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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 깊은 라멘 한 그릇 한국에서도 호불호가 적은 일본 음식 중 하나인 라멘. 내가 거주하는 후쿠오카는 ‘돈코츠 라멘’의 발상지인 데다 라멘에 대한 지역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한 도시다. 이곳의 돈코츠는 오랜 시간 뼈를 고아 돼지 본연의 누린내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외국인들에게는 문화충격을 안기는 악취이지만, 현지인들은 더욱 짙 은 누린내를 찾아 노포로 향하기도 한다. 나는 얼마 전까지도 그들의 틈에 끼지 못했다. 냄새로 치면 한국의 청국장도 둘째 가라면 서럽고, 음식 냄새라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둔감해지기 마련이건만 유독 라 멘만큼은 이민 3년 차가 되도록 적응하지 못했다. 그나마 냄새가 약한 프랜차이즈 식당의 라멘을 먹고 있으면 아내는 라멘 같지 않은 면요리가 800엔이나 한다며 분 통을 터뜨리곤 했다. 그러다 이민 4년 차에 접어든 어느 날, 주말에 장인어른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 다. 장인어른은 주택가 끝의 한 허름한 단골 식당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입구에서 부터 곰팡이 핀 치즈가 연상되는 고린내가 코를 찔렀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은 돈코츠 중에서도 국물이 진하기로 유명한 쿠루메 지방의 레시피로 만드는 곳이었 다. 내막을 몰랐던 나는 호기롭게 “카타멘(딱딱한 면)으로 넣어주세요”라고 주문했 다. 그러자 사장님은 혀를 차며 말했다. “카타멘이라는 건 정성 없이 대충 끓여서 딱딱해진 면이야. 배탈도 잘 나고 육수와 어울리지도 않지. 우리 집에선 제대로 익 힌 보들보들한 면만 파니까 그리 먹도록 해.” 고객의 취향을 거부하는 불친절함에 어안이 벙벙했다. 속으로 두 번 다신 오지 않 으리라 다짐하며 완성돼 나온 라멘을 훑어봤다. 겉모양새는 수수했다. 특별한 양념 없이 거품만 올라간 육수는 밍밍해 보였고, 고명이라곤 차슈 몇 장과 김, 식초에 절 인 생강이 전부였다. 냄새는 돼지 국물의 수준을 넘어 치즈와 비계를 섞어 끓인 유 지방의 풍미를 고약하게 발산했다. 좋게 보면 장인 정신으로, 나쁘게 보면 똥고집 으로 팔팔 끓인 국이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면발을 집어 빨아들였다. 그런데 이토록 중독적인 감칠맛이 날 줄이야! 라드가 가득 배인 국물이 짠맛을 중화해줬고, 완벽히 익은 면은 씹기도 전 에 부드럽게 넘어갔다. 면을 다 먹고 남은 국물에 밥까지 싹싹 말아 먹는 나를 보 며 장인어른은 흡족하게 웃었다. “방 군도 이제 후쿠오카 사람이 다 됐군.” 물에 끓여 졸이는 형태의 음식은 다양한 풍미가 섞여 진한 맛을 내는 점이 특징이 다. 각 지역 특산물이 뒤섞이는 만큼 오랜 시간 우러나는 과정을 통해 음식의 정체 성이 완성된다. 문득 탕 요리 한 그릇에 내 삶이 투영되었다. 나도 언젠가 후쿠오카 라는 도시의 재료가 되는 것일까? 이대로 60세, 80세까지 산다면 내가 외국인이라 는 자의식마저 흐릿해질지 모르는데 그렇게 일본의 삶에 익숙해져도 괜찮을지, 훗 날 내가 느끼는 나는 외국인도, 재일교포도 아닌 무엇일지, 시대가 변해 새로운 맛 의 일부가 되는 것이 나의 운명일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좋아하지도 않는 프랜차이즈 식당에 꼬박꼬박 동행해준 아내를 새삼 떠올렸다. 그녀와 처가 식구들에게 나는 한 가족일 뿐 국적이나 정체성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은 태어난 곳이나 삶의 터전보다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 을 선명히 인식하는 게 아닐까. 이들의 품에서라면 나는 무국적자라도 괜찮을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위해 포장 라멘을 주문했다. 집에 서 육수를 끓이면 골목까지 냄새가 풍기겠지만 괜찮을 테다. 냄새에 반한 이웃이 혹시 어느 식당의 라멘이냐고 물어보면 장인어른과 갔던 집을 추천해줄 생각에 흐 뭇해졌다. 방성식 5년 전에 일본으로 이민을 와서 아내와 둘이 살고 있는 카피라이터입니다. 일본 음식 중에서 야끼니꾸와 초밥, 장어덮밥을 좋아하며 일본을 찾는 한국 여행객 들에게 후쿠오카 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카이류’ 라멘 집을 추천하곤합니다. |
Julia Cole - Cowboy Off (Official Lyr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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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공감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교차 큰 환절기
건강하시고, 희망 가득한
11월 맞으세요
동트는아침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