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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베로나의 밤 원문보기 글쓴이: 피비캣
Tchaikovsky in Love I. 서론 차이코프스키의 사랑(1840-1893) 여러분은 차이코프스키의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신적이 있나요? 많은 차이코프스키애호가들이 아름다운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의 사생활인 애정생활을 타음악가에 비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악적으로 성공한 러시아의 음악가 차이코프스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아니한 그의 애정이야기는 듣는이로 하여금 상당히 당황케 할것입니다 매우 아름다운 러시아적 냄새가 독특한 그의 음악세계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피아노협주곡, 교향곡 6번 등 주옥같은 그의 음악들 이런 그의 음악의 아름다움이 그의 사랑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그린것이지만 이사랑이 결코 평범한 사랑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St Petersburg II. 어린 시절 차이코프스키는 1840년 러시아의 보트빈스키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광산엔지니어의 아들로 태어났읍니다. 어머니는 프랑스혈통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5살부터 시작한 피아노수업은 그의 천부적 재능을 발견케하였읍니다. 하지만 어릴적부터 차이코프스키는 비정상적인 민감성을 보이기도 하였읍니다. 그는 세인트 피터스부르그(St Petersburg)에 있는 음악학교로 보내졌는데 이로인한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야하는것은 그에게 유별나게도 힘들어 보였읍니다. 그의 아버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성을 보고 그의 음악공부에 정성을 쏫았고 독일 누렌베르그 피아노선생님인 루돌프 퀸딩거 아래에서 음악을 배워 독일음악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하였고 평생 그가 좋아했던 음악가 모짜르트가 그의 마음속에 심어지기도 하였읍니다. 그의 어머니가 콜레라로 1854년 돌아가시자 14살이던 차이코프스키는 어머니를 위해 왈츠를 작곡하였읍니다. 후에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공부를 하였고 1868년 첫번째 심포니를 내놓아 아주 좋은 반응을 받았읍니다. 학생시절 모습 in 1859 - St Petersburg III. .이상한 징조 음악적으로 명성이 오른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음악원에 초빙되어 음악이론과 작곡을 가르키게 되는데 이때 오디션에 참가한 학생에게 동성애를 느낌니다. 너무나 민감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차이코프스키, 하지만 이상한 동성애적 경향은 그 자신도 콘트롤할수가 없는 것이였읍니다. 자신에게 다가온 이상한 감정에 굴복하고 그것을 즐김으로 그는 스스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읍니다 이당시 그는 많은 곡들을 작곡하여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환상서곡 로미오와 줄리엣(1869), 제2악장의 안단테 칸타빌레로 유명한 현악 4중주곡 제1번(1871)등 그는 점점 음악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됩니다. Romeo & Juliet 그러던 그는새로운 형태를 시도하여 피아노협주곡1번을 작곡하게 되는데 이를 니콜래이 루빈스타인 모스크바 음악원 원장에게 선보이지만 니콜래이의 반응은 매우 비평적이였읍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개성적과 러시아적인면이 없다고 혹평을 하며 이걸로는 연주가 힘드니 같이 고쳐보자고 하였지만 차이코프스키는 한음도 고칠수가 없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리하여 이곡은 원래의 의도(니콜래이에게 헌정하려던)를 바꾸어 한스 본 뷜로우에게 헌정됩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충돌한 여러 감정들을 그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면의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곡에서 보여주고 있읍니다. 1875년에는 세번째 심포니와 백조의 호수를 모스코오페라단의 의뢰로 작곡합니다. 물론 이곡은 후에 발레곡의 최고의 교과서로 인정되나 당시에는 그리 크게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합니다. Swan Lake (BBC) IV. 불안과 도피성 결혼 이젠 음악적으로 크게 성공하여 세상에 알려진 차이코프스키 그의 이름이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는 불안해 집니다. 그의 동성애적 성향이 세상에 알려질까봐 늘 불안해 하던 차이코프스키 그는 친구들의 술자리에서도 그에 대한 이상한 말들이 나올까봐 늘 불안해하며 어떤때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와 친구들(BBC)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앞에 나타난 여인 안토니나 밀리우코바 그녀는 자신이 음악원에서 학생시절 차이코프스키의 학생이였다고하며 접근을 합니다. 그녀로부터 날라오는 수많은 러브러터들… 그녀를 기억조차 하지못하는차이코프스키는 처음엔 그녀를 거절합니다. 자신의 동생애적 성향이 결혼생활을 잘 이루어지질 못할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끈질긴 프로포즈에 차이코프스키는 결혼을 결심을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여인 Antoninia played by Alice Glover. Mrs Tchaikovsky 어쩌면 차이코프스키에겐 불안한 자신의 처지로부터 피난처를 가질수 있는것은 바로 그녀와 형식상 결혼을 함으로서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였을것입니다. 그리하여 만난지 3주만에 차이코프스키와 안토니나는 결혼을 합니다. 최고의 음악가를 남편으로 맞이한 안토니나 차이코프스키, 하지만 그녀에게 남편은 너무나 먼존재로 느껴졌읍니다. 젊은 시절 차이코프스키 V. 너무 빨리온 결혼의 파국 신혼의 차이코프스키는 스스로가 부부생활이 어려운것을 예감하지만 그래도 잘 해보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의 성향은 그의 의지와 별개의 것이였읍니다 남녀의 차이에서 오는 기본적인 간격이외에도 부부를 갈라 놓는것은 많은 요소가 있었읍니다 허니문을 떠나는 그들에게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 파트너인 메시체르스키는 따라와 허니문의 기차안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자신에 대한 사랑(동성애)을 확인합니다. 그들의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않은것은 사전부터 예고된 것이였죠. 안토니나는 어찌하였든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깊은 벽을 느낍니다. 