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왕건 <제 29회>
씬 1 황궁 외경
질탕한 아악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2 황궁 연회장
궁예를 중심으로 하여 전쟁에 참가했던 장수들이 연회에 참석해 있다. 이미 모두들 거나한 모습들이다. 종간, 은부, 환선길, 이흔암, 복지겸, 배현경, 홍유, 김언, 염상, 금대 장일, 종희 김락 그리고 그 말단에 유금필, 능산, 박술희, 변사부 등이 보인다. 궁예가 왕건에게 잔을 권한다.
궁예 자, 왕장군. 한잔 더 받게.
왕건 폐하, 신 이미 많이 취했사옵니다.
궁예 취하다니. 대 장군이 그까짓 술 몇 잔에 취해? 하하하... 이런 일을 보았나. 매사를 귀신처럼 처리해 내는 천하의 왕건장군도 술 앞에서는 맥을 못추네 그려. 하하하...
모두들 (따라 웃는다)
종간 참으로 폐하께서 왕장군을 생각해주시는 것이 지극하시옵니다. 다른 많은 장수들에게도 격려의 말씀을 주시오소서. 섭섭해들 하겠사옵니다. 허허허허....
궁예 정말 그렇겠느니라. 하기사, 여기있는 장군들 누구하나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은 장수가 어디 있으랴. 짐은 다 아오. 그대들은 모두 짐의 충성스런 신하들이오. 참으로들 고맙소이다.
모두들 황은이 망극하오이다, 폐하.
궁예 이보시오, 병부령
은부 예, 폐하.
궁예 내 안에다가 영을 내려 놓았소이다. 이번에는 모두들 참으로 잘 싸웠소이다. 상급으로 비단과 황금을 오십 냥씩 내렸소이다. 짐의 성의이니 받아가도록들 하오.
은부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장수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하하하...(웃으며 왕건에게 속삭인다) 이보게, 왕장군.
왕건 예, 폐하.
궁예 너무 빨리 취하지 말게. 이들을 보내고 우리끼리 한잔 더 하세나.
왕건 폐하.......
궁예 (속삭이듯) 우리 둘이 말이야.....
그 모습을 종간이 은연중 보고 있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씬 3 강장자의 집 외경
활짝 열려진 대문 안으로 상인들이 짐바리를 짊어지고 줄줄이 들어가고 있다.
씬 4 동 마당
상인들이 진기한 물건들을 부려놓고 있다. 비단과 유리잔, 황금거북이, 진주 등등이다. 진서방이 그것들을 요모조모
살펴보며 지나치고 있다.
상인1 셈은 후하게 쳐주시겠습죠? 서역에서 어렵게 들여온 유리잔입니다요.
진서방 (살펴보며) 겉모양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더 좋은 것들은 없나?
상인1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이 정도면 최상품입니다요.
진서방 황궁에 진상할 물건들을 모으는 것일세. (하인에게) 일단 안으로 들이게.
하인들이 유리잔을 거둬 안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진서방은 다시 옆에 있는 비단을 살핀다
진서방 당나라에서 들여온 것인가?
상인2 아 예...
비단을 만져보는 진서방의 모습에서..
씬 5 강장자의 거소
강장자와 백씨가 앉아 있다.
백씨 저 많은 물건들을 다 폐하께 올리실 작정이시옵니까?
강장자 폐하께오서 예물을 내려주셨으니 우리도 마땅히 답례를 올려야지요.
백씨 너무 과한 것이 아니옵니까?
강장자 우리 딸 연화가 국모가 되는 일이예요. 가산을 다 쏟아부은다 한들 무엇이 아깝겠소? 지금 황궁에서는 개선을 해서 돌아온 장수들의 위로연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전투에 이겼으니 수 삼일 내로 다시 국혼이 재개 될 것입니다.
백씨 ...... 그렇겠지요..
강장자 그러니 서둘러야지요. 우리 연화가 궁궐의 안주인이 되고 거기다 폐하의 아드님을 생산해 보시오. 대대로 가문의 영화가 넝쿨째로 들어오는 일이 될 것이오. 우리 외손주가 황제라도 된다면 얘기는 더더욱 달라지지.
백씨 ......전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사옵니다. 연화가 진정으로 마음을 정한 것인지... 그 아이 성격에 또 무슨 일을 벌이지나 않을지...
강장자 부인께서 잘 다독거려 주시구려. 예물을 받았으니 이미 끝난 일이오. 조금이라도 송악이나 왕건에게 미련이 남아 있다면 다 털어버리라고 하시오.
백씨 .......(한숨만..)
씬 6 후원 마당
연화가 후원 꽃밭을 서성거리며 홀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연화(E) 이대로 끝나는 것인가? 이토록 허망하게..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인가? (도리질 치며) 아니야.. 그럴 순 없어.. 이렇게 내 인생을 끝낼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어....없어...(생각한다) 도망쳐야 한다. 여기를 떠나면 다 끝나는 것이야. (그렇게 하다가 도리질) 아니야, 그렇게 되면 아버님 어머님은 어찌 한단 말인가? 나로 인해 이 신천이 피로 잠긴다면....? 그리고 송악은... 보나마나 송악도 크게 경을 칠 것이야. 아, 어쩌면 좋을까? 대체 어쩌면...좋을꼬..
