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의 불안에 바치는 書
필자 조준호는 서울대 경제학과 시카코대 MBA 졸업 후, LG그룹 입사 LG전자 사장을 지냈다. 삼성 그룹 인사의 책은 몇 권 읽었으나 LG 그룹은 처음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고 호소한다. 회사원, 자영업자대로 삶이 팍팍하다고 한다.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그대로고, 경쟁은 치열해진다. 노인층의 빈곤도 큰 사회 문제다. 2024년 한국 중위소득은 1인 기준 222만 8,445만 원이다. 사회보장 성격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합쳐도 월 112만 원이다. 그러니 65세 이상의 35%는 생계비를 벌기 위해 계속 노동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나라가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단다. 우선 급격한 고령화와 출산율 감시 시기가 AI와 로봇 기술의 실제 상용화 가능 시점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우리가 AI·로봇화에 가장 앞서는 나라가 됨으로써 새로운 성장 산업을 일으키는 한편,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 노인 돌봄 서비스, 의료 서비스 개선, 교육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을 잃어버린 사회.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이나 자산이 상위 몇 % 안에 드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중에서도 상위 5% 안에는 들어가야 잘사가 는 것으로 생각할 만큼 눈높이도 높다. 1등 최고만을 지향하던 사회였기에 올림픽에서 은메달 획득을 축하하고 인정하는 공감대가 형성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산업화 시기에 들어선 후에는 좋은 대학교를 나와 소위 ‘좋은 직업’이나, 즉 변호사, 의사, 고급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신분 상승의 지름길이었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승진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퇴직 연령은 더 젊어지고 있다. 사회가 강요하는 기준을 놓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정작 자기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성적과 대입이 중요하고,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경쟁한다. 직장에서는 성과 평가, 연봉, 직급 등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보다는 남들이 평가하는 기준에 맞춰지기 일쑤다. 모르는 사람이 돈을 벌면 그런가 하지만, 친구나 동료가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사람이다. 이는 자기 의견보다 주변 사람의 선호에 따라가는 ‘관계주의적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바르게 사는 삶이 바보처럼 보이는 세상. 필자는 세상은 성실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바꾼다고 믿는다. 이는 역사와 현실에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다. 인권운동,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의 성실하고 올바른 행동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뉴스에 의하면 겉으로 양심적이고 바르게 보였던 사람이 뇌물받고, 탈세하고 가족들이 직장 차량과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쓴다. 이런 일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살겠다는 태도는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는 신생아 수가 23만 명으로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2070년까지 한국의 인구는 3,800만 명으로 감소한다. 우리나라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의 소멸을 시키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니면 젊은 직원을 구하기 어렵다. 직원들은 수원 라인이니 평택 라인이니 하며 이보다 남쪽의 직장에 다니면 혼처 잡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나쁘지 않다. ‘AI·로봇화’에서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되는 데 답이 있다. 중국은 고등학교 졸업자가 전체 인구의 30%도 안 되며, 대학교 졸업자는 20% 수준이다. 인도는 중국보다 더 양극화가 심각하다. 혹자는 대학 졸업자들의 절반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청년들의 대다수는 고등학교, 대학교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활용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아졌다. 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위해서는 교육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 정답을 찾기 훈련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 해결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과거 직장에는 ‘직장에서는 계급순 나이순으로 똑똑하다’라는 얘기가 있다, 나이가 적거나 계급이 낮은 사람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다시 한번 기로에 선 우리 사회. 저출산 문제 때문에도 ‘AI·로봇화’에 앞장서는 것이 불가피하다. 우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를 빠르고 우수하게 해낼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생산성이 오르며 국가 경제도 더욱 성장할 것이다. 10대 경제 강국이거나 첨단 산업 기술이 발달한 나라가 되면, 삶의 편리성이 높은 나라라고 평가되며 주식시장의 시가총액도 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각자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며 사는 사회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감소해 왔고, 실질임금도 많이 증가한 국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은 아무리 복지가 개선되어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글이 기억에 남는다. 