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 곡목설(曲木說) 영원한 인간사랑 ・ 2024. 4. 7. 2:40 URL 복사 통계 본문 기타 기능 한국고전 - 곡목설(曲木說) 인기멤버 2024.03.27. 01:00조회 0 댓글 0URL 복사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곡목설(曲木說) 요약 「곡목설」은 ‘굽은 나무 이야기’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 문신인 계곡(溪谷) 장유(張維)가 지은 우언적 설 작품으로 『계곡집(谿谷集)』에 실려 전한다. 장생(張生: 목수)과 장자(張子: 작가)라는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선비)가 굽는 것은 이해(利害)에 눈이 어둡기 때문이며, 곧은 선비보다는 굽은 선비가 더 많이 쓰이는 세상이라고 잘못된 세상을 개탄하는 내용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계곡 장유가 지은 「필설(筆說)」, 「풍죽설(風竹說)」,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 「해구불하설(海鷗不下說)」, 「김생수홍자설(金生壽弘字說)」, 「유생명자설(柳生名字說)」, 「복전설(福田說)」, 「곡목설(曲木說)」, 「청백안설(靑白眼說)」, 「화당설(化堂說)」 등 열 편의 설 작품 중의 하나이다. 제목 ‘곡목설’이란 ‘굽은 나무 이야기’라는 뜻이다. 설 문학은 우리나라 한문 산문 중 상위 갈래로는 의론체(議論體: 논리와 논지가 정연한 글) 산문에 속하며, 중간 갈래로는 논변류(論辨類: 사리를 분석하고 시비 변별을 위주로 하는 글)에 속한다. 다시 설(說)은 ‘직서적 설(直敍的 說: 논리를 위주로 제재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과 주장을 개진하는 글)’과 ‘우언적 설(寓言的 說: 글의 전반부에 허구적 상황을 설정하고 후반부에 유추된 결론을 바탕으로 새로운 자신의 뜻을 밝히는 글)’로 나뉜다. 한문학 중 설 양식의 일반적 의미는 ‘說은 풀어 설명함[釋]’이며(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 ‘說은 푸는 것이요, 서술하는 것이니, 의리를 해석하여 자기의 뜻을 서술하는 것’(서사증(徐師曾)의 『문체명변(文體明辯)』)에 의거하면, 가장 뚜렷한 특징은 논리를 바탕으로 ‘필자만의 독특하고 새로운 주장’이 있어야 한다. 우언적 설 작품의 일반적인 구성상의 분류는 1단 구성, 2단 구성, 3단 구성 작품들로 나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보편적인 구성은 3단 구성이다. 곧 3단 구성이란 일화부(逸話部: 또는 작가가 관찰한 객관적 상황)에 이어, 설리부(說理部: 일화에 대한 작가의 이치 구명), 그리고 마지막 창작 의도 제시부로 구성된다. 3단 구성의 경우, 1단의 일화부분은 허구적 성격을 띠면서 단형 서사체적 특성과 우언적 특성으로 인해 문학 예술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 한문 산문 중 전(傳)과 함께 실용문이 아닌 문학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곡목설」은 이러한 구성상의 분류로는 이웃의 ‘장생’이 하는 말에 ‘장자’가 심화시켜 설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의론적 문대(問對)로 이루어진 1단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전개 상으로는 3단 구성을 취하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 등장하는 장생과 장자는 작가의 성씨와 같으면서 내용 전개를 위해 설정한 허구적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작가인 장유는 어지러운 광해군 시절에 과거에 급제하여 입조하고, 이어 인조반정에 가담하였다. 이어 병자호란 때 공조판서로 강화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곧 내우외환으로 격동치는 정국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파직과 복직을 거듭하면서도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상촌(象村) 신흠(申欽), 택당(澤堂) 이식(李植)과 더불어 조선 사대가(四大家)로 문명이 높았던 작가는 이 글에서 그러한 나라의 혼란이 무엇 때문인가를 암시 풍자하는 글이다. 