연화, 안절부절 못한다. 불안과 초조에 시선이 계속해 흔들린다. .
연화(E) (도리질) 아니야..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을 게야.. 내 맘을 돌리기 위해 그리들 말하는 것일 게야. 폐하께서는 모두들 미륵부처님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후원 문 밖의 마당쪽을 바라본다. 진서방과 하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연화(E) 아니야,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한번 더... 왕건 공자님을 뵈어야 해.. 만나야 해. 마지막으로 그 분의 진심을 한번 더 확인해 보아야 겠어.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그 때 슬이가 들어온다. .
슬이 아씨..밖이 아주 난리이옵니다. 혼례 물품들을 가져온 상인들이 수십 명이나 되옵니다.
연화 슬이야,
슬이 예, 아씨.
연화 나 좀 보자꾸나.
슬이 예...?
연화 너, 송악에 좀 다녀오너라.
슬이 송악에... 말이옵니까?
연화 서찰을 하나 써 줄터이니 왕건공자님께 전해드리거라.
슬이 예....? 아씨..
씬 7 황궁 외경 (밤)
궁예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씬 8 대전 밖
궁예의 웃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은부와 내군 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은부가 고개를 외로 꼬며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
씬 9 동 대전 안
궁예가 왕건에게 술을 따라주고 있다. 많이 취해 있다.
궁예 나는 그동안 엄격하게 이 곡차를 절제 해 왔네. 그러나 자네를 만나고 부터 달라졌어. 술이란 때때로 참으로 좋은 것이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허물어 주고 또 아주 가깝게 해준단 말이야. 아니 그런가?
왕건 그런 것 같사옵니다.
궁예 나는 참으로 든든하이. 자네가 개선장군이 되어 황궁 앞에 장수들과 오는 것을 보았는데 감개가 무량하더구만...
왕건 ..... 어인 말씀 이시온지.
궁예 마치 그 자리에 내가 개선하여 오고 있는 것 같았어. 아니, 아니지...(마시며) 마치 내 친아우가 형님 하면서 다가오는 착각을 느꼈어. 정말 그랬어.
왕건 (감격하여) 폐하.
궁예 정말이야. 정말 그랬어. 이보게 건이?
왕건 (사이) .... 폐하....?
궁예 왕후장상이 따로 있다던가? 누구는 태어나면서 폐하였던가? 아닐세. 그런 것이 아니야. 황제라 하는 사람도 인간일세. 나는... 나는 말일세. 자네에게만은 황제로 군림하고 싶지는 않아.
왕건 어인 말씀이시온지...?
궁예 난 지금껏 자네를 내딴에는 친아우처럼 여겨왔네.. 나는 가족이 없어. 나는 어려서부터 가족이나 그 주변으로부터 버림받고 내 던져진 과거 밖에는 없어.
왕건 ........?
궁예 어떨 때는 나도 형님을 갖고 싶고 또 아우를 미치도록 두고 싶을 때가 있었어. 어렸을 때는 내 부모님도 그렇게 보고 싶을 때가 있었지. 허허허.... 그들은 나를 죽이려 했고 내버렸지만 말씀이야. 이보게, 건이?
왕건 예, 폐하.
궁예 어떤가? 내 아우가 되어 줄 수 없겠는가?
왕건 폐하,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신이 어찌 존엄하신 폐하의 아우가 될 수 있사옵니까? 천부당 만부당 하시옵니다.
궁예 무슨 소린가? 자네는 우리가 처음 보았던 그 어린시절부터 실은 내 아우였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단 말일세. 보게, 보게나. 형은 대 고려국의 황제이고 아우는 대 고려국 최고의 명장일세. 이 얼마나 기가막힌 일인가? 세상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인가? 아니 그런가, 아우?
왕건 페하...?
궁예 이런, 이런..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는가?
왕건 폐하.....
궁예 형님이라고 하였네. 형님이야. 어서 그렇게 불러보게, 형님하고 말이야....
왕건 ........
궁예 나를 형님이라고 하는 것이 싫은가?
왕건 폐하, 어찌 그럴리가...다만 너무도 황공하여
궁예 그럼 어서 형님이라고 불러보게. 어서?
왕건 ..... (사이) 형님.... 망극하옵니다. 형님.
궁예 고맙네, 아우 (너무 기뻐서) 고맙네 아우. 하하하. 으하하하.....드디어 내게도 아우가 생겼구먼. 내게도 아우가 생겼어. 하하하.... 형님이라. 형님이라.. 참으로 듣기 좋으이.
왕건 망극하옵니다.
궁예 (덥석 손을 잡는다) 우리는 형제로 사는게야. 평생을 피를 나눈 형제로 사는게야. 그리 해주겠는가?
왕건 이를 말이옵니까, 형님.
궁예 그래... 우리는 형제로써 목숨을 함께 할 것일세. 사내들끼리 영원히 그렇게 사는게야. 그렇게 사는게야.
