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여 안녕!
아름다운 저 바다는 없지만 아름다운 남강이 있는 진주는 이태리 쏘렌토 같은 곳이다. 거기서 나는 소싯적부터 트로트 음악을 듣고 자랐다. 밤에 남강변 나가면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의 '추억의 소야곡'이나 '애수의 소야곡'을 들을 수 있었고, 쎅스폰으로 불어제끼는 이봉조의 '밤안개'나 '떠날 때는 말없이'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소년 시절 형님 영향으로 국산 영화는 체류탄 영화, 국산 가요는 '뽕짝'이라고 무시했다. 노래도 영화 <하이눈>의 주제곡이나 '돌아오지 않는 강', '모정'을 원어로 불렀다. 그러나 산레모가 칸소네의 본고장이라면, 진주는 트릇트의 본고장이다. 나는 엔간한 트로트 노래는 다 할 줄 알았다. '애수의 소야곡' 부를 줄 모르는 사람은 진주 사람 아니다.
그런데 서울 올라와서 얄궂은 음악을 만났다. 클래식이다. 모차르트나 바그너는 누군가. 모차르트면 모차르트지 '협주곡 21번 2악장'은 뭔가. 바그너면 바그너지 '탄호이저 서곡'은 뭔가. 쇼팽도 그럿다. '발라드 제1번'은 뭔가. 차이콥스키도 '교향곡 제6번 제1악장'은 뭔가. 도대체 모차르트의 '협주곡 21번 2악장 ',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쇼팽의 '발라드 제1번',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6번'은 왜 생겨나서 나를 괴롭히는가.
당시 종로 2가에는 <디 세네>와 <뉴월드>라는 음악실이 있었다. 나는 미식축구 선배들과 거길 들락거렸다. 거기서 '다이애나'니 '알디라'니 '하이 눈'이니 하는 팝송을 만났다. 그건 나도 제법 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슈벨트의 '보리수', 이바노비치의 '도나우의 잔물결',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같은 세미크라식 곡도 안다. 음악실에서 영원히 그런 곡만 틀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후에 내가 겪은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음악실에선 간혹 클래식을 틀었다. 나는 그 클래식이란 게 싫었다. 목관악기, 금관악기, 현악기 삐꺽거리는 소리조차 싫었다. 한 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소리의 반복에 손사래를 쳤다. 어서 곡이 끝나기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런데 서울 친구들은 달랐다.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꼬리를 치며 좋아했다. 어떤 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가 무슨 심포니 지휘자라도 되는 양 두 손을 허공에 휘젓기도 했다. 클래식만 나오면 그들은 유식했고, 나는 무식해져 버렸다. 나는 원수 같은 클래식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고 말았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기 낚는다. 그래 어느 날 모종의 결심을 했다. 방과 후 학교 클래식 강좌에 나가서 6개월 단기 코스로 클래식을 배웠다. 크라식이 무슨 연립 3차 방정식이냐. 아무리 어렵고 난해해도 6개월만 쓴 한약 마시듯 참고 견디면 빛을 보리라. 한방울 두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섬돌에 구멍을 내지 않더냐. 배우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6개월 지나도 감동은 낙동강 오리알이요, 나는 개똥밭의 참외였다. 얻는 게 없었다.
그 이유를 한참 생각해보니 짚이는 게 있었다. 나는 원래 산자수명한 고장에서 자란 사람이다. 청아한 물소리, 숲 속의 새소릴 듣고 자랐고, 여름 남강의 물소리, 겨울 남강의 쨍쨍 얼음 깨지는 소리 듣고 자랐다. 그런 소리가 자연의 원음이다. 심포니란 것은 그 원음을 흉내 낸 불완전한 인공 소리다. 그래 처음부터 원음을 듣도록 설계된 내 귀는 인공 소리를 거부한 것이다. 서양 깽깽이 소리를 무슨 신줏단지처럼 모실 이유가 하처에도 없었다. 미친년 널 뛰듯 궁둥이 덜썩거릴 필요도 없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우리가 몸에 맞지도 않는 서양 옷 입고, 얼굴에 맞지도 않는 서양 분장 하고, 아랫배 부풀리고 서양식 발성으로 '축배의 노래'나 '산타루치아'를 아무리 불러봐도, 우리는 애초에 파바로치나 마리아 칼라스가 아니다. 우린 부자연스럽다. 눈에 거슬릴뿐더러 민망스럽고 창피한 짓이다. 그래 '에라 이딴 놈의 콩나물 대가리 모른다고 인생에 무슨 탈이라도 나느냐?' 나는 시원하게 클래식과 손을 흔들고 작별 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개미구멍에 방죽 무너지듯 클래식에 대한 환상을 깨버렸다. 그 후 나는 해금이나 피리 소리가 자연의 원음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드디어 제 것 귀한 줄 안 것이다. 드디어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타난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노래방 곡목을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나애심의 <미사의 종>으로 과감히 바꾸었다. 그 얼마나 고고하고 용감한 선택이었던가. 이난영의 노래는 강 건너 등불이다. 세월 저쪽의 아련한 추억이 묻어있다. 그 후 게리 쿠퍼와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한 <하이눈> 주제곡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 가사는 잊었고, 'There is a river called the River of No Return' 마릴린 몬로가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기타를 치며 부르던 애절한 노래 'There is a river called the River of No Return' 가사도 잊어버렸다.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 제니퍼 존스가 나오던 영화 <모정>의 그 감미롭던 코러스도 잊어버렸다. 40대 되자 직장 부하들과 회식을 하면서 나는 아득한 세월 저쪽 1960년대 노래만 불렀다. 그들이 부르는 랩이니 소울이니 하는 건 내게 감정도 박자도 맞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 일평생 부르는 노래는 20대 때 즐겨 부른 노래란 걸 깨달았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라고 선언했다. 신세대는 신세대다워야 하고, 구세대는 구세대다워야 한다. 모든 세대는 공존의 가치가 있고, 서로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한줄기 서광을 만났다.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이 한류로 동서양을 휩쓸어버린 것이다. 그들의 선배는 누구고. 그 뿌리는 어딘가. 남인수요 이난영이요, 송민도요 나애심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드디어 근본 뿌리 사랑한 사람에게 광명천지가 온 것이다. 과연 용기 있는 자는 성공을 얻는다. 옛 것 고고히 보존하면서 나의 노래만 불렀던 나를 지금 나는 존경한다. 그리고 '클래식이여 안녕!' 클래식과 작별인사를 고해버렸다.
(수필문학 2013년 연간 대표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