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리래 딜렸시요
“목사님, 여기는 무엇을 파는데, 이렇게 줄이 길어요?”
일영형제가 사거리에 줄을 선 것을 보며 묻는다. 족히 50m는 되어 보이는 줄이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줄이 이렇게 길게 늘어 서 있다. “여기는 옥수수 맛집입니다. 이쪽 지역에서는 굉장히 유명해요. 옥수수만 파는데, 이렇게 줄을 서네요.”이곳은 간판도, 이름도 없다. 매대 하나 갖다놓고, 물을끓이는 솥하나 있을뿐인데, 이렇게 장사가 성황이다. 이곳이 유명해 지니, 옆동네에서 분점도 생겨났다.
“시간이 좀 있으니, 우리도 여기서 줄서서 시간을 떼워 볼까요?” 오늘 일영형제와 윗동네에서 전입온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일영형제는 윗동네 사람을 처음 만난다. “저도 목사님처럼 윗동네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일을 해 보고 싶었는데, 오늘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일하느라 정착도우미를 할 수 없어 아쉽더라구요.”
정착도우미란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돕는 통일부에 등록된 봉사자들을 말한다. 처음 지역에 발을 디딘 윗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 일이다. 직장에 매인 사람들은 이 봉사를 하는것이 쉽지 않다. 처음 정착도우미를 시작할 때에 전입신고 하는 날과 물건사는 날, 그리고 한달에 2,3번 정도 만나서 도움을 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을 그렇지 않다.
처음 다른 세계에 온 사람은 시간이 많다. 필요한 것도 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 있고 스마트폰을 가지고 생활한다하여도 결국 그 문화에 익숙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것. 마음으로도 편치 않다. 평생을 다른 체제, 다른 사회에서 살다 온 사람이니, 새로운 세계가 오죽할까? 하나에서 열까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니 정착도우미는 한달에 한두번이 아닌, 수시로 대기할 수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모처럼 자영업을 하는 일영형제가 일이 일찍 끝나 윗동네에서 온 청년에게 밥을 사준다고 하여 이렇게 같이 동행하였다. “목사님. 오늘 우리가 만나는 친구는 어떻게 한국에 왔다고 해요?”, “오늘 만나는 친구는 아직 20대야. 젊은친구지! 오늘 얘기를 들어 봐야 겠지만, 이 친구는 러시아에서 왔다고 해. 외화벌이라고 일종의 해외근무를 하다가 넘어 온거야!”
외화벌이. 북한은 1980년대 이후 외화의 부족으로 경제난이 가중되자 동원 가능한 주민들을 통해 해외에서 여러 방법으로 외화벌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로 해외 여행갈때 한번쯤 들리는 북한 식당도 외화벌이의 수단이 된다. 중국의 단둥을 중심으로 한 조중 접경지역의 도시들에는 어림잡아 8만에서 10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임가공형태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2022년 북한의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과학 분야에서 성과가 있었음을 자랑했다. 북한의 컴퓨터 기술은 굉장히 높은 수준에 이른다. 제 3세계의 컴퓨터 기술자와 서방세계의 회사를 연결하여 중개 마진을 얻기도 한다. ————————(???)
러시아의 소치 올림픽을 기억하는가? 많은 북한 노동자들이 단기간에 경기장 및 시설물을 짓기 위해 동원되었고, 일부 희생자들도 발생했다고 한다. 지금도 러시아의 곳곳에서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고, 요즘 한국에 입국하는 북한이탈주민 중 다수는 러시아의 건설업에서 종사했던 노동자들이다.
일영형제와 한참을 얘기하니, 옥수수를 살 수 있는 순번이 돌아왔다. “아저씨, 여기 옥수수는 좀 특별한 가요?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네요.”, “뭐 옥수수가 다른게 있겠어요? 요즘 사람들이 워낙 잘 먹으니, 가끔은 옥수수도 먹고 싶은 거지요.”, “목사님, 그럼 우리 이것 좀 많이 사죠. 목사님네도 좀 가져가시고, 북한에서 온 친구도 특식이니 좀 주고.”, “그럼 그렇게 할까?”