왕건 망극하옵니다. 형님의 말씀을 눈을 감을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궁예 한 세상 구름처럼 같이 살아보세나. 대 제국의 영광을 우리가 함께 세워 보세나. 할 수 있을 것이네. 우리 형제라면 분명코 할 수 있을 것이네. 아니 그런가?
왕건 예, 형님.
그들의 그러한 결의에 찬 시선에서 길게 디졸브 되면서....
씬 10 황궁 종간의 내원
등불 밑에서 종간과 은부가 심각하게 마주보고 있다.
은부 참으로 파격적인 일이 아니옵니까? 폐하께오서 왕건 장군을 아우로 삼으시겠다 하십니다?
종간 ...... (듣다가 눈을 감는다)
은부 물론 이 일이 대외에 공표되는 일은 아니옵니다마는.... 그토록 내원께오서 왕장군을 경계하시는 마당에 폐하께오서 이토록 정을 두시다니요. 자못 걱정스럽사옵니다.
종간 ..... 아직도 왕장군은 폐하의 대전에 있는가?
은부 폐하께서 대취하시고 조금 전에 궁을 나갔사옵니다.
종간 답답한 일이야. 다른 일은 다 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시면서 극구 말리는 그 일만은 그렇지가 않으시니.... 첩첩 산중일세. 갈수록 태산이야.....
고뇌하는 종간의 깊은 한숨소리에서...
씬 11 송악길
달빛어린 밤길을 왕건과 세 결의형제 그리고 변사부가 오고 있다. 왕건의 표정은 그저 담담해 보인다.
변사부 주군
왕건 예..
변사부 주군께서는 폐하와 독대를 하셨사옵니다. 무슨 긴한 말씀이 계셨사온지요.
왕건 허허허... 글쎄요.
능산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 아니옵니까? 모두들 다 돌아갔사온데 주군만을 특별히 남으라 하셨사옵니다.
유금필 허허허, 우리가 돌아올 때부터 특별히 그리 하시지 않았는가? 그만큼 우리 주군을 크게 생각하는 것이지. 무엇이겠는가?
박술희 나쁜 일은 아니지 않사옵니까?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예요.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닙니까? 이 놈은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요. 허허허....
왕건은 대답이 없고 이들은 어느새 집 앞에 이르렀다. 기다리고 있던 왕식렴과 장수장 그리고 하인들이 왕건들이 도착하자 일제히 허리를 숙이며 맞이한다.
왕식렴 어서오시오소서, 형님.
왕건 잘있었는가, 아우?
왕식렴 개선하여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오소서.
장수장 어서 드시오소서, 주군.
왕건 작은 아버님은..?
왕식렴 객관에 나가 계시옵니다. 외국에 무역선들이 많이 와 있사옵니다.
왕건 허허허, 다행이로군. 옛날처럼 무역이 활발해지는 모양일세 그려.
왕식렴 예, 형님.
이들 안으로 들어간다. 왕건들이 들어가고 왕식렴이 장수장과 함께 뒤에서 들어가려 하는데 누군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며 부른다.
슬이 왕공자님....
장수장 넌 슬이가 아니냐? 여긴 어인 일이냐? 혼자서 온 게냐?
슬이 예.. 왕장군님께서는 안에 계시옵니까?
장수장 방금 돌아오시긴 하였다마는.. 무슨 일이냐?
슬이 급한 일이옵니다. 장군님을 만나뵙게 해 주시오소서.
그 때 왕식렴이 되돌아 나온다.
왕식렴 이보게 장수장, 무슨 일인가?
장수장 슬이라는 아이가 찾아왔사옵니다. 주군을 뵙기를 청하옵니다.
왕식렴 (주변을 경계하면서) ......아씨께서 보내셨느냐?
슬이 예, 나으리.
왕식렴 ...장군께선 지금 매우 바쁘시니라.. 무슨 일인지 내게 말해보거라.
슬이 ...하오나..
왕식렴 (싸늘히) 말할 수 없다면 돌아가거라.
슬이 나으리..
왕식렴 .....?
슬이 허면... 이것을 전해 주시겠사옵니까? 저희 아씨께서 장군님께 드리는 서찰이옵니다.
왕식렴 ......(돌아서서 서찰을 받아든다)
슬이 (울음 섞인) 꼭 전해주셔야 하옵니다. 꼭이옵니다.
왕식렴 ........
갈등하는 그의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12 왕건의 거소
왕건이 서찰을 읽고 있다. 연화의 음성이 그 위로 흐른다.
연화(E)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옵니다. 더이상 저희 둘만의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공자님.. 이 연화의 마지막 소청이옵니다. 뵙고 싶사옵니다. 이틀 후, 우리가 늘 만나던 바닷가 그 갈대밭에서 기다릴 것이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한번 더 뵙고 싶사옵니다.
왕건이 서찰을 읽다 말고 한숨을 지으며 내려놓는다. 어쩔 줄을 모른다. 갈등과 방황의 빛이 역력하다.
