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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시 쓰기
관조와 해탈, 스님들의 선시(禪詩)
선(禪)은 경전(經典)을 중시하는 교종(敎宗)보다는 좌선(坐禪)을 중시하는 선종(禪宗)의 수행법입니다. 선종은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견성(見性)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교파입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은 법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입니다. 즉 석가가 제자들에게 연꽃을 들어 보이자 오로지 가섭만이 그 의미를 알았다는 표시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석가는 불법의 오묘한 진리를 가섭에게 전해 주었다는 데서 유래하였습니다. 견성(見性)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견성성불(見性成佛)의 준말로 본래 성품자리를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선종(禪宗)은 서기 470년 전후에 인도의 왕자인 보리 달마가 당나라에 왔을 때 노자의 도교적인 사상과 융합되어 퍼지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사회 경제적으로 불안한 중국인들은 마음을 편안케 하는 안심(安心)의 도로서 선을 중국화시켰던 것입니다. 물론 석가의 7년 명상처럼 달마도 면벽(面壁) 7년 동안 선에 몰두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중국에서는 육조 혜능이 비로서 선종을 하나의 종파로 독립시켰습니다.
선(禪)은 화두를 달고 하는 간화선(看話禪)과 침묵을 지키면서 응시하는 묵조선(黙照禪) 두 방법이 있는데, 모두 명상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불교적인 수행방법입니다. 선은 달마대사, 육조 혜능, 신수, 백장, 마조, 임제, 조주, 한산 같은 스님만이 아니라 중국의 이백, 두보, 왕유, 백낙천, 이하 같은 시인들도 즐겼습니다. 왜냐하면 선승(禪僧)이 추상적인 사고보다는 직관으로 인생의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시인이 영감에 의하여 시상을 얻어 시를 쓰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선시(禪詩)는 중국 당나라 때에 정체가 불명한 한산(寒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산의 선시는 고려 때 진각국사 혜심(慧諶)의 <선문염송>으로 집대성되었고, 그 뒤에 휴정, 태능, 인오, 경허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또한 고승들은 깨달음의 순간을 오도송(悟道頌)이란 시로 남겨 놓기도 하였고, 입적하면서 열반송(涅槃頌)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성철 스님은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에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같이 함축적인 유언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만해 한용운을 연애시인, 애국시인, 범신론적인 철인으로 각각 살펴보았는데, 마지막으로 선승으로서의 만해를 공부해 보기로 합시다.
민들레교실 1. 깨달음을 표현한 오도송(悟道頌)
만해는 불교개혁을 주장하고 팔만대장경을 요약하여 <불교대전>을 편찬하기도 하였지만, 만해가 주해한 <십현담>을 보면 상당히 선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만공 스님과는 친교가 두터워 곡차를 마시면서 밤을 새워 선문답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합니다. 만해는 백담사의 암자인 오세암에서 깨달았다는 기록을 스스로 남겼습니다.
丁巳 十二月 三日 夜 十時頃 坐禪中 忽聞風打墜物聲 疑情頓 釋仍
정사년 십이월 삼일 밤 열시 경 좌선 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 무슨 물건인가를 떨구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는 마음이 씻은 듯 풀렸다. 이에 한시 한 수를 지었다.
男兒到處是故鄕 남아는 간 곳마다 바로 고향인 것을
幾人長在客愁中 그 몇이나 객수 속에 오래 있었나
一聲喝破三千界 한 소리 크게 질러 삼천 세계를 깨뜨리니
雪裡桃花片片紅 눈 속에 복사꽃이 조각조각 붉었구나
이 시는 오도송이라 함축적어서 그 의미가 퍽 심원합니다. 또한 이미지들이 참신하고도 조화롭게 배치되어 시적으로 아름다운 느낌을 줍니다. 아마 이처럼 뛰어난 오도송도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만해처럼 살아오는 동안 나름대로 크게 깨닫거나 자기 인생을 변화시킨 경험을 소재로 하여 간단한 오도송(悟道頌)을 써 보세요.
접시꽃교실 1. 선(禪)과 화두(話頭)
만해는 삼일운동 후에 옥고를 치를 때 감옥에서 선(禪)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한시로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번역해 보면-.
