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월요일 (백)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4,7-16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19-27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마르타 성녀의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 내용은 마르타 남매(라자로, 마르타,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일화 중 하나지요.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요한 11,3) 오늘의 대목이 있기 며칠 전, 마르타, 마리아 두 자매가 주님께 사람을 보내어 전한 말씀입니다. 두 자매의 심정은 오늘의 내용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이미 매장이 끝난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의 죽음 앞에서도 마르타는 예수님께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하고자만 하신다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청을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요한 11,22)을 안다고 고백합니다. 이 앎의 고백은 예수님 향한 그녀의 굳은 믿음과 변치 않는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엇보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라자로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요한 11,11)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 예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를 죽음에서 일으킴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요한 11,4)을 드러내실 예수님께서 먼저 마르타의 믿음을 확인하십니다. 기적이 대중의 얕은 호기심이나 자극하는 기괴한 스캔들이 되지 않으려면 그 기적의 당위성인 "믿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려는 기적은 "사랑"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당신께 대한 믿음이 생명의 조건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되살아나는 생명은 물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은 믿음에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물음에 마르타는 신앙 역사에 길이 남을 명 대답, 정답을 남깁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이, 당시 제자들부터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이 신앙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분이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주님의 종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진리입니다.
제1독서인 요한의 첫째 편지에는, 사랑의 사도라 불리는 요한의 글답게 온통 "사랑"이라는 말씀으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 사랑... 그야말로 사랑 타령입니다. 그리고 "사랑"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씀이 "머무르다"는 동사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과 "머무름"은 뗄려야 뗄 수 없이 밀착된 말씀들이지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머무름은 상대를 거처 삼아 그의 안에 자신을 두는(놓는) 존재적 행위입니다. 그런데 사랑을 통해 이 머무름이 동시에 상호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그분 안에 내가 머무르고 내 안에 그분이 머무르는 신비는 사랑할 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1요한 4,15) 마침 오늘 마르타가 믿음으로 고백한 내용이지요. 이 믿음 또한 머무름을 부른다고 합니다. 내 안에 그분이 계시고(머무르시고) 그분 안에 내가 있는(머무르는) 상태, 서로가 서로에게 머무르는 것은 하나됨의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내 안에 그분이, 그분 안에 내가... 둘은 이미 분리할 수 없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서로에게 머물러 하나된 존재는 칼로 베듯 분리할 수도, 뜯어내듯 떼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이미 하나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예수님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믿음은 사랑의 머무름으로 이어지고, 또 생명을 부릅니다. 결국 생명은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창조부터, 그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모든 피조물의 사랑까지, 또 우리가 일상에서 소박하게 나누는 작은 사랑까지, 사랑은 생명을 생성하고 보듬고 지키고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에 기초한 모든 사랑은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지는 기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믿고 머무르고 사랑이 되어 영원히 사는 그 기적 안에 있습니다. 그 기적 안에 있는 벗님을 축복합니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