왕식렴 이미 폐하의 지엄하신 영으로 정해진 국혼이옵니다.
왕건 ........
왕식렴 정리를 하셔야 하옵니다. 그만 다 끝내시오소서, 형님. 더이상은 아니 되옵니다.
왕건 알았으니 그만 나가보게.
왕식렴 일이 잘못 되면 삼족이 멸할 수도 있는 일이옵니다. 돌아가신 백부님의 유지를 잊지 마시오소서. 형님께서는 우리 가문의 오랜 염원을 이뤄주실 분이 아니옵니까?
왕건 ........?
씬 13 황궁 외경 (낮)
종간(E) 이제 본격적으로 국혼의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네.
씬 14 동 내원
마치 서가처럼 꾸며져 있는 곳이다. 많은 장서들이 가득히 정렬되어 있고 책상들이 놓여 있다. 그 한켠에서 종간과 은부가 마주해 있다.
종간 국혼의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야.
은부 그리 해야겠지요.
종간 그 때까지 긴장을 놓치 말게나. 폐하께 한 치의 누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은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종간 왕건이나 그 집안 사람들은 어떠한가?
은부 조용하옵니다.
종간 .....그 속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는 사람들이야. 그쪽도 관찰을 게을리 하지 말고...
은부 ..예, 내원 어른.
종간 왕건이는 이번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네. 그 휘하 장수들과 송악의 군사들도 대단한 용맹을 떨쳤어.
은부 .......
종간 왕건이는 바다를 누비며 해적들과 수많은 전투를 치뤄본 군사들을 가지고 있어. 거칠고 용맹하기가 이 나라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은부 .......
종간 ....(한숨처럼) 답답한 일일세.. 또한 불안한 일이고.. 결코 가까이 하셔서는 안되는 사람인데...
은부 (조심스럽게) 내원께서 혹... 상을 잘못보신 것은 아니시온지....?
종간 무슨 말인가?
은부 소장이 보기에 왕건 그 사람은 심지가 곧고 덕을 겸비한 사람이었사옵니다. 그런 사람이 폐하와 극생살의 운이라는 것이 좀..
종간 믿겨지지 않는다는 말인가?
은부 허허허... 뭐 그렇다는 말씀은 아니고...
종간 (단호하게) 여지껏 내 눈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네.
은부 .....
종간 폐하의 상은 토국(土局)이고 왕건이는 수(水)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야. 수와 토는 서로 상극이니 결국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 운명이라는 게지.
은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사옵니다. 관상이나 역술에는 통 문외한이 되어나서....
종간 자네가 보았듯이 왕장군은 뛰어난 사람일세. 약관의 나이지만 문무를 겸비했고, 놀라운 통찰력과 식견을 지녔네. 그리고 더욱 두려운 것은 바로 인화력일세. 그 사람은 자신의 주위로 끊임없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재주를 타고 났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뜻일세.
은부 .......
종간 하지만 폐하 곁에는 나와 자네가 있네. 자네는 절대 폐하를 떠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잘 알지.
은부 그리 믿어주시니 고맙사옵니다.
종간 경계는 하되 걱정은 말게. 황제의 도읍으로 예언된 이곳 송악도 빼앗았고, 그 사람의 여인인 국모자리도 빼앗았네.. 타고난 운명이 설령 용의 운세라 하더라도 비구름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찌 하늘로 오를 수 있겠는가?
은부 ......
종간 폐하와 견줄만한 인물이 있다면 무진주의 견훤이 정도일세. 두고보게.. 삼한의 황제 자리는 결국 우리 폐하와 무진주의 견훤이 놓고 겨루게 될 것일세.
씬 15 무진주 성 외경
박씨 (E) 완산주 궁궐 공사는 어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씬 16 동 대전
견훤과 최승우, 능환, 박씨가 모여 있다.
박씨 아직도 공역이 계속 중입니까?
능환 예, 황후마마. 워낙에 큰 공역이다 보니 시일이 좀 늦어지는가 보옵니다. 조금 더 기다리셔야 할 듯싶사옵니다.
견훤 허허허... 이보시오, 황후, 뭐가 그리 궁금하시오? 새 대궐에 빨리 가고 싶은 게구먼...
박씨 그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공역에 동원되어 고생하는 것이 많을 것 같기에...
견훤 하기사... 한 나라의 도읍을 세우는 일입니다. 백제의 건국을 만천하에 알리는 일이예요. 시일을 길게 끌어서는 곤란하지...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폐하. 그래서 신들이 부쩍 서둘르고는 있사온데 여의치가 않사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오소서.
견훤 (끄덕이며) 예상했던 대로 궁예가 양길이를 대파했네.. 이제 욱일승천의 기세로 한산주와 중원을 장악해 올것이네.
최승우 허허허.. 그야 예상했던 일이 아니옵니까?
견훤 완산주 궁궐 공역에 추허조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싸움만 할 줄 알았지 도무지 그런 일은 재주가 없단 말이야. 빨리 자리를 안정시켜야 할 것인데...
최승우 허허허... 폐하, 너무 염려치 마시오소서. 하옵고 궁예를 너무 크게 평가하지도 마시오소서.
