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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눈물 / Tears In Heaven"
- 에릭 클랩튼 / Eric Clapton
Would you know my name 너는 내 이름을 알아낼 수 있겠니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Would it be the same 너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난 강해질 거고 열심히 살아갈 거야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난 여기 너처럼 천국의 사람이 아니니까
Would you hold my hand 너는 내손을 잡아 줄 수 있겠니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Would you help me stand 너는 내가 굳건히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니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 난 밤이든 낮이든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갈 거야
cause I know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 난 여기 천국에 그대로 머물러있을 수도 없을 테니까
Time can bring you down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낙담하게 될 때가 있고
Time can bend your knees 세월이 흐르다 보면 무릎을 꿇는 때도 있지
Time can break your heart 살다 보면 가슴아픈 일이 있는 거란다
have you begged 구걸을 하기도 하고
and pleaded begged 간청을 하기도 하지
and pleaded 또 애원하는 일도 있는 거란다
Beyond the door 그 천국의 문 너머에는
There's peace I'm sure 분명히 평화가 있을거라고 확신한단다
And I know 그리고 난 알고 있단다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 그곳 천국에서 더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 일이 없다는 걸
Would you know my name 너는 내 이름을 알아낼 수 있겠니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Would it be the same 너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If I saw you in heaven 내가 천국에서 너를 만난다면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난 강해질 거고 열심히 살아갈 거야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난 여기 너처럼 천국의 사람이 아니니까
영국의 3대 기타리스트이며 싱어 송라이터인 '에릭 클랩튼(Eeric Clapton, 1945-)'은 영국에서 사생아로 태어났고 외할머니 슬하에서 외롭게 자라났습니다. 외할머니가 사준 기타를 연주하면서 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유년을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지냈던 것입니다. 그의 음악은 처음 블루스에서 시작하여 컨트리, R&B, 팝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혁신적인 음악활동을 하였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존 메이올(John Mayall, 1933-)'의 '존 메이올 앤드 더 블루스브레이커스(John Mayall And The Bluesbreakers)' 밴드 그룹, '야드버즈(The Yardbirds)' 밴드 그룹과 함께 블루스 록의 창시자로 손꼽혔습니다. 그리고 1966년에 그가 결성한 '크림(Cream)' 밴드 그룹과 함께 하드 록의 창시자로 손꼽히기도 하였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지미 페이지(Jimmy Page, 1944-)', '제프 벡(Jeff Beck, 1944-)'과 더불어 세계 3대 기타리스트로 불려졌고 지구촌 곳곳에 그의 명성을 널리 떨친 세계적인 뮤지션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이며 작곡가로 록 역사상 가장 추앙 받는 인물 중 한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역사상 유례없는 유일한 3중 헌액자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기타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고로 영향력 있는 블루스 록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하였던 것입니다.
에릭 클랩튼은 1970년에 솔로 앨범 'Eric Clapton' 발표하였고 수록된 '자정이 지나면(After Midnight)', '진정하세요(Easy Now)', '블루스 파워(Blues Power)' 등의 곡에 이어 앨범 '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한눈을 판 사이에(I Looked Away)', '벨 보텀 블루스(Bell Bottom Blues)', '난 당신 거예요(I Am Yours)', '언제든(Anyday)', '사실대로 말하면(Tell The Truth)', '레일라(Layla)', 1974년에는 앨범 '461 Ocean Boulevard'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내게 힘을 주었어요(Give Me Strength)', '난 보안관을 쐈어(I Shot The Sheriff)', '준비하세요(Get Ready)', '사랑을 키우세요(Let It Grow)' 등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는 앨범 'There's one In Every Crowd'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날 비난하지 마세요(Don't Blame Me)', '아름다운 파란 눈(Pretty Blue Eyes)', '하이(High)', 1976년에는 앨범 'No Reason To Cry'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카니발(Carnival)', '우리 모두의 지난 시절(All Our Past Times)', '옛 친구(Hellow Old Friend)', 이중 문제(Double Trouble)', 1977년에는 앨범 