 변화되는 건데, 얼마나 변화를 잘 시키는가 하면, 자연 농사의 수확에 많은 변화를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된 것을 올바르게 먹는 변화,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소득은 다 무효입니다.
▶밥을 반숙으로 만들어서 150번을 씹어 먹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아주 쉬워요.
▶깨닫는다는 말은 답이 나오질 않잖아요. 깨달음이라는 말뜻에는 어떤 답이 나오질 않아요.
▶터득했다는 말에는 답이 나옵니다.
▶터득(攄得)했다는 말은 전제가 있는 것이고 깨달았다는 말은 전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터득하는 것이지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터득하지 않고 배우는 것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새어나가는 것입니다.
▶정신은 물질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물질은 정신/마음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의무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먹는 것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마음이 형성됩니다.
▶먹는 것을 바르게 먹으면 모든 사물을 옳게 분별하는 올바른 판단력이 나옵니다.
▶올바른 먹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교육해도 효율이 아주 적습니다.
▶밥만 바르게 모시면 이거야 하고 탁 터득하는 능력이 몇 배로 일어납니다.
▶물은 적응합니다. 그래서 上善若水입니다.
▶물이 가는 곳마다 생명을 일으킵니다.
▶인간의 삶은 우리가 함께 사는 나눔의 삶입니다.
[농부 한원식 인터뷰 1]
관행농
유기농
▶점진적으로 유기농으로 가라! (정진영 선생)
▶농사를 지으면서 생명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즉각(卽刻) 농약과 비료를 안 쓰는 농업을 하기로 했다.
▶공주에 살 때 초여름 배추를 심었으나 비가 많이 와서 모두 썩어버렸다. 하지만 땅을 갈지 않는 곳에 심은 배추만은 썩지 않고 살아 있었다. 여기서 ‘숨통’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갈지 않은 땅은 물이 차도 물이 땅속으로 잘 빠져 땅의 숨통이 막히지 않았다.
▶29살에 유기농을 만났을 때 정진영 선생이 기준성 선생의 부항 요법에 관한 책을 주었는데 부록으로 니시(西勝造) 의학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정진영 씨가 아침을 먹지 않았다.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몸이 아픈 관계로 아침 겸 점심을 12시에 먹고 저녁을 해가 질 무렵에 먹는다.
▶이때 밥을 사고팔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땅의 숨통을 발견한 후 배추를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보는 눈을 갖게 됐다.
▶나의 생명이 배추의 생명을 먹는 것을 알게 됐다.
▶생명이 생명을 먹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을 안 이후로 엄청난 힘이 솟아났다.
▶아 돈의 문제가 아니고 생명의 문제다.
▶자연농법과 자연적 삶을 즉각적으로 동시에 했다.
▶생명과 생명은 나누는 것이지 거래하는 것이 아니다.
▶유기농을 포기함으로써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인 1,200만원의 빚을 졌다.
▶인류 모두가 지금 다 속고 있다.
▶인류의 삶이 참이 아닌데 의무를 져야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떼먹는 것은 돈거래를 깨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것은 깨는 것이고 대혁명이라는 것은 대변화를 뜻한다.
▶큰 변화로 가려면 거래를 깨지 않고서는 생명의 길로 갈 수가 없다.
▶가족들은 세상과 어울리는 것을 원했지만 저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 할머니만이 나를 인정해 주었다. 네가 참을 보았구나!
▶제가 이렇게 거래하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으므로 목숨을 위해서 돈을 빌려다 먹고 사는 일은 안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참을 보았다고 말씀하셨고 그 신조를 목숨걸고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가 서른네 살이었었는데 할머니와 내가 부둥켜안고 울면서 엄청난 힘이 솟아났다.
▶벼 못자리를 해야 하는데 그때 경운기 살 돈 200원이 없는 거예요.
