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257편
신행태보 대종이 송강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성은을 입어 연주 도통제를 제수 받았는데, 이제 관작을 반납하고 태안주 악묘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아우는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제가 태산부군(泰山府君)에게 불려가는 꿈을 꾸었기에 선심(善心)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아우는 생시에도 신행태보라 불렸으니, 훗날 반드시 악부(嶽府)의 영험한 신령이 될 걸세.”
송강을 작별하고 간 대종은 관작을 반납하고 태안주 악묘로 가서 출가하여 매일 향화를 올리면서 성제(聖帝)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몇 달 후 어느 날 저녁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도반들을 청하여 작별 인사를 나누고 크게 웃으며 선종하였다. 후에 악묘에서 여러 번 영험을 나타냈기 때문에 주민들이 축원하고 대종의 신상(神像)을 세웠다.
완소칠은 관작을 받고 개천군으로 가서 도통제의 직을 수행했다. 그런데 대장 왕품과 조담이 지난 날 방원동에서 완소칠에 모욕당한 일에 원한을 품고서 누차 동추밀에게 완소칠의 과실을 고자질하였다. 완소칠이 그때 방랍의 곤룡포를 입었던 것이 비록 한때의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불량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며, 개천군은 벽지인데다 주민들이 야만적이어서 필시 모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동관이 그 사실을 채경에게 알렸고, 채경은 천자에게 주청하여 결국 성지를 내려 부임한 지 몇 달 만에 왕소칠의 관작을 삭탈하여 서민으로 돌아가게 했다. 완소칠은 도리어 기뻐하면서 노모를 모시고 양산박 석갈촌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어부로 살면서 노모를 봉양하며 60세에 천수를 마쳤다.
한편, 소선풍 시진은 경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대종이 관작을 반납하고 한가로운 삶을 구해 떠나가는 것을 보았고, 또 완소칠이 방랍의 곤룡포를 입었던 일을 가지고 모반할 의도가 있다고 하여 조정에서 그의 관작을 삭탈하여 서민으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시진은 생각했다.
“나도 전에 방랍의 부마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만약 훗날에 간신들이 알게 되면 천자께 참소하여 관작을 삭탈당하고 모욕을 받게 될 것이다. 차라리 스스로 관작을 내놓아 치욕을 면하는 것이 좋겠다.”
시진은 풍질에 걸렸다는 핑계를 대고 관작을 내놓고 창주 횡해군으로 돌아가 서민이 되었다. 여생을 즐겁게 살다가, 어느 날 홀연 아무 병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응은 중산부 도통제를 제수 받고 부임한 지 반 년 만에 시진이 한가로운 삶을 구해 떠났다는 것을 듣고, 풍탄(風癱)이라고 핑계대고 관작을 반납했다. 그리고 두흥과 함께 고향 독룡강으로 돌아가 부호가 되어 즐겁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관승은 북경 대명부 병마총관이 되었는데, 군사들이 모두 존경하고 복종하였다. 어느 날 군마 조련을 하고 돌아오다가 술에 취하여 말에서 떨어졌는데, 그것이 병이 되어 결국 세상을 떠났다.
호연작은 어영지휘사를 제수 받아, 매일 어가를 수행하였다. 후에 대군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금나라의 넷째 태자 올출을 격파하고, 회서까지 진군하였다가 전쟁터에서 죽었다.
주동은 보정부 도통제가 되어 공을 세웠고, 후에 유광세를 따라가 금나라를 격파하고 태평군 절도사가 되었다.
화영은 아내와 여동생을 데리고 응천부에 부임하였고, 오용은 홀몸이라 수행하는 동자만 데리고 무승군에 부임하였다. 이규 역시 홀몸이라 하인 둘만 데리고 윤주로 부임하였다. 그런데 앞의 일곱 정장들은 모두 죽음까지 얘기했는데, 이 세 사람은 부임한 것만 얘기하고 왜 결말을 얘기하지 않았을까? 다섯 정장들, 즉 송강·노준의·오용·화영·이규의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송강과 노준의는 경성에 머물러 있으면서 여러 장수들에게 상을 나누어주고 각기 임지로 부임해 가도록 하였다. 죽은 장수들의 가족들에게 상을 나누어주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한편, 경성으로 올라온 편장 15명을 살펴보자. 송청은 고향으로 돌아가 농민이 되었고, 두흥은 이미 이응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갔다. 황신은 청주로 부임하고, 손립은 손신·고대수와 함께 가족을 데리고 예전의 등주로 부임하였다. 추윤은 관작을 원하지 않아 등운산으로 돌아갔고, 채경은 관승을 따라 북경으로 돌아가서 서민이 되었다. 배선은 양림과 상의하여 음마천으로 돌아가 관직을 받아 한가롭게 지냈고, 장경은 고향이 그리워 담주로 돌아가 서민이 되었다.
