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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06
#1. 기철 집안 별채 마당
중문을 통해 마당으로 뛰어드는 최영.
대만 : (싸우며) 저 안에 계십니다.
최영이 별채를 본다. 별채의 문 앞에는 큼직한 자물쇠가 달려있다.
별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공격해오는 사병 하나를 해치우고. 또 걸음을 옮기려다가 멈춰 뒤를 돌아본다.
거기 담을 넘어 떨어져 내리는 화수인. 다른 쪽에서는 다시 피리를 주워든 천음자가 떨어져 내려 선다.
그리고 중문으로 들어서는 기철. 기쁘다는 듯 웃으며 최영을 본다.
사병들을 처리한 대만이 재빨리 최영의 뒤에 와 지킨다.
최영이 기철네를 노려보며 검을 치켜드는가 싶더니 내려 갈기는 검은 별채의 자물쇠를 끊어버린다.
철겅.. 두동강이 나서 떨어지는 자물쇠.
천음자가 나서려는 것을 기철이 손을 들어 말린다. 재미있어 보고 있다.
최영은 손을 들어 옷소매로 남아있는 코피를 닦고, 귀의 피도 닦아 매무새를 단정히 한다.
그러면서 가빠졌던 호흡도 가라앉혔다.
양손을 들어 별채의 문을 벌컥 연다.
#2. 기철 집안 별채
최영이 들어선다. 어두컴컴한 별채 내부가 열린 문으로 환해진다.
그 내부 저 안. 눈이 부셔서 눈을 가리던 은수가 손을 내리며 이쪽을 본다.
거기 최영이 서있다. 물끄러미 자기를 보고 있는 최영.
은수가 믿기지 않아 보다가 그만 왈칵 눈물이 솟으며.
은수 : 사이코.
최영이 가까이 다가서더니 두어 발 앞에 서서.
최영 : 좀 늦었습니다.
하며, 은수를 온화하게 본다.
은수가 최영을 아래위로 살핀다.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는다.
은수 : 살았네.
최영 : 괜찮으십니까?
순간 은수가 성큼 다가서더니 최영의 볼에 한 손을 얹는다.
최영이 멈칫하지만 피하진 않는다.
은수 : 열도 내렸고.
좋아서 최영의 가슴을 퍽 친다. 최영, 한 번 더 참는다.
은수 : 살아났구나. 사이코. 내가 살렸어. 근데.. (웃던 얼굴이 굳으며 최영에게 낮게) 나 지금 갇혀 있어요.
최영 : 압니다.
은수 : 어제 밤에 끌려와서요. 지금까지 이 방에 갇혀 가지구..
말하며 최영의 등 뒤쪽을 보다가 놀라 멈춘다.
최영이 천천히 돌아선다. 거기 대만이 뒷걸음질로 밀려들어오고 있다.
그 앞에는 여유 있게 다가서고 있는 기철.
대만은 기철의 기에 밀리고 있는 중이다.
최영, 한손으로는 방패를 바닥에 짚고, 다른 한손은 검손잡이에 얹어 언제라도 발검할 자세를 취한다.
문을 넘어 들어서는 기철.
대만이 마지막 각오로 그 중간을 막아서며 손칼을 뿌려 싸울 준비를 한다.
최영이 순간 기철의 손을 보았다. 양손이 하얗게 서리에 덮여 간다.
기철이 한걸음 더 다가선다.
대만이 달려들려는 순간, 그 등덜미를 잡아채어 옆으로 밀쳐버리는 최영.
대만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안 탓이다.
최영의 거친 힘에 벽에 부딪혀 간신이 멈추는 대만. 중심을 잡느라 벽에 박은 손칼이 지익 벽에 흉터를 남긴다.
기철이 최영의 앞에 멈춰선다. 그 손에 서리는 이제 가셨다. 미소로.
기철 : 우달치 중랑장 최영.
최영 : 다시 뵙습니다. (고개를 슬쩍 숙여 보이는데 시선은 기철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기철 : (은수를 보며) 그리고 너.
최영이 슬쩍 반걸음 옆으로 움직여 은수를 보는 기철의 시선을 차단하며.
최영 : 전하께서 의선이라 칭하신 분입니다. 예를 갖추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기철 : (호오..) 지난번에 만났을 때도 그대는 예를 주장하였었지.
그런가. 최영. 그대는 목숨보다는 예를 더 중시하는 자였나?
최영 : 설마 그럴 리가요. 그저 예를 들먹이며 잠시 시간을 버는 중입니다.
기철 : 무엇을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최영 : 제 뒤에 계신 분을 모시고 도망칠 생각이거든요.
기철, 하하 웃는다.
최영은 그새 재빨리 기철의 뒤쪽을 살핀다.
어느새 다가온 화수인과 천음자가 문 밖의 양쪽을 지키고 있다. 그 뒤로는 사병들이 몰려들고 있고.
기철 : 나와 내 뒤의 아이들을 다 뚫고. 도망을 치겠다? 그것도 그 여인까지 데리고.
은수가 최영의 뒤에 숨은 채 걱정스러워서 갸웃 기철 쪽을 훔쳐본다.
최영 : (넉살 좋게) 안되겠습니까?
기철 : 혹시 우달치군 전대원을 우리 집 지붕 위에 숨겨놓기라도 했는가.
최영 : 아닙니다. 제 개인적으로 온 것이라 전하께서는 모르십니다.
우달치군은 전하의 명 없이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철 : 개인적으로 왔다. 왜?
최영 : 개인적이라는 말 뜻. 모르십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 뒤에 계신 분을 연모하기 때문에 온 것이란 말입니다.
최영의 뒤에서 은수가 놀라 최영을 본다. 저 옆에서 대만도 놀라서 입이 헤벌어져 본다.
입구 쪽의 화수인이 재밌다는 듯 웃으며 본다.
기철 : 지금.. 뭐라 했나?
최영 : 연모하는 여인이 한밤중에 끌려가 낯선 곳에 갇혀 있다 하는데 그 어떤 사내가 손 놓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달려왔습니다. 그러니.. 사람들 더 다치지 않게 우리 그냥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보던 기철이 웃기 시작한다. 계산 없이 진짜 재미있어서 옆의 탁자를 치며 웃는다.
#3. 강안전 정원 / 낮
충석을 비롯해 주석과 몇몇 우달치 대원들이 일제히 한 무릎을 꿇으며 전하..를 부른다.
그 앞에 선 공민이 차갑게 그들을 보고 있다.
충석 : 우달치군 한조 열두명만이라도 허락하여 주십시오. 가서 대장을 돕게 윤허하여 주십시오, 전하.
공민 : 불가하다.
충석 : 소인, 지난 칠년간 대장을 모셔왔습니다. 그 칠년동안 대장은 우달치 군으로
전하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목숨 따윈 언제라도 내놓곤 했습니다.
대장의 충정이라면 누구보다 전하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공민 : 물러가라.
충석 : 대장이 전하의 명을 어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일단 대장을 살려놔야 그 이유를 들으실 수 있을 것이고, 그럼 분명 그럴만한.....
공민 : 우달치 대장은 내 명을 어겨서는 안돼. 그런 일은 없다.
충석 : 전하 부디..
다른 우달치 군들도 저마다 전하..를 부른다.
공민 : (벌컥) 니놈들은 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놈들이냐. 왕인 내가, 내 명으로 의선을 내어주었어.
그 자리엔 니들도 있어서 내 명을 똑똑히 들었고. 그런데 이제 그 의선을 데리러 가겠다고?
충석 : 저희는 다만 대장을 도우러..
공민 : 그것은 내 명을 거역하는 것이고. 그건 곧 반역이며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다.
이제 니들의 대장을 살리는 길은 단 하나 뿐이야. 니들은 내 명을 알았으나 최영은 몰랐다.
하여 니들은 최영을 도우러 갈 수가 없어. 왜. 니들은 어제 이후 최영을 만난 적이 없고,
따라서 지금 그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 아직도 모르겠나.
충석과 다른 우달치들이 말이 막혀 공민을 본다.
#4. 기철 집안 별채
기철 : 사매.
화수인 : 왜요.
기철 : 이 사내와 오늘이 두 번째 겨뤄보는 것이지. 어떻드냐.
화수인 : (살랑살랑 최영에게 다가서며) 시험만 해보라기에 내 힘을 다하진 않았는데..
기철 : 그런데.
화수인 : 이 자도 가진 힘을 다하진 않더이다. 그래서 아직 모르겠는데. 이자의 힘. 어디까지인지.
최영의 팔을 슬쩍 어루만지며 그 뒤의 은수를 빤히 보며 미소.
은수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순간 최영이 방패를 휘릭 돌려 화수인과 은수의 사이를 막으며 터엉 땅을 찍는다.
하.. 웃는 화수인.
기철 : 사제. 이 자의 내공은 어느 정도이던가.
천음자 : (문가에 기대 선 채) 진기가 그리 깊지 않은 것인지. 끌어올려 오래 버티지는 못합디다.
기철 : 깊지가 않아서인가. 들은대로 내상이 있어서인가. (하며 최영을 보는) 어느 쪽이야?
최영 : 어느 쪽이라고 해야 제게 유리하겠습니까?
기철 : (웃는) 무공도 보통은 넘지만. 그보다 자네. 검만 쓰는 무사가 아니구나.
최영 : 가끔 활도 쓰고, 이도저도 없으면 주먹도 쓰지요.
기철 : ... 머리를 쓰는 무사라..
기철이 미소 지어 최영을 본다.
최영은 묵묵히 마주본다. 온 신경을 다 써서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기철 : 최영. 자네. 술, 좋아하나?
#5. 강안전 내 공민의 처소
탁자 앞에서 공무 중이던 공민이 고개를 들어 본다.
거기 최상궁이 다른 시녀 둘과 함께 노국을 모시고 들어오고 있다.
노국이 공민에게서 좀 떨어진 곳까지 와 서더니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시 꼿꼿이 서있다.
그런 노국을 빤히 보고 있다가.
공민 : 지난번에 그리 말하지 않으셨던가. 다시는 과인을 찾지도 묻지도 않으시겠다고.
노국 : 계속 조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의 말을 들으시겠습니까.
공민이 잠시 보다가 손을 뻗어 건너편의 의자를 가리킨다.
노국이 꼿꼿한 자세로 그 의자에 앉는다.
최상궁이 재빨리 그 뒤에 선다.
노국 : 우달치 대장이 의선을 찾아갔다 들었습니다.