▶어깨에 물통을 이고 물을 퍼다 나르니까 동네 아저씨가 “원식아, 원식아! 정신 차려라! 정신 차려라!” 하시며 경운기를 몰고 와 물을 대 주었다.
▶그때 죽을망정 꾸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때는 일이 전부 춤, 놀이로 바뀌는 거야.
▶거래할 때는 거래가 안 되면 팥죽이 되지만 안 돼도 좋은 거야.
▶삶이 나쁜 게 없는 거야. 그 삶을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는 거야.
▶저에게는 관행농을 할 때도 유기농을 할 때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고 이런 거래하지 않는 삶을 사니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 아픈 사람들도 많이 모여들었고, 자연농업과 자연 의학, 자연의 삶을 동시에 함께하고 있었으므로 많은 후원금이 있어서 1,200만 원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숨통이 트이니까 인생도 술술 풀리었습니다.
▶숨은 쪼개도 쪼갤 수 없는 곳에서 나오는데, 그때 숨통을 알게 되면서 종교의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그때 종교의 구원론에서 생명 사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는 하느님이 사람으로 성육화(聖肉化)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나와서 참을 이룬 분의 삶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종교관이 일방적 구원론이었지만 이제는 만나서 오고 감의 중용론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가 나한테 오고 내가 예수에게 가고 이렇게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생명 사상입니다.
▶이 생명 사상을 만나게 되면서 제 삶에 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제 삶에 모든 것이 막힘이 없게 됩니다.
▶자연농법을 하면 돈도 못 벌고 힘만 드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돈을 내놓고 가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 돈은 당신이 임자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때 500만 원이면 엄청 큰돈이었습니다. 500만 원, 400만 원, 300만 원, 200만 원, 그러니까 100만 원 이상 막 이렇게. 아픈 사람들은 내가 장례식을 치러 주어야 할 정도로.
▶공주를 떠나 제천에 있을 때 그때는 땅이 없어서 전국의 교회 등으로 3년간 내내 건강 강의를 하러 다녔습니다.
▶전라남도 함평에 있는 모든 교회도 다녔었어도 종교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을 하려고 했으나 종교 문제를 건드리면 이단 취급을 받았습니다.
▶종교 문제는 흘러가는 일이구나 깨닫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고 빚은 원금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해결되었다. 자연농법을 하고 10년에서 15년이 지난 후 모든 빚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 순천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기득권 정치, 경제, 종교, 사회, 교육, 의료 등의 모두에서 참이 없고 거짓만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래 없는 삶을 주장했을 때 나를 공산당으로 몰았지만, 공산당이냐, 민주당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것이냐, 그른 것이냐가 중요한 문제다.
▶자연농법을 하면서 터득한 것이 이 땅에 뭘 심어서 얻어 먹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땅이 나에게 뭘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땅은 어떤 땅이라도 문제가 없다. 그 땅에 맞는 씨앗을 심으면 된다.
[농부 한원식 인터뷰 2]
▶현미밥은 꼭 통미로 반숙 밥을 해서 15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고 아침을 반드시 먹지 말아야 한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유전자 조작된 곡물을 먹어도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전자 조작 곡물을 먹어도 몸에서 유전자 조작이 이루어지지 않는 몸 상태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음식을 먹어서 몸이 소화해 내지 못하면 모든 먹는 음식은 넘침이 되는 것이다. 자기가 소화할 수 있는 선을 넘을 때 그것은 넘침이다.
▶지나치지 않을 때는 “참 좋다”라고 해야지 “너무 좋다”라고 하면 잘못된 말이다.
▶의학의 시작도 아픔에 대한 관점에서 시작한다. 바르게 보느냐 꾸며서 보느냐.
▶병이라는 말은 빛이 가려졌다는 말이다. 죽임을 당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은 우리 몸은 병이 없다.
▶아픔은 병이 아니라 ‘앓이’다. ‘앓이’는 ‘알다’에서 나온 말로 자기 몸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아픈 것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서승조(니시) 의학에서 말하는 症狀은 곧 治療法이다.