견훤 .......무슨 소린가?
최승우 언젠가는 궁예와 폐하께서 부딪힐 것이라고 생각해 오시지 않았사옵니까? 이제 그것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 뿐이옵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를 해왔사옵니다. 당장 폐하께서 중히 여기실 것은 나라의 재정을 확보하고 백성들의 형편을 돌보는 일일 것이옵니다.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완산주에 입성하시기 전에 나라의 큰 재원이 되는 소금밭도 둘러보시고 다시금 여러 고을들을 순행하시면서 형편을 살피시오소서. 완산주에 가시고 나면 더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으실 것이옵니다.
견훤 ......(끄덕인다).......그건 그리해야겠지. 여기서 할 일은 다 마무리를 짓고 가야지. 소금도 소금이려니와 철의 생산 또한 중요하네. 광산에 인력을 확충하여 철의 생산을 늘리도록 하게. 궁예와 일전을 벌이자면 활과 무기가 많이 필요할게야.
능환 알겠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리고 수확량이 월등한 고을의 실태와 농사법을 파악해서 전 고을에 전하도록 하게. 이는 백성들의 형편을 나아지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군량미를 확보하는 일이기도 하네.
능환 그리 시행하겠사옵니다.
최승우 그 일은 그리 하옵고... 폐하. 그 사벌주의 일 말이옵니다.
모두들 .....?
최승우 완산주에 들어가시기 전에 태황제가 되실 아자개님을 모셔와야 할 것이옵니다.
견훤 또 그 소린가?
최승우 사사롭게는 폐하의 아버님을 모셔오는 일이지만 나라의 경계를 넓히고 다가오는 궁예와의 대전쟁을 대비하는 일이옵니다. 사벌주의 사정도 살펴볼 겸해서 신이 능애님과 함께 다녀오겠사옵니다.
견훤 가봐야 소용이 없다 하지 않았는가?
능환 사벌주는 전략적인 요충지이옵니다. 궁예가 중원을 얻으면 바로 달려올 곳이 그 사벌주일 것이옵니다.
견훤 .....(대답이 없다) .... 허허, 그 참.....
씬 17 길
최승우와 능애가 군사들을 이끌고 사벌주로 가고 있다.
능애 헛걸음을 하는 겝니다. 아버님은 절대 오시지 않습니다.
최승우 허허허..알고 있습니다. 고집이 대단하시다지요?
능애 형님 폐하와 저울로 달면은 똑 같으실 겝니다. 허허허... 이거 이러다가 우리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소이다? 성미가
불같은 분이예요. 최승우 그래도 가봐야지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두 분은 합치셔야 합니다. 황실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입니다. 능애 헌데. 이보시오, 최학사? 정말 궁예가 사벌주로 온단 말입니까?
최승우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꼭 오게 되어 있어요.
씬 18 송악 황궁 외경(밤)
씬 19 동 대전
궁예가 지도를 보고 있고 종간이 그 옆에 서 있다.
궁예 보시오. 참으로 광활한 영토가 아니오? 이 드넓은 중국 대륙 요동벌판이 모두가 고구려의 영토였소.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오?
종간 그렇사옵니다. 언젠가는 폐하께오서 되찾으셔야 할 땅이옵니다.
궁예 그래야지요. 광개토대제와 장수대제가 걸었던 길을 나 또한 갈 것이오. (지도보며) 이 발해국도 엄청난 대국이오. 보시오. 이 땅의 경계를 말이오.
종간 그러하옵니다. 하오나 발해국은 지금 국운이 쇠퇴할대로 쇠퇴해 있다고 하옵니다. 북쪽의 오랑캐 거란이 호시탐탐 발해의 땅을 노리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발해는 고구려의 후손 대조영이 세운 나라가 아니오? 우리와는 형제국이올시다. 이 땅을 거란에게 내줄 수는 없는 일이지....
종간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하루빨리 삼한 통일의 대업을 이루시고 저 발해국과 요동벌판을 넘어 중원대륙을 모두 도모해야 할 것이옵니다
궁예 그래야겠지... 암, 그래야하고 말고... 그래야 한 나라라 할 수가 있고 제국이라 할 수가 있지.
종간 일단 삼한을 손에 넣으시는 것이 급한 사안이옵니다. 다시금 출병을 명 하시오소서. 한산주 일대는 주인이 없는 곳이나 다름없사옵니다. 각 고을이 눈치를 보며 폐하의 군대가 오기만을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궁예 ....그 다음은 북원의 양길과 또 부딪힌다?
종간 양길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이옵니다. 북원과 죽주를 거쳐 중원까지는 손쉽게 내려갈 수 있을 것이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옵니다. 남으로는 웅주가 버티고 있고, 동쪽으로는 사벌주가 가로막고 있사옵니다.
궁예 사벌주라...? 그곳은 견훤의 아비 아자개가 장군으로 있는 곳이 아니오?
종간 그러하옵니다. 폐하께서 사벌주를 공략하시면 필연적으로 견훤과 만나게 되실 것이옵니다. 두 부자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을 듣긴 했사옵니다만 설마 아비를 돕지 않겠사옵니까?
