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오전 9시부터 31일 아침까지 주야간보호 요청이 들어왔다. 엄마도 개인 시간이 필요한데 아빠가 지원하겠다고해서 가정을 떠나는 약속을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아빠도 급하게 일이 잡혀서 30일 야간 가정 지원이 어렵게 생겼다는 것이다. 어차피 3월 30일 주간은 귀빈들을 지원하기 위해 비워 놓은 시간, 야간시간까지 함께 해도 좋을 것 같아서 가능하다고 회신하였다. 그 결과 한 푼만 후원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아도 맘이 움직이는대로 지원금을 입금해 주시기 때문에 필요로 할 때 사용하시도록 하고 있다.
3월 30일 오전 8시 30분경 논골의 윗집부터 아랫집까지 이동하며 귀빈들 인솔하여 홍제역으로 갔다. 홍제역에서 또 다른 귀빈을 만났다. 이천가고 싶은 마음과 인천가도 좋겠다는 마음이 오해를 불러 인천으로 가기 위한 노선을 알려드리는 상황에서 이천에 가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3월 30일 인천이 아니라 원래 계획대로 용문 오일장을 만나러 떠났다.
용문역이 가까울수록 환기가 필요한 어르신들의 냄새가 났다. 용문오일장은 예전부터 가고 싶다는 소리가 있어서 동행했다.
상술 때문인지 아님 비좁은 공간 때문인지 조금은 이동이 불편했다.
그러나 즉석 장터국수와 보리밥등을 대접받고 대신 천막 카페로 이동하여 땅바닥의 기운을 느끼며 음료를 마셨다.
오후 5시경 가좌역에 도착하여 주간활동지원인과 헤어지고 두 귀빈을 위한 야간생활지원을 시작했다.
함께 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열기구를 거실 테이블로 옮기고 그곳에서 익혀짐을 볼 수 있도록 하며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주메뉴 한 가지만 만들어도 알뜰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다.
삼푸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공포물품에서 소용량 삼푸 한 병을 일부러 챙겨와 샤워장에 비치해 두었다. 여지 없이 그 삼푸는 비워졌고 마지막 행굼만 지원해 주면 되었다. 대신 다른 청년은 많이 지원이 필요하였고 등에 긁어 만든 상처는 포비돈 살균제 도포가 필요하였다.
3개의 방에 각각 한 명씩 자리를 마련하였다. 취침지원약을 먹어서 그런지 밤새 노래를 불렀던 귀빈은 잘 잤다. 또 한 명의 귀빈에게는 한 밤중 일어나 화장실 이용지원을 한 번 더 해주고 아침에 깨워 화장실로 데려가니 기저귀가 무거워 24시간 중 1개의 기저귀를 교체했다.
아침식사는 또 다른 단품을 만들어 남김없이 먹었다.
이렇게 24시간 지원활동을 하고 각각 보호자들을 만나게 하니 오전 10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