▶전립선염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몸을 살리고 있다는 말이다.
▶몸살은 몸을 살린다는 말이다.
▶현미밥은 씹는데 150번을 씹어야 한다.
▶빨리 먹으면 넘치게 먹게 된다.
▶우리 몸에 생기는 증상은 병이 아니라 ‘앓이’이다.
▶모든 것이 먹는 것에 달려있다.
▶자연농법은 삶 자체가 자연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밥은 내 몸이 되는 것이고 나를 맞이하는 것이다. 나의 님을 맞이할 때는 녹여야 한다. 현미밥을 먹을 때는 씹고 또 씹고 녹이는 것이다.
▶씹고 씹어 녹여야만 밥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자연농법에 관한 책으로는 최성현 씨가 번역한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 正信, 1913~2008)의 책이 있다. 무 경운, 무농약, 무 비료, 적당한 잡초 제거 농법이다.
▶최성현 씨는 가와구치 요시카즈(川口 由一, 1939~ )의 농법을 한다. 무 경운, 무 비료, 무농약, 잡초와 벌레는 적으로 안 여긴다.
▶최성현 씨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책을 통해 자연농법을 배웠고 나는 스스로 자연농법을 터득했으며 최성현 씨가 배우기 위해 제천에 있는 나를 찾아와서 함께 살았다.
▶땅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 아니라 땅이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이냐가 중요하다. 땅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은 뭇 생명을 품기 위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약이 되느냐 여부가 아니라 넘치냐 넘치지 않냐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된다.
▶현미밥 식생활은 건강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때 건강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다. 바른 삶이 아닐 때는 아무리 몸에 좋은 걸 먹어도 건강이 찾아오지 않는다.
▶치아는 제 이빨이 아닙니다. 어려서 하도 많이 아파서 다 뽑혔습니다.
▶현대 의학은 참 의학이 아니고 거짓 의학입니다. 전립선 문제, 당뇨, 해결 못 하고 있습니다.
▶병은 꾸민 말이므로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이 꾸며진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병이 없으므로 약이 있을 수가 없다. 또 치료가 있을 수 없다.
▶병이 없는데 치료한다, 약을 쓴다, 이러한 말은 모두 거짓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거짓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거짓을 믿고 따르는 것을 미신(迷信)이라고 합니다.
▶미신의 무리가 기득권 세력에게 다 말려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 종교 할 것 없이 모두 말입니다.
▶저는 지금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제천에서는 애들 엄마 권유로 마지못해 다녔습니다.
▶의학 문제가 해결되니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적이라는 말은 꾸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영감, 영성 이런 것들은 사실의 말이 아니라 전부 꾸민 말입니다.
▶도종환 시인이 영감받아서 좋은 시를 썼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고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좋은 시를 썼다는 말이 가장 좋은 말입니다.
▶기도는 의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신과 마음은 물질(육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오랫동안 씹지 않고서는 넘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밥이 위에 들어가 쌓여 생기는 포만감은 20분 이상 씹어야 뇌에서 감지가 일어난다. 빨리 먹으면 많이 먹게 되고 넘침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현대 의학에서는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한 것이 바로 의성 히포크라테스입니다. 의과 대학생이 졸업하거나 학위 수여를 받을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하면서 20분 이상 꼭꼭 씹어서 먹으라는 밥의 문제는 거론하지 않습니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점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땅에 약간 파묻힌 상태에서 감자가 싹이 틀 때는 0도가 되어도 얼지 않는다. 무슨 능력이 생기냐면 겨울을 나기 위해 물감자가 돌 감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거름 없이도 잘 사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 원리를 이용해서 봄철에 심어야 할 감자를 가을에 심어서 하지에 걷습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능력을 잘 활용해야지 사람이 뭘 만들어서 활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침을 안 먹게 되면 밥의 효율을 높이는 능력이 몸에서 나옵니다. 아침을 먹으면 이 효율을 계속 떨어뜨리는 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쓸데없는 짓으로 몸을 망치는 것이다. 지금의 현대 문화가 쓸데없는 짓으로 생명을 자르는 행위이다.
