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에서 악을 쓰며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 가난한 연극을 읽다 : 사진 김문홍>
밀양연극촌 안 야외극장인 숲의 극장. 그 밤, 그 연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야외극장은 구조가 특이했다. 객석은 지붕으로 가려져 있는데 무대는 뚫려 밤하늘을 볼 수 있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연극이 시작되자 무대 좌우에서 리어왕과 돈키호테가 시공을 초월하여 서울역 앞 노숙자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은 그곳에다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고 지독한 현실과 맞닥뜨린다.
배우들의 옷이 흠뻑 젖는다. 젖다 못해 이제는 속옷까지 환히 비친다. 싸움 장면은 정말 실감이 난다. 배우들은 팔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하며 고함을 내지른다. 흥건하게 물이 고인 무대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한다.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수중 해프닝에 가깝다. 여기서 퍼붓는 비는 지독한 현실의 은유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옥죄는 세상과 정치권력,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과 한판 전쟁을 치른다. 커튼콜에서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하고 있는데 배우들은 울고 있었다. 왜 우는지 아무도 몰랐다.(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