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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부모, 정부에 “우리의 분노가 들리는가” 한목소리
기자명 이가연 기자 입력 2021.04.20 19:38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맞아 한국피플퍼스트,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하라”
부모연대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은 선언에만 그친 사기극”
세종시에 울려 퍼진 ‘레미제라블’… 뮤지컬 오리지널 팀도 연대 참여
20일, 오후 2시부터 부모연대와 한국피플퍼스트는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이해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촉구 대회’를 개최했다. 한 활동가가 ‘발달장애인의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20일, 오후 2시부터 부모연대와 한국피플퍼스트는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이해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촉구 대회’를 개최했다. 한 활동가가 ‘발달장애인의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가연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아, 발달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정부 주요 부처들이 모여있는 세종시에서 발달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발달장애인은 학교 졸업하면 갈 곳 없어…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하라”
20일, 오후 4시 한국피플퍼스트는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맞이해 세종시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촉구 대회’를 개최했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란 1974년 발달장애인대회에 참가한 당사자가 자신을 ‘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고 말한 것이 기원이 되어, 발달장애인 자기권리옹호운동을 뜻하는 단어가 됐다.
한국에서도 2016년 10월 22일, 한국피플퍼스트를 공식 출범해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권리보장 운동을 해나가고 있다. 이번 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 한국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 실종 대책 마련 △발달장애인 노동권 보장 △발달장애인 선거권 보장 등을 요구했다.
복지부를 둘러싼 철창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을 추모하는 그림과 국화가 달려있고, 뒤로는 복지부가 보인다. 사진 이가연
복지부를 둘러싼 철창에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죽음을 추모하는 그림과 국화가 달려있고, 뒤로는 복지부가 보인다. 사진 이가연
지난 3월 27일, 경기도 고양에서 어머니와 산책을 나온 발달장애인 장아무개 씨가 실종된 지 90일 만에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복지부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실종 건수는 최근 5년간 연평균 8천여건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발달장애인 인구대비 실종 비율은 2.47%로, 아동 실종 비율보다 10배 높았으며, 실종 후 미발견율 또한 발달장애인이 아동보다 2배 높게 나타났다. 실종 뒤 사망한 발달장애인은 지난 5년간 271명이다.
이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계속되는 발달장애인의 실종을 해결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현철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장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서비스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집에서만 머물다가 답답한 마음에 산책을 나온 길이었다”라며 “코로나19 시기, 비장애인들에게도 우울증이 온다고 하는데, 우리 발달장애인들의 심정은 대체 상상이나 되나”라고 물었다.
이어 김 활동가는 “실종 발달장애인의 수는 실종 아동의 수보다 많지만, 실종은 아동이나 치매노인에게만 집중보도된다. 아동이나 치매노인의 경우 아동권리보장원과 중앙치매센터에서 담당하지만, 발달장애인은 특성을 고려한 담당기관조차 없다. 우리도 똑같은 시민이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실종 대책을 마련해달라”라고 말했다.
김대범 활동가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김대범 활동가가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투표용지, “위스키 마신 것처럼 머리아파”
김대범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얼마 전 치러진 서울시·부산시 재보궐선거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용지가 마련되지 않아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활동가는 “제가 아는 분은 찍고자 하는 후보의 숫자를 외우고 갔지만, 숫자를 잊어서 엉뚱한 후보를 찍었다”라며 “투표장에 가면 위스키 한 잔 마신 것처럼 머리가 아프고 답답하다. 발달장애인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투표 제도는 철저히 글과 숫자를 잘 이해하는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발달장애인도 이해하기 쉬운 그림투표용지를 요구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라”라고 외쳤다.
충북에서 온 정해민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고 강조했다.
