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보물 중에는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청동으로 제작한 투구인데 이 투구는 어쩌다 한국의 보물이 된 것일까요?
일본이 조선을 식민 지배할 악심을 품고 군함 운요호를 끌고 강화도에서 조선군과 교전했던 1875년,
저 먼 유럽의 그리스에서는 에른스트 쿠르티우스가 이끄는 독일 고고학팀이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올림피아 제우스의 신전을 발굴하고 있었다.
수많은 전쟁 유물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전쟁 때 병사들이 머리에 쓰던 투구였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코린트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투구는
고대 그리스 올림픽 제전 때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신에게 바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로 18.7cm, 높이 21.5cm 크기의 이 투구는
지금으로부터 2,800년 전에 만들어졌는데
투구를 머리에 쓰면 두 눈과 입이 나오고 콧등에서 코끝까지 가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활의 공격으로부터 머리를 방어할 목적으로 사용됐을 겁니다.
그런데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서 이날 발굴된 투구는 그로부터 112년 후
대한민국 보물 제904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증유물전시관에 떡하니 전시되어 있다.
그리스에서 발견된 투구가 한국에서 보물로 지정되다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1936년으로 잠시 이동해 보겠다.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만방에 떨치겠다는 히틀러의 얄팍한 술수로 개최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모든 올림픽이 그러하듯 베를린 올림픽 역시 마라톤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에 모든 사람의 시선은 누가 마라톤에서 우승하느냐에 쏠려 있었는데
오후 3시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10만 관중 앞에서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우승 후보로는 4년 전 LA 올림픽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후안 카를로스 사발라와 영국의 어니스트 하퍼 등이 꼽혔는데
초반부터 선두 주자로 나선 것은 키 작은 아시아 청년이었다.
당시 24살의 손기정이었다.
영국 신사 어니스트 하퍼는 초반부터 너무 달리면 결승선에 도달하지 못하고 지칠 것이라며
손기정에게 '슬로우 슬로우'를 외쳤지만, 손기정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울분이라도 토하듯 미친 듯이 달리기만 했다.
마침내 올림픽 스타디움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것은 손기정이었고
세 번째로 통과한 것은 남승룡 선수였다.
그런데 누구보다 기뻐야 할 두 명의 선수는 시상대에서 국기가 울려 퍼지는 순간
히틀러가 전해준 참나무 묘목으로 자기 가슴을 가려 버렸다.
당시 남승룡 선수는 동메달 획득 후 인터뷰에서,
'나는 나보다 시상식대 높은 곳에 선 그가 너무 부러웠다.
내 동메달보다 좋은 금메달을 따서는 아니었다.
그는 기념품으로 받은 참나무 묘목으로 가슴에 새겨진 부끄러운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자신들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가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아니라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기미가요를 들어야 했던 두 선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당시 손기정은 한 지인에게 슬프다는 엽서를 보내기도 했는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가
보낸 슬프다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저려옵니다.
이 순간을 찍은 사진을 본 한 독일인은 '그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이었다.'라며
그들의 심정을 대변했는데요.
당시 국내 언론들은 민족의 자긍심과 민족혼을 일깨웠다며 연일 대서특필했고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아예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들이 줄줄이 연행됐고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동아일보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게재됐다.
내용은 희랍 최대신문 브라디니 신문사의 사장이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에게
최근 발견한 기원전 600년 전의 고대 희랍 화려한 투구를 기증할 뜻을 IOC에 신청해 보냈는데
IOC는 아마추어에게 금품을 주거나 받거나 하는 것을 절대로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한 신문사가 손기정에게 부상으로 줄 계획으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서 발굴된 그리스 투구를 IOC에 맡겼는데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며 전달되지 않은 겁니다.
그리스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유물을 주는 관행은 제2회 파리 올림픽부터 실시된 것으로
기원전 490년 아테네 마라톤 평원에서 벌어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 소식을 알리기 위해 약 40km를 달려온 병사 페이디피데스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마라톤 우승자에게 수여되는 헤르메스의 흉상과 같은 실제 유물이었으며,
이러한 유물 수여는 고대 유물의 유출 방지령이 내려진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IOC가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메달 이외에 어떠한 선물도 공식적으로 수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손기정에게 이 투구를 수여하지 않았고 결국 부상으로 수여됐어야 할 청동투구는
우승자의 이름을 새겨 베를린 박물관으로 보내졌다.