궁예 .......(끄덕인다) 군사들을 재정비하고 남하 준비를 서둘러야겠소. 특히 한산주 일대를 도모하려면 수군이 필요할 것이오. 임진강과 한강의 뱃길을 이용하면 공략이 수월할 것이오.
종간 수군.. 말씀이옵니까?
궁예 그렇소. 왕건의 송악군이 양길과의 전투에서 크나큰 전공을 세우지 않았소? 그들이 배를 타고 전장에 나서면 더욱 큰 위력을 발휘할 것이오.
종간 .....알겠사옵니다. 허나 아직은 왕건의 사병이옵니다. 이번 기회에 그들을 폐하의 군대로 만드셔야 할 것이옵니다.
궁예 그게 무슨 말씀이오? 왕건이 이미 나의 신하가 되었는데 또 무슨 절차가 필요하단 말이오?
종간 폐하께오서 직접 수군을 점고하시라는 뜻이옵니다. 일단은 나라의 대사인 국혼이 눈 앞에 다가왔으니 국혼을 마치고 난 연후에 군사들을 정비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궁예 ........(어두워지며) 국혼이라...
종간 이미 모든 절차와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이제 황후마마를 맞으시기만 하면 되옵니다.
궁예 ........또 한 여인이 불행의 길로 들어서겠구려.
종간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궁예 내원은 나를 잘 아시지 않소?
종간 폐하, 제국의 만년대계가 서는 일이옵니다. 문무신료들과 만백성이 한 마음으로 기뻐하고 있사옵니다. 기꺼이 맞아들이시오소서.
궁예 ........
궁예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 모습에서 디졸브되면..
씬 20 바닷가(밤)
멀리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그 무성한 갈대밭들이 바람에 휩쓸리며 소리내어 울고 있다. 누군가 달빛아래 서서 먼 바다를 보고 있다. 연화다. 그녀의 시야로 달빛과 파도가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랜 침묵이 흐른다. 그 바람소리, 울부짖는 바람소리에서.... 갈대가 춤을 춘다. 보는 연화의 처연한 얼굴에서.....
씬 21 그 근처 길
왕건이 말을 타고 해안길을 달려오고 있다. 그 위로 연화의 음성이 흐른다.
연화(E) 모든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옵니다. 더이상 저희 둘만의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사옵니다. 공자님.. 이 연화의 마지막 소청이옵니다. 뵙고 싶사옵니다. 이틀 후, 우리가 늘 만나던 바닷가 그 갈대밭에서 기다릴 것이옵니다. 마지막으로 꼭 한번 더 뵙고 싶사옵니다.
왕건, 천천히 말을 몰아오고 있다. 그의 시야로 갈대밭의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무수한 파도소리들....
씬 22 연화가 있는 곳
연화가 미동도 없이 그대로 바다를 보며 서 있다. 그 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온다. 그 쪽을 돌아보는 연화. 왕건이 다가오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가까워진다. 그리고 왕건이 멈춰서고 그들은 서로를 그렇게 본다. 아무도 말이 없다. 시선이 교차된다. 왕건이 말에서 내려서고 두 사람이 그렇게 가까워진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이 여전히 그들의 침묵을 대변하고 있다.
왕건 연화낭자.
연화 공자님.....
왕건 낭자...
연화 (눈물) 소녀의 마지막 청을 들어주셨사옵니다.
왕건 ....... 청을 들어주러 온 것이 아니라 보고 싶어서 온 것이오. 모든게 다 내 잘못이오. 그래서 이리 된 것이오.
연화 (눈물이 흐른다) 어찌 공자님의 잘못이라고만 하겠사옵니까? 하지만... 어찌해서 우리들의 운명이 이리 되었는지... (눈물) 모르겠사옵니다.
왕건 ...... (목이 메어) 내 잘못이오, 내 잘못이오, 낭자.
그리고 또 침묵이 흐른다. 왕건은 눈물을 참는 듯 파도를 본다. 바람소리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연출진은 이 명장면을 꼭 바람소리를 넣도록 해 주시고 달빛을 끝내주게 넣어 보십시오)
왕건 .... (더욱 목이 메어) 다.. 내.. 내 잘못이오...
연화 (한참 보다가) 공자님.
왕건 낭자...
연화 아직, 아직 늦지 않았사옵니다. 지금이라도...
왕건 ......
연화 지금이라도 우리는 떠날 수 있사옵니다. (격정적으로) 떠날 수 있사옵니다
왕건 .......(흔들린다) 낭자...
연화 그렇게 해 주시어요. 우리는 어디든지 갈 수 있사옵니다. 공자님께서는 바다건너 수많은 나라를 알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어디든 좋사옵니다. 소녀를 데리고 멀리 떠나 주시오소서.
왕건 .......낭자...
연화 .......(갈구하듯 본다) 공자님.....
왕건 낭자....
그들 그렇게 포옹한다. 연화가 왕건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흐느낀다.