공민이 최상궁을 본다. 최상궁이 이크해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한다.
노국 : 총관부에 연이 닿는 자들이 몇 있습니다. 불러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공민 : (보다 허 웃는)
노국 : 듣기도 싫으시고, 생각하기도 싫으시겠지만, 저는 원의 공주입니다. 저를 이용하십시오.
공민 : 이용해라.
노국 : 덕성부원군의 기세가 아무리 높다 하지만. 원나라 총관부의 청을 쉽게 거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민 : (자조적으로 웃으며 보는)
노국 : 의선과 우달치 대장을 찾아오라 이르겠습니다.
공민 : 혹시 잊으셨나해서 말하는데. 나는 이 나라 고려의 왕이요.
노국 : 저는 이 나라 고려의 왕비입니다.
공민이 분해서 웃더니 일어선다. 오락가락. 분을 겨우 누르고.
공민 : 덕성부원군 기철이 제 아무리 흉폭하다 하나. 내 신하고 내 백성입니다.
그런데 나더러 원나라에 청을 하라는 겁니까?
뭐라 할까요. 왕인 내가 모자라 내 신하를 다스리지 못해 그러니
나 대신 말 좀 듣게 해달라 그럴까요.
노국 : (아차.. 하는 마음에 공민을 보는)
공민 : 고려의 왕비라면 그런 생각. 그런 말은 못합니다.
노국 : (고개를 숙이는) 그렇군요. ... 그러네요.
노국은 고개를 숙인 채 공민은 그런 노국을 본 채 잠시.
공민 : ...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노국 : (천천히 고개를 들어 공민을 보는)
공민 : 가진 것이라곤 없는 초라한 왕이. 그나마 옆을 주었던 사람들이 죽어간다는데
왕이라는 체면만 세우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그렇게 말하는 공민을 보는 노국의 눈이 눈물이 맺히려 한다.
그런 노국에 당황하지만 그래도 말이 계속 나와버린다.
공민 : 하실 말씀은 다 하셨습니까?
노국이 일어서더니 고개를 숙여 보이고 돌아서 간다. 시녀들이 재빨리 쫓는다.
최상궁이 뒤따라 나가려다가 돌아보면.
공민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어 탁자를 치려다 참는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하는 자괴감.
최상궁이 문쪽을 돌아본다. 노국이 나가고 있다.
최상궁이 공민에게 슬그머니 다가서더니.
최상궁 : 왕비마마께서 여기 오시기까지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모든 자존심. 다 내려놓아야 하셨으니까요.
공민 : ... (끄덕이는)
최상궁 : 그럼.. (고개를 숙여보이고 돌아서려는데)
공민 : 내어줄 수 밖에 없었네.
최상궁 : 예.
공민 : 의선은 참으로 하늘에서 오신 분이 아닌가.
그걸 인정하게 되면 아무리 그 자라 해도 의선을 함부로 해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 믿었어.
최상궁 : 예.
공민 : 그래도 나 그냥 내어주진 않았어.
최상궁 : 그러셨습니까.
공민 : 혹시 그냥 내어주면 그 자가 의선을 제대로 알아볼 여유도 갖지 않고 해칠까봐. 내가 수를 써놨어.
최상궁 : 수.. 입니까.
공민 : 일곱날은 벌어놨어. 일곱날 동안 의선을 마음을 가져보라 했어.
의선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주겠다고. 그동안 진짜 의선인지도 알아 보라고.
그러면 일단 일곱날은 의선을 살려둘 거 아닌가.
그럼 그동안 어찌해서든.. (멈추고 최상궁을 보더니) 내가.. 너무 애처로운가?
최상궁 : 그런 말씀을.. (하며 고개를 깊이 숙여보인다)
#6. 기철 집 정원 누각
간단한 술상이 차려져 있는 탁자.
한쪽에 앉은 기철이 잔에 술을 따른다. 그 옆에서는 양사가 영 못마땅해서 안절부절 서 있다.
기철이 술잔을 건너편에 앉은 은수에게 밀어준다.
탁자의 다른 한쪽에 앉아있는 은수. 그 양 옆에 최영과 대만이 지켜 서 있다.
은수가 쭈뼛거리며 잔을 잡으려는데 그 잔 위에 손을 얹어 덮는 최영.
최영 : 제가 먼저.
잔을 들더니 단숨에 마셔버린다.
이쪽 난간에 걸터앉은 화수인이 흥미롭게 보고 있다. 계단 쪽에는 천음자가 기대 서있고.
기철 : 어떤가. 독은 안 들어있는 거 같나?
은수 : (놀랐다. 최영에게) 뭐야. 그럼 독이 들었나 먼저 마셔본 거에요?
최영 : (잔을 내려놓으며) 예.
은수 : 미쳤어요? 그러다 독이 있으면..
최영 : (은수를 힐끗 보며) 의선이잖습니까. 치료해 주셔야지요.
은수 : (어이없다. 기철을 보며) 장난이죠? 이거 다.
양사 : 장난은 니 년이 먼저 친 거 아닌가.
은수 : (뭐?.. 어이없어 보는)
양사 : 하늘에서 내려와? 화타의 제자? 허. 여긴 니년의 헛소리에 장단 맞춰 줄 사람 아무도 없느니라.
허니 바른대로 고하지 못할까. 대체 니년 정체가 뭐냐.
은수 : 아주 지랄들을 하세요.
양사 : ..뭐?
은수 : 누군 뭐 욕할 줄 몰라서 입 닫고 있는 줄 아나.
(기철에게) 이보세요. 환자 있대매요. 누군데요. 델구 오시라고.
기철은 팔짱을 낀 채 미소로 구경만 한다.
은수 : (옆의 최영을 툭 치며) 저 양반이 그쪽 임금님하구 내기를 했대요.
내가 이 집 환자를 제대로 치료해주나 못하나.
최영 : 그래서요.
은수 : 뭐가 그래서에요. 그래놓고 밤새 문 잠가놓고. 아침밥도 안 주고.
화수인 : 그 말은 못 들었나보네.
살랑살랑 다가와 최영이 내려놓은 잔을 들어 술을 따르며.
화수인 : 치료에 실패하면 어찌 되는지.
은수 : 어찌 되긴 뭐가..
화수인 : 그대는 혹세무민한 요물로 처형을 당하는 거지. 이렇게 목이 댕강.
그래서 그 이쁜 머리는 삼문 밖에 걸어 온 백성이 보게 해주고.
은수를 향해 건배를 하고 마신다.
은수가 얼어서 보다가 허.
은수 : (벌컥) 아니 사람들이 뭐 이렇게 그지같이들 놀아. 이건 뭐 재미도 없고. 웃기지도 않고..
최영 : (은수의 어깨를 짚으며) 가만 좀.
은수 : 내가 지금 가만있게 생겼어요. 이 인간들 말하는 거 좀 보라구.
손을 뿌리치며 일어서려는데. 최영이 다시 어깨를 눌러 앉히며 기철에게.
최영 :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기철 : 원래는 가까이서 찾으려 했는데.. 자네가 온 걸 보고 마음을 바꿨네. 딱 맞는 환자가 생각났거든.
최영 : 누굽니까.
기철 : 지난 삼년간. 자네가 주군으로 모셨던 분.
최영 : (멈칫)
기철 : 강화도에 유배 중이신 경창군께서 병이 깊으시다네. 이 분이 의선이 맞다면 봐주실 수 있겠지.
그래서 최영. 자네가 모시고 다녀오게. 정인이라면서 혼자 보낼 수야 없지 않은가.
최영 불길한 마음에 기철을 본다. 은수가 또 한마디 하려는데. 어깨를 눌러 조용히 시키고.
최영 : 덕성부원군 나리.
기철 : 어찌 부르는가.
최영 : 지금 뭐하자는 수작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기철 : 일전쌍조. 한 대의 화살로 두 마리의 독수리를 잡을까 하는데.
잘하면 일전삼조. 세 마리를 잡을 수도 있을 거 같아.
기철 즐거운 듯 웃는다.
#7. 곤성전(노국공주 침전)
테이블 옆. 장빈이 노국의 목에 새 붕대를 감아준다. 약원이 옆에서 돕고 있고.
노국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앉아 있다. 여전히 싸느란 얼굴로.
노국 : 내가 가봐야겠다.
그들 옆에서 지키는 최상궁. 난감해서.
최상궁 : 왕비마마께서.. 궁을 나가시겠다구요?
노국 : 덕성부원군 기철. 그 자의 집은 얼마나 먼가.
최상궁 : 마마. 그것은..
노국 : 내가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내 말이 어려우냐?
최상궁 : .. 일단 전하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 후에 마마께서 움직일 행로를 미리 점검하여
위험할 요소는 미리 제거하고. 수행할 자들을 가려서..
노국 : 전하 모르게. 담을 넘어서라도 간다.
최상궁 : 마마..
노국 : 마차 따위 필요 없으니 준비할 것도 없다.
노국 홱 일어나 한 쪽으로 간다.
최상궁이 장빈에게 손짓과 입모양으로 어서 말려달라고.
장빈이 난처해서. 어쩌라고? 하는데 최상궁이 장빈을 노국 쪽으로 밀어버린다.
두어걸음 밀려나가 비틀해서 서는 장빈. 노국이 돌아본다.
장빈 : (할 수 없이) 좋은 생각이 아니십니다.
노국 : 너에게 내 생각을 평하라 한 적 없다.
장빈 : 가서 의선과 대장. 둘을 내놓으라 하실 겁니까?
노국 : 나는 이 나라의 왕비며. 원의 공주다. 그런 내가 그만한 요구도 할 수 없는가?
장빈 : 그런 분이 가서 그들을 달라 하시면, 더 주기 싫어질 것입니다.
그만큼 그들이 중요하다는 걸 들키게 되시니까요.
최상궁 : (얼른 나서며) 최영이 그 놈, 어려서부터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놈이었습니다.
그런 놈이 의선을 모시러 갔대지 않습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시면..
노국 : 최영. 그 자를 어려서부터 아는가?
최상궁 : 그 놈의 아비가 제 오라비였습니다. 그러니 그놈과는 고모 조카 사이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그놈을 아는데..
노국 : (최상궁을 보며) 고모라는 자가. (장빈을 보며) 동료 의원이라는 자가.
기껏 내놓은 대책이 앉아 기다리자?
장빈 : 때로는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 될 수 있습니다.
노국 : 기다리라. 두분은 계에속 기다리라.
