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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수도회] 주고받는 생명과 사랑의 원리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신부 -
† 제1독서 신명 4,32-34.39-40
† 제2독서 로마 8,14-17
† 복음 마태 28,16-20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기념 없음 (청소년 주일)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 28,19 참조)에 따라 초기 교회
때부터 이어져 왔다. 삼위일체 대축일이 로마 전례력에 들어온 것은
14세기 요한 22세 교황 때였다.
한국 교회는 해마다 5월의 마지막 주일을 ‘청소년 주일’로 지낸다.
청소년들이 우정과 정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며 자라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교회가 그들과 함께하며,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그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교회의 다짐이기도 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5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세계 젊은이의 날’을 제정하였는데, 우리나라는
1989년부터 5월의 마지막 주일을 이날로 지내 오다가 1993년부터
‘청소년 주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며 청소년 주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한 분이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알아 뵙고 믿고 고백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합시다.
★ 신명기는 하느님이 오직 한 분이심을 강조한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다른 누구도 보여 준 일이 없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
주심으로써 당신만이 하느님이심을 알게 하신다. 주님과 당신 백성 사이의
관계는 유일한 사랑의 관계이다(제1독서).
★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의 상속자가 된다고 선포한다
(제2독서).
★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명하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우리는 날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기도를 시작하고
끝맺습니다. 삼위일체 신비! 분명 이것은 믿음의 대상이지 지식이나
이해의 대상은 아닙니다.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 우리는 이 지고한 신비를
올바로 이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반이성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반이성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초월하는 초이성적, 초자연적
진리입니다. 그렇다고 이 신비의 오묘함과 풍요로움 때문에 우리가
충분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무조건 덮어 두기만 한다면, 아주
귀중한 보물을 땅 밑에 묻어 두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독서를 중심으로 해서 이 심오한 신비의 한 조각만이라도
맛보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라는 이 한 구절만 묵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에 이미 오래 전부터 익숙해져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지칭하기도 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각 개인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합당하게 부를 수 있는 분은 본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뿐이셨습니다.
물론 우리말 표현들 안에서는 그 차이점이 명확하게 구별되지는 않지만,
교리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예수님은 본성에 의하여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우리는 입양에 의하여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나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를 구분하셨습니다. 오늘
본기도에서 정확히 표현하듯이 우리는 “외아드님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
입니다. 참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예수님 없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 없이 자녀다운 자유로움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셨기에,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성자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려 주시고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성자와 성령께서 아버지와 한 본체이신 같은 하느님이시라는 것,
이것이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경우,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세 위격 모두와 관련된 삼위일체 신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매일 미사 -
◈ [수도회]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주고받는 생명과 사랑의 원리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마태 28,16-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
주고받는 생명과 사랑의 원리
오늘의 시대는 물질과 힘, 정보에 의존하여 지배와 소유를 위해 돈과
권력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생명을 거스르고
인간이 도구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움직임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몰고 소외와 단절을 부르는 죽음의
문화를 양산할 뿐이다. 이런 사회에서 ‘신비’로 언급해버리곤 하는
삼위일체 교리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분이시다. 성부이신 하느님께서는 성자와
성령 안에 살아계시며 그 안에서 일하신다.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느님께서 성자를 통하여 일하시는 방법은 바로 사랑의 내어줌이며,
성자 예수께서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시어 인간을 향하여 드러내주셨다.
이렇게 삼위일체는 곧 사랑의 주고받음, 생명의 주고받음의 원리요
흐름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가 일체라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세 위격 사이의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는 뜻이다. 곧 삼위일체는 사랑의 관계이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어, 당신 자신을 열어보이고
나누어주시는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믿으시며 포기하지
않으신다. 포기하시기는커녕 우리를 위하여 당신 아들을 제물로서,
선물로서 우리에게 내어주신다.