이 옥수수 맛집은 개인에게 많이도 팔지 않는다. 워낙 줄이 길게 서 있으니, 나름대로 원칙을 정한 것이다. 줄 선 한 사람에게 2개씩. 우리는 둘이 줄을 서 있어서 4개를 살 수 있었다. “하나는 일영형제, 또하나는 우리집, 두 개는 금혁이 주자.” 금혁이는 오늘 만나는 친구의 이름이다.
따르르릉. 마침 손전화에서 금혁이가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나이스 타이밍~~
“선상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함다. 일띡 오려구 핸데. 일이 끝나지를 않아서 이렇게 늦었슴다.”, “금혁씨, 오랜만이네! 오늘 같이 온 사람은 내가 친하게 지내는 동생같은 사람이야. 금혁이가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소개해 주고 싶어서 같이 왔어. 큰 형님뻘 되는 사람이니, 금혁씨가 좀 의지해도 괜찮아!”
“안녕하세요! 김일영이라고 합니다. 북한에서 왔다고 들었습니다. 지내는데는 불편한 것은 없습니까?”, “일 없슴다. 여기는 천국이디요.”, “북한 사람들 만나면 다들 일 없다고 하는데, 금혁씨도 그 말을 하네요.” 하하하. “일영형제, 이제 금혁씨는 북한사람이 아니고, 북한에서 온 사람. 대한민국 국민이예요.” 하하하
“금혁씨, 여기 유명한 맛집 있는것 알아요? 옥수수 맛집인데, 여기 옥수수를 사려면 기본 30분은 줄 서서 기다려야해! 오늘 목사님과 같이 줄 서서 사왔어요! 4봉지 사왔는데, 우리 하나씩 가져가고, 자, 여기 금혁씨는 2봉지.” 일영형제가 기분이 좋은가 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옥수수도 사고, 탈북민들 정착을 돕는 의미있는 일도 하게되고. 자신의 것을 남을 위해 줄 주 아는 착하고 순수한 사람. 그런데 검은 옥수수 봉지를 여는 금혁이의 표정이 심상찮다.
“이거 도로 가져가시라요. 더는 옥수수 안 먹슴다.” 힘들게 줄 서서 옥수수를 사 왔는데. 맛있는 옥수수를 같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한껏 들떴는데. 갓 쪄낸 옥수수만 온기가 있을뿐,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금혁씨, 옥수수 싫어해? 그래도 이집 유명한 옥수수집이야, 맛 만 봐봐!”, “일 없슴다. 내래 강냉이래 딜렸시요. 군에 있을때 매일 강냉이만 먹디 않겠슴까? 내래 강냉이가 딜려서 내려왔는데, 강냉이를 가져오면 억합니까?”
90년대 북한의 구호물자를 보내기 위해 5개 종단의 지도자들이 연합을 했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중심이 되었던 종교지도자들이 국민의 관심을 갖게 하기 벌였던 퍼포먼스. 그것은 북한의 강냉이죽을 먹는 것이었다. 강냉이죽, 그것은 북한의 빈곤의 현실을 반영하는 음식이다.
“어이쿠! 금혁아, 그 생각을 못했네! 우리 금혁이는 옥수수를 많이 먹었겠구나! 그러면 다른 음식을 빨리 시켜야 겠다. 혹시 먹고 싶은게 있니? 내 얼릉 시켜줄께!”, “목사님! 짜장면 시켜주라요! 남조선에서 먹은 것 둥, 짜장면이 맛이 좋았슴다.”, “일영형제도 괜찮아?”, “나는 짜장면이 소화도 안되고, 좀 질려는데, 그래도 오늘은 금혁씨에게 맞춰야 줘!”, “그래 그러면, 오늘은 짜장면 먹자!”
줄 서서 먹을만한 그 유명한 옥수수 맛집. 결국 전화 한 통화로 우리는 짜장면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