최상궁 : 마마.
노국 : 난 그런 건 할 줄 모른다.
홱 돌아서며 그 앞 협탁에 놓여져 있던 검을 집어 든다. (노국의 검은 가늘고 긴 여성용으로?)
그런 노국의 모습을 이쪽에서 보고 있는 무각시 중의 하나. 장희. 기철이 심어놓은 아이다.
#8. 기철의 집 대문 앞 길
기철의 사병이 말 두필을 끌고 온다. 한 필은 최영이 타고 왔던 말. 하나는 새 말.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최영과 은수. 그 옆에는 대만.
은수가 멍하게 다가오는 말을 보고 있다가.
은수 : 마차 없어요?
최영 : 말을 타고 갈 겁니다.
은수 : 나 승마 같은 건 배워본 적도 없고. 배울 생각도 없으니까. 마차로 하죠.
저번에 그 공주하고 같이 탔던 거 있잖아요.
최영 : 말을 타고 갑니다. (사병에게서 말고삐를 받으며 새 말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살피며)
이쪽 말을 타시면 되겠습니다.
은수 : 그럼 같이 타구 갈까요?
최영 : (어이없어 보는)
은수 : 전에도 같이 탔었잖아요. 내가 앞에. 그쪽이 뒤에.
최영 : 강화도까지는 먼 길입니다. 말 생각도 좀 하시죠. 사람을 둘씩 태우고 말이 뭔 죄입니까?
은수의 허리를 잡아 올리려는데. 은수가 후다닥 뒤로 빼며.
은수 : 잠깐.. 마음의 준비를 좀..
최영, 짜증나서 보다가 그냥 자기 말고삐를 끌어 걸어간다.
은수가 얼른 따라 걸으며.
은수 : 그냥 가면 어뜩해요. 같이 가요. 이봐요. 삐쳤어요?
그 뒤를 대만이 눈치를 보며 은수의 말을 끌며 따르고.
#9. 다른 길
말을 끌며 걷고 있는 일행.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은수가 쿡쿡 웃는다.
최영이 옆눈으로 보면.
은수 : 언제부터에요?
최영 : ?
은수 : 그니까 그 연모라는 것이. 연애할 때 연. 사모할 때 모. 아주 좋아한다는 말 맞죠? 그럼.. 사랑?
최영 : (대꾸하기 싫다)
은수 : 언제부터 날.. 연모한 건데요? 난 전혀 몰랐네.
최영 : (걷기만..)
은수 : 내가 좀 그런 쪽으로 둔하긴 하지만.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았겠냐구.
맨날 내 치료 안 받겠다고 툴툴대고. 눈도 안 마주치고 그랬잖아요. 지금도 봐. 내 얼굴, 못 보잖아.
최영 : (참고 있다)
은수 : 이야 그렇다구 그 무시무시한 집까지 날 구하겠다고 무작정 달려오나 그래.
그 집 가만 보니까 무슨 마피아 두목 집 같드만. (또 킥킥 웃는)
최영 : (걷기만)
은수 : 아 이게 웃을 일이 아닌데. (최영의 옆으로 붙는다)
최영 : (걸음을 좀 빨리 한다)
은수 : (그 뒤로 붙으며) 근데 나이가 어뜩게 되요? 대충 보기는 나보다 좀 아래인 거 같은데..
하며 최영의 어깨에 손을 얹는데. 거의 반사적으로 최영이 그 손을 잡아 돌려 꺾는다.
은수가 비명을 지르자 놓아주며.
최영 : 기억하십시오. 절대 칼을 쓰는 자의 뒤에서 다가서지 말 것. 특히 예고없이 손대지 말 것.
그 손모가지 바로 잘려나가는 수가 있으니까.
은수 : (아픈 손목을 만지며) 그 정도로 겁 안 먹어요.
최영 : 칼 쓰는 자들이라 함은..
은수 : 내가 외과 쪽에서 인턴 레지던트 몇 년을 굴렀는데. 그때도 사방에 죄다 칼 쓰는 사람이었구만.
최영 : (그 주제는 단념하고) 그리고 혹시 오해하실까봐 알려드리는 건데
아까 임자를 연모한다고 했던 말. 그건 어디까지나..
은수 : (손사레를 치며) 아 됐어요. 알아요. 이해한다고.
최영 : 뭘.. 이해합니까?
은수 : 안 그래도 그런 거 고백하구 나서 민망할텐데 내가 웃은 거 미안해요.
내가 좀 푼수라서.. 미안해요오.
최영 : 그렇게 말한 데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은수 : 알았다구요. 그냥 내가 못 들은 걸루 할게요.
(또 킥 웃음이 올라오는 거 겨우 참으며) 근데 이미 들은 걸 어뜩게..
(하며 최영의 어깨를 퍽 치더니 웃음 나오는 자기 입을 막으며 먼저 걸어간다)
최영, 울컥해서 쫓아가려다 멈춘다. 팰 수도 없고.
말고삐를 던져버리고 돌아서 걷다가 앞에 걸리는 대만의 멱살을 잡아 옆의 나무에 밀어붙인다.
대만 : (놀라서) 대장.
최영 : 왜 하필. 하늘에 그 많은 의원 중에. 저 여인을 데려 왔을까.
대만 : (겁에 질려) 저는..
최영 : 응? 어쩌다가 왜.
대만 : 모르겠습니다.
최영 : (간신이 울화를 누르고 대만의 멱살을 놓아주고 옷깃을 바로해주며)
치료를 해야 할지 모르니 의선의 도구가 필요할 거야.
대만 : 가져오겠습니다.
최영 : 가서 누굴 만나든 아무 소리 말고.
대만 : 예.
최영 : 강화에는 내일 낮에나 도착할 거 같다.
대만 : 그 전에 가져오겠습니다.
최영 : 그래.
대만이 가려하자.
최영 : 밤이 되기 전에 와라.
대만 : 예?
최영 : 파평현을 지나 갈 것이니 그 쪽으로 와.
대만 : 아.. 그러니까 두분만.. 단 둘이 밤을 지내기 전에..
최영 : (휘릭 노려보는)
대만 : 다녀오겠습니다.
얼른 달려간다. 최영, 한숨 쉬고 돌아본다.
저만치서 은수가 말을 조심조심 쓰다듬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이 고개를 들자 엄마야. 뒤로 펄쩍 도망친다.
최영을 돌아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까지 흔든다. 미치겠다.
#10. 기철 집 중앙 마당
양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기철에게 보고를 하러 가는 중.
#11. 기철의 치료방
기철이 훈증기의 김 안에 두 손을 넣고 치료하는 중이다.
그러다 멈칫. 들리는 은수의 목소리.
은수소리 : 아주 지랄들을 하세요.
#12. 플래시백 / 6부 #7. 기철 집 정원 누각
은수 : (벌컥) 아니 사람들이 뭐 이렇게 그지같이들 놀아. 이건 뭐 재미도 없고. 웃기지도 않고..
최영 : (은수의 어깨를 짚으며) 가만 좀.
은수 : 내가 지금 가만있게 생겼어요. 이 인간들 말하는 거 좀 보라구.
#13. 기철의 치료방
기철이 저도 모르게 허.. 웃었다가 표정관리를 한다.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양사.
양사 : 왕비께서 이리로 오신다 합니다.
기철 : (보는)
양사 : 심어둔 아이가 방금 연락을 해왔는데..
기철 : 의선 문제로?
양사 : 의선에 우달치 대장의 문제까지 따질 모양입니다.
기철 : 주상이 허락했을 리가 없는데.
양사 : 그게.. 몰래 오신답니다.
기철 : (웃는) 맹랑하시구만.
양사 : 어찌할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원의 공주이십니다.
함부로 문전박대할 수도 없고. 청을 해오면 거절하기도 껄끄럽고..
기철 : 그러니 내 집 문 앞에 당도하기 전에 처리해야지.
양사 : 처리...합니까?
기철 : 어차피 살아서 고려 땅을 밟을 분이 아니었잖은가.
양사 : 그랬었지요. 예.
기철 : 아.. 하나 더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장난을 치는 듯 즐거운 얼굴이다.
#14. 강안전 내 공민왕 집무실
두루마리 등을 쌓아놓고 읽던 공민. 읽던 두루마리 하나가 바닥에 떨어진다.
공민 : 어째요?
일신 : 왕비마마께서 궁을 나가셨답니다. 덕성부원군 집에 가시겠다구요.
공민이 벌떡 일어서 입구 쪽으로 걸어간다. 그 뒤를 부지런히 쫓으며.
일신 : 최상궁이며 장어의며 옆에 있던 자들이 극구 말렸으나 도저히 그 고집을 꺽을 수가 없었답니다.
혼자라도 가시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공민 : (걸음을 멈췄다.)
일신 : (부딪힐 뻔해서 서는)
공민 : (돌아보는) 그 자리에 최상궁과 장어의가 있었다.
일신 : 예.
공민 : 극구 말렸다.
일신 : 예에 그랬는데 그게 소용이 없어서 지금..
공민 : 어찌 그리 자세히 압니까?
일신 : 예?
공민 : 왕비가 있는 곤성전에 사람을 넣어놓은 겁니까.
일신 : 그건.. 그야.. 덕성부원군. 기철이 그 놈도 당연 지 사람을 심어놓았을 것이고
그러니 저도 어쩔 수 없이..
공민 : 여기 강안전, 내 옆에도 있습니까? 경의 사람?
일신 : (아이고 해서) 전하아.. (엎드리는데)
공민, 그런 일신을 버리고 빠르게 입구 쪽으로 간다.
입구 쪽에 지키며 서있던 충석과 눈이 마주치며.
공민 : 들었는가.
충석 : 들었습니다. (재빨리 공민의 앞을 막으며) 전하께서는 여기 머물러 계십시오. 아이들을 보내겠습니다.
공민 : 그리하지. 그리할테니 (충석의 팔을 잡아) 자네가 직접 가.
충석 : 예 전하.
공민 : (그러다가 벌컥) 가서 그 사람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 내 자네에게 모든 권한을 줄 것이야.
두손 두발을 묶어 질질 끌고 와도 좋으니까. 데려와. 내 눈 앞에.
#15. 개경 내 도시 일각
노국의 일행이 오고 있다. 마차도 없이 걸어서 이동하는 잠행이다.
장빈 외에는 바람막이를 두르고 삿갓을 써서 행색을 숨기고 있다.
