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반 주사에 대한 질문은 여러차례 올라왔습니다. 간사랑동우회에 올린 글을 인용하겠습니다. 녹십자에 문의한 내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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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반 추출물을 이용한 만성 간염 치료
요즈음 태반 추출물을 사용한 간염 치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아마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가 태반 추출물이 간염을 치료하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어떤 신문에서도 그 내용을 다룬 적이 있고 그 의사는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더군요.
그 의사가 태반추출물은 '국가 공인 기관에서 공인, 검증한 것'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말해서 의약품의 판매 허가에 관여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문의하여 다음과 같은 답변을 받았습니다.
문서번호 65607-11020 답변일자 2002/10/13
성 명 채규한 E-mail
전화번호 388-6455 담당부서 의약품안전과
내 용
태반(자하거)를 가수분해하여 얻은 성분을 주사제로 제조한 품목은 약사법령에 의하여 "만성 간질환에 있어서의 간기능의 개선"제로 허가된 바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질문과 답변을 직접 보시려면 여기를 누르십시오.)
그 의사의 홈페이지에 그곳에서 사용하는 약품의 이름이 나와있어 그 약에 대하여 좀 더 알아보았습니다. 그 약은 일본에서 생산하고 우리나라의 주식회사 녹십자에서 수입 판매하는 라에넥이라는 주사제입니다.
이 주사제에 대하여 국내의 의학자료과 미국의 유명한 의학자료 데이터베이스인 medline을 검색하였으나 관련 문헌을 하나도 찾을 수 없습니다.
주사제를 수입하여 판매하는 주식회사 녹십자 본사에 연락하여 주사제와 관련된 국내외 자료를 모두 보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통화한 직원의 이야기로는 문헌은 그리 많지 않고 국내에서 판매되는 양도 별로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자료에 대하여 여러분께 말씀드리려 합니다.
라에넥이라는 주사제는 1993년에 우리나라에 처음 수입허가를 받고 판매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받은 자료에 있는 연구 논문은 모두 일본에서 연구한 내용이었습니다. (대부분 영문 초록이 있고 녹십자에서 한글로 초역한 것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연구논문이 발표된 시기는 1957년부터 1981년 사이로 1950년대 6편, 1960년대 1편, 1970년대 6편, 1980년대 1편, 그리고 연도를 알 수 없는 논문이 두 편이었습니다.
이 중 동물 실험을 제외하고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간기능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었다는 결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환자를 대상으로하여 바이러스가 없어지거나 항체가 생기는 지 보는 연구를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가 B형간염바이러스와 C형간염바이러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체 논문 중에서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경우가 몇명 있긴 합니다.
우선 혈청 간염 환자가 두 명 포함되어있는데 (혈청 간염은 바이러스성 간염이 바이러스에 의하여 전염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피를 통하여 전염되는 것으로 생각되는 간염에 대하여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B형 간염과 C형 간염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주사제를 사용하여 간기능이 좋아졌다고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바이러스성 간염의 존재를 알지 못할 때의 연구이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없어졌는지, 면역이 생겼는지 검사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오스트레일이라 항원이 양성인 만성 간염 환자 한 명이 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항원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에게서 발견된 항원인데 나중에 B형간염바이러스 표면항원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오스트레일이라 항원이 양성인 간염 환자는 B형 간염 환자인 셈입니다) 이 환자에서도 간기능이 좋아진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B형간염 표면항원에 해당하는 오스트레일리아 항원이 없어진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항체가 생겼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B형간염 표면항원이 양성인 환자 한명에 대한 치료 사례가 있는데 이 환자의 진단은 급성 B형 간염이었습니다. 이 주사제를 투여한 후에 간기능은 많이 좋아진 것으로 되어있는데 6개월 동안 B형간염 표면항원은 계속 남아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연구 당시에는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요즈음에는 간염을 앓고서 6개월 이상 B형간염 표면항원이 남아있으면 급성 간염으로 분류하지 않고 만성 간염이라고 합니다.)