Slowhand'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코카인(Cocaine)', '오늘 밤 최고예요(Wonderful Tonight)', '내 곁에 누워요, 샐리(Lay Down, Sally)', '다음번에 그녀를 만나면(Next Time You See Her)', 1978년에는 앨범 'Backless'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롤 잇(Roll It)', '날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Tell Me That You Love Me)', '이른 아침(Early In The Morning)', '골든 링 / 금반지(Golden Ring)' 등의 곡을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비틀스(Beatles, 1960-1970)'의 멤버들과도 친분이 두터웠으며 특히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과는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조지 해리슨의 부인인 '패티 보이드(Pattie Boyd, 1944-)'와 조지 해리슨이 서로 불화가 심해졌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9년에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결혼 생활에 들어갔고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패티 보이드는 영국의 모델,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던 그녀의 나이 19세 때인 1964년에 '리처드 레스터(Richard Lester, 1932-)'가 감독을 맡았고 비틀스와 비틀스의 거의 모든 음반의 프로듀싱을 담당했던 '조지 마틴(George Martin, 1926-)'이 음악을 맡은 비틀스의 첫 주연 영화 '어 하드 데이스 나이트(A Hard Day's Night, 1964)'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패티 보이드는 비틀스 멤버인 조지 해리슨과 가까워졌고 이후 둘은 1966년에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릭 클랩튼은 조지 해리슨의 초대로 그의 집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소문에 의하면 에릭 클랩튼은 친구의 부인인 패티 보이드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었고 금지된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에릭 클랩튼이 부른 사랑의 발라드로 유명한 감미롭고 로맨틱한 노래인 '레일라(Layla)'의 곡은 당시에는 밝히지 않았고 비밀에 부쳤지만 후에 이 곡을 '패티 보이드의 애칭'이라고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레일라(Layla)'는 7세기 경 고대 페르시아의 러브스토리인 '레일라와 매드맨(Layla and Majnun / The Madman And Layla)'에서 인용되었다고 합니다. '레일라(Layla)'라고 하는 여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이들 둘의 결합은 조지 해리슨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조지 해리슨의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온 원인이 바로 이들의 불륜이었다고 주위에서 말이 많았던 것입니다.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이 인도 음악에만 정신이 팔려 자기에게 소원하게 되자 그의 관심을 돌리려고 에릭 클랩튼과 가까이 했던 것이 그만 사랑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변명하기도 하였습니다.
풍문에 따르면 에릭 클랩튼이 패티 보이드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쓰라린 가슴을 혼자서 움켜쥐어야만 했던 괴로운 마음을 달래면서 만든 노래가 '레일라(Layla)'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그가 그녀를 너무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는 말이 과연 사실인가 봅니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도 10년을 채우지 못하였습니다. 에릭 클랩튼의 심한 주벽과 패티 보이드의 분에 넘치는 사치, 지나친 몸치장 등으로 별거에 들어갔고 결국 이들의 관계도 오명만 남긴 채 1988년에 파국으로 끝을 맺고 말았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순탄치 않은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독감마저 자기가 스스로 떨쳐내지 못하고 술과 마약에 빠져 뒷골목을 헤매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이탈리아 투어 공연에서 이탈리아의 사진 작가이며 여배우로 활동 중인 '로리 델 산토(Lory Del Santo, 1958-)'와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그녀와 결혼도 했으며 그의 생애 첫 아들인 '코너 클랩튼(Conor Clapton, 1986-1991)'도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술과 마약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에릭 클랩튼은 로리 델 산토와의 사이에서 원만한 가정생활을 꾸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고 끝내는 별거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로리 델 산토와 함께 떠난 그의 아들 코너 클랩튼은 뉴욕 맨하탄(ManHattan, New York)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그의 아들 코너 클랩튼을 끔찍이 사랑하였고 별거 중에도 아들의 안부를 묻는 일을 단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의 아들 코너 클랩튼을 위해 술과 마약을 말끔히 끊겠노라고 신에게 여러 번 맹세까지 했지만 번번이 그의 결심은 어긋나기 일 수였다고 합니다.
콘서트를 끝내고 걸어나오던 에릭 클랩튼에게 불길한 예감이 감도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보, 당신 코너를 데려갔지요! 방금 발코니에서 놀고 있던 코너가 보이질 않는다는군요...' 울먹이는 로리 델 산토의 목소리에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칠흑 뿐이었습니다.
