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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253 철학과 조은비
<작품 소개>
레베카 슈거의 스티븐 유니버스는 2013년 11월 4일부터 2020년 3월 27일까지 카툰 네트워크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이다. 총 5개의 메인 시즌과 메인 시즌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 극장판 '스티븐 유니버스 : 더 무비' 와 후속 시즌 '스티븐 유니버스 : 더 퓨처'로 구성되어 있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작품 내에서 철학적인 고민을 깊게 다루는 작품은 아니다. 등장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그 해결에 중점을 둔 판타지물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선정하는 이유는 이 작품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화제를 이야기의 배경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유니버스의 세계관은 '젬'이라는 존재들을 이해해야 한다. '젬'은 영어 'gem'의 한글 표기로, 보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인간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본체는 육체가 아니라 gem 그 자체다. 젬의 육체는 빛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체가 유지되지 못할 만큼 심각한 부상을 당하면 유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젬 상태로 돌아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 낸다. 젬을 죽이는 방법은 직접적으로 젬을 파괴하는 것 밖에 없다. 때문에 젬들은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죽지 않고 영생을 살아간다. 이런 특성을 이용하여 젬은 우주를 지배한다.
모든 젬은 위와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다. 하지만 젬의 종류에 따라 그 세부적인 특성에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펄(Pearl)은 매끄러운 진주인 만큼 계획적이고 지적이며, 깔끔한 것을 좋아한다. 정열적인 루비(Ruby)는 감정적이고 쉽게 흥분하는, 주먹이 앞서는 타입이다. 물론 같은 종류의 젬들도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지긴 하지만 기본적인 특성을 공유한다. 각각의 종류의 젬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시스템화 시켜 그들의 제국을 유지하는 토대로 삼는다. 각각의 능력에 따라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태어나자마자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이 정해져 평생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
주인공 스티븐 유니버스는 젬과 인간의 혼혈로, 온 우주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젬은 본체가 보석인 쪽인지라 스티븐의 엄마 로즈는 스티븐의 탄생과 함께 사라졌다. 로즈는 5000만 년 전에 제국 건설을 위해 젬들을 수단으로 사용하고, 생명을 빼앗는 다이아몬드(Diamond, 모든 젬들 위에 군림하는 젬 제국의 지배자)들에 저항한 저항군의 수장이었다. 스티븐의 탄생은 다이아몬드와 지구를 지키려는 반란군의 전쟁이 끝난 뒤였지만 여전히 다이아몬드들이 남기고 간 변질된 젬의 공격이 지구를 위협하고 있었다. 전쟁을 거치면서 4명으로 줄어든 반란군에서 리더인 로즈의 공백은 혼란스러웠고, 스티븐은 자신을 자각하게 된 이후부터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그는 늘 사랑을 배푸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도와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성장해 다이아몬드로부터 지구의 자치를 인정받고, 전 우주에 젬 제국의 소멸과 봉건제적인 시스템의 몰락을 고한다.
<스티븐 유니버스와 페미니즘>
스티븐 유니버스의 저변에는 페미니즘이 깔려있다. 페미니즘과 관련한 내용을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풀지는 않지만 젬들이 반인반젬인 스티븐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이라는 점, 여성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듯한 캐릭터 디자인 등 배경설정에 페미니즘적인 담론을 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은 레디컬 페미니즘(급진적 페미니즘)이 주류(라고 비춰지)지만 비교적 페미니즘 담론이 먼저 시작된 서구에서는 레디컬 페미니즘의 한계를 인정하고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이 주류의 물결에 합류했다.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약자, 소수자들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모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는 소수자들이 인정 받을 수 있는 다양성이 존재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스티븐 유니버스 역시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이야기의 전개에서 주체적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젬'이라는 존재를 모두 여성으로 설정했다(젬은 광물이기 때문에 성별이 존재 하지는 않지만 3인칭 대명사로 여성 대명사 'her'을 사용한다.). 그동안 지구를 지키는 역은 슈퍼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대부분 남성 영웅들이 차지하고 여성 영웅은 그 수도,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미미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다. 이런 여성의 주체성의 확립은 페미니즘과 스티븐 유니버스를 모두 관통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페미니즘 중에서도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은 만큼 다원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다양한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키가 작거나 크거나, 뚱뚱하거나 마르거나, 각지거나 둥글거나... 정말 다양하다. 여성(혹은 남성도)의 아름다움은 일원화 할 수 없고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주장한다. 안티 포르노 페미니즘(여성이 사회(남자)로부터 성을 착취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드러내는 것을 견제하는 것과는 다르게 교차성 페미니즘은 모든 여성상을 존중한다. 또 이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소수자를 포용한다는 점이다. 스티븐 유니버스 역시 사실상 여성 캐릭터인 젬들이 서로 합쳐져 하나의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퓨전(fusion)'이라는 설정을 통해 성소수자(이 작품의 경우에는 여성 동성애자)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퓨전을 하는 장면을 보며 어린 스티븐의 눈을 가리는 펄의 반응이나 퓨전을 항상 유지하고 있는 가넷(루비와 사파이어의 퓨전)의 '나는 나의- 아니, 루비와 사파이어의 사랑을 상징해.(I embody my- I mean, Ruby and Sapphire's love.)'라는 대사, 그리고 이후 루비와 사파이어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 외에도 샴쌍둥이 루틸(Rutile) 쌍둥이 등의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는 교차성 페미니즘의 주장을 작품 안에 녹여낸다.
