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의 단(檀)은 ‘박달나무 단’이다. ‘밝다’라는 뜻을 박달나무에서 가차하여 단(檀)을 쓴 것이다. 그리고 군(君)은 ‘임금 군’으로, 여기서 ‘임’자를 가차한 것이다. 고로 단군의 우리말은 ‘밝은임’이다. 진리에 밝고 세상에 밝아 인간을 밝게 하시는 밝은 임금이시다.
일설에는 몽골어에 당구르, 뎅구르, 텅구르란 말을 한문으로 옮길 때 ‘밝산’의 의미를 고려하여 단군으로 옮겼다고 한다. 그러나 밝산을 가리키는 말은 따로 있다. 고어를 보면 한자음 달(達)에 산(山)을 대응시킨 것이 무려 10여 개 이상 나타난다. ‘tar’라는 발음이 당시에는 산을 의미하였던 것으로, 밝산이란 곧 배달(倍達)을 말한다.
따라서 단군은 밝산(배달)을 무대로 밝은 사상을 온 누리에 펼쳤던 광명의 주체이다. 고로 객체인 밝산이 아닌 주체인 밝은임으로 풀이해야 한다.
몽고계 안에 있는 산악의 공통점은 그 이름에 거의 ‘박(白)’자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파미르를 중심으로 하여 동북쪽으로 퍼져 나가 우랄 알타이 족이 사는 모든 지역에는 하늘과 조상을 모시는 신령스런 산이 있어서 그것을 ‘박산(白山)’이라 했다. 오늘날의 백두산, 태백산, 소백산…등의 이름도 그 흔적이다.
그리고 박산(白山)을 중심으로 한 문명의 지도자를 밝은임, 또는 한자로 백(伯)이라 했다.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伯(백)은 ‘人 + 白’으로 밝은임, 즉 단군이란 뜻이다. ‘황(皇)’자도 밝은(白) 임금(王)이란 뜻이고, 광(光)자도 원래 ‘태양 빛’이 아닌 ‘밝은임’에서 비롯되었다.〈소전〉에 보면 光(광)을 ‘ ’게 그렸는데, 이것은 태양과 같이 밝게 빛나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박산(白山)에는 으레이 하늘에 제사 올리는 곳이 있다. 이곳을 소도(蘇塗)라 한다. 우리말로는 솟대, 솟터 등으로 부른다.
소(蘇)란 소생하다란 뜻이고, 도(塗)란 진흙을 말한다. 즉, 소생하는 진흙땅을 말한다. 진흙땅이란 진짜 참되고 가치 있는 땅을 음차한 것이다. 고로 소도란 울나를 버리고 얼나로 거듭나는 참된 땅이란 뜻이다. 솟대나 솟터로 발음해도 ‘얼로 솟는 터’, ‘한얼 진리로 거듭나는 터’란 뜻이 된다.
소도는 돌을 쌓아 만든 높은 축대나 신단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 옆에는 으레이 돌무더기 탑이 있었고 주변의 나무 중 가장 크고 잘생긴 놈을 골라 신단수라 하였다. 오늘날의 당산 나무가 그 흔적이다.
밝은임께서 하늘에 제를 올리던 곳을 신시(神市)라 불렀다. 신시(神市)란 밝산의 꼭대기에 평평하게 다지고 돌로 잘 마무리하여 제를 올릴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이다.
그런데 신시(神市)의 시(市)자는 ‘시’가 아닌 ‘불’로 읽어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불(巿)이란 온갖 굴레인 ‘冂’을 뚫고 하늘인 ‘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신시(神市)에서 신(神)이란 하늘임 신이다. 따라서 신시란 온갖 굴레와 역경을 뛰어 넘어 하늘임과 하나가 되는 땅이란 뜻이다. 이것이 곧 천제(天祭) 의미이기도 하다.
예수가 말하기를,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려고 왔다. 이 불이 타오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누가12:49]” 하였다. 여기서 불이란 밝음이다. 광명의 진리를 세상에 펴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 보다 몇 천 년 앞서 세상에 불을 지르신 분이 있다. 바로 밝은임 단군이시다. 단군의 밝은 사상은 ‘밝’을 타고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다.
가령 신체 밑부분을 다리와 발이라 한다. 다리는 ‘tar(達)’에서, 발은 ‘밝’에서 왔다. 즉, 산악을 누비며 밝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신체 부위란 뜻이다. 이것이 우리의 다리와 발의 개념이다. 현란한 조명 속에서 흔들고 뛰라고 생긴 다리와 발이 아니며, 음란한 곳을 찾아 헤매라고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고인(古人)들은 ‘구용(九容)’의 첫째 덕목으로서 ‘족용필중(足容必重)’을 꼽았다. 발을 무겁게 하여 속된 곳에 들여놓지 말라는 뜻이다.
어쨌든 족(足)을 뜻하는 par(발)은 여러 나라로 퍼졌다. 학자들에 따르면 라틴어의 pes나 퉁구스의 pal-gan이 par(발)에서 나왔다고 한다. 불(火)을 뜻하는 pur도 그리스어의 pur와 일치한다.
이런 예는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 영어의 bright, brilliant, bim 등은 모두 ‘밝’의 ‘ᄇ’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 유대인을 가리키는 히브리(Hebrew)도 불에서 나왔다고 한다. 히브리(Hebrew)의 어원은 하비루(Habiru)에서 나왔고, 하비루란 ‘부루’에서 나왔다. 란 에서 ‘ᄂ’이 탈락된 것이고, 부루란 ‘불’, ‘밝’을 뜻한다. 고로 광명을 뜻하는 한밝에서 한불→한부루→하부리→히브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일부 언어학자들은 세계 언어 형성에 단군의 ‘밝’이 씨알이 되었다고도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밝고 밝은 저 하늘이 온 누리를 비추시네明明上天照臨下土” 하였다. 여기서 밝은 하늘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뿌리(根)의 고어인 ‘불위’이다.
불위란 ‘불 + 위’로 밝은 것 보다 더 위에 있는 것, 즉 ‘절대’를 말한다. ‘절대’는 바로 만물의 뿌리인 한얼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 겨레가 눈에 보이는 피상적 하늘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절대적 진리를 숭배하였음을 보여준다. 당시에 이미 형이상(形而上)의 개념이 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밝은임 단군은 인류사 최초로 광명 사상을 주창했다. 단순한 태양이나 불의 숭배가 아니다. 광명이란 한얼의 빛이며, 선계(仙界)를 감싸안는 현묘한 기운이다.
광명을 따르는 것은 스스로 얼을 닦아 선화(仙化)하는 것이다. 이렇게 얼나로 거듭나 존재 가치를 누릴 것을 가르친 것이 단군의 광명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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