▶우리 인간들은 전부 모두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단 말입니다. 종교, 정치, 교육, 의학 그 모든 것들이 말입니다. 어떤 집회를 해도 참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박근혜, 최순실만 물리칠 줄 알지 참모습이 뭔지를 몰라요. 밥이 그렇게 됐어. 그러니까 의・식・주가 아니에요, 식・주・의가 맞습니다.
▶밥이 제일 중요한 것이고, 밥이란 받든다는 말입니다. 밥을 받든다는 것은 곧 나를 받드는 것이고 이웃을 받드는 일이 됩니다. 흰 쌀밥은 받드는 게 못 됩니다. 흰 쌀밥도 밥은 밥인데 받드는 밥이 아니고 저버리는 밥입니다.
▶쌀에 잡곡을 섞어서 먹으면 영양 효율이 엄청나게 높아집니다. 섞어 먹으면 밭 잡곡의 효율을 높여주는 일이 일어난다. 쌀은 잡곡과 반찬의 효율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고기가 사실은 혈관을 넓히는 역할을 합니다. 자연산 고기는 엄청나게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주 먹게 되면 우리 몸이 혈관을 넓히는 능력을 잃게 만듭니다.
▶400kg의 소 한 마리를 만들려면 1,250kg의 곡물이 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인류가 건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고 손해 보는 짓입니다.
▶그러나 가끔 한 번씩 고기를 먹게 되면 자동차의 전기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배터리의 역할이 잘 이루어지게 합니다.
▶가끔가다가 고기를 한 번씩 먹어주면 나물의 효율을 엄청나게 높여주게 된다. 그래서 고기에 많이 든 나쁜 성분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식탁의 동물성 식품은 젓갈과 집에서 얻은 달걀이다. 닭의 사료로는 정미소에 나오는 청미(靑米)로 주고 있다.
▶자연농법으로 지은 쌀이 썩지 않듯이 자연농법으로 나온 달걀도 썩지 않는다. 썩는 것이 아니라 곯게 된다. 자연농법의 달걀은 신선도를 볼 필요가 없다. 곯으면 치즈가 된다. 우유만 치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달걀도 치즈가 된다. 콩도 치즈가 된다.
▶관행농법의 밥과 자연농법의 밥을 실온에 3개월을 두면 하나는 썩고 하나는 버섯이 나온다. 달걀도 조류 독감 이런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제가 이렇게 실험한 게 아니라 이웃에서 포도 자연농법을 하는 이옥진 씨가 한 것입니다.
▶권 강식 씨(교수)가 조선대에 있을 때 유기농 강좌를 부탁해서 갔을 때 자연농법을 하면서 작물에 약을 안 치는데 왜 당신들 몸에는 약을 치냐고 그랬습니다. 이것 참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 유기농은 어디 있냐고 말했습니다. 건강한 삶이 없는 유기농이 무슨 의미가 있냐 이 말입니다.
▶유기농 달걀은 썩지만 자연산 달걀은 썩지 않고 색깔이 까맣게 변한다. 개는 유기농 달걀은 먹지 않고 자연산 달걀을 선택해서 먹는다.
▶밥을 지을 때는 얼마나 변화를 잘 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반숙으로 밥을 지을 때가 가장 좋고 영양 효율도 가장 높입니다.
▶압력솥에 현미밥을 할 때 뜸을 들일 필요가 없고 반숙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뜸은 잠깐만 들여야 한다.
▶쌀을 일어서 물에 담가 놓지 않고 3시간 전에 미리 건져놓고 기타 잡곡은 3시간 전에 물에 담가 놓고 밥을 할 때 그때 섞으면 됩니다.
