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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고분자공학부 조교수
어젯밤에 쓴 반도체 관련 글이 너무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삼성, 하닉, 마이크론, 엔비디아 주주들이 우리나라에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결국 외국을 상대로 돈을 가장 많이 벌어오는 산업은 반도체고, 그 앞에서는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사람들의 관심은 쏠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사실 내가 가진 별 것 아닌 지식이나 관점을 생각하면, 그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통찰을 가진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에도 수두룩한데, 이런 분들의 인사이트가 정책에서든, 경영에서든, 전략에서든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안타깝다는 생각뿐이다.
반도체 산업은 다른 첨단 산업과는 달리 기술 정보에만 해박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전략적 마인드에서의 접근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력적 마인드에는 좁게는 국내 정치와 산업 구도, 넓게는 글로벌 공급망 (SCM)과 키플레이어들의 대외정책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야 한다. 물론 후자가 너무 강조된 나머지 정보량이 거의 0으로 수렴하는 논의하나마나 한 정책이나 전략만 나오는 것도 산업의 방향을 잡는 것에 있어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 정보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하고 그것이 전략에 세밀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은 전략이든 기술이든, 각 분야의 정보는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좁은 영역에서의 지극히 디테일한 기술 정보나 기초 과학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탐색 결과 등에 대한 전문적 연구와 올해 말에 있을 미국 대선 결과에 대한 예측 및 정치적 함의 분석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첨단 산업 reshoring 정책이 어느 방향에 더 초점이 맞춰질 것인지, 리쇼어링하는 것이 초미세 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는 것인지, 그래서 새로운 구조의 트랜지스터를 만들기 위해 어느 신소재를 주력으로 탐색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그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회사와 학교는 어디인지, 그 기관들은 어느 나라에 있는지, 그 나라가 미국과 충분한 신뢰 관계로 공동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지, fluctuation이 찾아왔을 때 공동 대응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생각해 보면, 결국 그 간극은 다시 각 영역의 전문적 고민과 연구들로 촘촘하게 채워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산업의 기술-전략 융합에 대한 관점은 이 산업이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더욱 복잡해지면서 중요해진다.
멀리 갈 것 없이 현재 가장 핫한 GPU나 HBM 같은 컴퓨팅 하드웨어이자 정보 처리 매체로서의 반도체는 더욱 핫한 AI와 로봇, 나아가 AGI와 온갖 자율 모션 시스템의 발전 속도를 결정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는 반대로 생각해 보면 반도체의 기술 발전 방향과 정책, 그리고 전략 수립에 있어 가장 큰 혹은 가장 빠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이슈와 산업이 무엇인지를 철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AI에 가려져 있지만, 자율주행차, 양자컴퓨터, 첨단바이오와 신약 개발, 데이터센터와 통신, 우주항공, 에너지 개발 등에 이르는 모든 주요 산업에는 각 산업의 고유한 도메인 특징에 맞게 적확한 목적에서 개발되고 공급되어야 하는 반도체들이 존재한다. 이들 산업은 기존의 제조업 1.0에서 맞춤형 반도체가 가미된 후 제조업 2.0으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각 산업에 최적화된 파운드리를 누가 얼마나 최적화하여 SCM 대응 잘하면서 운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이러한 후방 산업들뿐만 아니라, 사실 전방 산업에 대해서도 반도체 기술과 전략의 융합 관점에 의거한 접근은 매우 중요해진다.
특히 한국은 2045년까지 경기 남부권에 10개 이상의 메가 팹을 건설하면서 이른바 '메가팹 클러스터'를 이룩하는 것을 강력한 정책으로 추진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이제는 반도체 팹의 증설이 클린룸만 커다랗게 짓는다고, 그 안에 고가의 공정 장비를 잔뜩 가져다 놓는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양의 깨끗한 물과 전력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는데, 이는 1차적으로는 그 지역 사람들, 그리고 팹에서 일할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삶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특히 전력 공급은 앞으로의 첨단 팹이 더더욱 고전력 소모 산업이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RE100 류의 탄소중립 강제이행 조치가 10년 이내로 글로벌 단위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다면, 핵심적 이슈가 될 것이다.