전편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뉘는데, 서두 단락에서는 『장자(莊子)』의 산목(山木)(『장자』-外篇)과 유사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두 번째 단락에서 쓸모없는 ‘구부러진 나무[曲木]’로부터 유추하는 내용은 어찌하여 굽은 나무가 되고 굽은 사람이 되는가를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판이하게 다르다. 마지막 셋째 단락에서는 곡목은 서투른 목수에게서도 쓰이지 못하고 버려지나 굽은 사람은 비록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도 버려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삼공육경과 대부가 되어 조정에서 거닐고 있는 세상이라고 한다. 나무가 굽은 것은 쓰이지 못해서 항상 불행하나, 오히려 사람이 굽은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며, ‘굽은 선비가 굽은 나무보다 많은 세상’을 풍자·비판하는 글이다. 등장인물 장생 : 이웃에 살면서 집을 짓고자 산의 나무를 베러가서 무덤가의 나무가 곧은 나무로 알고 베려다가 굽어지고 휘어져서 쓸모없음을 알아차리고 도끼를 던져버린다. 이어 어떻게 곧은 나무가 되고 사람은 어떻게 곧은 사람이 되며, 굽은 사람은 세상에 처하면서 물욕과 이해가 안식을 어둡게 하여 초심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관찰력과 판단력이 빼어난 인물이다. 장자 : 장생의 말을 이어받아 굽은 자가 죽음을 면할 뿐만 아니라 버려지지 않고 사는 것은 요행 때문이라 하면서 집을 조정에, 집 짓는 재목을 나무에 비유하여, 집의 재목에는 굽은 나무가 쓰인 것을 보지 못했는데, 오히려 조정에서는 굽은 사람이 고관대작이 되어 있다면서, 굽은 나무보다 굽은 선비가 많은 나라의 현실을 풍자 개탄하는 인물이다. 작품전문
이웃에 장생(張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장차 집을 짓고자 하여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려 하는데, 무리지어 서 있는 나무들이 모두 굽어 꼬부라지고 비뚤어져 쓰기에 적당치 않았다. 그런데 산의 무덤에 있는 나무 하나는 앞에서 보아도 바르고 빼어나며, 왼쪽에서 보아도 빼어나고 오른 쪽에서 보아도 역시 빼어나서, 좋은 재목이라고 여기고 도끼를 들고 그 나무에 다가가서 뒤에서 본즉 휘어지고 굽어 있었다. 이에 도끼를 버리고 탄식하며 이르기를, “안타깝다. 나무의 재목됨은 보아서 쉽게 살필 수 있고 택하여 쉽게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나무는 내가 세 번씩이나 살폈으나 그것이 재목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했다.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 두꺼운 얼굴과 깊은 마음이야. 그의 말을 들으면 빛나고 그 얼굴을 보면 착하며, 그 작은 행동을 살피면 삼가하니, 군자라 여기지 아니할 것이 없으며, 또 큰 변란을 밟게 되면 큰 절개로 임한다. 그런 연후에야 심중을 볼 수 있으니, 나라가 무너지느냐 영구하냐 하는 것도 이로써 말미암는다. 또 나무가 생겨나서 소나 양의 밟힘과 도끼나 자귀의 해침이 없어야 하며, 비와 이슬의 자양분으로 밤낮으로 자라나, 마땅히 그 빼어남이 특별하여 곧음을 이룬다. 그러나 굽음이 있으면 재목 못됨이 이와 같이 심한데, 하물며 사람이 세상에 처함에 물욕이 그 참됨을 어지럽히고, 이해(利害)가 그 안식(眼識)을 어둡게 한다. 그래서 그의 천성을 굽게 하고 그 초심(初心)을 숨기는 까닭이 되어 밑바탕을 이길 수 없으니, 그리하여 기이하고 쇠하여 지는 사람은 많아지고 바르고 곧은 사람은 적어지는 것도 괴이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고, 장자(張子)에게 말하니, 장자가 이르기를, “좋구나. 살펴봄이여. 비록 그러하나 나도 역시 할 말이 있다. 홍범(洪範: 하(夏)나라 우(禹)임금 때 만들어진 아홉 구절로 된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에서 오행(五行)을 논하였는데, 나무는 굽거나 곧으니, 곧 나무의 굽은 것은 재목이 아니다. 