차이코프스키 부부 (BBC)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 파트너 (BBC) Meshchersky, played by Martin Parr 차이코프스키부부의 실제 모습Moscow, July 1877 차이코프스키는 안토니나의 침실을 결코 찾지 않았고 또한 그녀가 자신의 생활에 간섭하는것도 허용하지 않았읍니다. 부부간의 충돌과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생활에 대한 회의등 우울증이 작용하여 결혼한지 2주도 못되어 차이코프스키는 심한 후회를 합니다. 그는 강에 투신하는 자살을 시도한적도 있으며 급기야 안토니나를 떠나 성피터스부르그로 갑니다. 그리고 그후로 두사람은 다시 얼굴을 보지 못하고 끝이 나고 맙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안토니나에게 얼마의 돈을 정기적으로 보내주기도합니다. 하지만 이혼은 하지않은채 차이코프스키의 법적 결혼상태는 그가 죽을때까지 결혼(Married)으로 남습니다. VI. 편지속의 후원자 멕부인 한편 차이코프스키에게 다른 여인이 나타나는데 이사람은 부유한 미망인으로 멕부인(Nadezha von Meck)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평생 한번도 이루어 지지 않았고, 멕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 심취하여 그와 약 120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에게 중요하였던 것은 멕부인이 보내주는 많은 후원금이였던 같습니다.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 멕부인 Nadezhda von Meck 차이코프스키가 많은 마음의 갈등과 상처를 가지고 작곡에 몰두할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멕부인의 후원금 덕분 이였읍니다. 그렇지만 옆에 늘 있던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파트너는 멕부인과의 서신조차 질투를 합니다. 그러던중 약 13년간의 편지를 주고 받고 후원금을 정기적으로 보내주던 멕부인은 자신의 경제적 처지를 핑게로 서신과 후원을 끈어버렸읍니다. 멕부인이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를 알아차리고 후원을 중단하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읍니다 VII. 끝없는 작품세계 이후 차이코프스키는 여행을 다니며 작곡을 하는데 이때만든 바이올린 콘체르토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적 사랑을 그린 수작으로 BBC는 표현합니다. 하지만 동성애로인한 그의 마음의 고통은 더욱 그를 아프게 합니다. 그는 음악원을 사직하고 더욱 작곡에 전념하여 5번째 심포니, 피어노 트리오등을 만듭니다. 발레를 작곡하는 차이코프스키 (BBC) 이후로 차이코프스키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호두까기 인형’ 두발레를 작곡하고, ‘The Queen of Spades’를 로코코음악을 사용하여 매우 감성적으로 만듭니다. 1891년엔 미국으로가 뉴욕에서 연주회를 갔읍니다. 그는 실제로 1891년 5월 5일 카네게홀 오픈식에서 지휘를 하였읍니다 호두까기 인형 공연 장면 잠자는 숲속의 공주 공연 장면 Cambridge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수여식때 모습 마침내 1892년에는 음악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인정되어 잉글랜드의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기까지 합니다. VIII. 마지막 대작 Pathetique 그의 인생의 끝을 스스로 예감한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 6번째 심포니 Pathetique (비창) 를 작곡합니다. 당시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조카 Bob Davydov와 동성애에 빠져 있었는데 봅과 차이코프스키는 모스크바근교의 한적한 별장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며 지내게 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동성애 파트너였던 그의 조카 Bob Davidov, played by Sam Marks (BBC) 아주 고요한 평안함, 사랑과 정열, 실망과 그리고 죽음… 이것이 6번째 심포니의 주제인데 아주 염세적인 곡으로 차이코프스키 마지막 인생의 여정을 그린 곡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비정통적이며 마지막은 내리막음을 사용하여 절망적 느낌을 주고 있읍니다 1893년 10월 Pathique는 처음으로 연주되고 차이코프스키는 바로 9일후에 St Petersburgh 에서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Tchaikovsky's tomb at the Alexander Nevsky Monastery (후기) 얼마전 차이코프스키기념주간을 맞이하여BBC에서 방영된 차이코프스키 특집은 조금은 쇼크적이였읍니다. 아름다운 그의 모든 음악이 모두 그의 동성애적 사랑의 결과로 표현한 BBC의 표현은 좀 과장이 아닌가 할정도였고 방송후 BBC 인터넷 사이트에서 많은 댓글들이 달렸읍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듯 음악과 개인의 사생활은 별도로 생각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읍니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성향에 대한 증거로는 차이코프스키 자신의 서신들과 동성애자였던 그의 형 모데스토의 서신들을 통하여 발혀지고 있읍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음악만으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음악가의 역사적 상황(Historical Context)속에서 보아야 하는것은 참으로 양쪽 모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세인들의 관심에서 제외되었던 차이코프스키의 동성애적 성향을 파헤친 BBC의 의도도 나쁘다고 볼수 만은 없읍니다. 역사적 사실이 언젠가는 공개되는 것이기에 우린 열린마음으로 이런 드라마를 볼수 있어야 합니다. 차이코프스키의 심리적 특이성과 그의 인간적 고뇌,… 하지만 이를 그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킨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성과 인격적 성숙에 우리는 더욱 박수를 보내야 되지 않을까요? (참고로 본 계시물은 본인의 짧은 지식으로 TV방영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오니 이해와 번역상 잘못된것이 있을수 있음을 인정하며 여러분의 질책을 즐거히 받을것입니다) Fin |
첫댓글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였던건 유명한 사실이죠. 음....하지만 생각나는곡은 백조의 호수밖에 없네요 ㅠㅠ 이 무지함이여...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참 좋아합니다!
천재들은 동성애가 정말 많네요....
임정명님...아이디만 봐서는 우락부락한 남자 같은데ㅡㅡ;; 음악 관련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