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 여행3 - 세느강 남쪽 생제르맹에 도착하여 교회를 지나 헌책 벼룩시장을 보다!
어제는 파리 오베르역 Auber 역에서 RER 을 타고 생제르맹 앙레 에 도착해 성과 드뷔시집
을 보고는 다시 RER 로 뤼에유 말메종 Rueil Malmaison 역에 내려 샤토 말메종
Chateau Malmaison 성에서 조세핀과 나폴레옹을 보고 258번 버스를 타고 라데팡스
La Defense 에 도착해서 메트로 1번과 4번을 타고 파리 북역 북쪽 민박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늘 5월 31일은 밤에 비행기를 타니 낮 시간 동안 파리 시내 세느강 남쪽 에 생제르맹
을 둘러보기 위해 민박집에서 아침을 먹고는 나와..... 지하철 포르트 드 라 샤펠
Porte de la Chapelle 역에서 Metro 12호선 메리 디시 Mairie d'Issy 행을
타고 2정거장을 가서는 마르카데 푸아소니에역 Marcadet Poissonniers 에서 내립니다.
그러고는 시내로 가려고 4호선 지하철로 환승 했는데 다음 정거장을 보니 사토 루주
가 아닌 엉뚱한 Simplon 역이라.... 놀라서 지하철내의 노선도를 보니
우리가 잘못 탄 것 이라? 그럼 어디서 내리면 다른 노선으로 환승이
되는가 생각하는 새에 지하철은 다시 출발하고 다음역에서 사람들이 다 내립니다.
여긴 4호선 종점 인 포르트 드 클리닝쿠르 Porte de la Chapelle 인데....
우리가 당황한 것을 본 서양 할머니가 우릴 도와 주겠다고 나서는데,
양방향 노선이 같은 선로에 있으면 내려서 반대편 지하철을 타면
되지만 여긴 밖으로 나가서 다시 기계에 티켓을 넣고 들어 가야 하는 구조 입니다.
그러니 할머니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하더니 지하철역 창구에 가서는 직원
에게 우리가 방향을 잘못 탔다고 설명 하는데..... 뭘 번거롭게 설명하나
했더니 지하철 티켓 2장을 공짜로 받아와서 우리에게 쥐어 주며 한바퀴
돌아서 반대편 들어가는 입구 까지 데려다 주며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들어 줍니다.
수십차례 해외여행에서 느끼기로는 가장 친절한 사람들은 러시아 할머니와 일본인들 이니
일본 사람들은 물으면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줄뿐더러, 자기도 모르면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서 가르쳐 주고 심지어 가던길과 반대 방향으로 한참 걸어서 데려다 주고 되돌아 갑니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인지...... 아니면 개인 프라이버시 를 너무
존중하는 것인지, 서양인들 처럼 요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법은 절대로 없으니.... 저 사람들은 친구를 자기 집에 초대하지도 않고 밤 9시
넘으면 남의 집에 전화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절대적으로 지킵니다!
그런데 이제 친절한 사람들에 프랑스 할머니를 추가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4호선
Porte d' Orleans 행 지하철을 타고 남쪽으로 달려서는 세느강 을 지나
15번째 정거장인 생제르맹 데 프레역 St. Germain des Pres 에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오니 바로 생제르맹 데 프레 교회 Eglise St. Germain des Pres 입니다.
생제르맹 데 프레 교회 는 로마네스크 교회니 종루는 11세기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것
인데 576년에 파리 주교 생제르맹이 교회에 매장된 후 생제르맹의 초원 이라
불렸고 노르만의 습격으로 파괴된후 재건되었으며 12세기 복도 기둥머리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조각이 있는데 마침 장례식을 준비하는 중으로 문상객은 아주 적습니다.
건너편에 카페 레 뒤 마고 Les Deux Matots 가 보이는데 1821년에 처음 문을 연 카페로
근처에 중국 비단 가게 가 많은데다 중국 도자기 인형을 뜻하는 “마고”에서 이름을
땄다고 하며 생텍쥐페리, 랭보, 헤밍웨이, 피카소, 사르트르, 까뮈에 발자크 등 숱한
문인과 화가들 이 모이던 곳이라는데 피카소는 또 Le Couple 를 아지트로 삼았다고 합니다.
지금 레 뒤 마고 Les Deux Matots 는 1,915년에 개수한 건물 그대로 인데 핫 쵸코를 바로
녹여낸 진하고 단 “쇼콜라 쇼”나 에스프레소 가 인기라고 하는데 그 옆에 다른 집은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니 1881년 문을 열었는데 꽃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플로르의 이름으로 문학과 예술, 사상의 꽃을 풍요롭게 피워 카페 문화의 황금시대를 엽니다.