이 중 B형 간염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경우는 두 명인데 한 명은 급성 간염인데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표면항원이 없어지지 않았고, 만성 간염 환자 한 명은 표면항원이 없어진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결과만 보면 B형 간염 환자 두 명 중에 한 명(50%), 만성 B형 간염 환자 한 명 중 한 명(100%)에서 표면항원이 없어졌으니 매우 효과적인 약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 대상이 되는 환자의 수가 너무 적어 이것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고 더 많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해야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약중에 간기능 개선의 효과가 있다고 하는 약은 많이 있습니다. 흔히 간장약이라고 부르는 약이 바로 그것입니다. 의사들도 그런 약 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태반 추출물을 사용하는 의사는 많지 않습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주사제가 다른 약보다 효과가 뛰어나다면 이 주사제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다른 약이 이 주사제보다 효과가 뛰어나다면 이 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본 연구 논문 중에는 이 약과 다른 약을 비교한 연구결과는 없었습니다.
또 이 치료법은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는 치료법이라면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사용을 허가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 식품의약청에서는 간기능 개선제로 약의 사용을 허가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간장약들도 미국에서는 FDA의 승인을 받지 못했으므로 사용할 수 없고 그와 유사한 약들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국 식품의약청에서 승인한 약이라면 유명한 의학교과서에 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의학교과서나 간질환을 다루는 유명한 책에는 이 약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아 태반추출물 치료가 미국에서는 널리 사용되는 치료법이라는 것은 믿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이 태반 추출물 주사제는 다른 많은 간장약과 비슷하게 '간기능의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해서 시판이 허가된 약입니다. 이 약이 B형 간염에서 표면항원을 없애거나 e항원이 없어지게 한다는 효과에 대해서는 연구하거나 효과를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C형 간염에 어떤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서 역시 연구한 자료가 아예 없습니다. 미국에서 이 약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말을 믿을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2002-11-13에 덧붙이는 글
주식회사 녹십자에서 라에넥과 관련된 논문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대부분 지난번에 이미 검토한 논문인데 새로운 것이 하나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이 논문은 어떤 경로로 발표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의 부산대학교 병원 문상은 등이 쓴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1994년 1월부터 1996년 6월까지 6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라에넥을 사용하였는데 결론을 말씀드리면 GOT(AST), GPT(ALT), 알칼리 포스파테이즈, 알부민, 빌리루빈 등 간기능검사 소견과 스스로 느끼는 증상이 모두 좋아진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논문을 쓴 시기가 1990년대 후반이니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져있을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문의 어디에도 B형간염 표면항원이나 B형간염 e항원, B형간염바이러스 DNA, C형간염바이러스에 대한 항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논문에도 다른 간장약이나 위약(가짜약)과 비교하여 어떠한 장단점이 있는지 비교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3-2-24에 덧붙이는 글
2003년 1월 12일 SBS 저녁 8시 뉴스에 '간염과 간경변증을 치료하는데 태반 성분이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이 보도는 앞서 보도된 것과 같은 의사가 발표한 것을 다루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 관련된 자료를 구하려고 이곳 저곳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를 알아본 끝에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3년 1월 12일 SBS에 보도된 내용이 인쇄물의 형태로 나와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사가 태반 성분이 간염과 간경변증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보도되긴 했지만 국내나 국외에서 의학 관련 학술지에 논문의 형태로 발표된 적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관련 내용이 국내나 국외 의학 관련 학회에서 발표된 적도 없습니다.
결국 보도된 내용은 기자에게는 알려졌지만 다른 의사들에게 알려진 적은 없습니다. 새로운 치료법이 발견되었을 때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 자세한 방법을 발표한 논문을 읽고 그것을 검토한 후에 타당성을 판단합니다. 실제로는 의학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려면, 그 학술지의 편집자들이 논문의 내용을 검토해야 됩니다. 그런 검토과정을 거쳐야 학술지에 논문이 실릴 수 있습니다.
학회에서 발표되는 경우도 비슷합니다. 발표하기 전에는 검토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의학 학술지에 실리는 것처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표하는 자리에서 질문이나 토의를 통해 간단히 검토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이런 검토과정을 거친 내용이라야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다른 의사가 같은 방법을 사용해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는 후속 연구결과가 발표되면 더욱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2003년 1월 12일에 보도된 내용은 의사들의 검토를 거치지도 않았고, 상세한 내용을 공개하여 다른 의사들이 실험해볼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간염이나 간경변증의 치료에 태반 성분을 사용하는 것이 권장할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은 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처음 올린 날 ; 2002-10-18
마지막 고친 날 ; 2003-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