삼위일체에 관한 계시는 사랑의 내려오심과 함께하심이다. 삼위의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하여 공동으로 내려오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왜 이러한 일을 하시는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기에 모두에게 얼굴을 돌리시는 것이리라. 하느님의
사랑은 그렇게 생명의 호흡이 되고 혼이 되어 내려오시어 인간을
품으시고, 용서해주시고 사랑 안에 머물도록 이끄시고 변화시켜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우리는 성령과의
친교 안에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동반하면서 성부께로 돌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성삼은 우리들의 삶의 본질이요 궁극적인 힘인 사랑이
흘러나오는 원천이요 희망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을 내어주시고 성자
예수그리스도는 그 사랑을 받아들이시어 전 존재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나누어주신다. 이 성부와 성자의 사랑의 주고받음의
흐름, 영의 작용 안에 있는 사람만이 행복하다.
하느님의 혼과 내적인 관심 그것이 성령이시다. 성령을 통하여 아들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아들 안에 살아계신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임마누엘) 성부께서는 창조주로서 우리 앞에 계시는 분이시며,
성자는 구세주로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시며, 성령은 우리의
협조자로서 우리 안에 계시는 분이시다. 한마디로 삼위일체 교리는
사랑의 극치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두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따라서 그분의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게 될 것이라는
형제애의 뿌리를 말해 준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먹고 사는
형제들로서 형제애를 실천하는 가운데 참된 기쁨이 우러나온다. 형제애의
기쁨은 성삼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쁨이고 인류가 되찾아야 할 기쁨이다.
삼위일체 계시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성부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과 영을 삶 안에 심어야 한다. 나아가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이웃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임마누엘이신 성자 예수님을 따라 사랑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겉다르고 속다른 삶을 청산하고 이기적인 삶에서 벗어나 나누며 살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하느님의 영을 따라 사랑과 일치의 영을 자신
안에서부터 마련하고 길러야 한다. 세상살이에서 물신과 세상적 가치의
우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제정신을 차리고 살아가야겠다! 우리의 삶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주고받는 사랑과 생명의 흐름을 따라가는 거대한
사랑의 물결이 되었으면 한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신부 -
◈ [수도회] 2015.05.31.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로마 8,15)
여러분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우리가 착하게 잘 사는지 아닌지
지켜보시고 상벌을 내리시는 그런 분이신가요?
그래서 내가 살아오면서 지은 죄와 잘못 때문에 죄스럽고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우신가요?
옛적에 유대인들이 하느님을 그런 분이라 여겼지요.
지금도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을 그런 존재로 파악하고 있지요.
"상선벌악의 하느님!"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라네요.
하느님은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 매여 살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아빠, 아버지 같은 분이시라네요.
아들이 잘못될까 늘 노심초사하시며 행여 잘못을 저지른다해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책벌하신다 해도 속으로는 마음아파하시는
정말 사랑많으신 아버지같은 분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내 죄와 허물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만끽하며 살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느님을 무서운 심판자로 여기지 않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로 여기게 해 주신답니다.
오늘 삼위일체대축일은 이렇게 좋으신 하느님의 자녀가 됨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마음껏 부르며 공원에서 놀고있는 아이처럼
그렇게 해맑게 기뻐하는 오늘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 2015.05.31.|작성자 알타반
- 오상선 바오로 작은 형제회 신부 -
◈ [수도회] 삼위일체 하느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 일체 대축일
신명4,32-34.39-40 로마8,14-17 마태28,16-20
제1독서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34.39-40
제2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4-17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삼위일체 하느님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이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에 참석한 우리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시편33,12ㄴ참조).
부활대축일에 이은 승천대축일, 성령강림대축일 그리고 오늘의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모든 대축일을 통해 점차 계시되는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자비로운 배려의 하느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도록 모두의 눈 높이에 맞춰
성부, 성자, 성령으로 자신을 활짝 개방한 하느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가 참으로 심오합니다. 머리가 아닌 사랑으로
깨달아 알게 되는 체험적 진리가 삼위일체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정체성의 형성에도 결정적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들이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은총으로 점차 하느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복음 말씀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성사를 받아'
완전히 새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들이요,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
점차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가는 우리들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하느님 사랑에 활짝 열린 복된 우리 영혼들입니다.