실존주의 문학 과 입체파 회화 를 태동시킨 곳으로 사르트르와 그의 여인 보부아르, 피카소,
드랭, 카뮈, 알랭 들롱, 에디트 피아프, 롤랑 바르트, 미테랑 등 명사들이 찾았습니다.
카페 플로르 창시자의 손자 두랑 부발은 1993년 그의 저서 “카페 드 플로르” 에서
“신성하다고 할 감동 없이는 플로르의 '무거운' 장소에 들어갈 수 없다" 고 말했습니다.
뤽상부르 궁전 을 먼저 보고 돌아오다가 저 두 카페 중에서 맥주를 한잔 하기로
하고는 시내 지도를 보며 Rue Bonaparte 거리 를 남쪽으로 걷는데 여기
생제르맹 St. Germain 지구 는 파리에서 가장 지적이고 세련된 거리 라고 합니다.
고티에, 조르주 상드, 발자크, 졸라 등 19세기 중엽 이후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작가들이 카페에 자주 모여서는 "지난날의 목가적 마을은 삶의 기쁨" 이라는 이미지를
잉태하면서 몽마르트르와 더불어 파리 문화를 상징하는 지적 패션의 중심지 가 되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를 걷다 보니 문득 최은주 씨가 지은 ‘프랑스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 라는 책을 소개한 동아일보 조종영 기자는 제목 글
"해외서도 갑질하는 韓 외교관들, 부끄럽지 않나요?“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프랑스 노동법 에 기대어 한국 정부 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내 이긴 한 비정규직 노동자 의 이야기 이다."
"2005년 프랑스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저자 는 파리에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한국 대표부의 어시스턴트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해 일하게 된다. 이후 7년 동안 대표부에서 ‘행정원’ 으로
일했던 저자가 본 대한민국 외교부 해외 공관의 민낯이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대표부 관료들은 개인적인 식사 를 하고 마치 OECD 본부 국장이나
과장급 인사를 만난 것 처럼 꾸며 영수증 을 총무과로 넘겨버렸다."
“직위가 높을수록 이 런 사례가 많았는데, 제 가족이나 친구들과 외식을 하고
공적인 일로 점심을 먹은 것 처럼 위장술 을 썼다. … 보는 내가
다 민망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특수한 계층이기 때문에 그런 남용도 권리라고 떳떳하게 믿고 있었다.”
"관료들은 의전에는 철두철미 했다. ‘의전의 고수’ 였던 한 관료는 한국에서
높은 사람이 출장을 온다고 하면 미리 식당 4군데를 예약해 뒀다가
나머지 3군데는 펑크 를 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한 식당 지배인으로
부터 “더 이상 예약을 받지 않겠다” 는 항의에 가까운 통보를 받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의 OECD 한국대표부 공관. 부자 동네인 16구에서도 수려함으로 손꼽
히는 대저택 으로 프랑스 대기업 회장 소유였던 것을 한국 정부가 샀다고
한다. 갈라파고스 제공 대표부 건물은 부자 동네인 파리 16구에서도 요지 에 있다."
"원래 대기업 에어버스 회장 소유의 대저택 을 한국 정부가 산 것이다. 저자는 “OECD
에서 위상이 우리 보다 높은 북유럽 국가들은 오히려 건물 한 층을 세내어
사용할 뿐” 이라며 “국민의 세금을 절약해주는 그들의 자세가 기특해 보인다” 고 말한다."
"그래도 외교관들이니 외국어에는 능통 하지 않을까? 아주 가끔, 3년 가뭄에
콩 하나 나듯 프랑스어를 하는 외교관이 부임하기도 하는데, …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할뿐 복잡한 법적·행정적 업무를 실행하기에는 역부족 이다.”
"그래서 재외공관의 행정 업무는 현지 채용된 프랑스 직원 이나 저자 처럼
프랑스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한국계 직원 들이 맡는다. 모두
비정규직인 이들은 ‘직원’ 이 아니라 ‘행정원’ 이라고 불린다.
“행정원 주제에” “가서 행정원 하나 데려와!” “그까짓 행정원 따위가” 라고…"
"이런 분위기에서 저자는 2011년 한 상관으로 부터 폭언과 밀침 등을 당한다.
대표부는 저자가 외교부 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알린 뒤에야 이 직원에게
형식적인 징계 를 내린다. 저자가 소송을 준비하자 대표부는 저자를 해고 했다."
"저자는 대표부를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내 승리하지만 대표부는 외교관 면책특권을
무기로 배상금 지불을 하지 않고, 반만 내겠다고 하기도 한다. 저자는 청와대
에 민원 을 내고, 대표부는 대통령의 파리 방문을 앞두고서야 배상금 지불에 동의 한다"
"글에서 감정을 좀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화낼 만한 사람에게 화내지
말 것을 기대하는 것 또한 온당치는 않겠다. 한국 국적의 저자를 지켜준 건 프랑스
노동법 이었다. 한국과 대비되는 프랑스 노동 문화 가 우리 현실을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Pl.St. Sulplce 광장에 도착하니 생 쉴피스 교회 Eglise St. Sulpice 가
보이는데.... 그 앞 마당에는 벼룩시장 이 섰네요? 오늘은 아주
오래된 헌 책방들이 총 집결한 모양인데 책 가게 천막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하도 진지 해서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 입니다?