주무는 번서에게 도술을 배웠는데, 두 사람은 전진교(全真敎) 도사가 되어 강호를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공손승을 찾아가 출가하여 천수를 마쳤다. 목춘은 게양진으로 돌아가 서민이 되었고, 능진은 포수로서 비범했기 때문에 화약국 어영으로 임용되었다.
방랍 토벌을 떠나기 전에 경성에 남았던 편장 다섯 사람을 살펴보자. 안도전은 도중에 칙명을 받고 경성으로 돌아와 태의원(太醫院) 금자의관(金紫醫官)이 되었고, 황보단은 어마감(御馬監) 대사(大使)가 되었고, 김대견은 궁전의 어보감(御寶監)이 되었다. 소양은 채경의 부중에서 사랑방 선생이 되었고, 악화는 부마 왕도위의 부중에서 늙도록 깨끗하고 한가롭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한편, 송강과 노준의는 작별하여 각자 부임하였다. 노준의는 가족이 없었으므로 수행원 몇 명을 데리고 여주로 가고, 송강은 조정에 사은하고 성원의 관원들과 작별한 다음 하인 몇 명을 데리고 초주로 부임했다.
한편, 송조(宋朝)는 원래 태종이 태조에게 제위를 물려받을 때 조정에 간신이 없도록 하겠다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휘종황제에 이르러, 황제는 어질고 밝았지만 간신들이 길을 막고 권력을 농단하여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들을 해쳤다. 당시 채경·동관·고구·양전 네 간신이 천하를 혼란케 하여 나라를 무너지게 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전수부 태위 고구와 양전은 천자가 송강과 그 장수들에게 후한 상과 관작을 내리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었다. 고구가 양전에게 말했다.
“저 송강과 노준의는 우리의 원수인데, 이제 저놈들이 도리어 공신이 되고 조정으로부터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말에 오르면 군대를 다스리고 말에서 내리면 백성을 다스리고 있으니, 우리 같은 조정 관료들이 어찌 남의 비웃음을 받지 않겠습니까? 예로부터 이르기를, ‘원한이 적으면 군자가 아니요, 독하지 않으면 대장부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전이 말했다.
“나에게 계책이 하나 있습니다. 먼저 노준의를 없애면 송강은 한쪽 팔을 잃게 됩니다. 노준의는 용맹하여 만약 송강을 먼저 없애면 필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떤 묘계인지 듣고 싶습니다.”
“여주 군사 몇 명을 시켜, 노준의가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군량을 쌓고 있는데, 모반할 의도가 있다고 추밀원에 고발하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태사부로 가서 아뢰면 채태사를 속일 수 있습니다. 채태사가 천자께 노준의의 관작을 삭탈할 것을 주청하면, 그때 사람을 보내 그를 속여 경성으로 불러들이는 겁니다. 황제께서 그에게 음식을 하사하실 때 그 안에 몰래 수은을 넣습니다. 수은이 뱃속으로 들어가면 콩팥에 탈이 나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니, 그러면 큰일은 성취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사신을 보내 송강에게 어주를 하사하되, 거기에 천천히 퍼지는 독약을 타 놓으면 반달이 못 돼 죽을 겁니다.”
“그 계책이 참으로 묘합니다!”
두 간신은 계책이 정해지자, 심복을 여주로 보내 주민 두 사람을 찾아내 소장을 써서 추밀원에 고발하게 하였다. 안무사 노준의가 군사를 모으고 말을 사들이며 군량을 쌓고 있는데, 모반할 의도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또 노준의가 사람을 초주로 보내 안무사 송강과 연계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추밀원의 동관 역시 송강 등을 원수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소장을 가지고 태사부로 가서 아뢰었다. 채경은 소장을 보고 관원들을 모아 의논하였다. 그때 고구와 양전도 가담하여, 네 간신은 계책을 정하고 고발인을 데리고 대궐로 들어가 천자에게 아뢰었다. 천자가 말했다.
“짐이 생각건대, 송강과 노준의는 사방의 역적을 토벌하느라 10만 군사의 병권을 쥐고 있었지만 한 번도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바른 길로 돌아왔는데, 어찌 배반하겠는가? 과인이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