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주 남붕국립공원의 피너클스.
· 사막… 낯선 기암괴석 원시의 신비
호주 하면 시드니나 멜버른, 골드코스트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서호주는 낯선 땅이다. 남한 면적의 약 33배에 달하는 거대한 영토. 대부분의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과 황무지다.
그러나 서호주에서는 사막도 특별한 볼거리가 된다. 남붕국립공원(Nambung National Park) 내 사막에 위치한 수천개의 돌기둥, 피너클스(Pinnacles)가 그렇다. 유난히 진한 노랑색을 띤 모래땅 위에 높이 1~5m의 기암괴석들이 늘어선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몇백 년 전 이 근처를 지나가던 유럽 항해사들은 이곳이 '잊혀진 고대 도시'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또 호주 원주민들 사이에는 부족 간 전쟁에서 죽은 전사자들이 돌기둥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기도 하고요."
'구다이 마이트(G'day, mate!·'굿데이 메이트'의 호주식 발음)'란 인사와 함께 나타난 서호주 환경보호국 데이비드 핸키(David Hanke)씨가 피너클스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 란셀린 사막에서의 샌드보딩
그렇다면 드넓은 모래땅 위에 이런 기둥들이 우뚝우뚝 솟아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거센 바람에 실려 내륙으로 날아든 인도양의 조개가루가 바로 이 기둥의 원천. 조개에 섞인 석회석 성분이 퇴적된 후 나무 뿌리의 산성 성분에 의해 군데군데 부식된 다음, 대지 밖으로 돌출되면서 돌기둥 모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숲이 사막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작용은 황량한 사막 위에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독특한 석상들을 빚어 놓은 것이다.
피너클스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란셀린(Lancelin)에는 하얀 모래사막이 있다. 이곳에서는 샌드보딩을 즐길 수 있다. 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언덕 위를 오르는 사람들의 행렬이 눈밭 위를 걷는 스노보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모래는 눈만큼 미끄럽지 않아서 생각보다 속도감이 잘 나지 않는다. 이날 만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중 상당수가 양손으로 모래를 휘저으며 모래밭을 내려왔을 정도. 사륜구동차를 타고 모래 언덕을 가로지르는 체험도 해 볼 만하다. 하얀 모래사막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인도양의 푸른빛이 매혹적이다.
· 도시… 햇살·바람 좋은 이국적 풍경
▲퍼스 스완강변의 모습.
피너클스나 란셀린 같은 사막지역 투어가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서호주가 사막뿐인 오지는 아니다. 서호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주도인 퍼스(Perth)는 높은 빌딩과 아름다운 강이 어우러진 현대적인 도시. 서호주 인구 약 200만명 중 150만명 가량이 이곳에 살고 있다.
퍼스의 첫인상은 밝고 따뜻하다. 공항에서부터 도심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야자나무 가로수들이 질서 정연하고, 거리는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다. 호주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아 '빛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은, 1년에 130일 이상이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고 한다.
검푸른 강물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퍼스의 풍경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킹스파크로 가면 된다. 흑조(Black swan)가 많아 '스완강'이라 이름 붙은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해도 좋다. 운이 좋으면 물 밖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흑조 가족과 만날 수도 있다. 강폭이 워낙 넓은 데다가 물 위에 떠있는 수많은 요트를 보고 있다 보면, 이곳이 강인지 바다인지 헷갈릴 지경. 그러나 퍼스의 진짜 바다는 따로 있다. 서핑으로 인기가 있는 스카보로 해변(Scarborough Beach)과 코트슬로우 해변(Cottesloe Beach)이 유명하다. 특히 코트슬로우 해변은 일몰이 아름다워 해질녘이 되면 와인병을 담은 피크닉 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 눈부실 정도로 하얀 모래사장과 하늘색을 닮은 바다는 기본이다. 초록 잔디 언덕에서 여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서호주정부관광청 김연경 이사는 "인구 150만의 퍼스 인근에만 이런 해변이 19개나 된다"며 "인구 370만의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 여름이면 온 국민의 피서지로 북적대는 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고 말했다.
▲캐버샴 야생공원의 캥거루와 코알라.
