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樂園)같은 일상과는 거리가 먼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낙원동(樂園洞)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국내 최초로 노인들을 위한 실버영화관이 허리우드극장 4층 클래식관에 문을 연 이후 새로운 풍속도다. 만 57세 이상이면 2000원 으로 최신작 영화나 추억의 명화를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시민 평균 정년이 만 57세로 전년 이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했다.
노인인구가 급속하게 늘고 있으나 어른들이 즐길만한 실버문화는 빈약한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시 노인욕구 조사에 따르면 ‘문화 활동에 대한 욕구’가 28.4%로 나타나 건강욕구(38.4%) 다음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전통 문화 행사나 대중가요 콘서트 등의 다양한 노인 문화 중 ‘영화’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08 문화향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1년 간 영화 등을 관람한 60대 이상의 연령층은 26.7%에 불과하여 나이가 들수록 노인들의 문화 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두러났다.
퇴직 언론인 단체의 현장르포 청탁을 받고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노인복지센터가 주관하는 실버영화관을 찾았다. 소규모 복합관 형태로 운영되는 멀티플레스 영화관과는 달리 300석 규모의 단관(單館)으로 ‘옛날 식 극장’에 온 듯 편안하고 넉넉한 분위기다.
극장 노비에는 휴식을 취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을 마련해 놓았다. 영화관 입구에 걸린 ‘눈높이에 맞는 노인을 위한 영화관,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커다란 안내문이 눈길을 끈다. ‘종로는 50~80대 노인들의 영화 1번지다. 종로에 오면 무언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들뜨게 했던 이곳에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면서 ‘노인들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그 당시 요금으로 상연하여 다시 청춘을 돌려주고 싶다’는 요지다.
실버영화관 대표를 만났다. “종로는 과거 ‘영화 1번지’로 지금의 어르신들이 젊었던 시절 추억과 향수가 서린 곳” 이라며 “어르신들의 젊은 시절 추억을 되찾아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되도록 힘쓰고 있다”고 말한다. 상영 프로그램은 노인 관련 영화, 최근 개봉 흥행 영화 외화 히트 영화 등 어르신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선호하는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상영시간도 오전 10시 30분, 낮 12시 30분, 오후 2시 30분 세 차례로 어르신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단순하게 편성해 놓았다. 어버이날, 노인의 날 등 특정일을 포함, 월 1회 저소득 노인을 초청하여 무료 상영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입장권을 받는 분도 어르신이다. 지정된 자석이 있으나 편한 대로 띄엄띄엄 앉아 있다. 대부분 혼자 앉아있지만 부부와 친구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영화 관람을 마치고 정답게 걸어 나오는 두 할머니에게 소감을 물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니 젊어진 기분” 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입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화를 본 어르신들의 즐거운 표정을 보면서, 노인들이 즐길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과 문화정책이 더욱 절실함을 피부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