하여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삼위일체 하느님을 쉽게 체험하며 신비가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비가의 소명은 세례받은 우리 모두의 특권이자
의무요 행복의 원천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치도 아주 적절하여 고맙습니다.
1독서는 성부 하느님, 2독서는 성령 하느님, 복음은 성자 하느님의 측면이
잘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셋으로 분리된 하느님이 아니라 내적으로
하나된 삼위일체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하나이자 셋이요 셋이자 하나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묵상중 작년 제 은경축 때 축하 화관을 목에 걸고 찍은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여러 장의 사진 중 압권은, 제 화관 안에 빠코미오 원장이
들어와 둘의 활짝 웃는 얼굴이 한 화관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순간
그리스도의 화관 안에서 하나이자 둘이요, 둘이자 하나인 사랑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1년 후 어제 강론 쓰면서 깨달았고 오늘 또 나누게 됩니다.
삼위일체 신비의 원리 역시 똑 같습니다.
사랑의 화관 안에서 하나이자 셋이요 셋이자 하나인
삼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사랑의 공동체 하느님입니다.
바로 공동체의 일치의 원리가 여기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닮아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공동체의 일치입니다.
오늘 1독서의 모세를 통해 계시된 성부 하느님의 모습은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도대체 우리와 같은 성부 하느님을 모신 민족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 역사를 깊이 렉시오 디비나, 묵상한 모세의 체험적
깨달음입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의 삶을 묵상해 보십시오.
분명 하느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깨달을 것입니다. 참되고 좋으시고
아름다우신, 진선미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와 망각보다 더 큰 마음의 병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분의 규정과 계명들을 지켜라."
그대로 오늘의 우리 모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영원한 오늘입니다. 주목해야 할 단어가 오늘입니다.
그 옛날 신명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오늘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온갖 우상들이 난무하는 하느님을 잊은 혼돈의 시대, 문명의 야만시대에
만유의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깨달아 알고 마음에 새겨 두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바로 이 하느님 안에 있고
그 분의 명령하신 말씀을 지킬 때 저절로 풀리는 문제들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에 대한 깨달음이 성령의 은총입니다.
지난 주일 성령강림대축일을 통해 성령을 충만히 받고,
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성령을 가득 선사받는 우리들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성부와 성자 하느님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성령
하느님이십니다. 2독서 사도 바오로를 통한 성령의 계시가 놀랍습니다.
오늘의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도 생략할 수 없는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모세의 신명기 말씀처럼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얼마나 고무적이고 격려가 되는 말씀인지요.
하느님의 자녀로 격상된 존엄한 품위의 우리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사랑의 선물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이런 성령을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해 주는 성령입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게 하는 성령이요, 우리 모두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임을 깨달아 알게 하는 성령입니다.
성령을 통해 복음의 진리도 그대로 오늘의 우리의 것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정체를 환히 계시해 줍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엄중한 평생과제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내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주님의 제자처럼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세례까지 염두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분명 전제될 것이 있습니다.
결과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맡기고 삶으로의 모범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기 전
우선 자신부터 몸소 그 사랑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삶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을 환히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사랑의 개방, 사랑의 일치, 사랑의 자유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나되어 갈수록 심화되고 확장되는 공동체의 개방과 일치, 자유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일치를 깊게 해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아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 -
◈ [서울] 삼위일체 대축일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 일체 대축일
제1독서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34.39-40
제2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4-17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요즘 우리나라는 길이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그 길 위로 차와 사람이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니 길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논리적으로 부모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온 몸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자라납니다.
