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사슴 - 노천명
written by kim sang bong(gaegu)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불현듯이 왜 노천명님의 '사슴'에 대하여 글을 쓰고싶은 충동이 생겼을까?
이 시는 중고등 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시로서 많은 학생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즐겨 암송하고 낭송하던 시에 속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그 때의 그 감흥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마도 내가 이 계절의 추위를 타는 가 보다.
여하튼 간에 지금부터 기술하는 내용은 순전히 내 개인적인 私見이며
님의 창작동기와는 무관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느끼는
정취나 생각이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기는 단순하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써는 것뿐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사슴이 모가지가 긴 것은 胎生的이다.
모가지가 긴 짐승은 사슴말고도 기린이 있고 조류로는 황새나 백로 같은 것도 있지만
그 느끼는 뉘앙스가 고결하고 고상하고 품격이 있어 보이는 것으로 사슴이 으뜸이다.
물론 話者에 따라서는 다른 짐승이나 조류로 고결함이니 순결의 대명사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님에게 있어 아마도 사슴이 다른 종류보다 그것이 勝한가 보다.
그러면 '모가지가 길어서' 왜 슬픈가? 일전에 모딜리아니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 그림에 등장하는 모든 여인상들은 대개 목이 길게 빼어난 인물이다.
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하지만 길게 뺀 목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모습이 흡사 사슴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
왜 이 시점에서 사슴과 모딜리아니의 여인상이 서로 대비가 될까?
그 그림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 즉, 모델들은 하나같이
길게 늘어진 목으로 우수에 잠겼거나,
아니면 깊은 생각의 강을 지긋이 바라보는 그윽한 눈길이다.
모가지가 길다는 말은 (목)을 쭉 뺀다는 말이요,
이것은 먼 경치를 보거나 높은 다른 것을 쳐다볼 때의 자세이다.
한편으론 다른 위험요소를 경계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사슴과 같은 종류의 초식동물들은 언제나 육식동물의 위협을 받고 있다.
언제 쳐들어와서 노략질하고 죽이고 잡아먹는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危害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늘 사주경계를 철저히 해야 하는
思慮깊은 어질고 순한 짐승의 자기 보호 본능을 여기서 엿볼 수가 있다.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에서
언제나는 '늘, 항상, 볼 때마다, 始終如一'이라는 同義語로 해석할 수 있는 바,
한치의 오차나 그릇됨이 없는 것을 나타내는 완전무결함의 상징으로
사슴의 고결함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서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라는 말은
전통적인 우리 유교문화의 亞流를 엿보는 것 같다.
옛날 말에 '君子는 一言重千金이요, 小人은 重言復言 別無所用'이니
점잖은 자세로 의젓한 풍모를 유지하고 있으면 군자로 행세할 수
있었던 최근세사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유교문화권의 대표적인 品勢가 바로 '足用重, 頭用直, 手用恭'이라고 볼 때
敬虔의 모양을 중시했던 우리 선조 들의 멋스러움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과 비슷한 것으로 身言書判도 있으니 다 외모나 풍채를 중시했던
우리의 전통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할 것이다.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사슴의 뿔을 冠으로 묘사하고 있는 바 관은 衣冠으로 대별되며
그것은 벼슬이나 권위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향기롭다'는 말은 사슴의 뿔인 鹿角을 나타나며
그것은 鹿茸이라 하여 한방에서 補身材의 으뜸가는 약재로
인삼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물질이다.
'鹿角大補湯'이라 하여 녹각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 補身材는 알아주는 補藥이다.
기가 虛한 사람, 심신이 不實한 사람에게 있어
이 이상 가는 한방의 처방도 드물다 할 것이다.
병약한 사람에게 새 힘을 북돋워 주고
공급하는 명약으로서 사슴의 역할은 참으로 지대한 것이다.
즉, 사슴은 사람에게 있어 좋은 것을 주는 여러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시원하게 해주는 淸白吏나 名宰相을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다.
이것은 뒤에 이어지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에서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진술되고 있다.
'무척 높은 족속'은 한마디로 公卿大夫나 왕후장상(王侯將相),
임금에 버금가는 직책을 말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는 前生에 대한 사상도 엿볼 수 있는 바, '이었나 보다'에서
'과거 완료 추측 서술형'으로 記述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는 말이다.
무척 높은 족속 즉, 공경대부나 임금은 권세가 있고,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고로 약한 백성, 일반 백성에게 좋은 정책으로 善政을 베풀 수가 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세자가 暴行하면 그 백성은 고초나 어려움을 당하고
어진 정치로 나라를 다스리면 堯舜임금시대나 조선시대 황희나 맹사성,
그리고 어사 박문수 등으로 이름 불려지고 있는 善政의 代名詞들처럼
백성들이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하며 *1)鼓腹擊壤(고복격양)하게 될 것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이 풍경화는 순한 한 마리 사슴이 그냥 물가로 와서 목이 마르니까
물을 먹으려다가 물에 비친 자기의 그림자를 들여다 보고로 해석해도 무방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물 속'은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에 나오는 '물속'과 비슷한 것으로 투명성을 상징한다.