헌책방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게 조윤경 기자 가 뤼팽 결정판 펴낸 번역가 성귀수씨 를
취재하고 쓴 글 “프랑스 헌책방 샅샅이, 뤼팽도 깜짝 놀랄걸요” 이 생각납니다.
“프랑스 곳곳을 탐문하고 찾아 헤매다가 모리스 르블랑 (1864∼1941) 의 교정
흔적이 남아 있는 타자 원고 가 손에 들어오는 그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 전화로 만난 번역가 성귀수 씨(57) 의 감동과 희열이 수화기 너머에까지 전해졌다.
그는 최근 추리 소설의 대가 르블랑의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아르테)을
국내에서 출간 했다. 뤼팽 전문 번역가 인 그가 끈질긴 추적 끝에 발굴한
추리 활극 61편 (단편 38편, 중편 1편, 장편 17편, 희곡 5편)이 전 10권으로 담겼다.”
“옛 소설 번역이 뭐 대수로울 것 있겠냐고? 일단 ‘결정판..…’ 은 현재 까지
뤼팽 정전 으로 분류되는 모든 문헌을 총망라한 세계에서 유일한
판본 이다. 성 씨가 프랑스 전역을 뒤지며 끈질긴 추적 끝에 발굴한 작품이 많다.”
“먼저 (뤼팽) 연구서 를 통해 몇 년도 몇 월호에 연재된 것인지, 단행본인지 같은 정보를
입수하죠. 무조건 문을 두드려서 뤼팽 작품 중 발표 안 된 거 있느냐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작품을 찾는다는 걸 명확히 해야 해요. 이후엔 프랑스의 오래된
서점으로 찾으러 돌아다니는 건데, 거의 50% 가능성 이라고 보면
돼요. 책(단행본) 보단 잡지가, 잡지보다는 신문이 (찾기가) 더 어려워요.”
"2003년에도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아르센 뤼팽 시리즈 전체를 복원해 출간한 바 있다.
당시 까지만 해도 미완성작으로 알려졌던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의
누락 연재분 을 찾아내 국내외에서 큰 화제였다. 스무 권짜리 전집에
수록했다. 이번 결정판엔 새롭게 발굴한 르블랑의 희귀 작품 7편 을 또다시 추가했다."
"특히 ‘아르센 뤼팽과 함께한 15분’ 과 ‘이 여자는 내 거야’ 2편은
프랑스 현지에서도 아직 정식 출간된 적이 없는 작품 이다.
올해 결정판으로 본인이 세웠던 ‘세계 최초’ 기록을 다시 갈아 치운 셈이다. "
“르블랑의 손녀 가 유품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2015년에서야 프랑스 ‘아르센 뤼팽의
친구들 협회’ 회원중 핵심 멤버만을 대상으로 회람된 작품이었죠. 프랑스에선
전체 전집을 오리지널 상태로 복원해 낸다는 걸 굉장히 의미 있게 생각했어요.
뤼팽 협회장 도 놀라워 하고 부러워 하면서 이번 결정판에 추천사 도 써 주셨고요.”
"이번 결정판엔 르블랑이 작품을 발표할 당시 실린 오리지널 삽화 370여 컷 을
100% 복원해 싣는데도 성공 했다. 현재 프랑스어로 된 상당수의
뤼팽 원서에 실린 삽화 들은 오리지널을 베낀 모작이거나 아예 누락돼 있었다."
"기나긴 여정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 또 어떤 모험 을 떠날까. “아직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추리 소설 고전 이 많아 번역가의 소명의식 탓에
두고 보기 어렵다”며 “프랑스 최초의 사설탐정인 프랑수아 외젠 비도크
(1775∼1857) 의 자서전을 비롯해 3개의 시리즈 를 번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외 문화 콘텐츠 를 국내에 소개할 땐 체계적으로 하는게 중요해요. 소개와
연구는 선대의 몫이고 후대 물려줄 문화자산인데, 우린 너무 그때그때의
인기나 경제적 상품성에 치우쳐 있는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어요.
고전 과 고전이 돼야 할 희귀한 작품 을 소개하는 게 제가 가야 할 길 이죠.”
|
|
첫댓글 사진 한 장을 이렇게 정성스러운 그림으로 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모습뿐 아니라 그날의 풍경과 시간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주셔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사람을 위해 오랜 시간 마음을 들여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전한 글이 작은 여행이 되었다면 이 그림은 오래 간직할 특별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보내주신 따뜻한 마음까지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