어머니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몰라도 우리들의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고,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는 하느님을 체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하느님이 있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고, 이집트 땅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이끄셨음을 체험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표징, 삶’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였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언제나 함께 계셨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놀라운 체험을 하였습니다. 바로 ‘성령의 강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체험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저는 2001년 지금은 의정부 교구에 속한 적성 본당에 있었습니다.
14년이 지났지만 그때 어린아이들이 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목 : 우리 성당
이름 : 구건회(안드레아) 마지 초등학교 4학년 2반 10번
오늘은 우리 성당 5주년! 우리 성당의 다섯 번째 생일이다. 제대 앞엔
선물들이 주루룩 줄서있고... 나도 오늘 이 성당 온지 5주년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마음속으론 이 성당이 100년 200년 동안이라도 지속되고
보존되길 그리고 신자수가 1000명이 넘을 수 있도록 기도한다. 내가
성당에 대한 바람은 수없이 많다. 태권도장을 넓혀라. 태권도장에 최고급
시설을 설치하라.. 등등 여러 가지 바람이 있다. 그래도 난 이 성당이
부족함 없는 훌륭한 성당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성당이 세계에서
버금가는 성당이 되길 기대한다.
제목 : 우리 성당
이름 : 홍석진(도미니꼬) 노곡 초등학교 4학년
오늘은 우리 성당이 5살 되는 해입니다. 제 동생도 5살입니다. 저도
그래서 이글로 선물 줄 것입니다. 한번 열심히 해서 좋은 글을 쓰겠습니다.
성당에서 5가지 규칙
1) 욕을 하지 말 것
2) 소리 지르지 말 것
3) 제대에 함부로 올라가지 말 것
4) 미사 때 떠들지 말 것
5) 주일 때 빠지지 말 것
이렇게 5가지가 있다. 이중에서 나는 내가 고쳐야 할 것도 있다. 다음은
태권도다. 태권도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국기원에 가는 날도 별로
남지 않았다. 그때동안 열심히 해서 1품을 딸 거다. 우리 성당은 참 좋다.
태권도도 무료로 하고..... 100년 동안 계속 우리 성당이 있기를 바란다.
제목 : 우리 사범님
이름 : 박한솔 노곡 초등학교 1학년
얍 기압을 넣으며 태권도를 배워요. 운동을 하고 태권도를 해요. 사범님은
우리들을 가르키며 땀이 뻘뻘 흘려요. 우리는 열심히 사범님을 쫓차해요.
운동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은 우리들 몸에 좋은 것이니까요.
사범님은 땀 방울이 기합으로 들어가요. 사범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사범님을 기쁘게 해 드려면 우리가 열심히 해야겠서요. 사범님은 우리의
사범님이예요. 우리를 가르키니까요. 우리 사범님은 검은 띠에요. 우리는
몇 명씩 늘어지면서 사범님과 함께 가르치고 그러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건강에 좋아지니까요. 밥도 골고루 먹어요. 사범님도 골고루 먹지요.
어쩔땐 않나올 수 있지요. 뭐냐하면 밥이 않나올 수 있지요.
제목 : 사부님
이름 : 홍예진(스콜라 스티카) 노곡 초등학교 2학년
얍 기도소리에 우리들을 가르치는 사부님 땀방울이 우리에 노력으로
사부님 땀방울이 열심히 하라는 뻘뻘 흐르는 사부님은 땀방울 우리에
기합으로 사부님을 기쁘게 하자. 사부님은 내 마음속에 들어가 태권도
연습을 하네 우리들의 힘으로 사부님을 기쁘게 하자. 내 마음은 사부님
사부님 마음은 나 사부님 쉰 목소리에 우리들 심한 장난이 사부님 쉰
목소리에 들어가 있어요. 우리는 사부님 너무 조아요.