연화 그렇게 해 주시어요. 떠나 주시어요, 공자님.
그들의 그런 애닲은 모습 위로
강장자(E) 뭐라, 연화가 사라져?
씬 23 강장자의 집 마당
강장자가 뛰쳐나온다. 백씨도 따라 나온다.
강장자 연화가 사라지다니 대체 무슨 소린가?
진서방 송구하옵니다. 저녁 나절까지 계시는 것을 확인했사온데...
강장자 이런... 이런 변이 있나? 이 아이가 끝내.. (다시 뒷골을 잡고 괴로워한다)
백씨 나으리? 괜찮으시옵니까?
강장자 ......
백씨 뭣들 하는가? 어서 연화를 찾아보게.
강장자 송악... 송악으로 갔을 게야.. 그 곳으로... 사람을 보내게.
진서방 알겠사옵니다.
대답하고 달려간다.
강장자 그예..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백씨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강장자 찾아야 합니다.. 찾아오지 않으면.. 다 죽습니다.. 다 죽어요..
그들의 모습 위로..
왕평달(E) 그걸 왜 이제서야 얘기하느냐?
씬 24 송악/왕평달의 거소
왕평달과 왕식렴이 마주해 있다.
왕평달 그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어찌되는지 모른단 말이냐? 너라도 말렸어야 하는 일이 아니냐?
왕식렴 형님의 뜻이 워낙 완강하시다보니.. 하지만 염려마시오소서. 형님께서 현명하게 처신하실 것이옵니다.
왕평달 어떻게 염려가 아니 되겠느냐? 잘못되면 우리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일인데...
왕식렴 형님께서 가시지 않으면 연화 아씨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라도 한다면...
왕평달 뭐, 모, 목숨을 끊어?
왕식렴 형님을 믿으시오소서. 형님께서 잘 하실 것이옵니다. 오늘밤만 지나면 되옵니다.
왕평달 허.. 이거야..
왕평달의 초조한 모습에서..
씬 25 그 바닷가
연화와 왕건이 나란히 앉아있다. 연화가 왕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먼 바다를 보고 있다.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는 여전하다. 갈대밭이 춤을 춘다. 연화가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연화 이 목걸이 기억 나시옵니까?
왕건 .....(끄덕인다) 납니다.
연화 공자께서 서라벌에서 사다 주신 것이옵니다.
왕건 .....
연화 그 때는 우리가 아주 어렸었지요. 그런데도 소녀는 꼭 공자의 부인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사옵니다. (다시 목이 메이며) 아무도...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목걸이는 그래서 더욱... 소녀에게는 의미가 컸사옵니다
왕건 ....... (바다만 보고 있고)
연화 사모했사옵니다. (다시 눈물) 진정으로 공자님을 사모했사옵니다.
왕건 낭자...
연화 공자님....(흐느끼며) 공자님...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아옵니다. 하지만... 하지만 너무도 가혹하옵니다. 너무도 가혹하옵니다. 차라리 이대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사옵니까? 얼마나....
왕건 낭자.... (포옹해서 꼭 안으며) 낭자... 나도 미치고 싶소. 더이상은 제정신을 가누기가 힘이드오. 하지만 어찌 현실을 부정할 수가 있겠소? 낭자. 나도 낭자를 사모하오. 낭자 밖에는 없소. 낭자... 진심이오. 낭자를 사모하오.
연화 공자님.... 소녀도 그러하옵니다.
왕건 아아...어찌하면 좋소. 어찌하면....
두사람 그렇게 서로를 본다. 왕건이 격정적으로 연화를 앉으며 얼굴을 부빈다. 그리고 연화는 눈을 감고 서서히 그들의 입술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뜨거운 입맞춤으로 이어진다. 디졸브되면....
그 위로 카메라 판하여 옆으로 뜨면서 무수히 춤추는 갈대밭을 잡는다. 바람소리 바람소리에서.......그들은 다시 입맞춤을 끝내고 서로를 본다. 다시 한번 더 격정적인 포옹을 했다가 드디어는 연화가 왕건을 가슴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처연한 미소를 짖는다. 왕건도 서서히 일어난다.
연화 우리들의 마지막이옵니다. 더 이상 눈물은 보이지 않을 것이옵니다. 안녕히 계시오소서. 부디 큰 일을 이루시오소서.
왕건은 그렇게 서 있다. 연화는 말 위에 오른다. 그리고 잠시 한번 더 왕건을 보다가는 희미한 미소를 남기며 말을 몰아 사라진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는 왕건.
왕건 낭자....(절규처럼) 낭자... 내 잘못이오, 다 내 잘못이오. 낭.. 자...
거꾸러지듯 오열하는 왕건의 그 절규가 바람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그 소리에서 디졸브.......
씬 26 길(낮)
국혼 행차가 지나가고 있다. 집사인 왕건이 말을 타고 앞서 가고 있고, 종간과 김언, 종희, 김락, 염상, 금대, 장일 등과 수많은 군사들이 뒤따르고 있다. 박지윤과 다른 신료들도 보인다. 엄청난 행렬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형가마가 따르고 있다. 백성들이 그 모습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다.