느슨한 taxonomy로 인해 당분간은 원자력 발전으로 상당 부분 전력 공급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으므로, 원자력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더욱 집중적인 투자로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와 그에 비례하는 규모의 ESS 단지를 갖추면서 간헐성 한계를 보강하고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대규모 산업용 전력 공급 계획을 동시에 비슷한 비중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 전방 산업의 중요성은 비단 1차적인 에너지, 용수 확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재와 공정 장비, 부품의 안정적인 공급 확보가 중요하고, 이는 기존의 SCM 논리만으로는 커버하기 어려워지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글로벌 반도체 산업은 경제 논리만으로 커버되는 산업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SCM도 이제 그에 맞춰 SCM 2.0으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하며, 이 업그레이드에는 '경제 안보, 기술 안보'라는 비교적 낯선 개념이 제대로 정의되고 추가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 예를 들어 미국/일본 전문가들은 물론, 중국 전문가, 동남아 전문가, 정책 전문가, 외교안보에서 잔뼈가 굵은 분, 해외 싱크탱크들과의 네트워크 자산을 가져올 수 있는 분들이 참여하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정책적 근거와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기초 자료들을 발굴하고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국은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새로운 싱크탱크를 만들고 아웃리치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전방 산업이라면 그다음 세대의 기술적 솔루션을 만들어야 할 기초과학 R&D다. 다들 쉬시하고 있지만, 반도체 업계의 기술적 고민은 특정 국가나 회사의 고민이 아닌, 세계 공통적 고민이다.
우선 가장 큰 기술적 고민은 무어의 법칙이 멈추고 난 이후, 더 이상 칩의 scaling-down에서 얻는 경제적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 외에도, 돈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더 이상 물리적 크기를 줄일 수 없는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것이 1-2m짜리 작은 파도라면, 뒤의 것은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는 높이 20m짜리 쓰나미라고 볼 수 있다. 트랜지스터 회로의 물리적 크기를 줄이고 집적도를 높이는 것 자체는 high NA EUV든, BEUV든, XL이든, E-beam 이든 어쨌든 어떻게든 가능할 것이다. 아마 반치폭 (half-pitch) 기준, 실리콘 원자 5-8개 수준과 비슷한 크기까지도 줄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되면 바깥에 배치된 원자의 비중과 안쪽에 있는 원자의 비중이 비슷해진다는 것이고, 이는 경계 효과 (boundary effect)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continuum approximation을 사용하지 못하게 될뿐더러, 그간 assumption 정도로 퉁쳐왔던 quantum confinement effect를 반영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 효과를 반영한 새로운 트랜지스터 혹은 새로운 스위칭 소자를 설계하고 구현한다고 해도, '전자'를 쓰는 한, 근본적인 한계를 피할 방법은 없다. 전자는 charge를 가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파동-입자 이중성 양자 입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 발생은 물론, 더 많이 leakage 되는 것, on/off ratio가 충분치 않은 것, 신호가 혼재되는 것 등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칩 사이즈를 줄일 수 없고, 전자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그 다음 솔루션은 무엇인가? 솔직히 아무도 모른다. 이런저런 대안들이 제시되지만 양산 레벨에서 조금이라도 검증된 것은 하나도 없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컴퓨팅 하드웨어의 성능에 대한 근본적인 벽이 존재하는 것에 더해, 데이터 저장도 현실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이는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매체의 생산은 선형으로 증가하는 양상임에 반해, 생산되는 데이터 증가 경향은 지수함수를 따르고 있기 때문인데,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개인들도 몇 TB짜리 클라우드들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사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클라우드와 대용량 서버 업체들도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사용료가 대폭 증가할 것이고, 허용되는 용량은 대폭 낮아질 것이다. 설사 낸드나 SSD를 엄청 저렴하게 양산하여 용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너무 많은 데이터들은 관리와 유지보수 비용이 급상승하게 된다.
냉각과 수명 단축에 의한 비용도 매우 클 것이다. 이러면 loss 되는 데이터가 생기기 시작하고, 데이터 보안 이슈가 더 현실적인 문제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에 대해 데이터 품질 관리, 분류, 차별화된 접근 등의 솔루션이 제시되지만 이러한 솔루션은 미봉책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데이터들을 만들고 있고, 이를 너무 많이 오래 보관하고 있다.
기술적 문제는 또 있다. GPT 류의 생성형 AI든, 엣지 AI든, 컴퓨팅 하드웨어의 성능 강화에 대한 요구는 전력 사용의 급상승으로 연결된다. 지금도 반도체 팹 하나가 사용하는 전력은 GW 단위를 넘나드는데, 팹이 아니라, 이제 몇 년 후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GPT 5.0 훈련에 원전 1기 이상의 전력이 소모될 것임을 생각해 보자.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전력을 사용해야 하는 측은 컴퓨팅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에너지 공급 트렌드 역시 1차 함수는 아니더라도, 속도는 정해져 있는 함수임에 반해 (특히 원전 신규 건설에는 최소 10년이 걸린다.), 컴퓨팅과 데이터 저장 및 관리에 소모되는 전력은 지수함수에 가깝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 문제다.
