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많을 경우 참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디까지나 예로서) 안방 화장실에 코 푼 휴지가 있다면
[1]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코를 풀고 휴지통에 버렸다
[2] 앞집 아주머니가 코를 풀고 쓰레기통 대신 창 밖으로 버렸는데, 때마침 앞집에서 우리집 방향으로 바람이 크게 불었고, 그때 마침 창문이 열려 있어 우리 방으로 그 휴지가 들어왔으며, 그 시점에 우연히 뚜껑이 열려있던 쓰레기통 안으로 그 휴지가 골인됐다
상대적으로 2번보다는 1번이 참일 확률이 높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어떤 사건의 진위를 가르는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신뢰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저는 올 시즌 권혁-박정진-안영명-김민우-송창식의 사례도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 보고 있습니다.
권혁은 4월 ERA 3.33 / 어린이날 전후만 해도 크게 앞선 상황에서도 등판하던 투수였는데
9월 ERA 10.13 / 시즌 막판 치열한 5위다툼 상황에서 중요한 순간에 잘 나서지 못하게 되었죠
데뷔 이후 가장 많은 시즌, 그것도 가장 많았던 시즌보다 약 31이닝을 더 던진 시즌이므로
후반기에 힘이 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구종이 단순해 상대 타자들이 간파했을 확률도 생각해 보았지만
프로 13년차 투수로 경험이 풍부한 중간계투이자 홀드왕 경험과 국가대표 경력이 있는 선수인데
지난 13년간 제대로 간파되지 않은 구종이 왜 올해만 간파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피로누적쪽이 좀 더 의심됩니다. (물론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말입니다)
불혹의 나이에 100이닝 가까이 던진 박정진은
본인 입으로 코치를 통해 "연투가 어렵다"고 어필한 바 있으며
9월 10일 이후 (그렇게 치열한 5위다툼 속에서도) 1군 마운드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었죠
심지어 며칠간은 경기 출장을 아예 포기하면서 일본으로 가서 검진을 받았고요
4-5-6-7-8-9월 ERA가 매달 일정하게 나빠졌고 (좋아진 달이 한번도 없습니다)
소위 '마빡콤비'로 활약하며 100이닝을 넘겼던 2003년 시즌 이후
04년에는 32이닝 소화에 그쳤고, 이후 09년까지 도합 11.2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던 경험도 있고요
그렇다면 박정진의 현재 몸상태, 그리고 내년의 페이스가 걱정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물론 이것도 개인적인 견해고요)
자주 나와서 많이 던졌으므로 피로하다는 가정 말고, 또 다른 어떤 가정이 확률상 더 합리적인가를 생각해봤을때 말입니다.
권혁과 박정진이 시즌 막판 나오지 못한 것,
그리고 성적이 떨어진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저는 사실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아마 본인이나 코치들도 잘 모를 수 있죠
어쩌면 트레이너나 의사도 모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숫자로 그 원인이 규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테니까요.
몇년 전, 의사들을 매달 릴레이로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받았던 명함을 얼추 뒤져보니 아래와 같은 프로필이 나옵니다
국립암센터장 / 대한위암학회 학술위원장 / 대한간암연구회 회장
서울대 암연구소장 / 서울대 유방암센터장 / 서울대병원 건강사회정책실장 / 분당서울대병원 U-헬스케어팀장
삼성서울병원 뇌졸중센터장 / 삼성의료원 암센터장
연대 세브란스병원 장기이식센터 소장 / 연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장 / 연대 세브란스병원 노화방지센터장
이화여대 의료원장 / 이화여대 여성암전문병원 유방.갑상선암 센터장
서울성모병원 자궁근종센터장
길병원 암병원장 (텍사스대학교 MD앤더슨 암센터 종신교수)
저 분들에게 본인의 전문분야 중심으로 [예방법과 건강관리 노하우]에 대해 물었고
모든 의사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경우 병에 걸린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
"어떤 치료법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것도 애매하다"
'무슨 음식을 먹으면 좋다'는 얘기는 의사로서 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환경따라 모두 다르고 여전히 연구중이다"라고 말입니다.
국립암센터를 이끄는 의사분께 암에 대해 물었는데도 그런 답이 돌아왔고
서울대병원 유방암센터를 이끄는 의사분께 유방암에 대해 물었는데도 그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하루에 세갑씩 담배를 태우고도 장수하는 사람이 있고
공기 좋은 산에 주로 기거하며 담배도 태우지 않으신 법정 스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시기도 하는 게 사람의 몸이죠
그 만큼 [사람의 몸]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저는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선수들의 건강상태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합니다.