▶압력솥에 밥을 하는데 쌀만 물에 잠기게 해야 합니다.
▶압력솥 벨 소리가 울리고 1분 30초가 지나면 불을 꺼버립니다. 그리고 1분 30초를 뜸을 들이는 것입니다. 총 3분 후에 김을 빼버리고 휘휘 저어서 남은 열을 식히고 밥통에 담거나 밥그릇에 담아서 먹으면 됩니다.
▶현미밥 잘 먹는 법은 화식, 생식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현미밥을 반숙으로 잘 변화시켰느냐가 핵심이다. 반숙일 때 최상의 맛이 나오고 오래 씹을 수밖에 없게 된다.
[농부 한원식 인터뷰 3]
▶다리, 엉덩이, 허리가 불편하신, 앉지도 서지도 못하던 87살의 장모님이 물만 먹고 3일을 굶으셨다.
▶단식 후에 먹을 때는 넘치지 않게 바르게 먹어야 한다. 밥의 양을 서서히 늘려야 한다.
▶순환 단식이라고 해서 1루 굶고 6일 먹고 1루 굶고 5일 먹고 1루 굶고 4일 먹고 1루 굶고 3일 먹고 1루 굶고 2일 먹고 1루 굶고 1루 먹고 1루 굶고 6일 먹고 1루 굶고 5일 먹고 1루 굶고 4일 먹고 1루 굶고 3일 먹고 1루 굶고 2일 먹고 1루 굶고 1일 먹고 1루 굶고 6일 먹고 이렇게 3번을 하면 3개월이 걸린다. 1번 하는데 8일 정도 단식이 된다. 여기에 순수 5일 단식을 추가한다.
▶[순환 단식 3개월=8일을 단식한 셈] + [5일 단식]=13일 단식, 1일 단식은 500일에 해당한다고 비유적으로 계산. 13일X500일=6,500일≒약 18년에 해당
▶장모님은 단식 후 고관절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순환 단식, 5일 단식이 끝나고 과일만 먹었습니다.
▶88살이어도 아침은 드시지 않는다.
▶아침은 배출의 시간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아침을 안 먹는 것은 음양의 이치에 어긋난다. 현실적 임상은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몸 상태가 좋다.
▶인체 온도가 제일 낮은 시간은 04~06시, 제일 높은 시간은 오후 4시~오후 6시, 그 이후 온도가 서서히 내려간다. (Chat. GPT)
▶때를 맞추어 식사하지 않으면 신진대사를 방해한다. 아픔은 신진대사가 불량함을 말한다.
▶우리는 온전한 사람으로 넘쳐서 저버리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집사람은 점심 1끼만 먹습니다.
▶현대 의학의 착각 시발점이 ‘앓이’를 병으로 보는 것이다. ‘앓이’는 ‘알아차린다’라는 말이다.
▶모든 것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다.
▶원시반본의 핵은 ‘숨’이다.
▶숨인데 통으로, 이원론이 아닌 일원론의 ‘숨통’이다.
▶삼위일체는 곧 숨통이고, 숨통에는 맞이하는 ‘맞(迎)’, 머무는 ‘먿(止)’, 흘러서 변화하는 ‘흥(興)’이 있다.
▶삼위일체를 이루기 위해서 ‘앓이’가 생기는 것이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모든 병은 ‘앓이’에 불과하다. ‘앓이’는 우리 몸이 알아차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암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암 때문에 더 사는 것이다. 암은 몸을 살리는 일을 한다.
▶백신은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독소/바이러스 배출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아침을 굶으면 매일 백신을 맞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아프다는 것은 새롭게 배출 통로가 열리는 것이다. 독감, 암 같은 각종 병, 바이러스가 그 역할을 한다.
▶몸속에서 내보낼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통증이 커진다.