1991년 그의 아들 네 살배기 코너 클랩튼은 뉴욕 맨하탄의 53층 아파트 발코니를 아빠를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정부가 청소를 하기 위해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그녀가 한눈을 판 사이에 열려진 창문을 넘어 추락사하고 만 것입니다.
거듭되는 이혼과 늦게 얻은 아들, 아직 철들지 않은 아들의 죽음에 에릭 클랩튼은 자신이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일들이며 이 모든 것이 못난 자신의 소행이라고 몹시 자책하면서 그는 깊은 나락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고로 자식을 잃은 슬픔에 망연자실한 로리 델 산토가 미국의 뉴스 쇼 '엔터테인먼트 투나이트'에 출연하여 밝힌 얘기입니다. 하루는 네 살배기 아들 코너가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면서 엄마에게 '아빠 사랑해요'라는 글씨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달라고 응석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사고가 일어나기 며칠 전에 코흘리개 아들 코너가 꼭꼭 눌러 쓴 '사랑해요(I love you)'의 편지를 에릭 클랩튼에게 부쳤고 그 후 이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 합니다. 에릭 클랩튼은 아들의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우편함에 꽂혀 있는 사랑했던 아들이 보낸 사랑의 편지 '사랑해요(I love you)'를 펼치더니 믿기지 않는 아들의 죽음에 다시 한번 통곡하였다고 합니다.
비통의 나날을 지새운 에릭 클랩튼은 아들 코너 클랩튼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지금 흐르고 있는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의 곡을 작곡하였고 1992년에 발표한 사운드 트랙 앨범 'Rush(Soundtrack)'에 수록하였으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날 도와주세요(Help Me Up)',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어요(Don't Know Which Way To Go)' 등의 곡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곡들은 1991년에 미국 여성 감독인 '릴리 피니 자눅(Lili Fini Zanuck, 1954-)'이 감독을 맡았고 에릭 클랩튼이 음악을 맡아 마약 범죄자들을 소탕하기 위해 마약 조직에 잠입한 수사관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러쉬(Rush, 1991)'의 O.S.T. 테마곡으로 선정되었으며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앨범 'Unplugged'가 발표되었고 수록된 '사인(Signe)', '외로운 방랑자(Lonely Stranger)', '올드 러브(Old Love)' 등의 곡도 크게 히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에릭 클랩튼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그 당시 그래미상 심사위원들의 눈시울도 뜨겁게 적셔주었나 봅니다. '기타의 신'으로 불리어진 에릭 클랩튼의 앨범 'Rush-Music From The Motion Picture'와 앨범 'Unplugged'는 199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압권 그 자체였습니다. 이 앨범으로 '올해의 음반(Record of the year)' 부문 상과 '천국의 눈물(Tears In Heaven)'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 및 '올해의 남성 팝 보컬(Male Pop Vocal Performance of the year)' 부문의 상을 석권하는 등 실로 주요 부문을 독식했고 그래미 어워드를 온통 에릭 클랩튼의 독무대로 만든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전세계 언론들도 에릭 클랩튼의 대대적인 수상 소식과 함께 역경을 딛고 오뚜기처럼 일어선 뮤지션의 인생역전 드라마까지 소개되면서 지구촌 곳곳에 에릭 클랩튼 열풍이 일었고 그와 우리 모두는 천국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1996년에 미국의 '존 터틀타웁(Jon Turteltaub, 1963-)'이 감독을 맡았고 '토마스 뉴먼(Thomas Newman, 1955-)'이 음악을 맡은 영화 '페노메논(Phenomenon, 1996)'의 O.S.T. 테마곡 '세상을 바꿀 수만 있다면(Change The World)'의 곡을 크게 히트하였으며 함께 출시한 싱글 아일랜드 민요 '대니 보이(Danny Boy)'의 곡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팝 아티스트, 록,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은 1997년 역사적인 첫 내한 공연을 가졌습니다. 