전력 공급이 이를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면 데이터 생산이든, 처리든, 저장이든, downgrade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정해진 에너지 파이를 놓고 사회적으로 갈등이 본격화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인 반도체 산업과 직결되는 기술적 문제들은 특정 국가나 회사, 기관만이 감내하고 마주치는 문제가 아니다. 그냥 인류 공통적으로 당면한 문제다.
지금까지 진행해 온대로 정보처리 속도의 급상승과 비용의 급감으로 한껏 끌어올린 인류의 문명 발전 페이스를 사상 최초로 의도적으로 낮춰야 하는 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 시민들은 다 같이 느리게 혹은 심지어 퇴화까지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저개발국가, 중진국 이하 국가의 시민들은 이 열매를 채 맛보지도 못 한채 갑자기 느려진 페이스를 선진국들에 의해 강제받게 된다면 당연히 저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글로벌 문제로 화할 것이고,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더욱 치열한 소규모 다자간 클러스터 형성을 촉발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 관점에서 볼 때 전방의 영역에서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돌고 돌아 기초과학 R&D다.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에 앞서, 기술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기초과학부터 탐색해야 한다.
물론 과학적 탐구 없이 기술 솔루션으로 바로 진입한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제는 그러한 우연적 솔루션이 출현하는 빈도는 높지 않다. 그래서 틈만 나면 강조하지만, 반도체 산업을 위시로, 대부분의 첨단 산업은 그 이전에 시차를 두고 기초과학에서의 혁신과 새로운 발견이 재현되는 과정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쌓이면서 형성된 열매가 충분히 익었기 때문에 등장하게 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에너지, 공업용수, 자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결국 바로 이 '기초 지식 채굴'이다. 채굴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지식이 꼭 자원에 해당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만큼 고되고 힘든 노력이 필요하고, 그렇게 파낸 원광도 그대로 쓸 수 없어서 가공하는 데에도 지난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다시금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그 자체로도, 후방 산업에 대해서도, 그리고 전방 산업과 지식 채굴의 관점에 있어서도 기술과 전략의 마인드가 제대로 융합되어 깊게 고민하고 조심스럽게 정책을 설계하며 생태계의 장기적 안정성과 발전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특수한 산업이다.
하필 한국은 이 산업에 국부 창출의 가장 큰 포션을 의지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한국 GDP 창출에서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하는 것은 건설업이라고 하지만, 건설업은 내생적 기여가 대부분이다. 반면 반도체 산업은 대부분의 기술 및 재화가 외국에서 돈을 벌어온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고 우리 사회와 정부가 방향을 천명하고 있는 것 같으니, 이왕 하겠다는 것 제대로 해야 한다. 산업의 연결고리를 다시 한번 더 들여다보면서 약한 고리를 파악하고 보강해야 할 것이며, 경제와 기술 안보 논리가 충분히 산업계에서도 감당 가능한 비용과 기술 디테일에 반영될 수 있도록 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한다.
한국의 산업적 우위, 기술적 우위, 지식의 선점 등에서 창출될 수 있는 레버리지가 있다면 그것을 외국 정부나 기업, 학교 등에 작동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상황에 맞게 협상의 마인드로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하고, 특히 우리가 테이크해야 할 것을 테크트리 짜 가면서 고민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결국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표준을 이끌고 가려면 더 많은 지식과 기술에 대한 채굴이 필요하고 이는 충분한 시간을 두면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인재양성 전략으로 통합될 수 있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파티원은 대기업들만이 아니다. 이들이 탱커이자 전사로서 최전선에 서있겠지만, 파티원에는 힐러와 법사도 필요하다. 전선에서 버티고 우리 것을 지키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함에 있어 보다 전략적이면서 종합적인 관점에서의 테크마인드를 수면 위에 올려놓고 제대로 논해야 한다.
첫댓글 AI가 미안하다. 1년 연봉 때려 박아서 준 서버급 으로 자체 개발 환경 구축하려고 했는데... 국가 연구소에서 비슷한 규모로 구축 및 사용 중인 사람이 알려준 전기 값을 듣고
그냥 마음 접었습니다. 많이 쓰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현금으로 치환된 값을 보니 진짜 전기 많이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