중앙에 노국. 양 옆에 최상궁과 장빈. 그리고 일곱 명의 무각시들이 그들을 호위하고 있다.
그 중에 장희도 있다.
도시 내부라서 오가는 행인들.
노국은 그 행인들이며 주변의 풍광들을 구경하느라 기웃거리고
그때마다 머리를 두른 삿갓(혹은 망토)이 벗겨지려 하면 최상궁이 필사적으로 다시 씌워준다.
#16. 개경 내 일각
노국의 일행이 인적이 드문 길로 접어들고 있다.
장빈이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최상궁도 뭔가 기척을 느꼈다.
최상 : 있지요?
장빈 : 있습니다.
최상궁이 손을 들어 일행을 멈추게 한다.
멈춰 서게 된 노국이 못마땅해서.
노국 : 뭐가 있다는 거냐.
최상궁 : 저것들입니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왈짜패들. 슬렁슬렁 다가선다. (기철의 사병들이 왈짜 복장을 한 것)
장빈이 앞으로 나서 노국을 가리며.
장빈 : 뭐하는 자들인가.
왈짜 : 아실 거 없고.
하며 그들이 일제히 꺼내드는 검.
장빈 : (부채를 꺼내들며) 검을 보아하니 그저 왈짜패들이 아닙니다.
최상궁 : 그래 보이는군요.
하며 뒤를 본다. 사방에서 다른 왈짜복장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최상궁 : 칠방진.
무각시들이 재빠르게 노국을 중앙에 두고 일곱방향으로 둘러서며 허리띠들을 촤르르 풀어내어 잡는다.
처음에는 밀착한 방식으로. 그 가운데 노국과 양 옆의 장빈. 최상궁.
장빈 : 부원군댁에서 보낸 자들인가.
왈짜 : 이 놈의 주둥이 먼저 닫아야겠네.
뒤의 왈짜들도 일제히 무기들을 꺼내며 달려들려는데.
최상궁 : 삼보원방 (외치며 검을 빼든다)
일곱 무각시들이 일제히 각자의 방향으로 삼보를 이동하여 원을 넓히며 허리띠를 옆으로 날려 잇고.
오른손으로는 등의 검을 빼든다.
(무각시들이 싸우는 방식. 공격보다는 방어를 위주로 하는 진의 형식이다.
왼손으로는 허리띠를 이어 잡아 링과 같은 방어선을 만들고, 오른손으로는 검을 잡아 싸운다.
허리띠로 이어 막은 선은 공격해 들어오는 자들을 튕겨 내거나 감아서 막는 역할을 한다.
때로 방어선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자는 원 안의 최상궁이 최종 방어를 하며 막는다)
대충 공격해 들어오던 자들이 검을 다잡으며 자세를 다시 한다.
왈짜 두목이 힐끗 한쪽을 보고 다음 지시를 바란다.
그가 바라보는 곳. 지붕 위? 쯤에 모습을 숨기고 있는 천음자.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피리.
그가 슬쩍 뒤를 본다. 거기 활을 꺼내 들고 있는 궁수들이 대여섯 대기하고 있다.
#17. 개경 본궐 후문
충석과 우달치군 십여 명이 말을 달려 나온다.
문에서 안절부절 기다리던 약원이 얼른 한쪽 방향을 가리켜 보인다.
그 쪽을 향해 달려가는 우달치군.
#18. 약초원 안채
은수의 수술 도구를 천에 둘둘 말아 챙겨드는 대만. 문득 멈춘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 여러 사람의 거친 발자국 소리. 우당탕 병기 부딪히는 소리.
대만 얼른 문으로 가서 슬쩍 열어 밖의 동정을 살핀다.
#19. 약초원 안채 마당
더기가 안채를 등지고 길다란 곡괭이 모양의 농기구를 들어 막고 있고.
그 앞에는 양사와 기철의 사병 대여섯이 들이닥치고 있다.
마악 한걸음 나서려는 사병 하나를 더기가 곡괭이를 휘둘러 막고 물러서게 한다.
양사 : 오호. 너구나. 약초원에 말을 못하는 약초쟁이가 산다 들었는데.
고려 천지에 네가 모르는 약초가 없다면서. 그러냐?
더기 대답 대신 곡괭이를 휘둘러 위협을 한다.
양사 : 쯔쯔. 그러다 다치겠다. 널 다치러 온 것이 아니라, 가지고 갈 게 있어서 온게야.
의선의 도구가 어디 있는지 알지?
더기가 저도 모르게 은수의 방 쪽을 돌아본다.
양사 : 오호라. 그 방에 있느냐?
#20. 약초원 안채
대만이 손에 들고 있던 은수의 도구를 품 안에 넣는다. 창문 쪽으로 달려가 뒤로 도망칠까 하는데.
다시 들리는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다시 문을 돌아본다. 더기가 걱정된다.
#21. 약초원 안채 마당
사병이 휘두른 검에 더기의 곡괭이가 잘려 날아가고
뒤이어 연속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검에 더기가 찔리기 직전, 날아온 목침이 그 검을 튕겨낸다.
대만이 날 듯 달려와 더기를 밀치고 그 앞에 선다.
어느 틈에 뽑아든 손칼. 앞의 사병 둘을 공격하여 물러서게 한다.
양사가 한발 나선다.
양사 : 너는 아까 왔던 아이구나. 그래. 의선의 도구를 가지러 온게냐.
대만은 대답 대신 주위를 살핀다. 더기와 도망칠 궁리를 하는 중이다.
그러나 점점 더 겁도 없이 다가서는 양사. 다른 사병들은 오히려 뒤로 물러선다.
더기가 불안해서 양사의 손을 본다. 서로 엇갈려 소매자락에 넣고 있는 양사의 손.
양사 : 의선이 가져오라 시키드냐. 잘됐다. 이리 내주렴.
하며 한 손을 소매에서 빼서 내민다.
더기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대만의 등덜미를 거칠게 잡아당긴다.
대만이 영문을 몰라 뿌리치며 버티는데.
순간 양사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녹색의 가루가 대만의 얼굴에 뿌려진다. (양사는 독을 쓴다)
대만이 멈칫하더니 손으로 자기 목을 감싼다. 호흡이 막히고 있다.
한걸음 더 다가서는 양사.
대만이 손칼을 휘두르려 하지만 이미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제 힘에 휘둘려 무릎을 꿇는다.
더기가 상한 성대로 기이한 소리를 내며 대만을 잡아당기려 애쓰지만,
대만의 앞에 주저앉은 양사가 어느 틈에 대만의 품에서 은수의 도구를 꺼내들었다.
대만이 우욱 토할 듯 하자 얼른 손을 거둔다. 이런이런.. 하여 구경한다.
괴로워하는 대만의 입가에 거품이 삐져나온다.
양사가 만족하여 일어선다.
#22. 변두리 간이식당 앞
우뚝 선 최영이 멀리를 보고 있다. 어쩐지 뭔가가 불안하다.
그런 마음으로 돌아보는 곳. 간이식당 앞에 은수가 퍼질러 앉아 커다란 만두를 맛나게 먹고 있다.
먹으면서 한편으로는 접시에 쌓여진 만두를 종이에 열심히 싸고 있다.
(원나라 풍속이 만연하던 시대의 간이음식점. 만두를 쪄 파는 큰 솥을 앞에 둔)
최영이 마음을 먹고 은수에게 다가선다.
최영 : 여기서 좀 기다리십시오.
은수 : (먹으며) 왜요.
최영 : 아무래도 불안해서요.
은수 : 뭐가요?
최영 : 잠시 다녀와야..
은수 : 어딜요?
최영 : (또 시작이다 이놈의 질문.. 해서 보다가) 두 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왜냐. 뭐냐. 물어도 대답 듣지 못할 거니까, 제가 기다려라 하면 그냥 기다리시면 됩니다.
(옆에 매놓았던 자기의 말고삐를 풀며)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꼼짝 말고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그 만두 많이 드시면서.
말에 올라타 방향을 돌리고 말의 배를 걷어차려다가 다급히 워어워 말을 세운다.
그 말 앞에 떡 버티고 선 은수.
은수 : 하나만 가르쳐 주고 가요.
최영 : 이 여인네가 진짜.. 죽을라고 환장했습니까? 그렇게 말 앞을 가로막으면..
은수 : 어느 쪽으로 가야 되요. 그 하늘문이라는 거 있는데.
최영 : .. 뭐요?
은수 : 미안하지만 나 당신들 그 내기라는 거 관심없거든요.
환자를 못 고치면 내 목을 자를 거래매. 그런 걸 내가 왜 해야되는데.
그러니까. 우리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나 좀 그냥 보내줘요.
같이 가자구 안해요. 나 혼자 갈게요. 길만 가르쳐줘요.
최영, 할 수 없이 말에서 내린다.
최영 : 이보십시오. 의선.
은수 : 그니까 사이코 댁은 가고 싶은 데로 가라구. 그새 나 도망간 걸로 하자구요.
그냥.. 여비만 좀 빌려줘요. 뭐 갚을 순 없겠지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그쪽.. 나 연모한대매.
최영, 한숨이 나와서 은수를 본다. 이 여자.. 어쩌지.
#23. 개경 내 일각
왈짜의 복장을 한 기철의 사병들이 공격해 들어오고 있다.
거친 왈짜들의 공격을 무각시들의 방어선이 나름 막아내고 있는 양상.
허리띠 선을 넘어오려던 공격들이 두어 번 무산된다.
그때 장희와 밖의 왈짜 두목의 시선이 마주치며 오간다.
순간. 장희가 잡은 허리띠가 느슨해지고. 그 틈에 띠를 넘어 공격해오는 왈짜 두목.
곧바로 노국을 향해 공격해 들어간다.
노국 옆을 지키고 있던 장빈이 한쪽 소매로 노국을 감싸 옆으로 돌게 하며 부채로 막아낸다.
노국이 피한 자리로 대신 들어서는 최상궁이 왈짜 두목을 막아 상대한다.
최상궁이 왈짜 두목의 검을 가로막는 순간,
밖의 진을 형성하던 무각시 중에 두 명이 일제히 원 안으로 칼을 찔러 왈짜 두목을 공격한다.
등 뒤를 검에 찔리는 왈짜 두목.
최상궁이 최후의 공격을 해서 두목의 명을 끊는다. 튀는 피가 노국을 감싼 장빈의 하얀 소매에 뿌려진다.
