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였지만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서슬이 퍼런 권력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당당하게 옳은 소리를 외쳤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은 도망자가 되어 무기력하게
호렙산 동굴에 홀로 서 있을 뿐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주님께서는 ‘산을 할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 속에도
‘온 땅을 뒤흔드는 지진’ 속에도 계시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불’ 속에도 계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나타나십니다.
세상을 뒤흔드는 바람, 지진, 불은 엘리야 예언자의 역동적인 활동을 상징하는 듯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역동적인 상황에서 엘리야에게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으셨고
그 모든 것이 지난 뒤 조용히 침묵 가운데 오셨습니다.
교회가 정의와 평화, 인권, 공동선, 환경, 생명 등의 문제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일 때
엘리야와 같이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목소리를 내어도 세상은 바뀌기는커녕 듣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소리를 외친 대가는 거센 비난과 싸늘한 비웃음과 대중이나 권력의 압박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묻게 됩니다.
교회가 행한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가?
그 일 안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셨는가?
그러한 실망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는 침묵 안에서 조용히 당신 계획을 준비하십니다.
당신의 뜻을 이룰 새로운 임금과 새로운 예언자를 세우시며 구원사를 끌고 가십니다.
이 세상의 정의와 평화가 반드시 내 손으로 그리고 지금 내 세대에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계획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 계획은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음을 믿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하느님의 일을 이어 가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것이고
그들을 통하여 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는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