제목 : 신부님
이름 : 신 지혜(비비안나) 마지 초등학교 4학년
매일 마다 정성스럽게 미사를 드리는 우리 신부님, 우리들이 성당에 오면
환한 얼굴로 반겨주신다. 달콤한 사랑과 깔끔한 배려와 고소한 겸손이
담긴 신부님 마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같이 마음 고우신 신부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제목 : 신부님
이름 : 공민정(율리아) 마지 초등학교 5학년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 신부님
언제나 남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우리 신부님 그런 신부님이 나는 좋아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지금은 아이들이 저보다 머리하나는 더 크게 자랐지만 그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린 시절 성당에서의 추억과 기억이 늘 함께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성당, 사부님, 신부님을 논리로 알지 못하였지만 삶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느니, 그때 보는 것은
예전에 보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하느님께서는
어떤 관계일까요? 끊임없이 서로에게 내어주는 관계입니다. 성부는
성자에게 모든 권한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자는 성부에게 모든 영광과
기쁨을 드렸습니다. 성자는 성령에게 십자가와 죽음으로 세운 교회를
맡겨 드렸습니다. 성령은 모든 은사를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신비는 내어줌의 눈으로, 겸손의 눈으로 보면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느님, 위로의 하느님, 용서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서로 위로하십시오, 서로 용서하십시오.
- 서울 대 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성소국장 -
◈ [서울] 우리가 짐을 이어져야지요.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 일체 대축일
제1독서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34.39-40
제2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4-17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우리가 짐을 이어져야지요.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짐을 지우시는 대단한 분이라 봅니다.
민족들을 주님의 제자로 만들기, 세례주기, 명령 지키기, 감시받게 하기.
바로 옆 사람 한 사람도 이렇게 만들기 힘든데 민족들을 다 하라니요!
세상의 왕들을 모두 불러 교육시켜 제자 만들어 시켜도 힘들 일입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갈릴레아 어부들께 시키셨다니요! 예수님도, 참!
국가들은 다 망해도 교회는 계속되고 있네요? 우리가 짐을 이어져야지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28,19~20)”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인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 일체 대축일
제1독서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34.39-40
제2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4-17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세상의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였을까요? 몽고의 칭기즈칸, 로마의
카이사르, 프랑스의 나폴레옹 등등을 뽑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그래서 아주 넓은 영토를 차지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를 위대한 정복자라고 생각할까요? 못된 침략자이고
원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어쩌면 위대한 정복자는 힘으로서 굴복시킨
사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크라테스,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같은 위인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위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늘 친절했다고 하지요. 이 모습을
보고 한 보좌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저는 각하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각하는 적에게 너무 친절히
대하십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대상인데
말입니다.”
그러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하지요.
“사랑하는 친구여. 내가 그들을 친구로 만들었을 때, 바로 그때가 그들을
이기는 거라네.”
주님께서는 세상의 그 어떤 힘보다도 막강한 힘을 가지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폭력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다루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가장 힘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주님을 나약하고 실패한 사람으로 기억할까요?
아닙니다. 세상의 힘을 사용하시지 않았지만, 그 어떤 힘보다도 더 강력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즉, 사랑에 그 힘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또 하나의 이해하기 힘든 신비를 기념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고 계신 하나의
하느님이라는 것. 인간의 지혜로는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요. 교회의
많은 학자들도 가장 풀기 힘든 지혜가 이 삼위일체의 신비라고 말할
정도로 정말로 힘든 교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가
됨의 신비’라는 것이지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서로 하나 되어 가장
최고의 선(善)을 이룸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렇다면 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남의 것을 빼앗아 내 영역을 넓히려는 세상의 폭력을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미 왔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하느님 나라가 좀 더 우리의 가운데에서 완성되어 가게
될 것입니다.
너에게 선한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하라. 너에게 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역시 선하게 대하라. 그러면 선이 널리 퍼질 것이다(노자).
제주 이시돌의 삼위일체 대성당 외부.
의사소통
이런 대화가 있습니다.
남편: 여보! 오늘 어머니가 오실 거야.
아내: 알았어요.
어떻습니까? 이 대화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까? 남편은 사실을 이야기했고,
아내도 이 말에 긍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엄청난 싸움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지요.