심성(心性)도 그러하니 사람이 태어나서는 곧은데, 그 곧음을 잃고서 살아가는데도 요행이 죽음을 면한다. 그런즉 사람이 바르지 않는 자가 죽음에서 면하게 되는 것도 역시 요행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서 나무가 굽은 것은 비록 기술이 미천한 장인이게도 일찍이 취해지지 않음을 보았다. 사람으로 굽은 자는 비록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는 아직까지 버려지지 않았다. 그대는 또한 큰집에서 이러한 것을 볼 것이다. 나무가 마룻대가 되고, 기둥이 되고, 서까래가 되고, 그릇이 된 것들에서, 구름같이 굽어있고 물결같이 휘어진 것들에서도 굽은 재목이 있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또한 조정에서 살펴보면, 그것(굽은 선비가)이 삼공(三公: 가장 높은 벼슬로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되고, 육경(六卿: 조선 시대 육조의 판서)이 되고, 대부(大夫)와 선비가 되고, 고위고관(高位高官)이 되어 조정을 거니는 자들에게서 곧은 도가 있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처럼 나무가 굽은 것은 항상 불행하나 사람이 굽은 것은 항상 행복하다. 말에 이르기를, ‘곧기가 줄과 같으면 길가에서 죽고, 굽기가 갈고리와 같으면 공후(公侯)를 받든다.’라고 했으니, 이것이 굽은 선비가 굽은 나무보다 많은 까닭의 조짐인 것이다.” 라고 했다. 작품 줄거리 이웃의 장생이란 사람이 집을 짓고자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갔는데, 모두 꼬부라지고 휘어져 비뚤어져 쓸모없었는데, 무덤가의 나무 한 그루가 곧은 것처럼 보여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굽은 나무여서 도끼를 던지면서 탄식하며 장자에게 말하기를, 나무도 세 번 씩이나 살펴보아도 재목감인 줄을 알 수 없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얼굴과 말씨와 행동을 삼가고 꾸미니 알기 어렵고 큰 변란을 당해서 절개로 오랜 시간 임한 것을 본 다음에라야 군자임을 알 수 있다. 나무가 처음 생겨난 후 소나 양의 밟힘과 도끼의 해침이 없어야 하며 비와 이슬을 맞아 자라면서 특별함이 있어야 곧은 나무가 된다. 하물며 사람도 세상에 처해서 물욕과 이해에 눈이 어두워져 초심이 흐려지니 곧은 사람이 적은 것도 괴이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장자가 장생의 살핌을 칭찬하고 이르기를. 홍범의 오행에서 나무가 굽거나 곧은 것은 천성이 그러한 것이나, 사람의 천성은 태어날 때에는 곧은데 굽어서도 죽음을 면하는 것은 요행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무가 굽은 것은 미천한 장인에게서 버려지나 굽은 사람은 아직 버려지지 않는다. 곧 집의 재목으로 쓰인 나무에는 굽은 나무가 없으나, 조정에서는 곧은 선비가 고관대작이 되어 거닐고 있음을 보지 못했다. 이처럼 곡목은 항상 불행하나 사람이 굽은 것은 늘 행복하다. 옛말에 이르기를 ‘곧기가 줄[絃]과 같으면 길가에서 죽고 굽기가 갈고리와 같으면 공후를 받든다.’고 했으니, 이것이 굽은 선비가 굽은 나무보다 많은 까닭인 것이다. 라고 말했다. 작품 속의 명문장
“사람이 세상에 처함에 물욕이 그 참됨을 어지럽히고 이해가 그 안식(眼識)을 어둡게 한다.”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 사리사욕(私利私慾)에 얽매이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구절.
“곧기가 줄[絃]과 같으면 길가에서 죽고, 굽기가 갈고리 같으면 공후(公侯)를 받든다.” 인간 세상에서는 부정불의(不正不義)한 사람이 더 인정받는 사회를 풍자하는 구절. 작품읽기 &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곡목설(曲木說)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2013. 11., 양현승, 강명관, 위키미디어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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