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이 그러셨다는군요.
곰배령은 곰이 배를 드러내고 누운 형상이라 곰배령이라고 한다구요.
곰이 왜 배를 드러내고 누웠을까... 전설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요.
백두대간 골골이 전설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만, 곰배령에도 슬픈 전설 하나 있습니다요.
먼 아주 먼 옛날, 백두대간 한 아름다운 골짜기에 천년을 한 해 못 채운 이무기가 살았습니다.
천년을 묵은 재주라, 사람으로 변신을 하면 금방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 자태라, 그 골짜기에 나무하러 왔다가 선녀로 변한 그 이무기를 보고는 선녀 날개 옷이라도 하나 훔쳐 늦장가라도 가보려고 줄을 서는 나무꾼들이 부지기수였답니다요.
천년 도력을 쌓으면 하늘로 승천할 이무기.
혹 승천하는데 잡스러운 일들이 생길까 봐 그 나무꾼들을 해쳐버리니, 산신제를 지낼 때마다 산 아래 마을 사람들 산신령님께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매달리고...
그렇다고 천년 도력의 이무기를 산신령이 함부로 내칠 수도 없는 일, 고민하던 산신령님이 백두대간의 으뜸인 백두산신령님께 그 이무기를 어찌 좀 해달라며 부탁을 하였습니다.
백두산신령님이 곰곰 생각하시기를, 천년의 정기를 지닌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해 버리면 백두대간에 묻어둔 호랑이의 정기까지 고스란히 흡수하여 하늘에 갖다 바칠 터, 그리되면 기가 빠져버린 한반도 반만년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고...
'안되지 안돼~ 아니 될 일이야~' 생각하고는,
"거기 웅이 있느냐~?"
환웅께서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울 때부터 백두산신령을 따른 곰, 하웅이 백두산신령의 명을 받고 그 골짜기로 급파되었습니다요.
그 하웅에겐 훗날을 약속한 암곰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암곰의 꿈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죠.
아시지요? 백일 동안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바로 그 웅녀였지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암곰을 하늘에 빼앗긴 하웅의 한은 깊었습니다.
그 깊은 상처와 한을 달래준 것은 바로 백두산신령이었지요.
그 도력과 사랑에 감화되어 백두산신령 곁을 지키며 쌓은 도력이 어느덧 천년을 넘겨버린 하웅이었으니 이무기 하나 해치우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동물이라고는 하나, 워낙 깊고 오랜 도력을 쌓은 생명들이라, 그 정기가 가만히 있어도 산 하나는 족히 채울 터, 하웅의 출현을 먼저 알아차린 것은 이무기였습니다.
천년의 공을 수포로 돌릴 수는 없는 일, 나무꾼으로 변한 하웅이 이무기 곁을 맴돌던 어느 날, 이무기는 어여쁜 선녀로 변한 채, 보름달 아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폭포수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였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기회를 노리던 하웅이 그것을 놓칠 리가 없지요. 폭포가 빤히 보이는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는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 이무기가 등을 보이는 허점을 노려 신궁에 활을 실어 날렸습니다. 활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몸을 돌리던 이무기가 그 활에 등을 맞고 쓰러지고 말았네요.
냅다 달려 나가 선녀로 변한 이무기의 명을 따려고 목에 칼을 갖다 댄 하웅, 멈칫 동작을 멈추고 맙니다.
선녀로 변한 채 쓰러진 이무기의 얼굴에 옛사랑 웅녀의 얼굴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이었죠.
차마 명을 따지 못하고 망설이던 하웅,
'내 도력으로 언제든 이 이무기를 해치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꼭 지금 아니면 어떠랴...'
박힌 활을 빼내고 근처 약초를 뜯어서는 오히려 이무기를 치료해주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이무기의 작전 속에 있었습니다. 천년을 산 이무기가 그 웅녀의 이야기를 왜 모르겠습니까? 아이들도 아는 이야긴 걸요.
하웅의 아픔과 한을 알고 있는 이무기가 그 하웅의 마음을 이용한 것이지요.
아무리 도력이 깊다한들,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찌 이길라구요.
'웅녀와 못다 한 사랑을 이 이무기와 나누리라. 그러다가 언제든 정이 식으면 없애버려야지...'
하웅의 생각이었고...
'흥, 네 마음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미색으로 네 마음을 뺏은 다음 너를 해치우고 승천하고 말리라.'