<자유주의와 스티븐 유니버스>
스티븐 유니버스의 전체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봉건제와 제국주의에 대한 얘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피라미드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단 4명의 다이아몬드에 의해서 지배되는 젬들, 모든 젬들은 각자의 다이아몬드의 소유물로 여겨진다. 물론 다이아몬드 외의 젬 사이에도 위계가 존재하며 무슨 젬으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해야할 일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 이런 봉건제적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 우주에 그들의 식민지를 건설한다. 전쟁을 나가 행성을 정복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젬을 만들고 지배한다. 젬은 태어나면서 그 주변의 생명력을 전부 흡수하고 주변을 황폐하게 만든다. 마치 19세기 제국주의가 유행할 당시 강대국이 식민지의 자원을 착취하고 강대국을 배불리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던 과거를 연상케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주제를 다루는 작품의 태도다. 젬들은 봉건적인 사회 시스템을 형성하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특별한 이득을 취하고 있지 않다. 중세 유럽의 경우, 봉건 사회는 아랫계급을 착취해 이익을 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부조리가 18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자유주의 혁명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젬들의 경우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다이아몬드마저 사회 시스템 혹은 제국주의 정책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지 않다. 피라미드 아래에 위치한 수많은 젬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모두 만족해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냄으로 하여금 자신의 다이아몬드를 수행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다이아몬드의 마음에 들기 위해 더 완벽하게 일을 하는 게 일생의 목표로, 이들은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는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젬들을 소유하고 명령을 내리지만 그들 앞에서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왜 이런 설정했을까? 나는 이 작품이 제국주의의 무분별한 팽창으로 주변 식민지를 황폐화 시킨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 서구 스스로 그들의 잘못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자유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소유하다가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으로 권력이 다수에게 분산되면서 시작되었다. 돈은 많지만 신분이 없는 부르주아 계급이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 창출을 위해 만인의 평등을 외친 것이다. 당연히 이 속에는 인간의 권력욕이 자리 하고 있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개인의 욕망이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자유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설정을 한게 아닌가 싶다.
자유주의의 기본 토대는 천부인권이다. 인간은 날 때부터 하늘에게 부여받은 인권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그 존엄성을 인정 받고, 만인이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천부인권 사상을 바탕으로 자유주의는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개인의 모든 사회적 자유를 인정한다. 거칠게 말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다. 스티븐 유니버스는 바로 이 부분을 강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지구에서 생명의 소중함,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의 소중함을 깨달은 로즈는 뜻이 맞는 젬들을 모아 반란군을 조직한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그때 그때 주어진 환경에 변화하며 살아가는 것을 본 젬들은 하나 둘 자신 역시도 변하는 존재임을, 다이아몬드에게 명령받은 일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걸 자각한다. 고위 젬들의 시중을 들기 위해 태어난 펄은 스스로가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 창을 들었고, 식민지에 다이아몬드를 찬양하는 건축물을 짓던 비스무트(Bismuth)는 반란군을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
작품의 마지막에 스티븐이 다이아몬드들을 설득해 제국주의를 끝내고 모든 젬이 평등해진 이후 본인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르는 젬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학교를 세운다는 점에서도 자유주의 사상이 엿보인다. 동시에 지금 우리들에게 우리의 자유주의는 얼마나 개인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 사회는 정말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보장해 주고 있을까? 사회에서 선호하는 직업이 존재하고, 몇 가지 안 되는 그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사람을 낮춰 본다. 과연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자유'로운걸까?
첫댓글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유롭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요? 바라는 것을 할 수 없으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요? 욕망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은 권력층, 지배층에서 지배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지배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한편으로는 제한되어 있어서 다툴 수밖에 없는 '재화'를 소유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여유가 없어서, 능력이 부족해서, 주변 시선이 신경쓰여서 등등. 하지만 적어도 능력이 없다면 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여야 우리가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능력을 키울 여유도 주지않고 취업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험할 정도로 내몰린 청년들의 과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걸까요...?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보다 돈을 잘 버는 직업을 선택하는 게 자유로운 걸까요...? 주위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혹은 대학을 가기 전부터 자기가 배우고 싶은 것 보다는 취업을 위해 학교를 선택하고 그를 위해 치열하게 사는 걸 보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