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모으는 자리, 교회
에페 1,1-10; 루카 11,47-54 /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2022.10.13.; 이기우 신부
“성당에 다니실 분을 초대합니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길가에 위치한 어느 성당 정문에 붙여 있던 예비자 모집 현수막에서 본 글귀입니다. 어느 때부터 가톨릭교회, 또는 천주교라는 말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성당’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말도 아닙니다. 성당이란 천주교회의 전례가 이루어지는 공간 또는 건물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개신교회의 예배가 이루어지는 예배당과 구별하던 원래의 뜻을 넘어서, 천주교 내지 가톨릭교회를 대신하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이 말이 이처럼 유행하게 된 데에는 개신교 신자들이 ‘교회’라는 말을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쓰고 있으니까 오해받기 싫어서 이와 구별하느라고 그랬을 것입니다.
지금은 공식적으로 천주교회, 또는 가톨릭교회라고 쓰게 되어 있습니다만, 2백여 년 전에 천주교가 중국을 거쳐 들어오는 바람에 중국식으로 한 번 번역된 용어들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천주’, ‘천주교’가 그런 말들입니다. 그 백 년 후에는 개신교도 들어왔는데, 미국과 카나다의 선교사들이 들어왔음에도 용어는 천주교처럼 중국식 번역용어를 쓸 수밖에 없었던지라, ‘야소교’ 또는 ‘기독교’라고 썼었습니다. ‘야소(耶蘇)’는 예수,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교라는 뜻의 한자어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란 용어는 곧 개신교가 독점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같은 경로로 ‘교회’라는 용어 역시 개신교 예배당을 독점적으로 의미하게 되었던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일과 대축일에 사도신경이나 대신경을 암송하면서, “하나이오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성당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당은 건물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독서에서 듣는 에페소서는 사도 바오로의 교회론이 집대성되어 있는 성경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지니는 엄청난 축복과 구원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는 성서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축복을 내리셨는데, 그 장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것이고, 천지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었는데, 그 구원의 장도 교회라는 것이며,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실 계획을 하느님께서 계시하셨는데, 그 모으실 장이 또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편지가 쓰여질 당시에 사도 바오로는 이미 로마에서 순교한 후였습니다. 바오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이 세 차례에 걸쳐 20여 년 동안 선교활동을 하는 중에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에페소 교우들에게 스승인 바오로의 심중에 있던 뜻을 조금이라도 다듬어서 전해 주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에페소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로마식의 황제숭배 통치와 이로 인한 우상숭배 풍습 또한 극성을 부리던 도시였고 따라서 박해도 가혹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어서, 미사를 봉헌할 성당도 없었고 그저 신자들의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그것도 당국과 시민들의 눈을 피해 모이던 형편이었는데도, 에페소 편지의 저자는 생전에 스승 바오로로부터 받은 가르침대로 교회를 통해서 만민을 한데 모으시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이루질 것임을 할 수 있는 한 장엄한 형식으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이 교회는 예배당도 성당도 아닌, 믿는 이들의 공동체였습니다.
비록 박해 중이라 해도 그 당시는 초대교회의 본산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에페소로 옮겨온 직후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소에 와 있었습니다. 사도 바오로와 그 제자들의 선교적 열성으로, 에페소 교회는 물론 인근 소아시아의 여섯 교회들, 즉 스미르나 교회, 페르가몬 교회, 티아디라 교회, 사르디스 교회, 필라델피아 교회, 라오디케이아 교회에서 박해 속 신앙을 치열하게 증거하던 모든 교우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굳건하게 지킨 덕에 2백5십여 년 후인 서기 313년에 밀라노 칙령이 내려져서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모든 박해가 멈추었고, 서기 395년에는 로마제국의 국교로까지 공포되는, 엄청난 선교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다음의 일들을 따라가 보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인지 근 백 년만에 멸망할 정도로 로마제국의 타락은 극심했었기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국교로까지 받아들인 로마 시민들이 진정으로 믿음을 지녔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박해를 멈추기까지에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보여주는 진실된 신앙 자세에 감화된 덕분이 아주 큽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다교의 바리사이들이 보여주는 위선과 종교적 무책임과는 대조적으로,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 신자들 그러니까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신자들은 건물 한 칸 없던 시절에도 신앙만큼은 뜨거워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로마인들을 감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이도 역시 믿음의 힘이요 교회의 힘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는 천주교인입니다. 그러니 성당 건물에 다니더라도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를 믿는 정당한 교회의식을 지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