백성1 황후마마를 뫼시러 가는 행차인 모양일세.
백성2 대단하구먼.. 참으로 장관일세.
백성1 누가 아니라나... 저것 좀 보게.. 내 생전에 저렇게 큰 가마는 처음 보는 것 같네 그려..
백성2 대단한 잔치가 될 모양일세. 나라의 경사가 아닌가?
씬 27 강장자의 집 외경
강장자와 백씨, 진서방들이 기다리고 있다. 멀리서 국혼 행차가 당도하고 있다. 왕건들이 말에서 내려 다가온다. 혼례집사인 왕건을 중심으로 하여 신료들 최고인 박지윤이 앞으로 나선다.
강장자 어서들 오시오소서.
박지윤 폐하의 영을 받자와 혼례집사 왕건장군이 모든 의장을 갖추어 삼가 황후 마마를 뫼시러 왔소이다. .
강장자 폐하의 황은이 참으로 망극하옵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소서. 곧 나오실 것이옵니다. .
왕건 ......
잠시 후 연화가 대례복을 입고 나온다. 모두들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춘다.
모두들 황후마마! 소신들 문안이옵니다.
왕건과 연화가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외면하는 연화. 종간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왕건 황후마마, 신 왕건, 혼례집사가 되어 이 의식을 맡았사옵니다. 황궁으로 뫼실 것이오니. 어서 연에 오르시오소서.
연화 ........
모두들 .......
종간 .......
왕건 어서 오르시오소서, 황후마마..
연화가 말없이 연에 오른다. 그리고 그 연이 들리워지면서...
왕건 연을 뫼시어라.
대답소리와 함께 연이 움직여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황궁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씬 28 인서트-길
황후의 행렬이 가고 있다. 왕건이 묵묵히 앞서가고 있다. 연 위의 연화도 여전히 표정이 없다. 계속해 가는 그 엄청난 행렬에서...
씬 29 황궁 정전 뜰
황제의 내군들이 기치창검을 휘날리며 도열해 있다. 유장자를 비롯한 패서의 장자들 모두와 환선길, 복지겸, 이흔암, 배현경, 홍유 등이 모두 나와 황후가 될 연화를 기다리고 있다. 왕평달과 왕식렴, 변사부, 마사부, 장수장, 능산, 유금필, 박술희 등도 보인다.
은부 (E) 폐하, 황후마마께서 곧 도착하실 시각이옵니다.
씬 30 동 대전
궁예가 대례복을 입고 말없이 앉아 있다. 은부가 곁에 서 있다.
은부 폐하.. 속히 대례장으로 납시시오소서.
궁예 ..........
은부 폐하..
눈을 감는 궁예. 괴로운 듯 한숨을 짓는다.
씬 31 미향의 후원
월이가 급히 가고 있다.
씬 32 동 미향의 거소
미향이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우고 있다.
월이(E) 마님, 쇤네이옵니다.
미향 ......들어오너라.
월이가 들어온다.
월이 마님, 황후가 오신다 하옵니다. 정전 뜰에 신료들이 모두 모여 있사옵니다.
미향 ..........
월이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마님?... (흐느끼며) 마님께서 너무도 딱하시옵니다.
미향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왜 눈물을 보이느냐? 어서 그치거라.
월이 마님.
미향 참으로 아니되었구나...또 한 여인이 생지옥으로 들어서고 있구나. 나무 석가모니불... 이 얼마나 딱한 일인가....
월이 마님?
미향 그 여인도 틀림없이 불행하게 될 것이다. 황후가 다 무슨 소용이겠느냐? 문을 닫거라, 기도에 방해가 되는구나.
월이 .....마님?
미향 나는 아느니라. 참으로 그 여인이 안되었도다. 황후 말이다.
눈치를 보며 문을 닫아주는 월이의 모습 위로
소리 황후 마마 듭시오!
씬 33 정전 뜰
연화가 궁녀들의 인도로 정전 뜰에 깔린 주단을 밟고 들어서고 있다. 모두들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다. 정전 앞에서 궁예가 기다리고 있다. 연화가 궁예 앞으로 다가와 절을 올린다. 궁예가 계단을 내려가 연화를 맞는다.
궁예 오시느라 고생 많았소. 어서 오르시오.
연화 ........
궁예와 연화가 정전 위로 올라선다.
궁예 만조백관과 백성들은 들으라. 짐은 오늘 이 나라의 만년대계를 위하여 황후를 맞아들였노라. 황후는 곧 이 나라 만백성의 지어미니라. 그대들은 짐을 대하듯 황후를 대하여야 할 것이니라.
군사들이 함성을 질러댄다.
은부 대왕 폐하 만세!
모두들 대왕 폐하 만세, 만세, 만세....!
은부 황후 마마 만세!
모두들 황후 마마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소리가 드높아진다. 왕건도 그들과 함께 손을 올려 만세를 부른다. 종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런 왕건을 본다. 그 화려한 대례복을 입은 황후 연화의 모습과 그를 보는 왕건의 표정에서...디졸브 되며....
29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