그 때 또 다른 두 명이 선을 넘어 공격해온다. 그러면서 무각시 하나가 부상을 당한다.
왈짜들이 노리는 곳은 역시 노국.
장빈이 노국의 무릎 뒤를 쳐서 뒤로 넘어지게 하며 그 칼을 피하게 하고.
한편으로 노국을 받아 안는다.
역시 최상궁과 다른 무각시들이 막아내고 원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처리한다.
이쪽에서 살펴보던 천음자가 귀를 기울여 소리를 듣더니 몸을 날려 담 위로 올라선다.
높은 시선에서 보이는 곳. 저 만치 길 굽이 너머로 말을 달려오고 있는 우달치 부대원들.
천음자가 피리를 입에 대더니 분다. 청아한 소리가 나자 공격하던 왈짜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선다.
다시 빈틈없이 제자리를 찾아 진을 형성하는 무각시들.
그 사이와 옆에 부상을 당해 쓰러진 왈짜들 셋.
무각시 중에 두엇도 부상을 당한 팔에 피를 흘리고 있다.
천음자의 시선에 점점 다가오는 우달치 부대원들.
천음자가 다시 피리를 분다. 왈짜패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우달치 패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재빨리 이쪽 상황을 살핀 충석이 말에서 달려 내리며 외친다.
충석 : 죽이지 말고 생포해. 언놈이 보낸 것들인지 알아내.
하며 자기는 노국에게 달려온다.
다른 우달치들은 반은 말에서 내려 노국 쪽으로 달려오고,
반은 말을 탄 채 양쪽으로 갈라져 도망치는 자들을 따라 가는데.
앞서 달리던 주석이 말을 당겨 세우며.
주석 : 화살이다.
하늘로 날아오는 화살들. 마마를 보호하라.. 등등 외치는 소리.
최상궁과 무각시들이 일제히 밀집하며 노국을 보호하고.
그들을 밀어 한쪽으로 비키게 하며 보호하는 충석들.
그러나 날아온 화살들은 바닥에 쓰러진 왈짜들 패거리들에게 꽂힌다.
부상을 입고 신음하던 이들이 완전히 목숨이 끊어진다.
또 다시 날아오는 화살들.
주석 등에게 쫓겨 도망치던 왈짜들 중에 미처 멀리 도망가지 못한 자들에게 가서 꼽힌다.
우루루 쓰러지는 왈짜들.
충석이 화살이 날아오는 쪽으로 달린다.
급히 달려 담 위로 올라보지만 이미 천음자 등이 있던 자리는 비어있다.
궁수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노국이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는 최상궁을 비키게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미 노국의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우달치 부대. 에잇. 맘에 안 든다.
#24. 궁 내 회랑
빠르게 걸어가는 공민왕. 급히 그 뒤를 종종 쫓아가는 안도치.
주위를 지키며 따르는 충석네.
그러다 문득 공민왕이 멈춰서는 바람에 부딪힐 뻔해서 겨우 서는 안도치.
공민이 분에 못 이겨 우왕좌왕하다가 돌아서 다시 걸어온다.
안도치가 어쩔 줄 모르고 그 뒤를 다시 쫓는다. 우달치 부대원들도.
#25. 곤성전(노국공주 침전)
빳빳하게 앉아있는 노국. 그 옆에서 최상궁이 잔소리 중.
최상궁 : 먼저 가서 전하를 뵈십시오. 뵙고 사죄를 드리고..
노국 : 싫다.
최상궁 : .. 뭐라 변명은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노국 : 정녕 궁금하면 와서 물어보겠지. 그럼 대답하겠다.
최상궁 : 마마. 전하께서 마마의 안전 때문에 얼마나 심려가 크셨는지 아십니까.
마마께서 무사히 돌아오셨다는 보고를 들으실 때까지 전하께서는 노심초사..
노국 : 입에 발린 헛말.
최상궁 : 마마
노국 : 맘에도 없는 거짓말. 대체 느이들은 그런 빈소리 빼면 말을 할 줄 모르나?
#26. 강안전(공민왕 침전)
성이 나있는 공민.
공민 : 미안하다. 고맙다. 빈말 한마디도 없었단 말인가.
여기 궁까지 모시고 오면서 뭐라 변명 한마디도 못 들었어?
충석 : 마마께선 딱 두마디 하셨습니다. 궁으로 돌아가셔야 한다.. 말씀 올렸더니 어째서.. 라고 하셨고,
전하께서 기다리신다.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 라고만.
공민 : 그럴 리가 없다?
충석 : 예.
공민 : 허.
충석 : 왕비마마를 습격한 자들은 거리 왈짜패들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나
겨뤄본 무각시들의 말에 의하면 정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합니다.
공민 : 역시.. 부원군이 보낸 것들인가.
충석 : 목숨이 붙어있는 자기편들을 살인멸구를 해버렸습니다.
그리 악독한 소행을 서슴지 않을 자는 달리 생각나지 않습니다.
공민 : (잠시 말이 없다가) 의선과 최영 그 자는?
충석 : 따라갔던 아이가 의선의 도구를 챙기러 돌아왔었는데.
공민 : 그런데.
#27. 장빈 치료실
장빈이 처치대 위에 누운 대만의 온 몸에 침을 놓고 있다.
충석소리 : 도구는 빼앗기고. 아이는 독에 당했습니다. 워낙 독이 강해서 장어의가 손을 쓰고 있으나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옆에서 약원과 더기도 돕고 있다. 훈증이 되는 기구를 대만의 주변에 설치하고 있다.
#28. 강안전(공민왕 침전)
공민 : 그래서.. 모른다는 건가? 의선과 최영. 그들이 지금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충석 : 별일 없을 겁니다.
공민 : 어째서. 별일 없을지 어찌 알어.
충석 : 대장이니까요. 제가 아는 대장은 이기지 못하는 싸움은 잘 안합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굽힐 줄도 아는 사내구요. 그러니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 (좀 자신 없어지며) 아마..
#29. 들판 길 일각
무릎 높이의 바위. 최영이 그 바위를 가리킨다.
최영 : 올라 가세요
은수 : 가만 있어 봐요.
은수가 그 바위를 노려보며 버티고 서 있다. 그 바위 옆에 대기하고 있는 말.
최영 : 나를 따라 강화도까지 가든. 나를 피해 하늘문까지 도망가든 말은 탈 줄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
은수 : 글쎄 내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구 했잖아요. 좀 기다려보라니까.
아니 근데 말이 원래 다 저렇게 키가 커요?
참을성이 바닥나서 보고 있던 최영이 은수의 허리를 덥석 집어 바위 위에 올려놓는다.
비명을 지르며 간신이 바위 위에 서는 은수.
그 은수의 왼손을 덥석 잡아 고삐를 감아주고 갈기를 잡게 하며.
최영 : 여기 잡고 (은수의 오른 손을 덥석 잡아 안장 끝에 얹으며) 오른 손은 여기 잡고.
(등자를 가리키며) 여기에 발 넣고.
은수 : 잠깐만.. 말이 움직이잖아요.
최영 할 수 없이 은수의 발을 잡아 등자에 끼워주며.
최영 : 이제 밟고 타보십시오.
은수 : 말이 움직인대니깐.
최영 : 내가 잡고 있으니까 그냥 타라구요. 쫌.
우여곡절 끝에 은수가 말에 올라탄다. 그러나 바로 거의 엎드리다시피 매달려 있다.
최영 : 허리 펴시고.
은수 : 안돼요.
최영 : 앉으라구요. 엎드리지 말고.
은수 : 싫어요.
최영 : 계속 그러구 갈 겁니까?
은수 : 얘. 말아. 가만있어봐 말아. 말.. 됐어요. 인제 일어나요. 일어난다고.
하며 조심스레 허리를 펴다가 말이 좀 움직이자 바로 비명을 지르며 다시 엎드린다.
최영, 미치겠다.
#30. 들판 다른 길
최영과 은수가 나란히 말을 타고 걸어오고 있다. 평보 정도의 속도.
최영이 옆에서 말을 몰며 계속 은수를 살피며.
최영 : 고삐를 너무 세게 쥐지 말라니까요. 말한테 고삐를 양보하시라구요.
은수 : 어쩌라고. 고삐를 놔요?
최영 : 누가 놓으랍니까. 힘을 빼라구.
은수 : 그럼 난 뭘 붙잡구요.
최영 : 이봐요. 나 봐요.
은수 : 왜 봐요.
최영 : 날 보라고.
은수 : (벌벌 떨며 최영을 돌아본다) 봤어요. 지금 보구 있잖아.
최영 : 말을 믿으라구 했지요?
은수 : 믿는다니까. 근데 얘가 날 안 믿는다구.
최영 : 그리고 날 믿어요. 떨어지게 되면 받아줄 거니까.
은수 : ..진짜?
최영 : 다시 앞을 봐요.
은수 : 봤어요.
최영 : 이제 등자를 밟고 좀 일어나 봐요.
은수 : 왜요오.
최영 : 계속 이 속도로 기어갈 겁니까?
은수 : (좀 일어나며) 이렇게요?
최영 : 그네 타봤습니까?
은수 : 그네? 알아요. 타봤어요. 왜요.
최영 : 그네 타는 거처럼 중심 잡으면서 달릴 겁니다.
은수 : 달려요?
최영 : 말의 배를 좀 조여봐요. 살짝. 조금만.
은수가 양발을 조이자, 말이 좀 더 속도를 낸다.
은수가 어머어머 하다가 발로 말의 배를 찬다. 은수의 비명과 함께 말이 달리기 시작한다.
최영이 놀라서 말의 속도를 내어 따라간다. 달려가 나란히 하고
은수 말의 고삐를 잡아채려고 손을 뻗다가 보는 은수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며 소리 지른다.
은수 : 나 봐요. 사이코. 나 달리구 있어. 어머. 어뜩게. 나 좀 봐.
최영이 나란히 달리며 뜻밖이라 은수를 다시 본다.
말을 달리는 은수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다.
최영. 허..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온다. 그런데 은수가 웃고 있다.
#31. 야외 일각 / 밤
말 두필이 나란히 쉬고 있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 모닥불 옆에서 은수가 최영의 가슴 붕대를 마저 매주고 있다. (마악 치료가 끝난 상황)
은수 : 진짜 회복력 하나는 끝내주네요. 며칠 있다 실밥 풀면 말짱하겠어요.
아니 근데 이런 회복력을 가진 분이 왜 그리 당장 죽을 거처럼 사람 겁을 줬대요?