병감(病監)의 후원
만해
선을 말하는 사람 그 또한 속물이라
그물을 뜨는 나 어찌 중이랴
나뭇잎 떨어짐이 가장 섧거니
가을 못 오게 잡아맬 노끈 없는가
선은 간화선(看話禪)과 묵조선(黙照禪) 두 방법이 있습니다. 간화선은 화두(話頭)를 가지고 선에 드는 것이요, 묵조선은 마음을 비우고 선에 드는 것입니다. 자기의 화두를 찾아, 아니면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큰 업(業)이나 극심한 고민 한 개를 골라서 이를 소재로 선시를 한 편 써 보세요. 단 지나치게 관념에 흐르지 <병감의 후원>3,4행처럼 슬픈 정서가 우러나오도록 해 보세요.
접시꽃교실 2. 선시의 멋과 함축성
선시는 오도송(悟道頌)처럼 도를 깨닫는 순간을 표현한 선시도 있고, 삶의 진실을 통찰한 선시도 있고, 또 인생과 자연을 관조하는 선시도 있습니다. 선시의 효시라고 보는 한산의 다음 선시는 인생의 진리를 통찰한 것으로 보입니다.
寒山詩(한산시)
한산
誰家長不死 누구인들 영 영 죽지 않으리
死事舊來均 죽는 일은 옛날부터 균등하였다.
始憶八尺漢 처음엔 8척 사나이로 생각던 것이
俄成一聚塵 별안간 한줌의 먼지로 되어진다.
黃泉無曉日 황천에 동트는 날 없는데
靑草有時春 푸른 풀은 때가 되면 살아난다.
行到傷心處 가슴 아파 지는 데까지 다다르니까
松風愁殺人 소나무 바람이 사람을 시름겹게 만드는구나.
그러나 다음 한산시는 도가(道家)인 중국의 시인 이백처럼 동양적인 관조의 세계를 보여 줍니다.
한산시
한산
구름과 수풀 속의 그윽한 내 집
달 떨어진 시냇물 베개 하고 눕나니,
소나무 가지는 너럭바위를 쓸고
맛난 샘물은 차갑게 솟아나네.
고요히 앉아 보면 더욱 좋아라.
빈 바윗골에 안개만 아득하고,
가슴 속의 즐거움 혼자 안다 하나니
해는 길어 나무 그림자 낮다.
선시의 대가인 경허 스님의 시는 그의 괴상망측한 행동처럼 참으로 함축적이어서 난해합니다.
우음(偶吟) 5.
경허 성우
허공이 무너지고 있다
허공에 핀 꽃이 열매를 맺는다
이 또한 봄빛인 줄 깊이 알거라
향기 짙게 날아와 꽂히고 있다
만해의 다음 한시는 경허 스님의 선시처럼 함축적이어서 좀 어려운데, 인생을 통찰한 관조의 세계를 보여 주는 듯합니다. 특히 ‘한 줄기 물에 외로운 꽃이 멀고, 몇 번 종소리에 대숲이 차다.’ 는 만해의 감성의 예민함과 함께 표현력의 미묘함까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맑은 읊음
만해
한 줄기 물에 외로운 꽃이 멀고
몇 번 종소리에 대숲이 차다.
선이 깨어진 것 알지 못하고
도리어 물건 처음 보듯 하느니
하지만 한시 <내원암에 가서>는 동양적이고 관조적인 시의 전통을 계승한 듯한데, 산사에서 녹차 한 잔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내원암에 가서
만해
달 없는 밤 산 빛만이 고이 내린 눈에 어려
겨울 모란 눈꽃송이 밤 향기를 마신다.
눈에 선한 가지 위의 쌀랑한 넋은
내 시름엔 아니 들고 만리를 간다.
다음 이태백이나 박목월 시 두 편과 만해의 <내원암에 가서>를 비교하고 동양적인 관조의 맛이 나도록 선시 한 편을 써 보세요.
산중문답(山中問答)
이백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기에
笑而不答心自閑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別有天地非人間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
불국사
박목월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 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 소리
쑥부쟁이교실 1. 자기를 찾아가는 심우시
성북동에서 심우장(尋牛莊)이란 집을 짓고 산 만해는 심우시(尋牛詩)라는 한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심우시(尋牛詩)는 중국 남송 때 선승 곽암 사원이 만들었는데, 마음 수련하는 순서를 그린 심우도(尋牛圖)에 덧붙인 시입니다. 심우(尋牛)란 소를 찾는다는 뜻으로 인간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심우도는 주로 사찰의 대웅전 외벽에 그려놓은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심우시(尋牛詩)
만해
此物元非無處尋 이 물건 원래 찾을 곳 없는 것 아니나
山中但覺白雲深 산속엔 다만 흰 구름만 깊었어라.