▶암 환자가 고통이 없이 죽는다는 말은 그만큼 암 바이러스가 몸에서 많이 빠져나갔다는 말이다.
▶굶으면 내보내는 능력이 몇 배로 늘어난다.
▶통증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독소가 많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아침을 먹는 것이 좋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면 실험의 구성, 자료, 내용과 배경을 철저하게 밝힌 후에 결과를 말해야 한다.
▶암 환자는 독소를 내보낼 능력이 거의 사라진 상태이다. 진통제를 먹으면 독소는 몸에서 나가지 않고 더 쌓여서 더 큰 통증을 일으킨다.
▶암 환자들은 생명이 거의 기운 상태로 독소를 내보낼 능력이 없는 암 환자가 음식을 먹으면 통증이 더 커진다. 그러나 굶으면 독소가 잘 빠져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을 때는 먼저 의식이 나간다.
▶태어날 때는 감각 기능만 있고 두세 살 이후에 사고 기능이 생긴다.
▶죽을 때는 먼저 사고력이 떠나간다. 그러니까 죽는 것을 모르고 감각 기능만 남는다.
▶암 환자들은 3일만 굶으면 고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자기가 느낀다.
▶암은 몸에서 내보내는 능력을 극도로 상실했을 때 몸에서 일어나는 ‘앓이’이다.
▶기도, ~해야겠다는 다짐, 의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로 행해야 한다.
▶마음은 물질을 변화시킬 수 없고 실제로 안 먹어야 내 말과 일치가 되어서 평화가 찾아온다.
▶모든 것은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되고 행동이 따라야 한다.
▶모든 종교는 기도만 하고 있다.
▶기도는 다짐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야 의미있는 기도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살린다”라는 말이다.
▶아침을 굶으려면 점심을 충분히 먹고 저녁은 1/3만 먹어야 한다. 아침에 안 먹는 것을 생각해서 저녁을 많이 먹으면 아침에 내보낼 독소가 많아져서 몸이 더 힘들다.
▶아침을 안 먹는 것이 정착하려면 적어도 3일은 걸리고 전날 저녁에 많이 먹으면 아침 먹는 습관을 들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저녁밥은 낮밥의 1/3만 먹어야 한다.
▶점심/저녁 2끼를 많이 먹으면 아침을 굶더라도 전혀 의미가 없어진다.
▶아침을 굶어도 넘치게 먹으면 1끼를 먹든 2끼를 먹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함석헌 선생은 1끼만 먹었지만 대식가였기 때문에 1끼만 먹은 효과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함석헌 선생 87세까지 사셨는데 당신은 생나무를 땔감으로 태우다 난로에서 나온 일산화탄소 역류로 사망. 人命在天!)
▶바른 삶은 ‘밥 모심’을 잘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다.
첫댓글
[핵심 내용]
1. 아침밥을 먹지 마라.
2. '밥 모심'은 현미 등의 통잡곡밥을 150번 이상 꼭꼭 씹어서 먹어라.
3. 점심/저녁의 2식을 한다고 해도 아침을 안 먹는 것을 대비해서 점심을 과식하든지, 저녁을 과식하든지 하면 말짱 꽝이다.
4. 자기 부인 안혜영 씨는 점심 1끼만 먹고도 하루 종일 농사 일을 한다.
5. 점심은 충분히 먹되 저녁은 간소하게 먹어라.
6. 현대 의학은 단순한 '앓이'를 병이라고 꾸며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7. '앓이'는 '앓다'에서 온 말로 '알아차리다'라는 뜻이다.
8. 자기 몸 상태를 알아차리고 '앓이'가 사라지게 하면 몸 상태가 정상이 된다.
저녁을 간소하게
먹어야 됨을 알면서도 못 지키는 일인 입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시며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즐거운 쉼의 날 되시기를 기원 합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합니다. ^^
오늘도 즐겁고 상쾌하게 건강한 날이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