하며 옷깃을 여며주려는데. 최영이 그 손을 잡아 밀쳐내고 자기가 여미며 일어선다.
은수. 체 해서 보며.
은수 : 아스피린 준 거 남았죠? 그거라도 꾸준히 먹어요.
최영이 자기 말의 등에서 담요를 꺼내 온다. 은수에게 툭 던져주며.
최영 : 깔고 주무십쇼.
은수 담요를 안고 끄응 일어나는데 아이구구 종일 말을 탄 하체가 쑤신다.
어기적거리며 불 건너편으로 가려는데.
최영 : (주저앉으며) 여기 내 옆에.
은수 어쭈.. 해서 보는데.
최영은 진지하다. 검집으로 옆의 자리를 찍으며.
최영 : 여기.
은수 : 야밤에 이 산중에 남녀 둘이만 있는 것도 남사스러운데. 날더러 그 옆에서 자라고? 딱 붙어서?
최영 : 멀어지면 그만큼 지키기가 힘듭니다.
은수, 보다가 가리킨 자리에 담요를 깔며.
은수 : 원래가.. 지키는 걸 좋아해요? 아님 직업병인가?
최영 : (대꾸할 생각 없다. 나뭇가지를 들어 불을 쑤석이며 슬쩍 건너 어둠 쪽을 살피는)
은수 : 왕도 지켜야 되고. 약속도 지켜야 되고. 그리고 나도 지켜야 되고.
그것도 그냥 대충 지키나.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지켜야 돼.
최영 : (다른 나무를 불에 얹으며 어둠 속의 존재를 확인했다)
은수 : 지금 만나러 가야 되는 환자분. 그러니까 지금 임금님 전에 임금님이 었던 분인 거예요?
그 먼저임금님도 지켰었어요?
최영 : (그제야 은수를 돌아보는)
은수 : 그래요?
최영 : 삼년동안, 그분의 우달치였으니까요.
은수 : 친했어요?
최영 : 주상전하와 신하는 친하고 말고 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은수 : 친했네 뭐. 안 그럼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이렇게 꾸역꾸역. 나까지 질질 끌고 갈 리가 없잖아요.
그냥 우리 둘이 내빼면 되는건데. 그쵸? 그 먼저 임금님이 아프다니까 걱정되는 거죠?
최영 : 안 잡니까?
은수 : 대화 좀 합시다. 우리 그러고보면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게 너무 없잖아요. 내 이름은 알아요?
최영 : (그러고보니 모른다)
은수 : 은수에요. 유은수.
최영 : (속으로 외워보는)
은수 : 그쪽, 결혼은 했어요? 옛날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든데. 결혼. 혼인.
최영 : 안했습니다.
은수 : 안했구나.. (담요 안에서 반은 깔고 반은 덮으려 낑낑대며)
하긴 맨날 사람이나 베구 다니는 살인범을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나.
최영, 어이없어 한마디 하려고 돌아보면.
은수는 자리에 길게 누워서 팔베개를 하고 최영을 보고 있다. 눈에 졸음이 가득해서 하품을 씹고 있다.
최영 : 주무십시오. 일찍 출발해야 되니까.
은수 : 나두 안했어요.
최영 : 뭐가요.
은수 : 나두 결혼 안했다구요.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장 하시구.
난 화려한 싱글...로 혼자 서울에서 살다가 납치돼왔죠.
지금쯤 외동딸내미 없어졌다구 우리 엄마 앓아 누우셨을텐데..
최영 : (좀 미안해지지만 이때쯤엔 화수인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어서) 부탁인데 그만 입 다물고. 자요.
은수 : 이 약속도 꼭 지켜요. 먼저임금님 치료 끝내면 나 그 하늘문인지 거기까지 데려다 주는 거.
최영 : (어둠 쪽을 살피며) 한마디만 더하면 기절시켜 재우겠습니다.
은수 : 이봐요 사이코.
최영 : (벌컥해서 은수를 향해 몸을 굽히는데)
은수 : 굿나잇.
최영 : 뭐요?
은수 : (이미 눈이 감겨서) 잘 자라구요.
그 무방비한 얼굴에 뭐라 더 못하고,
그러다보니 가까이 마주한 은수의 얼굴을 멈칫하는 기분으로 내려다보다가
최영 자세를 바로하여 앉는다. 품에서 아스피린 병을 꺼낸다. 두 알을 꺼내 먹고. 다시 넣고.
#32. 궁전 회랑 / 밤
최상궁이 안도치와 함께 걸어오고 있다.
최상궁 : 어제 밤은.
안도치 : 어제 밤도 거의 못 주무셨습니다.
최상궁 : 드시는 건 어떠신가요.
안도치 : 거의.. 못 드십니다.
#33. 궁전 중정 / 밤
다가온 최상궁이 멈춰 본다.
거기 중정 가운데 공민이 이리저리 생각에 잠겨 거닐고 있다.
주변에는 우달치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상궁이 공민에게 좀 더 가까이 가서 고개를 숙여.
최상궁 : 전하. 최상궁입니다.
공민 : (돌아보더니 웃는) 잔소리를 하러 왔는가.
최상궁 : 밤마다 주무시기가 어려우신 듯 하니 장어의에게 약을 지어 올리라 하겠습니다.
좀 쉬이 잠드실 수 있으실 겁니다. 또.. 그새 식성이 변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하께선 어리셨을 적에 타락죽을 좋아하셨습니다. 바로 준비해 올리겠습니다.
공민 : 최상궁.
최상궁 : 예 전하.
공민 : 왕이라면 가장 먼저 백성을 생각해야 하겠지? 어느 쪽이 백성의 안녕에 도움이 될 것인가.
최상궁 : (감히 대답할 문제는 아니다. 그저 듣기만)
공민 : 만약에 내가 그자에게 승복을 하면.. 말을 잘 듣겠다 하면.. 그럼 내 백성의 안녕에 더 도움이 될까?
이렇듯 싸워보겠다고 이겨보겠다고 노심초사하지 말고.
최상궁 : (잠시 애잔해서 보다가) 전하.
공민 : 대장도. 의선도. 내 편이 아니라 그자의 편이 되면 생명의 위험 따윈 없어지겠지.
그리 씩씩한 의선이라면 훨씬 더 대접을 받고 호령을 하면서 지낼 수도 있을 것이고.
최상궁 : (망설이다가) 지난 수십년 왕궁에 기거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이 있습니다.
감히 상궁 나부랭이가 입에 올릴 말씀은 아니오나..
공민 : 해줘. 듣겠네.
최상궁 : 전하께서 칭하시는 그 자가 덕성부원군을 이르시는 것이라면. ...
공민 : (보는)
최상궁 : 그 자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입니다.
내가 어찌하면 더 높아지고 부유해질까. 저 백성들을 어찌 사용해야 내 것이 늘어날까.
그자에게 백성은 사람이 아니라 도구이고 재산입니다. 그런 자에게 전하의 백성을 넘기고자 하십니까?
공민 : .. 달리 방법이 없는데..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최상궁 : (엄한 눈빛이 되더니) 왕께서는 입에 담으셔선 안되는 말씀이 몇 개 있으십니다.
달리 방법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것은 왕께서 하셔서는 아니되는 말입니다.
공민 : .. 말을 해서도 안된다.
최상궁 : 아니 되십니다.
공민 : 왕이니까.
최상궁 : 예.
공민 : (보다가.. 얼핏 미소 짓더니) 역시 같은 가문의 사람이군. 그대와 최영.
최상궁이 깊이 고개를 숙인다.
공민이 돌아서며.
공민 : 그 맛 그리웠었네. 타락죽. 준비해주게.
최상궁 : 바로 올리겠습니다.
공민이 걸어간다. 안도치가 얼른 모신다.
최상궁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가는 공민을 본다.
#34. 야외 일각 / 밤
아까의 자세 그대로 앉아있던 최영.
최영 : 주무십니까?
은수. 대답이 없다. 돌아본다. 그새 곤하게 잠에 빠져든 얼굴.
잠시 내려다보다가 모닥불 건너편 어둠을 향해.
최영 : 거기 밤새 있을 거냐?
잠시 조용하다가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 나무 위에서 내려와 서는 그림자. 화수인이다.
살랑거리며 걸어와 은수 쪽으로 다가서려는데
최영이 던진 나뭇가지가 가로막으며 땅에 꽂힌다.
화수인 웃으며 휘릭 돌아서 모닥불 건너편에 요염하게 앉으며.
화수인 : 진작 좀 부르지. 아까부터 기다렸는데.
최영 : 벌써 왔어야 할 내 아이가 안 온다. 너의 짓이냐.
화수인 : 몰라. 그대들 구경하는 게 너무 재밌어서 다른 데 한눈 팔 여유가 없었는걸.
최영 : 하나 묻자.
화수인 : 뭘까. 그대의 정인이 잠들고 나서야 할 수 있는 질문. 근데 둘이 정인은 맞나? (재밌다고 웃는)
최영 : 니 주인이 우릴 강화도로 보내는 것.
화수인 : 그대는 정인이라는데 저 여인은 그대를 살인자라 부르네.
최영 : 설마 경창군마마의 건강을 걱정해서는 아니겠고.
화수인 : 그러면서 저렇게 맘 편하게 딱 붙어 자는 건 뭐지?
최영 : 그렇다고 나나 의선을 처리하려고 이리 복잡한 수를 쓰는 것도 아닐 테고.
화수인 : (요염한 미소) 비결이 뭐야. 그대라는 사내. 어찌하면 그렇게 여인의 믿음을 얻을 수 있어?
최영 : 역시 전하를 노리는 건가?
화수인 : (더 요염한 자세) 그대. 나의 믿음도 가져볼 생각 없어?
최영 : 전하의 무엇을 얻으려는 거지?
화수인 : 뭐야. 시시하네. 최영. 왕에 대한 충심 따위나 외고 다니는 고리타분한 작자였어? 이런 좋은 밤에?
최영 : 그래서 아는 게 없나?
화수인 : 이보세요.
최영 : 너, 주인의 뜻 같은 건 모르는 졸개일 뿐인 거냐? 그럼 흥미 없고.
화수인 : (소리내 웃더니) 그분은 주인이 아니고 사형. 난 그이의 사매.
그것도 총애받는 사매니까 흥미는 계속 가져줘.
최영 : (뒤의 나무에 기대 눈을 감으며) 대충 눈 붙이고 의선이 깨기 전에 모습 감춰라. 놀라시지 않게.