그 후 10년만인 2007년에 두 번째 내한 공연을 가졌고 2011년 2월에는 투어 공연의 일환으로 내한하였으며 블루스, 컨트리, 팝, R&B 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1998년에는 앨범 'Pilgrim(Eric Clapton Album)'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내 아버지의 눈(My Father's Eyes)', '슬픔의 강(River Of Tears)', '필그림(Pilgrim)', '깨진 마음(Broken Hearted)', '서커스(Circus)', '그녀는 사라졌어요(She's Gone)', 2000년에는 미국의 보컬, 블루스 기타리스트이자 리듬 앤 블루스의 거장인 '비비 킹(B. B. King, 1925-)'과 함께 앨범 'Riding With The King'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10년의 세월(Ten Long Years)', '3시 블루스(Three O'clock Blues)', '옛날 옛적(Days Of Old)', '내 마음이 망치처럼 뛸 때(When My Heart Beats Like A Hammer)', '비가 오거나 아니면 해가 뜨거나(Come Rain Or Come Shine)' 2005년에는 앨범 'Back Home'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너무 피곤해요(So Tired', '레볼루션(Revolution', '백 홈(Back Home)', 2006년에는 미국의 가수, 작곡가이자 기타의 명인인 '제이 제이 케일(J J Cale, 1938-2013)'과 함께 앨범 'The Road To Escondido'를 발표하였고 수록된 '데인저(Danger)', '전쟁이 끝날 때(When This War Is Over)', '그 건 쉬어요(It's Easy)', '하드 투 스릴(Hard To Thrill)', '강을 타고(Ride To River)', 2010년에는 앨범 'Clapton'을 발표하였고 수록된 '혼자 여행(Travelin' Alone)', '흔들 의자(Rocking Chair)', '다시 그대 곁에(Run Back To Your Side)' 등의 곡을 많은 사랑과 함께 크게 히트하였습니다. 2014년에는 지난 2013년에 세상을 떠난 제이 제이 케일을 위한 헌정 앨범 'The Breeze: An Appreciation Of J J Cale'을 발표하였고 많은 사랑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2004년에 대영제국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 3등급 CBE를 런던 버킹엄 궁전(Buckingham Palace)으로부터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대영제국 훈장은 1917년 6월 4일 대영제국의 '조지 5세 왕(King GeorgeⅤ)'에 의해 시행된 기사단 훈장을 말합니다. 시민(Civil) 분야와 군인(Military) 분야로 나뉘어 수여되었으며 각 분야별 5등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등급에 따라 수여될 수 있는 최대 인원수가 정해져있습니다. 대영제국 훈장은 '1등급 GBE 남성(Male):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1등급 GBE 여성(Female): Dame Grand Cross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2등급 남성(Male): KBE(Knight Command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2등급 여성(Female): DBE(Dame Command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3등급 CBE(Command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4등급 OBE(Offic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5등급 MBE(Member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영제국 1, 2등급 훈장을 수여받는 수훈자의 이름에는 별도의 칭호인 남성의 경우 '경(Sir)', 여성의 경우 '여사(Dame)'를 붙이기 때문에 대영제국 1, 2급 훈장은 '기사 작위(Knight Bachelor)' 혹은 '작위급 훈장(Knighthood, Damehood)'이라고도 말합니다. 영국의 왕을 국가 원수로 하지 않고 영국 연방에 속하지 않은 다른 나라 국적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대영제국 명예 훈장도 있습니다.
아들 잃은 슬픔을 음악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에릭 클랩튼은 '이 모든 고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 뮤지션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영혼을 치유해주는 철학자다. 고통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에릭 클랩튼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코너 클랩튼의 죽음을 기리며 푸른 파도 넘실대는 카리브(Caribbean) 해의 외딴 섬인 앤티가(Antigua) 섬에서 마약중독자 치료센터(Crossroads Centre)를 운영하며 마약중독자들을 일일이 돌보고 있습니다. 감미롭고 서정적이면서 편안한 멜로디가 흘러 넘치는 그의 음악은 분명 이 시대의 인기 최정상의 뮤지션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백덕순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늘 건승과 행운이 함께하시고 가내 두루 다복하시면서 최고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상 잘 했습니다.
나리분지 선생님 감사합니다. 건안 건필하시고 문운장구하시면서 최고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