호주의 살아있는 동물들을 만나고 싶다면 캐버샴 야생공원(Caversham Wildlife Park)으로 가자. 캥거루에게 직접 먹이를 주며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먹는 시간 외에는 잠만 잔다는 잠꾸러기 코알라도 만날 수 있다. 이밖에 타조와 닮은 호주 특산 조류 에뮤나 묵직하고 펑퍼짐한 생김새와는 달리 날쌘 행동을 자랑하는 웜뱃 등 200여종의 동물을 볼 수 있다.
▲프리맨틀의 카푸치노 거리.
퍼스 남서쪽에 있는 항구도시 프리맨틀(Fremantle)도 빼놓지 말아야 할 관광명소다. 일명 '카푸치노 거리(Cappuccino Strip)'라 불리는 사우스테라스(South Terrace) 노천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향을 즐겨도 좋고, 피싱 보트 하버(Fishing Boat Harbour)에 있는 식당에서 해산물 요리를 맛봐도 좋다.
19세기 항구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프리맨틀은 건물의 80% 정도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옛 건물을 보전하기 위해 외투를 껴입듯 외벽을 새로 두른 세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프리맨틀 감옥(Fremantle Prison)은 야간 촛불투어로 유명하다.
무더운 여름 오후가 되면 이곳 프리맨틀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와 퍼스의 더위를 식혀준다고 하는데, 이 바람의 이름이 바로 '프리맨틀 닥터(Fremantle Doctor)'다. 무더위를 치료(?)한다는 발상이 재미있다.
· 바다 그리고 숲… 대자연의 장엄함
▲알바니에 있는 더 갭과 내추럴 브리지.
이처럼 서호주의 도시들은 대부분 바다를 끼고 발달했다. 남단에 있는 알바니(Albany)도 고래관광으로 유명한 항구도시다. 시드니와 퍼스가 인도양을 끼고 있는 반면 알바니는 남대양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곳. 특히 남대양의 쪽빛 바다와 어우러진 거대한 절벽은 아찔할 정도로 경이로운 풍광을 선사한다. 폭포수를 연상시키는 더 갭(The Gap)의 웅장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추럴 브리지(Natural Bridge)의 아름다운 돌 다리를 꼭 한번 건너 보자.
바다와 숲이 만나는 아름다운 고장 덴마크(Denmark)를 찾는다면, 올망졸망한 바위에 둘러싸인 천연 풀장 '그린스 풀(Greens Pool)'에서 수영을 즐겨도 좋다. 해변과 접한 연둣빛 바다는 물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 어린 자녀들과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물 속에서 크리켓 경기를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상당히 '호주스러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호주 사람들은 스포츠 중에서도 크리켓과 호주식 풋볼을 특히 좋아한다.
▲나무 꼭대기를 내려다 보며 걸을 수 있는 트리탑 워크.
덴마크 인근 서호주 남부에서는, 북부 지역의 사막과 대조되는 키 큰 나무숲을 만날 수 있다. 수종은 주로 유칼립투스 종이다.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나무들을 즐기기 위한 장치들이다.
월폴(Walpole)에 있는 '거인들의 계곡(Valley of Giants)'에 가면 나무 꼭대기를 내려다 보며 걸을 수 있는 40m 높이의 철제 구조물 '트리탑 워크(Tree Top Walk)'가 설치돼 있다. 300년 이상 된 팅글 나무(Tingle tree) 숲이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한 아이디어라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61m 높이의 글로체스터 나무 오르기.
펨버튼(Pemberton)에 가면 61m 높이의 나무를 직접 올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글로체스터 나무(Gloucester Tree)'라 불리는 이 나무는 원래 용도는 주변 숲을 감시하는 소방 전망대였다. 나무에 계단 형식으로 철 막대를 박아놓아 사람이 밟고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높이가 만만치 않아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정상까지 오르기 힘들다.
관광객 비니 페더스톤(Vinny Featherstone)씨는 "꼭대기에 오르면 헬리콥터를 타지 않고서는 볼 수 없을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며 "주변 숲은 물론이고 멀리 바다까지 보인다"고 말했다.
직접 올라보니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래를 내려다 보는 순간 아찔한 느낌이 들면서 내려올 일이 까마득해졌다. 결국 중도 포기. 서호주의 장엄한 숲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도전해 보자. 대신 밑은 절대 내려다보지 말 것. 정상에 올랐던 사람들의 공통된 충고다.
문의 서호주정부관광청 www.westernaustralia.com
02-6351-5156.
-위 게시물은 부산일보에서 스크랩한 글.사진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