絶壑斷崖攀不得 깊은 골 깎아지른 벼랑 오를 수 없고
風生虎嘯復龍唫 바람 일자 범이 울고 용마저 우짖누나.
狐狸滿山凡幾多 여우 살쾡이 가득한 산 몇 번 지났을까
回頭又問是甚麽 고개 돌려 예가 어디인지를 다시 묻는다.
忽看披艸踏花跡 홀연 풀을 헤쳐 보고 꽃 자취를 밟아가다
別徑何須更他覓 다른 길을 무에 다시 찾을 필요 있으랴.
至今何必更聞聲 지금 하필 그 소리를 다시 들을까
揖白白兮踏靑靑 밝고 찬란한 모습에 읍하고 뒤따라
不離一步立看彼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서 보노라니
毛角元非到此成 털과 뿔 본디 이런 것이 아니네.
已見更疑不得渠 보았으나 잡을 수 없다 의심이 다시 들어
擾擾毛心亦難除 흔들리는 모심(毛心) 누르기 어려워라.
頓覺其轡已在手 그 고삐 내 손에 있음 단박 깨치니
大似元來不離居 이는 분명 원래부터 떨어진 적 없었든 듯.
飼養馴致兩加身 꼴 먹이고 길들이며 보호해 줌은
恐彼野性逸入塵 혹여 저 야성이 날뛰어 진속에 들어갈까 봐.
片時不待羈與絆 한시라도 코뚜레와 멍에가 없다면
萬事於今必須人 지금 모든 게 사람의 손이 필요하리.
不費鞭影任歸家 채찍 그림자(鞭影) 쓰지 않고 귀가길 맡겨두니
溪山何妨隔烟霞 산과 물 연기 노을에 막혔어도 무슨 방해가 되리.
斜日吃盡長程艸 날 저물어 긴 길의 풀을 다 먹어 치우니
春風未見香入牙 봄바람 불지 않아도 풀 향기가 입으로 들어오누나.
自任逸蹄水復山 물과 산으로 마음껏 뛰어다녀
綠水靑山白日間 종일토록 청산녹수에 노니네.
雖然已在桃林野 이 몸 비록 복사꽃 핀 들에 있어도
片夢猶在小窓間 선 꿈은 외려 작은 창문 새로 들어오누나.
非徒色空空亦空 색이 공만인 것이 아니라 공 또한 공이거늘
已無塞處又無通 막힌 곳이 없었으니 통할 것도 없구나.
纖塵不立依天劍 띠끌 세상의 불립문자 천검(天劍)에 의지하니
肯許千秋有祖宗 어찌 천추토록 조종(祖宗)이 있음을 허용하리.
三明六通元非功 삼명육통(三明六通)은 원래 힘쓸 것이 아니거늘,
何似若盲復如聾 어찌 눈멀고 다시 귀 먼 것처럼 하랴.
回首毛角未生外 돌아보니 털과 뿔이 밖으로 나지 않았는데
春來依舊百花紅 여전히 봄은 찾아와 백화가 만발하구나.
入泥入水任去來 진흙 속에도 물속에도 마음대로 오가면서
哭笑無端不盈腮 끝없이 울고 웃는 모습 얼굴에 드러내지 않네.
他日茫茫苦海裏 훗날 망망한 고해 속에서도
更敎蓮花火中開 다시금 연꽃으로 불꽃 속에 피게 하리.
법당의 벽에 그려진 심우도를 기억해 보세요. 그리고 만해의 심우시를 본떠서 방황하고 고민하면서 본 마음을 찾아가는 자기를 동물로 비유하여 시를 한 편 써 보세요. 예컨대, 소, 곰, 여우, 고양이, 개, 원숭이, 너구리 등등.

첫댓글 1.만해한용운의 동상이 현재 백담사 경내 만해기념관에 있음.
2.대표작 님의 침묵을 비롯한 시집, 작품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상징.
3.한편 1909년부터 그는 승려의 결혼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만해는 1910년 5월 승려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허락해 달라는 문건을 청원서 형식으로 중추원과 한국통감부에 진정서로 올렸다. 승려에게 결혼을 금지하라고 부처님이 가르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