화수인 : (그런 최영을 재미있어 보다가) 내일 아침쯤이면 내 사형이 그대의 전하를 만날텐데..
최영 : (눈 감은 그대로)
화수인 : 그리고 아마 이런 말을 할 거야. 이제 닷새 남았습니다. 의선의 마음을 가지겠다고 약속한 날짜.
최영 : (눈을 떠서 보는)
화수인 : 어쩜 그대 이름도 말할지 모르겠네. 우리 사형. 그대를 점점 더 갖고 싶어하는 거. 보였거든.
#35. 강안전 정원 / 아침
조일신이 엎어질 듯 달려온다. 마악 강안전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우달치군의 덕만.
일신 : 전하를 봬야하네.
덕만 : 불가합니다.
일신 : 이놈들아. 지금 당장 내가 전하를 봬야한다고.
우리 어리신 전하께서 그놈의 농간에 넘어가시기 전에... (하며 뚫고 가려 하지만)
돌배 : (이중으로 막으며) 불가합니다.
#36. 강안전 내 공민왕 집무실
공민이 노려보고 있는 기다란 탁자 건너편. 저 끝에 앉아있는 기철.
공민의 양 옆을 지키고 있는 충석과 주석.
기철은 여전히 혼자다.
기철 : 전하의 우달치군 대장. 최영이란 자. 아시지요?
공민 : 압니다.
기철 : 그 자가 저희 집에 와서 의선을 납치해간 것도 아십니까?
공민 : (보다 웃는) 그런 말은 들었다 해도 믿지 못했겠는데요.
부원군 댁의 삼엄함이야 왕궁보다 더하다고들 하는데. 감히 그 댁에 쳐들어가 누굴 납치해가요?
기철 : 부끄럽지만 그랬습니다. (여전히 온화한) 워낙에 기습이었고, 워낙에 무술이 출중한 자였습니다.
공민 : 내 호위대장이 하늘에서 오신 의선을 납치했다. (충석을 보며) 어째서였을까?
충석 : (딱딱)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전하.
기철 : 어째서였는지 소신이 짐작을 해봐도 괜찮겠습니까?
공민 : (농이라도 하듯 가볍게) 그래주세요.
기철 : 최영, 그자가 선왕이신 경창군의 총애를 받았던 건 알고 계십니까?
또한 경창군께서 지병을 앓고 계신 것도 아시는지요.
공민 : (충석을 돌아보는)
충석 : 경창군께선 폐위되시기 전부터 눈과 귀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기철 : 최영. 그자가 단지 경창군의 지병이 걱정되어 의선을 모셔간 것이라면
어찌하여 미리 전하의 윤허를 바라지 않았을까요.
조카를 위해 그 정도 허락지 않으실 전하가 아니신데.
공민 : (미소) 부원군.
기철 : 예 전하.
공민 : 우리 둘 다 말장난은 체질이 아닌 바. 요점만 말씀하세요.
기철 : 참으로 주제넘는 질문이옵니다만, 전하께서는 최영 그자와 얼마나 가까우십니까?
원에서 이곳까지 오는 동안 기껏 한달 남짓 면을 익히신 것이지요?
공민 : (말없이 보는)
기철 : 최영 그 자와 선왕이셨던 경창군은 단순한 군신의 관계가 아니었답니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주상의 자리에 오르신 뒤로,
최영 그자는 든든한 호위무사였으며 스승이었으며 참으로 우애 깊은 형제와 다름없었다지요.
충석 : (불안해서 공민의 눈치를 보는)
공민 : (미소가 사라져있다)
기철 : 의선을 납치하여 그분께로 달려가면서. 최영 그자가 전하께 한마디 허락이라도 구하였습니까?
공민 : 그래서, 지금 부원군께서는 내 우달치 대장이 (억지로 웃어 보이며) 경창군을 옹립하여
내게 반역이라도 도모하기 위해 갔단 말이오?
기철 : (아주 걱정된다는 듯) 아니겠습니까?
#37. 강화도 경창군 집 앞 길 / 낮
유배지로 할당된 집인지라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크지 않은 규모의 집.
그 낮은 담 위로 둘러쳐진 가시나무 울타리가 눈에 띈다.
대문 앞에서 비질을 하던 몸종 하나가 돌아본다.
거기 최영과 은수가 나란히 말을 타고 도착하고 있다.
#38. 경창군 집 정원
안방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나서는 경창군. 병약한 느낌의 열다섯 나이.
마당을 본다. 거기 미소로 서있는 최영.
경창 : 영아. 영아.
그대로 달려 나오다 걸려 넘어질 뻔 한다. 어느새 달려온 최영이 받아 안아 세워준다.
최영 : (따뜻한 미소) 마마. 강녕하셨습니까.
경창 : 영아. 와줬구나. 날 보러 와줬어. 영아.
좋아 어쩔 줄 모르며 최영의 가슴 자락을 부여잡고 얼굴을 다시 보고 또 본다.
그 뒤 저쯤에서 보고 있는 은수.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39. 경창군 집 사랑채 마루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 앉은 경창군. 그 옆에서 진찰을 하는 은수.
검사도구가 없어 햇살에 비추어 귀 안을 검사하고 있다. (진찰 방법 취재 요)
그러는 동안 경창군은 앞에 걸터앉은 최영에게 계속 떠들고 있다.
경창 : 이분 의선에 대한 소문은 나도 들었어. 영아. 자네가 하늘까지 올라가서 의선을 모시고 왔다구 말이야.
그랬을 줄 알았어. 세상 천지 누가 또 그런 엄청난 짓을 하겠냐구. 그래서 어땠어?
이제 은수는 경창의 눈을 햇살에 비추어 살펴본다.
최영 : 뭐가 궁금하십니까?
경창 : 하늘 나라. 모든 게 다. 거기 사람들은 다 이분처럼 고우신가?
은수 : (어쭈해서) 어리신 분이 참 작업 센스가 좋으시네요.
경창 : 센..수?
최영 : 무시하십시오. 알 수 없는 하늘말을 자주 쓰십니다.
은수 : (눈을 살피며) 가끔 물체가 두 개 겹쳐 보이거나.. 눈하고 귀에 통증이 있거나 그런가요?
경창 : 오. 과연 의선. 한번 보고 어찌 아시오?
은수 : (어쩔 수 없이 심각해지는 얼굴) 가끔 귀가 들리지 않기도 하구요?
경창 : 그래요. 그럴 때가 있어. 신기하네. 영아. 이분 신기해.
최영도 불안해서 은수를 본다.
은수는 경창의 목을 더듬어 만져보더니.
은수 : 다리를 좀 살펴볼게요. 바지. 걷어도 되죠?
경창 : 그리하시오.
은수를 도와 자기 바지를 걷어주며 최영을 향해 천진하게 웃어 보인다.
조심조심 발목부터 만져 올라가는 은수.
경창 : 그래서 영아. 하늘나라 이야기, 더 해봐.
최영 : 극히 좁은 부분밖에는 보지 못했지만. 집들이 모두 하늘에 닿을만큼 높았습니다.
경창 : 오호.. 또.
최영 : 한밤에도 사방에 빛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말도 없는 마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 마차들에서는 강한 빛이 쏘아져 나와 길을 비추구요.
또 하늘에는 빛으로 만든 그림들이 걸려있었습니다.
대답을 하며 은수의 기색을 살피고 있다.
은수가 경창의 다리, 어느 지점에서 손을 멈추더니..
한 번 더 확인을 하더니 최영을 돌아본다. 어두운 낯빛이다.
(횡문근 육종(근육암): 물체가 두 개로 겹쳐 보이며, 눈과 귀에 통증이 있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호소.
은수가 귓속을 진찰하는데, 귓속에서 종양이 관찰된다. 또 다리에서는 종양이 직접 만져진다.
첫째, 귓속의 종양이 눈에 보인다.
둘째, 양성이냐 악성이냐를 판단하자면 다리까지 원격 전이된 것이 손으로 만져지므로 악성이다)
#40. 경창군 집 뒷 마당
최영과 마주 선 은수.
은수 : 시티촬영이나 조직 검사를 해봐야 확진을 할 수 있겠지만..
귀에서 육안으로 관찰되는 종양이나, 증상을 보면 랩도마이어살코마.
횡문근육종이 아닌가. 의심 되거든요.
최영 : 고칠 수 있습니까?
은수 : 근데 이게 다리에까지 종양이 전이된 걸로 봐선 악성인 거 같아요.
최영 : 고칠 수 있겠지요?
은수 : 복강 내에까지 종양이 침투했을 수 있어요. 지금 계속 전이되고 있는 거라면 수술이 급하다구요.
그 다음에.. (망설이는)
최영 : 그러니까 고치는데 오래 걸린단 얘깁니까?
은수 : 수술이 성공한다 해도 항암치료를 해야 되는데.
최영 : 의선.
은수 : (결심하고) 일단 전의시로 옮기죠. 내 수술도구도 필요하고 한의 선생 도움도 필요하니까.
최영 : 곤란합니다.
은수 : 가서 수술부터 해야 된다니까요.
최영 : 갈 수가 없습니다.
은수 : 왜요.
저만치 뒤, 담 뒤에서 그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는 경창.
최영소리 : 마마께선 위리안치 중이라 이 집을 나설 수가 없습니다.
집에서 한발자국이라도 나서면 국법을 어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 자막 위리안치(圍籬安置) : 유배지 집 밖을 나올 수 없는 주거감금형벌
#41. 고려 본궐 전경
그 너른 궁궐의 한곳으로 주욱 들어가면.
#42. 마구간 앞
마구간에서 말을 내오는 주석.
충석이 그에게 말하고 있다. 낮게. 주위에서 누가 듣나 살피며.
충석 : 한시가 급하다. 대장께 달려가 똑바로 전해.
지금 당장. 그게 뭐든 다 때려치고 바로 궁으로 돌아오시라고.
주석 : 알겠습니다.
충석 : 까딱 잘못하면 우리 대장이 역적, 반역도로 몰릴 판이야.
주상전하께서도 의심을 하기 시작한 듯 해. 그러니..
주석 : 즉시 대장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하며 말에 오르는)
충석 : (고삐를 잡아 멈추게 하고) 만에 하나. 설마 대장이 그럴 리는 없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경창군 마마를 모시고 그 집에서 단 한발 짝이라도 나서선 안된다고.
그 순간 끝이라고. 반드시 전하게.
