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ife-마지막 인생숙제, 춘천마라톤/소양강 추억
45년쯤 전으로 거스른다.
가난한 집안의 7남매 맏이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내 삶을 너무나 척박하게 하던 때였다.
말단 공무원이라는 그 천시 받는 신분은 나를 좌절케 했었다.
그때 그런 나를 추스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그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스물넷 여인을 향한 연정이었다.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꿈과 희망의 종착점으로 삼았었다.
수없이 많은 날밤을 새우면서, 그 여인이 내 곁에 가까이 있어주기를 기도했고 또 바랐다.
다 좋은데, 한 집안 맏이라는 내 신분이, 세 딸만 있는 집안의 맏딸이라는 그 여인을 범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던 어느 한 여름날, 결국 내 그 꿈과 희망을 접고 말았다.
그렇게 좌절해버린 나를 위로해준 친구가 있었다.
내 점촌국민학교 동기동창인 채태홍 친구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나는 이 산골에 처박혀 있어도 꿋꿋하게 살고 있는데, 너는 검찰수사관이면서 그렇게 좌절하고 있으면 안 돼지. 여기 놀러 와라. 와서 시원한 강바람 좀 맞고 가라. 그래서 새롭게 힘 좀 내봐라.”
그 여름에, 내게 그렇게 한 통 전화를 걸어줬다.
그때 그 친구가 내게 좀 맞고 가라고 했던 강바람은, 바로 소양강 그 강바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친구의 초대는 내게 마음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참 먼 길이었지만, 곧장 달려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갔고, 거기에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털털거리는 시골길을 달려 소양강 그 호수 선착장까지 갔었다.
그리고 양구로 가는 배를 탔었다.
친구는 내가 탄 배를 기다려 이미 양구 선착장에 나와 있었다.
당시 육군 중사 계급이었는데, 짚 차를 선임탑승해서 왔었다.
그 친구의 짚 차를 타고 함께 양구 일대의 명승지를 다 돌아다닌 1박 2일의 일정에서 나는 삶의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빛나는 강물처럼 가로지르는 은하수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그때 그 밤하늘, 내 생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깊은 가슴에 새겨놓았다.
소양강을 또 찾았다.
2019년 10월 27일 일요일의 일로, 우리 막내가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나선 춘천마라톤이 열린 그날이었다.
막내가 코스를 달리는 대여섯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의암호 그 호반 길을 걷기도 하고, 틈틈이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 시간을 다 때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소양강이었다.
처음부터 딱 지목해서 찾은 것은 아니었다.
우선 점심끼니를 때우려고 춘천 근교의 유명한 맛집인 ‘유포리 막국수’집을 찾아가던 중에 소양강 이정표가 보였고, 그 순간에 문득 그 옛날 채태홍 그 친구를 만나러 그 강을 거슬러 올랐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 추억의 현장에 다시 한 번 서보고 싶었다.
그래서 예정에는 없었던 추억의 소양강 그 선착장으로 달려간 것이다.
달려가긴 했지만, 정작 그 자리에 서보지는 못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왔는지, 주차장뿐만이 아니라 그 어느 곳에도 차를 세울 곳이 없었다.
빈자리가 생기기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자칫 42.195km의 마라톤 풀코스를 다 달린 막내가 종착점에 들어서는 순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에 맏이에 맏며느리와 막내며느리에 손녀 서현이 해서, 가족들만 차에서 내려서 그 선착장에 다녀오게 하고,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차를 되돌리고 말았다.
나는 차창너머로 비쳐지는 소양강 그 강물만 내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지난 날 그 추억의 순간이 잔잔한 그 강물 위에 어렴풋이 펼쳐지고 있었다.
첫댓글 그옛날 추억을 고스란히 증거까지 가지고 있능기 억시기 부럽다!
난 그런 추억의 사진들이 부모님과 더불어 이사 다니다가 쌰그리 엄써저써~
그져 기억에 매달릴뿐, 춘천 하믄 닭갈비 묵으로 한번갔고 가서 막국수도 먹어 봤는디
생각보단 맛이 덜하데? 지금 151회 임당역 글 슨다 안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