한 마디로 그 물 속은 거울과 같이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실체를 조금도 꾸미거나 가식(假飾)없이 투영해 보여준다는 것이다.
제 그림자란 무엇인가? 사슴 자신의 그림자 곧 세속에 파묻혀
정신 없이 살았던 자신의 모습이 밝고 투명한 거울 같은
물 속 그림자에 비추어지니 그때까지 풍진 세상 바삐 나분대며 살아간다고
까맣게 잃어버리고 살던 자아의 정체성
-곧 모가지가 길어서 빼어난 용모 수려한 자태-에 대하여
생각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인바
그 구체적인 내용이 다음에 기술되고 있다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잃었던 전설은 무엇일까?
이것은 어찌 보면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사슴과 사냥꾼'이야기의 그 사슴인지도 모른다.
사냥꾼에 쫓기던 사슴이 포도나무 숲 속에 숨었다가
나중에 배가 고프니까 자기를 숨겨주었던 포도 넝쿨을 다 따먹고
몸이 사냥꾼에게 노출되어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
애절한 목소리로 읊조린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내가 위급할 때 숨겨준 은혜를 모르고 배반하니까
결국 이렇게 맞아 비참하게 죽는구나' 하고 자탄(自嘆)하며
숨을 거두는 모습이 떠올려지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행(行)과 맞물려서 더욱 더 절정으로 사슴의 이야기
그 내면의 독백은 힘있게 결말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향수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청마의 '깃발'에 등장하는 노스탤지어( Nostalgia)가 있고
다른 하나는 홈식(homesickness)인바 두 개 다 향수(鄕愁)나 회향병(懷鄕病)을 나타내는데
전자인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그리워 함'이라는 뜻도 있다.
'어찌할 수 없다'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태생적 한계나 현실의 냉엄한 벽을 상징하는 말이다.
인력(人力)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원초적,
생래적 본능에 의해서 자연발생적인 것이 동기가 된다는 말이다.
마치 수구초심(首邱初心)처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돌리는 것'처럼
여기에 등장하는 사슴도 그 본능적인 태생적(胎生的),
생래적(生來的), 원초적(原初的)인 기질 때문에
과거에 그 화려했던 족속으로서 누리던 온갖 부귀영화나 권력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는 이미 흘러간 물, 흘러간 물로서는 물레방아를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흘러가 버린 지나간 물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리 과거에 화려하고 좋은 지위를 누렸다고 해도
그것은 지나고 보면 한 자락 꿈자리에 불과한 것이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고 추구하는
화려한 지상생활의 덧없음에 대하여 강렬한 의문부호를 던지며
할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본성 그 자체를 적나라(赤裸裸)한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조금도 꾸밈없이 진솔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슬픈 모가지를 하고'
이제 다시 모가지가 등장하고 있다,
모딜리아니의 우수(憂愁)어린 길게 빠진 그로테스크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목이 긴 여자가 등장하고 있는 바 하필이면 '왜 슬픈 모가지를 했다'고 하는가?
여기서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的)인 용어가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것인가?
아니면 슬프기 때문에 모가지를 길게 빼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하튼 간에 사슴에게 있어 모가지가 길다는 그 자체는 슬픔일 수도 있고,
사슴은 천성적으로 고상한 족속이기 때문에
모가지가 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증(自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슬픈 모가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고결성(高潔性)에 대한 추구'내지 '
이상을 향한 더 높은 갈망'으로도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슬픈 모가지는 땅에서 난 한계를 가진 인생이
보다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 나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사슴처럼 목을 길게 늘어뜨린 모딜리아니의 여인상처럼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것은 이어지는 다음 행(行)에서 더욱 더 구체적인 진실로 묘사되고 있다.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먼 데 산은 무엇인가?
석가가 수행했다는 저 히말라야 설산(雪山)인가?
아니면 예수가 피 땀흘려 기도한 저 겟세마네 동산인가?
산은 바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지선(至善)이나 거룩이나 고결(高潔)을 상징한다.
그 먼데 산을 쳐다보지만 도달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사슴처럼 모가지를 쭉 뺄 수밖에 없는 인간성의 한계 절망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시 전반을 감싸고 흐르는 희망과 소망에 대한 간구(懇求),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피안(彼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가운데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태생적(胎生的) 한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1)鼓腹擊壤(고복격양) 鼓: 북, 북칠 고 / 腹 :배 복 / 擊:칠 격 / 壤:땅 양
"배를 두드리고 땅을 침"이라고 풀이되며 태평 성대를 형용하여 이르는 말
(동의) 격양지가(擊壤之歌) 격양가(擊壤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