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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 1 갈릴리 가나 - 요 2: 2 혼례의 청함
제 2 장 : 처음 표적과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
요한복음의 본론(2장-20장)은 1장 51절의 예수의 약속을 펼칠 것이다.
예수가 어떻게 약속을 성취하느냐? 예수가 인자로서 대속과 새 언약의 죽임을 당하시므로 그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된다.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계시하고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으로서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 이끌어서( 요 12: 32 -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그가 하늘로 올라가서 그들로 자기 있는 곳에 있게 한다. ( 요 14: 3 -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3: 13 -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시공의 제한 속에 사는 인간은 위에 있는 세상의 무한에 참여하여야 구원됨이 가능하다. 이 구원은 하늘에서 온 인자가 대속의 제사인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연합시키므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고 하늘로 높인다.
하나님의 보좌 위에 높인다. 그래서 하나님의 무한함과 영광 생명에 참여하게 한다. 이것을 본론에서 보여준다.
1. 가나의 혼례 ( 2: 1-11 )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잔치”는 종말에서의 메시야 왕국에서의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기 위해서 즐겨 쓰고 있다. 잔치는 하나님이 대표요 하나님이 source이다.
우리는 그의 손님이다. 잔치에 가면 풍요함이 있다. 배부르면 만족하고 기쁨이 있다. 잔치라는 것은 모든 것이 사랑의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구원의 실재를 잔치로 비유할 때는 인간의 실존을 결핍성으로 제약성으로 설명한다. 모든 죄가 이 결핍성에서 온다. 결핍성에서 욕구불만 채워질 수 없는 욕구불만이 있고 배 고품과 기쁨이 없고 사랑이 없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인간에게 예수께서 구원을 약속한다. 이 구원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풍성한 기쁨이 있다. 이유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베푸는 잔치이기 때문이다. 구약 유대교에서 종말에서 전치는 메시야 왕국의 소망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었다.
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것은 이 잔치는 풍성한 잔치가 아니다 결핍성의 잔치이다. 흥이 깨지고 기쁨이 사라지고 생명력이 깨뜨려져 버렸다. 이 잔치에 커다란 유대 정결의 예를 갖추기 위한 물동이들만 앉아 있다.
유대교의 정결의 예(레위기)를 다 갖출 수 있는 물동이가 흥이 깨진 잔치에 아주 소용이 없다. 이것은 맥 빠진 유대교를 상징한다. 여기에 예수가 나타나서 아무 쓸모 없는 정결의 예의 물독을 제일로 맛있는 포도주로 만들었다.
다시 생명력이 넘치는 잔치로 바꾸었다. 이것을 요한은 표적이라고 한다.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 이것을 표적으로 더 깊은 하늘의 진리를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이적의 표적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한 본질을 영광을 깨닫고 믿게 되었다.
진정한 본질은 예수가 구약과 유대교를 성취하고 능가하고 대치하는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여는 것으로 깨달았다. 하늘에서 오는 우리에게 풍성한 잔치를 베푸심으로 결핍성으로 부터 우리를 구원해 내셔서 하늘의 기쁨과 생명력에 참여하게 할 시대를 여셨다.
요 2: 1 갈릴리 가나 -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
안드레와 한 제자가 맨 처음 예수님을 따랐던 날부터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서 한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다.
혼인 잔치는 인간사 중에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1] 사흘 되던 날에
"사흘 되던 날" 이것은, 1: 43에 기록된 날부터 계산된 날짜인 듯하다.
이렇게 자세히 날짜까지 기록한 것은, 그 저술자가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실을 확증한다.
"갈릴리 가나." 팔레스틴에는 이 밖에 또 다른 "가나" 란 지방이 있는 것인 만큼, 여기서 "갈릴리"란 말을 붙여서 밝힌다.
이곳은 나사렛 동북편 5마일 되는 곳에 있다고 한다.
2]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혼인"은 기쁨의 상징이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복음이 율법과 달라서 그 주는 기쁨이 가정적(家庭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일 것을 표상(表象)한다.