주석 : 전하겠습니다.
충석이 말의 엉덩이를 때려주고. 주석이 말을 달려 나간다.
걱정이 되서 보고 선 충석.
#43. 기철의 집 전경
화려한 집들의 한 곳으로 주욱 들어가면.
#44. 기철의 치료방
한쪽 탁자에 얹혀있는 은수의 수술도구. 아직은 보에 싸여져 말려 있는 상태.
기철이 미용 처치를 받기 위해 겉옷을 벗는 중.
옆에서 양사가 열심히 약사발에 미용액을 저어 만드는 중.
기원이 기철을 따르며 겉옷을 받으며 지시를 받는 중.
기철 : 강화현령에겐 제대로 지시해놨겠지?
기원 : 두 번 세 번 복기를 시켰습니다.
기철 : 우리 애들은.
기원 :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구요.
기철 : 사매는?
기원 : 화수인이야 뭐 지가 알아서 잘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형님, 뭔가 일을 꾸미면서 이처럼 노심초사하시는 거 오랜만에 뵙니다.
기철 : (휙 돌아보면)
기원 : 그니까 그게 즐거워 보이신달까...
기철 불쾌한 얼굴로 돌아서다 멈칫. 다시 돌아본다.
탁자에 얹혀 있는 은수의 도구.
기철의 시선을 눈치 챈 양사가 재빨리.
양사 : 아 그게 그 의선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어제 가져왔습니다. 제가 직접..
기철이 다가선다. 대충 보를 풀어본다. 하나씩 드러나는 도구들.
무심하던 기철의 얼굴이 굳는다. 손이 빨라져서 휘리릭 마저 푼다.
드러나는 도구들. 메스며 루뻬. 가위며 겸자들..
충격으로 보는 기철.
기원 : 형님?
기철 : 이거.. 본 적이 있다. 이것들. 흡사한.. 똑같은 것을..
기철이 도구들을 모아서 움켜쥐더니 급히 방을 나간다.
어리둥절해서 따르는 기원.
양사도 사발을 들고 우왕좌왕하다가 따른다.
#45. 부유고(敷遺庫)
어두운 부유고 내부. 문이 벌컥 열리며 빛이 들어온다.
그 빛에 드러나는 내부의 모습.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 있고, 먼지가 쌓여 오래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기철 사형제의 사부인 네르구이가 쓰던 비밀 연구실.
네르구이가 죽고 난 뒤 오랫동안 아무도 쓰지 않았다는 설정.
이곳저곳에는 비밀 연구실에서 쓰던 물건들, 박제, 약재, 인체의 장기 등이 담긴 병 등이 기괴하게 늘어서 있고)
문의 빛으로 들어서는 기철. 들고 온 은수의 도구를 중앙의 탁자에 올려놓더니
그 탁자의 서랍을 다급하게 뒤져 열쇠를 찾아낸다.
한 쪽 벽으로 간다. 거기 낡은 장의 문. 잠겨있는 자물쇠를 연다.
녹이 슨 경첩이 말을 안 듣는 것을 억지로 연다.
장 안에 들어있는 낡은 상자를 꺼낸다.
이러는 동안 그 뒤로 조심스레 따라 들어온 기원과 양사.
기원이 여기저기 호롱불을 밝히고.
양사는 이곳이 처음인 듯 신기해서 둘러보다가 문 안 쪽에 삐딱하게 걸려있는 낡은 현판을 본다.
부유고(敷遺庫)
양사 : 부유고..라...
기철이 낡은 상자를 들고 오더니 탁자에 얹는다. 상자를 연다.
그 안에서 나오는 낡은 가죽 보. 꺼내서 조심스레 펼친다.
드러나는 내용물. 현대에서 쓰임직한, 은수의 도구와 비슷한 수술도구들.
(은수가 쓰는 것들보다 오히려 더 첨단적인 세련된 디자인이어도 좋습니다)
기철이 옆에 은수의 도구도 펼친다. 나란히 놓고 보니 거의 흡사하다.
다만 가죽보에 싸였던 것들은 오랜 세월 때문에 심하게 녹이 슬어있다는 점만 다를 뿐.
양사 : 어어.. 참으로 흡사합니다. 어찌 이런 일이..
기원 : 형님 이건 스승님의 유품이 아닙니까.
기철 : (도구들을 하나하나 대조해보며) 그래. 스승님께서 남겨주신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이것들이.. (흥분하고 있다) 화타의 유물이라 하셨다.
양사 : 화타요? 설마 그 전설의 화타 말씀입니까?
기철 : 그 여인. 참이었는가. 참으로 화타의 제자였어? 참으로 하늘에서 온 화타의 사람이야?
기원 : 형님.
기철 : 그 여인. 지금..
기원 : 강화도에 있는데요.
기철 : (급해지며) 다치면 안돼. 그 여인만은 털끝도 다치지 말라 해라.
기원 : 지시를 전하기는 이미 늦었습니다. 금방 해가 질 것이고. 해가 지면 바로 시작하라 하였으니...
기철 : (문으로 달리듯 가며) 내가 가겠다. 그 여인을 가지러 내가 갈 것이야.
문을 박차듯 열며 나간다.
#46. 길 / 저녁
주석이 말을 달리고 있다. 달리며 멀리 서쪽 하늘을 본다.
하늘 지평선에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47. 경창군 방
검소한 차림의 안방. 침대와 입식 테이블이 있는.
테이블 앞에 앉은 경창과 은수.
최영이 호롱불의 심지를 높여 밝게 해주며.
최영 : 금방 다녀올 것입니다. 내일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올 것이니..
경창 : 아니야. 오늘 밤은 나와 함께 지내야지.
최영 : 마마.
경창 : 내가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묻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은수 : 다녀오라 하세요. 제가 하늘나라 이야기 해드릴게요.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걸그룹에 게임 얘기까지 다 해드리죠.
경창 : (솔깃해서 은수를 보는)
최영 : (은수에게) 말씀하신 것만 가져오면 되겠습니까?
은수 : 한의 선생까지 끌고 오시면 더 좋구요.
최영 : 마마를.. 부탁드립니다.
은수 : 뭐야 이젠 베이비시터까지 하라구요. 나중에 청구서 계산해보면 엄청날 거야. 각오하구 있는 거에요?
경창 : 방금 한 말도 하늘말이오? 무슨 뜻이오.
은수 : 어느 거요? 베이비시터?
최영 : 다녀오겠습니다.
최영,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 문 쪽으로 간다. 문을 열기 전에 다시 한번 돌아본다.
은수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더니 경창도 최영을 향해 흉내 내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최영, 멈칫하는 느낌. 저도 모르게 지어지는 미소.
#48. 경창군 집 마당
이제 거의 해가 지고 있는 늦은 저녁 시간.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 쪽으로 가는 최영. 그런데 대문에 도달하기 전에 멈춘다.
반사적으로 손을 검에 얹으며 본다.
대문이 밖에서부터 삐이걱 열리고 있다.
최영이 주위의 담도 둘러본다. 사방에서 기척을 느끼고 있다.
대문이 마저 열리더니 여유롭게 들어서는 화수인. 최영을 보며 생글거리며.
화수인 : 어디 가시게.
순간 최영이 뒤로 튕기듯 물러서며 마루로 올라선다.
거의 동시에 사방의 담을 넘어 들어오는 복면의 자객들.
경계하여 선 최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온 자기 항아리들을 사방으로 던진다.
담이며 벽에 부딪혀 깨지는 동이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이 사방으로 튀기며 흐른다.
화수인이 생글거리며 한손에 쥔 화화탄을 들어올린다. 어느 틈에 화화탄의 심지에 불이 붙는다.
최영 안방으로 달려가며.
최영 : 마마.
#49. 경창군 방
달려 들어오는 최영. 경창을 왼손으로 끌어 잡아 보호하며 은수에게.
최영 : 내 뒤에 바싹 붙어 따라 올 수 있겠습니까.
은수 : (놀라 일어서며) 왜요.
경창 : 영아..
최영 : (경창을 보호하여 문 쪽으로 가며) 지금부터 대문까지 일직선으로 달릴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추지 말고. 뒤처지지 말고 날 따라오셔야 합니다.
(오른손으로 검을 빼들며 은수를 보는) 준비.. 됐습니까?
은수 : 대체 무슨 일인데...
최영 : 준비됐으면 달리겠습니다.
은수 : (보다가 끄덕인다) 가요.
최영 순간 문을 걷어차더니 나선다.
#50. 경창군 집 마당
마당을 포위하고 있던 자객들이 놀라 돌아본다.
안에서부터 달려 나오는 최영의 무리.
몇몇이 놀라 막으려 하지만 최영은 거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방어와 공격을 하며 뚫고 나간다.
대문 앞에 서 있던 화수인.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려있던 화화탄의 심지 불을 오히려 후 불어 끄며 구경한다.
최영의 거의 앞까지 돌진해온다. 그 뒤를 짧은 비명을 질러가며 열심히 따르는 은수.
최영이 화수인을 노리는데. 화수인은 오히려 훌쩍 몸을 날려 옆으로 피한다.
최영이 대문으로 달려든다. 발로 차서 열고 경창을 보호하며 나선다.
#51. 경창군 집 대문 앞
마악 나서 달리려던 최영이 놀라 선다. 거기 도착하며 포위대형을 갖추고 있는 관군들.
그들의 부장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 지른다.
부장 : 죄인은 멈추지 못할까. 감히 어느 대문을 나서는가.
최영 : (안심이 되어) 난 우달치 중랑장 최영이다.
자객이 들어 경창군 마마를 모시고 피신하는 길이다. 자객들이 집 안에..
하며 돌아보다가 멈칫.
안에서 우르르 나오는 자객들이 마치 최영의 무리를 보호하듯 둘러서며 관군을 향해 활에 화살을 먹인다.
부장이 놀라 뒤로 물러서며 명령한다.
부장 : 역도들이다. 길을 막아.
최영 아차 하는 심정에 뒤를 본다.
대문 저쪽에서 생글거리며 이쪽을 보는 화수인. 그 손에서 다시 피어나는 불길.
그 순간. 최영의 옆에 선 자객 중에 하나가 소리 지른다.
자객 : 마마를 보호하라.
그러더니 자객들이 일제히 관군들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하늘로 날아가는 화살들.
그 사이 먼저 날아간 화화탄이 관군들 사이에서 요란하게 터진다.
그 모습들을 순간 속수무책으로 보는 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