이무기의 생각이었습니다.
속마음을 서로 감춘 채, 멋진 나무꾼으로 변신한 하웅과 아리따운 선녀로 변신한 이무기가 사람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것이 어디 속셈대로 되는 것이던가요. 그러니 그것 때문에 하나뿐인 목숨을 내어놓기도 하고, 중요한 역사가 바뀌어지기도 하잖아요.
속마음을 숨긴 사랑이었지만, 사랑하는 웅녀를 빼앗기고 도력으로 눌러놓았던 하웅의 깊은 외로움과 천년 도력을 쌓느라 살가운 정 한번 나누어보지 못했던 이무기의 외로움이 서로 어울려 사랑으로 발전하자, 그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려...
이무기가 새끼를 잉태하고 만 것입니다. 이를 어째...
하웅에게 말하기도 곤란하고, 이무기의 고민은 날로 깊어만 갔습니다.
하웅을 해치고 새끼도 뗀 다음 하늘로 오를 것이냐... 아니면...?
하루 이틀 쌓은 공도 아니고 천년을 쌓은 공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날이 쌓이니, 이무기는 하루 다르게 빼빼 수척해져만 갔습니다.
한편 하웅은 그런 이무기를 보며,
'이제 하늘 오를 날이 다 되어 가는 모양이구나. 그동안 쌓은 정으로 봐서는 못 할 노릇이지만, 백두산신령님의 분부를 어길 수는 없는 일, 기회를 봐서 해치워야겠다."
원래 수컷들이란 정에 약한 듯하면서도 때가 되면 모질게 강한 법. 하웅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회를 노렸습니다.
출산이 다가오자 드디어 이무기는 한 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 하늘로 올라본들 그곳에 하웅 같은 살가운 정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천년 공을 들였다 한들 무슨 재미가 있으랴. 그냥 이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며 나무꾼과 나무꾼의 아내로 한번 살아 보자. 새끼를 낳은 다음 하웅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다 이해해 주겠지. 승천할 마음을 접었으니 더 이상 나무꾼들을 해치지도 않을 것이고 하늘에 지을 죄 없으니 다 용서하고 이해해 줄 거야."
승천하려던 그날이 출산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그 골짜기는 이무기의 비명으로 온 산이 울렸습니다.
천년 도력의 곰과 이무기의 새끼 탄생이었으니 왜 아니 그러했겠습니까.
폭포수 아래 똬리를 틀고는 힘을 줄 때마다 비명과 함께 폭포수가 골짜기에 넘쳐나고...
그것이 출산의 틀임인 줄 꿈에도 모르는 하웅은 그저 승천하기 위한 이무기의 용틀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고 보름달이 떴습니다.
숲 속 둥지에서 마지막 용을 쓰던 이무기가 하늘을 향해 목을 들며 울부짖었습니다.
그 순간, 기회만 엿보던 하웅이 신검을 들고 이무기의 목을 치고 마니... 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목이 잘린 채 피를 뿌리며 쓰러진 이무기 곁으로 달려간 하웅, 놀란 눈이 감겨지지 않습니다.
이무기의 배안에서 반쯤 머리를 내민 채 숨 막혀 죽은 용머리에 곰 몸뚱이를 한 새끼를 본 것이죠.
전설이라 하나 너무 슬픈 이야기라 그다음 이야기를 이을 수가 없네요.
한동안 하늘을 원망하는 곰의 포효가 그 골짜기에 메아리를 쳤고, 용이 되지 못하고 하늘로 올라버린 슬픈 이무기를 그리느라 배를 드러낸 채 누워 하늘만 올려다보던 곰이 죽고 난 뒤에, 이무기의 넋을 달래는 핏빛 비가 곰이 등을 대고 누운 자리에 내리더니, 그 후로 그곳엔 철철이 야생화가 피어난다는 전설.
슬픈 곰배령의 전설...
첫댓글
곰배령의 전설,
배를 드러낸 곰의 형상이
전설의 시작이 되었군요.
하웅은 이무기가 아름다운 골짜기에서 살겠다는
속마음을 몰랐고
이무기는 하웅을 이용하려는
속마음이 엇박자가 되어 버렸네요.
슬픈 이무기의 사랑~
잘 읽었습니다.