각자가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실제로 누리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쓸데없이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면서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는 사람이 없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자기 나름의 삶을 누리며 행복해진다면 사회 전체로도 모두가 돈만을 추구하는 현상이 조금은 약화될 것이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적절한 보수와 여가를 보장하는 직업이 많이 있는 사회. 중소기업의 연봉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동일한 일을 해도 여성은 남성보다 31.2% 적게 받는다. 사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부각되는 고용 관련 문제는 원하는 일자리와 채용하고 싶은 인재와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70~80% 수준이라고 하니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문제점. 다양한 중소기업에 취업하여 경험과 지식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원하는 직장으로 이직하는 것이 보편화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아 훈련시키면 3년 이내에 30~40%가 그만둔다고 하니, 이제 출신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필요한 분야 경력자를 실제 경험과 인성을 감안해 뽑는 쪽으로 자연히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양질의 양육, 교육, 의료, 주택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사회. 요즘 직장에서 애사심이나 동료와의 유대감이 없다고 해도 여전히 직장인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이 직장에 연결되어 있다. 급여, 건강보험, 국민연금이 그렇다. 직장을 그만두면 당장 신용대출을 받기도 어렵다. 우리는 산업화의 필요에 의해 치열한 성적 경쟁을 해서 이긴 사람이 돈도 많이 벌고 남의 위에서 권력을 부리는 것이 당연한 것을 내면화시키는 교육을 받아왔다. 산업화 시기 선진국의 기술과 업무처리 방식을 배우며, 급속히 성장할 때는 잘 맞아떨어지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시대를 이끌어 갈 사회 지도층의 마음가짐과 소양을 가졌을까? 정해진 문제를 잘 풀고 암기 실력이 좋아 성적이 좋았던 사람들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혁신적 기업을 일구고 이끌 수 있을까?
모두가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사회. 우리 사회는 권력관계나 서열에 의한 인권 침해, 소위 갑질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갑질의 사연을 듣고 분노한 사람도 막상 자신이 권력을 쥐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면 상대방에게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능력주의를 넘어선 공정한 사회. 예를 들어 대학입시에서 부모의 지위를 이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자녀를 입학시키는 사건이나 채용 과정에서 인맥을 동원해 특혜를 받는 사례들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다. 공정한 대우에 대한 세 가지 관점. 철저히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여기서 능력은 교육 정도, 시험 합격 여부, 인사 평가 점수 등 최대한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한다. 두 번째는 개인의 능력 차이에 따른 보상 차등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능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관점은 두 번째 관전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개인의 능력이 타고난 재능과 노력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그 재능이 계발되는 데에는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혁신을 잘 수용하는 사회. 기업의 유연한 인력조정과 혁신. 혁신이 잘 일어나려면 기업에서 사업구조조정과 인력조정이 더 유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미국이 커다란 경제 규모에도 높은 경제 성장을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업 전망이 안 좋은 분야에서 인력을 감축하고 전망이 있는 곳에 사람을 뽑는 것이 자유롭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과 노동자 간에 이런 믿음이 없다. 중년 직원이 실업 후 재취업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개인 복지의 대부분이 국가 차원의 공공 인프라보다는 회사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실직을 하면 의료보험부터 주택구매용 대출 상환 문제, 자녀 사교육비까지 생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구조조정에 결사적으로 저항한다. 해결 방법은 대기업부터 경력 사원 채용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경력직은 성별이나 연령 경력과 무관하게 업무 능력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직원은 나이와 무관하게 직위와 책임에 따라 일하는 데 익숙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4.09.04.
그대들의 불안에 비치는 書
조준호 지음
저녁달 간행
첫댓글
뷸안한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방향 제시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엘지 그룹의 CEO글은 처음인데 차분하게 자기 주장을 잘 하는군요.
10월도 바빠지겠네요
한글날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