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여든이 된 노인이 새 집을 짓겠다고 나선다. 집 지을 땅 있고, 돈 있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주위에서 다들 말린다. 왜냐고? 이 노인, 자기가 직접 짓겠단다. 설계도도 없고, 건축허가도 안 받고, 건축자재도 다른데서 안사고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할 테니 남들은 참견 말란다. 자기 땅에 자기 집 짓는데 왜들 참견이냐고 역정까지 낸다.
캐나다 감독 마이클 맥고완의 <스틸>은 <꼬마돼지 베이브>로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올랐던 제임스 크롬웰이 다시 고집불통 시골 농장 노인네 크레이그 역할을 맡아 ‘여전히’ 사랑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 노인네의 평생에 걸친 연인 아이린 역은 <천일의 앤>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앤 역에서 보여주었던 품위 있는 미모가 주름진 얼굴로도 여전히 고운 주느비에브 부졸드다.
여든 노인 크레이그와 아이린은 예순 한 해를 살면서 일곱 남매를 키워 낸 시골 노인네가 평생을 함께 한 부부일지라도 나이가 들면 자존심과 사랑을 함께 지키려면 얼마나 치열해야 하는 지를 짚어 보인다.
농사일에 이골이 난 크레이그는 이웃 농장이 날씨 탓하며 딸기 작황이 형편없다고 투덜대는 때에도 수확 일손 부족할 만큼 잘 여문 딸기 자랑할 정도로 자부심 강한 농부다. 그런데 크레이그가 늘 하던 대로 딸기를 거둬 내다 팔려던 도매상에서는 그 딸기를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냉장차를 갖추지 않은 농장 수확물은 받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이 새로 생겼기 때문이란다.
기업형 농장도 아닌 크레이그의 딸기밭에서 갓 따서 두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딸기를 실어 옮기자고 냉장차를 사는 건 무리다. 도매상에 제 때 내다 팔지 못하면 딸기는 끝이다. 잼으로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할머니 아이린은 그냥 이웃에게 나눠주자고 한다. 그래서 크레이그와 아이린은 정성껏 키워낸 딸기를 고스란히 이웃에 나눠 준다. 냉장차를 사지 않는 한 앞으로 딸기 농사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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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틸> | ||
스토브에 장갑을 올려놓아 집까지 홀랑 태워 먹을 뻔 하고도 자기가 언제 그랬냐고 시치미 뚝 떼지를 않나, 했던 말 하고 또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지를 않나, 심지어 온다 간다 소리도 없이 사라져 애간장을 태우더니 평생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물고 바닷가에 서 있지를 않나.
일도 자꾸 뒤죽박죽이 되는 마당에 알뜰살뜰 아내 보살핌이 절실하게 딱 필요한 시기에 하필 아이린에게 치매가 온 것이다. 부엌에서 불이라도 낼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까, 혼자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닥칠까 걱정이된 크레이그는 그래서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계단 오르내릴 일 없고, 어디서고 서로를 바로 볼 수 있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는 아담하고 전망 좋은 집을.
그런데 남들이 난리다. 자식들은 사람 사서 하면 될 일을 왜 직접 하려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고, 이웃들은 그 나이에 직접 하다 큰 코 다칠 일 많을 거라며 수근댄다. 그래도 아랑곳 않고 기둥 세우고, 바닥 마루 깔고, 서까래 올리며 집 짓는데 한창인 크레이그에게 관공서에서 대놓고 어깃장을 놓는다. 공사 중지 행정처분을 내린 것이다.
아무리 자기 땅에 집을 짓더라도 거쳐야할 절차가 있단다. 세금처럼 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건 둘째 치고, 손수 건사한 재료를 써도 안 되고, 전문가 설계도가 아니라 꿈꿔온 모양새로 지어도 안 된단다. 아무리 크레이그가 커다란 배를 만들던 부친에게서 평생 목수 일을 제대로 배웠더라도 이제 그런 건 안 통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아이린이 침대에서 내려서다 엉치뼈가 부러져 보조기 없이 걷지 못하게 된 마당에 새 집 지어 이사하는 무리수를 두는 대신 그냥 요양시설에 보내는 게 옳지, 노인네가 웬 고집이냐며 고까워하는 사람들 눈총도 서러운데 크레이그는 행정처분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다가 재판까지 받게 되었다.
그렇다. 노인에게 참 세상은 가혹하다. 예전에는 별스럽지 않던 것이 별스러워지고, 없던 기술이며 규제는 자꾸 생겨나고, 자신이 알던 것들이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그래도 그냥 살던 대로 살겠다고 하면 노망났다고 타박듣기 일쑤다. 막상 힘들게 집을 지어 거기서 몇 해나 더 살겠냐는 냉소도 섬ㅤㅉㅣㅅ하다. 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세상이 그렇게 변해 버린 것이 더 서럽다. 여든 노인에게는 집을 짓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집을 지어도 좋다는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크레이그가 그 상황에서 아이린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는 것은 세상과 대화하고 화해해야 가능한 일이다. 과연 자존심과 품위를 잃지 않고도 가능할 것인가? <스틸>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고?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지어 사랑하는 님과 그후로도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젊은이들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노인도 ‘여전히’ 당당하게 누려야할 권리라는 것을 잔잔하고 뭉클하게 보는 것이 이토록 낭만적일 줄이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5366
감독 | 마이클 맥고완/Michael MCGOW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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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국가 | Canada |
제작연도 | 2012 |
러닝타임 | 93min |
상영포맷/컬러 | DCP / Color |
첫댓글 저도 이런 괴짜들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재미있겠는데요^^ 비슷한 주제로 제작년인가 본 '세상에서 가장빠른 인디언'이란 영화도 있죠
안소니홉킨스 주연으로 한 노인이 수십년된 낡은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소금사막에서 최고속도 기록 갱신해내는 실화를 바탕으로한 영화 ㅎㅎ 이것도 한번 찾아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찾아보겠습니다. ^^
냉장차를 갖추지 않으면 판매금지, 자격증이 없으면 내집도 맘대로 못짓는세상... 제도가 사람잡는세상... 시사하는바가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