전설은 슬픔도 있고 한도 있어야
맛이 나는 것 같아 ㅎ 좀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백두대간길에 곰배령을 지나갔을텐데
잘기억이 안납니다
이글을 보고 곰배령에 다시 올라가고 싶습니다
네. 꼭 한번 올라보세요.
힘이 크게 안 드는데도 풍경은
백두대간 중 손에 꼽힌다네요.
어제 곰배령 올랐다 왔는데..
정상 쉼터에서 시설 관리하시는 분한테 잠깐 곰배령이라 이름 지어진 짧은 이유를 듵었었는데 이런 슬픈 전설이 있었군요~
알고 올랐음 더 좋았을것을..
아름다운 숲길과 정상의 풍경,입산부터 하산까지 6시간을 살방살방 즐기며 하루 넘 행복했네요~ㅎ
시설 관리하는 그분이 들려주신
전설이 오리지널이고, ㅎ 제가
쓴 건 제가 새로 지어낸 전설입니다. ㅎ
실감 나셨다니 새 전설 성공입니다.
곰배령, 멋진 그곳 다시 가고 싶습니다.
많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곰배령은 아직 못 가봤어요.
산이나 령, 마을마다 전설들이 있지요.
곰배령엔 그렇게 슬픈 전설이 있네요.
혹시 가게 되면 다시 한번
마음자리님의 글 읽어봐야 겠습니다.
아... 곰배령 가보시면 절대 후회
없을 겁니다. 꼭 가 보세요.
너무 슬픈 전설입니다.ㅠㅠ
눈물이 날 만큼요.
전설 새로 만들기를 읽고
곰배령에 가면 느낌이 새로울 것 같네요.
마음자리 님, 재미있게 잘 읽었는데
왜이리 슬픈지요.
전설은 아무래도 슬프거나 한이
맺혀야 전설 느낌이 오는 것 같아
슬프게 맺음을 했습니다.
슬프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ㅎ
그런 슬픈 전설이 있는 줄도 모르고 천상의 화원이란 말에 한번 가봤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곳이 천상의 화원 맞습니다.
때 맞추어 포토에세이방에
현재미래님이 곰배령 야생화들
사진을 많이 올려두셨네요.
한번 보시면 곰배령 가셨던 느낌
되살아 나실 겁니다.
마음자리님편 곰배령의 전설 잘 읽었습니다.
저는 곰배령 지명을 잘 모르는데
드라마 “천상의 화원 곰배령" 최불암, 유호정 씨가
나오는 드라마를 본적이 있어 궁금해 하던
곳이었답니다 .
언제 한번 가 봐야 할텐데요 .
그런 드라마도 있었어요? ㅎ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ㅎ
한국 나가실 기회 있고 시간 되시거든
꼭 한번 가보세요.
정말 멋진 곳입니다.
마음자리님. 역시 대단한 스토리텔링어.
나는 그냥 곰이 자주 나타나는 고개인가 생각하엿는데....
슬픈 전설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ㅎㅎ 칭찬 들으니 우쭐해집니다.
ㅎㅎ 제가 겸손은 잘 몰라요.
아무리 나쁜 이무기도 죽는 결말은
슬프네요. 곰도 불쌍하고...
문명으로 부터 보호된 것 같은 곰배령
아날로그 감성인 저에게 잘 맞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자급자족의 생활이라는 TV프로그램 보고는
게으른 저는 꿈도 꿀 수 없는 곳임을 알았답니다.
어릴 때 라디오 '전설따라 삼천리'에 귀 바짝 기울이 듯이
눈 바짝 들이대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도 어릴 때 라디오로 듣던 '전설따라 삼천리'를 무척 좋아해서 밤만 되면 잠과의 전쟁을 치르곤 했는데... 방송 시간이 밤 10시쯤 잠 오기 딱 좋은 시간이라. ㅎㅎ
같은 애청자를 만나 반갑습니다.
곰배령 전설도 그때 들은 전설들 짜집기해서 만든 전설임을 고백합니다. ㅎ
마음자리님이 만드신 새로운 전설!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네요~
아직 곰배령은 못 가봤어요
좀 힘이 든다니 선뜻 나서기가 그래서요
들꽃들이 예쁘다니 가고 싶긴 하지만..
아... 그러셨군요.
곰배령은 오르기에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제가 곰배령에 오를 때
저질 체력일 때였는데도 슬슬 잘 올라갔습니다. 겁내지 마시고 한 번 도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