갈릴리 가나는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가깝고 나다나엘의 고향이었다. 누가 혼인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거기 계셨고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걱정하며 하인들에게 무엇을 지시한 것을 보면, 그 집은 예수님의 어머니의 형제나 가까운 친척집이었던 것 같다.
3]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혼인"은 기쁨의 상징이다. 이것은, 신약 시대의 복음이 율법과 달라서 그 주는 기쁨이 가정적(家庭的)이고 보편적(普遍的)일 것을 표상(表象)한다.
요 2: 2 혼례의 청함 -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
예수님과 그 제자들,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그리고 아마 본서를 쓴 요한도 그 혼인에 청함을 받았다.
그들은 혼인하는 집과 어떤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는 혼인 예식을 존중하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법과 제도를 존중하셨다.
그는 부모에게 순종하셨고 그들과 함께 절기를 지키셨고 또 며칠 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이제 혼인 예식과 잔치에 참여하신 것이다. 그는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다.
1] 예수와 그 제자들도
예수님은 염세주의(厭世主義)를 가지신 이가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 사람들과 잘 어울리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이것은 그의 겸손인 동시에 그의 긍휼이다. 성결은 격리(隔離)가 아니다(Sanctity is not singularity).
2]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잔치의 청함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자들에게 참석하여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청함을 받은 자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 눅 14: 7-10 –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3] 청함을 받는 자가 복되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다고 하였다.
* 마 22: 14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을 향하여 주신 주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신다.
* 히 4: 12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그러므로 심판하시는 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모든 사람은 분리될 것이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주의 성도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부활하거나 변화되어
* 고전 15: 51-52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주님이 베푸시는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 계 19: 9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성도들이 누릴 천국의 영광을 혼인 잔치라고 표현한 것은 그것이 기쁘고 즐겁고 참된 만족을 주는 사건임을 나타낸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천국에서 누릴 기쁨과 만족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 만족보다 더 크다. 그것은 완전한 기쁨이다.
(1) 어린 양의 혼인 잔치.
혼인 기약을 이루신다. (계 19: 7-10)
①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신다.
* 사 26: 13-14 – 13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는 주만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4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② 아내가 예비 된다.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③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시는데 그것은 성도의 옳은 행실이다.
* 계 3: 3-4 –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 계 14: 4-5 – 4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 마 22: 11-13 –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④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
본문의 '복'은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개의 복 중에서 네 번째에 해당된다(1: 3. 14: 13. 16: 15. 20: 6. 22: 7, 14).
이 복은 인내로써 어린양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은 자들의 멸망과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로서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영광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 마 22: 14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⑤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대로 이루신다.
⑥ 우리가 경배할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아무리 귀한 비밀을 알려 주었다 하여도 천사나 사람은 경배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
⑦ 대언의 영
이 비밀을 밝히 증언하게 하시는 이는 대언의 영으로 수많은 종에게 역사하신다.
(2) 청함을 입은 자
어린 양의 신부로 초대를 받음을 의미한다.
'청함을 입은 자들'의 헬라어 '케클레레노니'(*)는 '칼레오'(*, '부르다')의 완료 수동태로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을 때만 가능함을 시사한다.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 마 22: 3 -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눅 14: 17 -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혹자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을 앞 절의 아내와 구분한다.
'아내'는 교회 혹은 순교자를 가리키며 '청함을 입은 자'는 구약 시대 이후 천년왕국 시대까지의 믿는 모든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Walvoord, Charles).
그러나 '아내'와 '청함을 입은 자들'은 동일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Beasley - Murray, Ladd, Mounce).
* 신 8: 16 -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3) 참되신 말씀이라.
* 사 25: 6-8 –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7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것은'은 계 17: 1- 19: 8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큰 음녀의 종말과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참여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대한 예언을 의미한다. (Johnson, Beasley - Murray).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는 천사가 전하여준 계 17: 1 – 19: 8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보증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계 22: 6에서도 나타나 본서의 내용이 매우 중요하며 확실한 사실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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