정 활동가는 “최근 연예계 학폭(학교폭력) 논란이 있는데, 저도 학교를 다닐 때 특수반을 다닌다는 이유로 집단괴롭힘을 당했다. 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야 하나”라며 “학교를 졸업해도 발달장애인은 갈 곳이 없다.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지만, 3급은 이용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면 중복이라고 거절당하고, 코로나19로 기관이 쉬게 되어 이용을 거절당한다. 우리는 유령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고, 일원으로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을 해달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외에도 한국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 권리 요구안을 통해 △감옥 같은 생활시설에 발달장애인을 가두지 말 것 △발달장애인의 활동보조시간을 필요만큼 늘릴 것 △장애인 연금을 올려 달라! 많이! 엄청 많이!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성폭행이나 구타를 하지 말라 △대통령은 발달장애인과 자주 만나서 대화하라 △발달장애인도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달라 등을 촉구했다.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단상 위에 올라와 요구안을 함께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한국피플퍼스트 활동가들이 단상 위에 올라와 요구안을 함께 외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부모연대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은 선언에만 그친 사기극”
아울러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도 이번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에 모여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촉구했다.
20일, 오후 1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 등은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집중 결의대회’를 열었다.
윤진철 부모연대 사무처장은 “2015년 11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지만,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 의지가 없는 정부는 예산을 반영하지도, 법을 준수하지도 않았다. 발달장애애자녀를 둔 부모의 소중한 희망마저 무참히 짓밟고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라고 분노했다.
지난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국가 주도의 발달장애인 지원체계를 선언했지만, 아직까지 발달장애인의 생활실태 전수조사를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으며, 약속한 민관협의체도 구성하지 않고 있다. 이에 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은 선언에만 그친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20일, 오후 1시 부모연대가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집중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20일, 오후 1시 부모연대가 세종시 복지부 앞에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전국집중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 이가연
민용순 부모연대 수석부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문재인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에 감동받았다. 당연히 시행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발달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도 보장하지 않고 있다”라며 “코로나19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갈 곳이 없어서 죽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주간활동서비스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아 하루 6.5시간에 맞춰 인생을 살라 한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국가 예산을 확보하라”고 밝혔다.
따라서 부모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에 허울뿐인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이 아닌, 진짜 발달장애국가책임제를 도입하고, 이를 위한 민관협의체를 하루빨리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나아가 각 정부부처 및 국회에 발달장애인 정책의 전면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복지부에는 발달장애인 생활실태 전수조사를 해 국가 주도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구축 △고용노동부에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확충 및 고용 정책 개선 △교육부와 국회에는 장애인 교육권 보장 및 특수교육 수준 향상을 위한 특수교육법 전부 개정 △국토교통부에는 발달장애인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지원 대책 수립 등을 요구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리지널팀이 연대의 마음으로 작품 속 삽입곡 내일로(Le Grand Jour)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리지널팀이 연대의 마음으로 작품 속 삽입곡 내일로(Le Grand Jour)를 열창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분노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노래가
특히 이번 결의대회에는 뮤지컬 레미제라블 오리지널팀이 내한 순회공연 중, 국내 발달장애인과 가족에 연대하기 위해 발달장애 국가책임 촉구 결의에 함께했다.
장발장 역의 로랑 방(Laurent Ban)은 “부모님이 장애가 있어 평소 장애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한국의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함께하게 되었다. 한국에 저항하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게 공연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싶다”라고 연대 이유를 밝혔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은 프랑스어로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19세기 프랑스의 혁명정신과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저항정신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레미제라블 팀은 연대의 마음으로 작품 속 삽입곡 내일로(Le Grand Jour)를 열창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광진미라클보이스앙상블팀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적인 곡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합창하며,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국가와 사회를 향한 투쟁의 결의를 보였다.
“민중의 노래가 들리나? 분노한 자들의 노래가.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민중의 음악이네. 심장 뛰는 소리가 북소리로 메아리칠 때. 내일이 오면 시작될 새로운 삶이 있네!”
발달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광진미라클보이스앙상블팀이 파란색 옷을 입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적인 곡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합창하며,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국가와 사회를 향한 투쟁의 결의를 보이고 있다. 사진 이가연
발달장애인 당사자로 구성된 광진미라클보이스앙상블팀이 파란색 옷을 입고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대표적인 곡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를 합창하며,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국가와 사회를 향한 투쟁의 결의를 보이고 있다. 사진 이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