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함으로
아버지 품속의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신속히 준행하니라
14.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15.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16.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17.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18.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19.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20.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21.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22.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본문 주해)
13~15절 : 성전 재건에 관한 다리오 왕의 조서는 그의 재위 2년인 B.C. 520년에 내려졌다. 그 후 성전 재건은 B.C. 516년 즉, 다리오 왕 6년에 완성되었으니, 4년 만에 성전이 완성된 것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더구나 주변의 방해 세력이 있었음에도 무사히 재건된 것이다.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것이 풍부했던 평화 때의 솔로몬 성전도 7년이나 걸렸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14절에서 밝힌다.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즉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를 받아가며 공사를 진행했기에 순조로울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약 50년 후의 왕인 ‘아닥사스다가 언급이 되는 것’(14절)은, 나중에 이루어진 성벽의 재건까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하여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16~18절 : 성전이 완공되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귀환자들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기뻐하면서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제물로 수소 100마리, 숫양 200마리, 어린양 400마리를 바치고,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 제물로 지파의 수대로 숫염소 12마리를 바쳤다. 그리고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아 보게 하였다.
솔로몬 성전 봉헌식의 규모나 제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하였지만 백성들은 기쁨으로 봉현식을 거행했다.
중요한 것은 성전의 규모나 봉헌식의 웅장함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이 말씀에 불순종하여 언약을 깨뜨렸을 때 그렇게 화려하게 짓고 봉헌식을 웅장하게 드린 성전이라도 파괴하셨다.
19~22절 : 백성들이 성전을 재건하고 봉헌한 후에 유월절을 지킨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지켰던 절기이다. 그러므로 이 유월절은 과거를 종결하고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즉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이 제2의 출애굽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옛 누룩을 버리고 자신들을 새롭게 준비하는 무교절의 의미처럼, 포로로 사로잡혔다가 귀환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스스로 구별하여 과거 죄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새로 건축해 봉헌한 성전에서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월절 양에 동참한 사람들은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하기를 원하는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21절)
22절에 언급된 ‘앗수르왕’은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을 가리킨다. 그것은 앗수르인이 점령했던 영토를 바벨론왕들에 이어 페르시아왕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묵상)
오늘 본문은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드디어 성전을 완공하여 봉헌식을 하고, 또 유월절을 지킨다는 내용이다.
신약 시대 성전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성도와 성도의 몸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몸 된 나의 성전을 세우며 어떻게 유월절을 지키는가?
나의 성전 됨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장사되어 그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6:16)
그렇게 나는 새롭게 건축해 봉헌한 나의 몸 된 성전에서 죄의 더러운 것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 십자가 보혈을 의지해 정결케 되어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니 이것이 매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유월절을 지키는 일이다.
구약에 나타난 율법의 조문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과 십일조 그리고 성전....이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임을 알게 된 것이 참으로 기쁘다.
그러한 것들이 비록 그림자들일지라도 나를 진리로 이끄는 것들이니 그것을 안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에 더 이상 얽매이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그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날마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열어 놓으신 생명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었다.
그 생명길은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께로 달려가는 길이요,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배당의 소중함을 알지만 더 이상 건물 성전에 얽매이지 않으며, 더 많은 것을 드리지만 십일조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역에 힘쓰지만 그것 자체가 생명을 주는 일이 아님을 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께서 주신 자유함과 기쁨이 있기에 자원하여 드리는 나의 마음인 것이다.
주님의 보혈로 나를 성전 되게 하시고, 이 성전에서 날마다 말씀을 받아먹고 십자가를 붙들게 하심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의미를 박수치며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주님, 보잘것없는 존재를 주님께서 거하실 만한 성전으로 만들어 가시는 나의 주님을 찬양하는 아침이다.
(묵상 기도)
주님,
진리를 알아가는 기쁨,
이것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에 연합된 제가 바로 성전이요,
그 성전에서 날마다 말씀을 받아먹음으로
죄의 더러움을 씻어버리고 새롭게 되게 하시니
그것이 나의 유월절 지킴이 되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직도 희미하게 아는 것이 많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진리의 성령님께서 저를 성장 성숙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의 성전완공과 예배와 절기를 지키는 기쁨과 즐거움이
예수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로 체험하며 누리게 하시니 감사가 넘칩니다.
제 남은 생이 이 은혜로 더욱 풍성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