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부드러운 시간을 어느 곳에 쓰면 좋을까
이성배
미선나무 가지마다 밥알 같은 꽃들이 총상꽃차례*로 수북하다.
이 부드러운 시간을 어느 곳에 쓰면 좋을까.
십여년 전 겨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무차별 폭격이 있을 때
나는 군고구마를 사 들고 눈 오는 거리를 걸었지 싶다.
재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들과 그 어머니들은 사락사락 죽어갔다.
하굣길에 장벽쪽으로 돌을 던진 팔레스타인 소년 사미르 아와드가 이스라엘
군인들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즉사한 2013년 1월,
나는 따뜻한 거실에서 유치원에서 돌아올 네살배기 딸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총상꽃차례 같은 폭탄 다발을 투하하는 인간적인, 그 인간적인 인류에
엉뚱하게 우리 집 마당에 던져진 밥다발을 두고
고슬고슬한 밥알에 어머니 젖가슴 냄새 비릿하게 스며있는
이 질기지 않은 의미를 어찌하면 좋을까.
햇볕 좋은 마당에 과분한 꽃
장벽 아래 양지바른 팔레스타인의 언덕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의 폐허 사이에 수북수북 피어
덤불 사이를 뛰노는 아이들 얼굴에 밥알이 하얗게 붙는다면
꽃 하나가 그럴 수 있다면
*꽃이 촘촘히 피는 형태의 하나
2019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