“당신, 말투가 왜 그래? 어머니 오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대화에 있어서 내용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상대방을 판단할 때 말의 내용은 7%를 차지할
뿐이라고 합니다. 외모나 몸짓 등 시각적인 요소는 자그마치 55%, 말투,
억양, 목소리, 속도, 발음과 같은 청각적인 요소는 38%를 차지한다고
하네요. 말의 내용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전달할 뿐이지만, 마음을
전달하는 것은 바로 시각적인 요소와 청각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사소통을 할 때 가장 주의할 것은 무엇일까요? 참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대화가 필요해요.
◈ [청주]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마태28,16-20)
2015년 나해 5월31일 주일 삼위 일체 대축일
제1독서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다. 다른
하느님은 없다.>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4,32-34.39-40
제2독서
<여러분은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14-17
복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우리를 빚어 만드셨고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도 당신의 사랑으로
살기를 기대하며 또 살수 있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이 시간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으로 계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성그레고리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어떻게 한 분이십니까? 하는
질문에 ‘세 개의 등불이 가까이 있다면 그 사이에는 빛이 하나로 섞여 세
개의 빛이 뭉쳐졌다고 하지 않고 빛이 밝다고 하듯이 신성(神性)도
그렇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태양자체를 성부로,
지구까지 오는 빛을 성자로 그 빛이 따뜻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성령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 다 부족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앞에 계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곧 생명을
주신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목표이시며 시작이요 마침이십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위해 아들을 넘겨주신 분입니다.
아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바치신 분으로 존경과 순명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죄인의
대변자요, 억압 받고 소외 받는 이들의 변호자 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머물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 주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고 새로움을 더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각기 역할이
구별되면서도 하나이신 하느님을 사랑 안에서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6).
그래서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
(까롤로 까레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더욱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분으로서 함께 계신다니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예레미야1,6)하며 예언자 직무를 거절할 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미야1,8)고 하셨고, 모세도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4,10)하고 직무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 주겠다”(탈출4,15)고 하셨습니다. 에제키엘서
2-3장에 보면 에제키엘이 소명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하셨고 에제키엘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는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을 지키게 하라는
할 일을 주시고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약속을 믿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한 사람은 믿음의 눈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이
바로 그것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따름으로써 더욱 다져지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커지길 원하는 사람은 말씀을 사십시오. 큰
믿음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물론 동상이몽
(同床異夢)인 분도 계시겠지만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면 한마음(일심)이 되고 한마음이 되면 두 몸은 이미
한 몸(동체)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한마음, 한
몸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가난해도 풍요로울 수 있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의지 하고 더욱 일치합니다. 힘들면 힘이 들수록 더 큰 사랑이
요구됨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멋진 집에 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느 것으로도
일치할 수가 없습니다. 이 관계는 부부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관계가 그렇습니다. 부자관계도 사제관계도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사랑으로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과 많은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명하신 가장 큰 계명이
사랑입니다.
서로간의 관계에 이해타산이 끼어들면 힘들어집니다. 나도 피곤하고
상대도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이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그곳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더 많이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하십시오. 많이
행하게 될 것이고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내가
아직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분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커다란 맛을 느끼는데 있지 않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결단을 내리는데 있습니다”(소화 데레사).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기 코드를 빼어 놓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총을 주시고자 해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코드를 빼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먼저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힘들고 지쳤을 때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연세 많은 할아버지께서 외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손자,손녀들이 집으로
오시는 길에 H.O.T 음반을 사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손바닥에 H.O.T 라고 쓰고 외출을 하셨습니다. 집으로
급히 돌아오다가 손주들하고 약속한 것이 생각나 손바닥을 봤습니다.
H.O.T,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H=호떡, 0=오뎅,
T=튀김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날 할아버지께서 몹시
고독하셨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면의 일치, 마음의 하나가 됨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요? 더욱이 주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 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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