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 ‘천불천탑’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소박한 부처 개성있는 석탑 골짜기마다 경외
이야기가 있는 남도/■ 화순 운주사
남도의 이야기를 찾다보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화순 운주사다.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용강리 일원에 있는 운주사는 돌로 된 석불석탑이 각각 1,000구씩 있던 유일한 사찰이다.
“천불동은 나를 감동시킨다. 현대의 어떤 예술 작품도 그 만큼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다.” 독일 예술 평론가인 힐트만은 운주사 천불석탑을 이렇게 극찬했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 의 무대로도 등장하면서 일약 민중해방의 미륵성지로 떠 오른 운주사. 원래 운주사에는 1,000 구의 석불과 1,000 기의 석탑이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석불 석탑 각 1,000구씩이 있다고 기록돼 있어 조선 초기까지는 실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천불천탑이라 불려졌다고 하나 이제 남은 것은 석불 93구, 석탑 21기. 10m의 거구에서부터 수십 ㎝의 소불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불상들이 산과 들에 흩어져 있다. 이 천불천탑이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명확하지 않기에 많은 전설과 사연들이 전해진다.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설에 의거 이곳 지형이 배형으로 되어있자 배의 돛대와 사공을 상징 천불과 천탑을 세웠다하여 일명 천불천탑이라 한다. 그러나 석불 석탑의 양식이나 가람터의 발굴결과에서도 도선이 활동하던 9세기와는 거리가 있으며 대체로 고려시대의 양식이 대부분이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4차례의 발굴조사와 두차례의 학술조사를 했으나 창건시대와 창건세력, 조성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확증을 밝혀내지 못해 운주사 천불천탑은 여전히 불가사의한 유적으로 남아있다.
운주사 불상들은 천불산 각 골짜기에 여러기가 집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크기도 각각 다르고 얼굴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홀쭉한 얼굴형에 선만으로 단순하게 처리된 눈과 입, 기다란 코, 단순한 법의 자락이 인상적이다. 민간에서는 할아버지부처, 할머니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라고 불러오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소박하고 친근하다. 이러한 불상배치와 불상제작 기법은 다른 곳에서는 그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운주사 불상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
석탑 21기도 산야 여기저기에 즐비하게 서 있는데 둥근 원형탑, 원판형탑 같은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으며 3, 5, 7, 9층 층수도 다양하다.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의 애용은 불상의 기하학적 주름과 더불어 운주사 유적의 가장 특징적인 양식으로 주목된다.
또한 운주사 석탑들은 모두 다른 모양으로 각각 다양한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꽃무늬가 밑에 새겨진 넓고 둥근 옥개석(지붕돌)의 석탑과 동그란 발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 석탑을 닮은 백제계 석탑, 감포 감은사지 석탑을 닮은 신라계 석탑, 분황사지 전탑(벽돌탑) 양식을 닮은 모전계열 신라식 석탑이 탑신석의 특이한 마름모꼴 교차문양과 함께 두루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운주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상은 서쪽 산능선의 와불이다.
전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와불로 남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곳이 서울이 된다고 전해온다. 일제 강점기 그런 연유로 일본인들이 불상을 훼손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도 있다. 두 석불은 각각 12.7m와 10.3m로 국내에서는 최대의 석불이다. 와불 아래 시위불은 그 동자승이 벌을 받아 시위불(머슴미륵)로 변했다는 석불 입상이 서있어 전설에 흥미를 배가시킨다.
사찰경내의 많은 석불과 석탑은 그 조각수법이 투박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조성연대는 고려중기인 12세기 정도로 평가되며 일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계속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적 제312호로 지정된 운주사는 1984년 이후 4차례 발굴과 석조불감해체복원, 원형다층석탑보수, 일주문신축, 보제각신축을 했으며 97년에는 와불진입로를 정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