당시 기사를 접한 한국인들은 두 선수가 한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줬지만,
별다른 부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두 선수의 쾌거를 위로하고자 성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물론 감격에 겨워 보내는 성금이지만 이 역시 두 선수의 선수 자격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전달되지는 못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손기정은 당시 그리스 청동투구 기증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마라톤 우승 소식이 연일 대서특필되고 성금까지 모금됐지만
손기정은 귀국 후에도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식민지 출신 우승자의 권리를 대변할 의지도 없었고
손기정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거나 국제올림픽 위원회에 건의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수여되기로 한 그리스 투구는 역사 속에 묻혀버리게 되는데.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1975년 그는 우연히 앨범을 정리하다
1936년 올림픽 직후 그를 찍은 사진 속에서 투구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이후 투구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베를린 샤로텐부르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반환을 추진하게 되는데요.
무엇보다 독일교포인 노수웅 씨의 노력이 컸죠.
그는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1년 반 동안 청동투구가 전시되어 있을 법한 독일 내 박물관을 전부 훑었고
마침내 샤로텐부르그 국립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청동투구를 확인했다.
당시 박물관에 전시된 이 투구의 설명판에는
'그리스 코린트 시대의 투구/ 마라톤 승자를 위해
아테네의 브라디니 신문사가 제공한 기념상/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1936년/ 손기떼이/ 일본/ 2시간 29분 19초'라고 독일어로 명시되어 있었다.
이를 반환받기 위한 노력은 10여 년간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국내 언론사,
대한올림픽위원회는 물론 투구를 부상으로 내놓은
그리스의 브라디니 신문사와 그리스올림픽위원회까지 앞장섰다.
약탈문화재조차 쉽게 돌려주지 않는 유럽의 박물관이기 때문에
독일올림픽위원회는 절대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대신 복제품을 주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으나 손기정 선생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다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올림픽위원회에서 마련한 기념행사에서
투구를 손기정 선생에게 헌정하기로 하면서 반환받게 된 것이다.
약 50년 만에 주인의 손에 돌아온 그리스 투구는 비록 외국의 유물이기는 하지만 2,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우리 민족의 긍지를 높여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부상품이라는
역사적 상징성을 높게 평가해 1987년 서구 유물로는 최초로 보물 제904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손기정 선생은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 것'이라는 뜻을 밝히고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도록 국가에 이 투구를 기증하였다.
아마 교과서에서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손기정 선수는 선수 생활을 하며 총 13번의 완주에서 10번을 우승했고 당시 인간의 한계라는 2시간 30분대 기록을 8번이나 깼다.
특히 1935년 도쿄 메이지 신궁대회에서 마라톤 풀코스에 처음 도전해
2시간 26분 42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지만 비공인 세계 신기록으로 남았다.
세계 최초로 2시간 30분대를 깬 사례이기도 하고
이는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서윤복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경신하기까지 약 12년간 유지됐죠.
이는 1908년 세계 마라톤 기록을 공식적으로 관리한 이후 최장기간 보유 세계기록이기도 합니다.
물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도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했고 약 16년간 유지됐다.
1947년 서윤복 선수가 보스턴 마라톤을 준비할 당시
서윤복은 헌 스파이크에 손수레 바퀴 고무를 덧댄 운동화를 신으며 연습했다.
세계기록보다 14분이나 늦은 자신의 최고 기록에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스승 손기정은 '나에게 민족은 있었지만, 국가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너는 조국을 위해 달릴 수 있는 자긍심이 있지 않느냐?'며 자신감을 북돋아 줬다고 하죠.
현대 스포츠 과학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여러 차례 세계 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원천은,
가슴속 묵직한 응어리를 어떻게든 풀어보려던 손기정의 울분이 아니었을까요?
한국의 '이것' 사러 달려온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