우리 카페 회원들이 모여 노는 단톡방에, 현직 정형외과 의사가 있습니다
그분은 모 대학교 의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던 분이며 현재 전공의인데
평소 "야구선수를 진료하고 싶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시더니 결국 정형외과를 전공하시더군요
류현진 부상 / 강정호 부상 / 그리고 한화 선수들의 진단명이 보도될 때마다 단톡방에서 다들 그분을 찾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죠. 류현진 왜 저러냐, 언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늘 단정적인 얘기는 하지 않더군요
그냥 "일반적인 경우는 이렇고, 선수들의 경우는 좀 다를 수 있는데 아무개 선수 상태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야구팬들이 선수의 건강 얘기를 하는데 있어
의학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굉장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의사들도 사람의 몸에 대해서는 단정적인 얘기를 못 하니까요
적어도 제 경험상 모든 의사들이 그러했고
경력이 오랜 의사일수록, 소위 [명의]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람들일수록 더 그랬습니다
예를 들어 "검은콩이 유방암에 좋다던데" 이런 속설에 대해 물으면 오히려 크게 경계하더군요.
[권혁과 박정진이 봄에 자주 나와서 던졌기 때문에 후반기에 구위가 떨어졌을까요?]
이 질문을 국내 모든 정형외과 혹은 스포츠의학 관련 전문의에게 던진대도
"네 맞습니다. 그 이유에요" 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대답이 그렇다고 해서 그런 확률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만약에, [봄에 자주 나와서 많이 던진 것이, 후반기 구위에 영향을 미쳤을 확률도 있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어떨까요?
그때도 과연 "아니오, 그런 개연성은 극히 적습니다" 라는 대답이 나올까요?
이런 차원에서, 저는 팬들이 투수진 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거나
특정 투수가 가급적 좀 덜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한 요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10개구단 모든 팬들 중 적잖은 숫자가 어떤 감독 시절에든 그런 얘기를 이미 해 왔지요
심지어, 그 이유로 인해 덕아웃의 스태프들에게 불만 혹은 불신을 표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취급을 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개 투수가 후반기 성적이 나쁘므로 감독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의견이라면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게시판에 쓸 때 주의해야 하는 표현이겠죠
다만, [감독은 투수의 건강 문제에 대해 적잖은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라면
저는 팬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저 역시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고
이 게시판에 글쓰는 회원님들 중 적잖은 분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시각으로 투수진에 대한 논의를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카페 게시글
┏이글이글 야구게시판┓
[6729] 의사에게 투수의 건강에 대해 묻는다면?
1번선발
추천 3
조회 1,075
15.10.13 14:23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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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공감합니다
격하게 동의 합니다^^
상식선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네요
동의합니다 저두 격하게 ^^
재미도 있고 진실도 있는 글입니다. 말씀해주셨듯이 사람의 몸은 이해하기 어렵죠. 개인에 따라 환경에 따라 다르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몸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사이다같은 글이네요..
언제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글에서 청량감이 느껴집니다 ㄷㄷ
머리속에 쏙쏙들어오는데요...항상 좋은글 ㄳㄳ....
오히려 의사분이 말씀 하신 부분이 ..주장하시는 거에 대치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네요. 차트를 보지 못했으니 단정 하지 못하는것이겠지요. 의료기기가 있는 한 어떤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 진단이 의학적 근거가 될 수 있구요. 당연 현대의학에서도 우리 몸에 대해 100프로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토대로...의학적 근거는 야구에서 큰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논조는 받아 들이기 힘들거 같아요. 그 논리대로라면...야구계에서 소모론 반대쪽 의견 또한 존중받아야 하는건 맞는거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그 경험으로 인해 얘기 하는 것이니깐요.
[오히려 그 혹사에 대한 의학적 근거를 들이대면 돌팔이라는 소리가 될 수도 있겠네요] 위 댓글 내용처럼 이런 논리도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동의합니다.
실제 사례로 2013년에 사망한 토미존 수술의 일인자 루이스 요컴 박사는
많은 일본인 투수의 피지컬 체크를 실시한 적이 있고, 현 시카고 컵스의 와다 쯔요시의 토미존 수술도
담당했었습니다.
그때 닥터 요컴은 「일본인 투수의 극하근(어깨 회전근)의 마모는, 10대에 지나치게 많이 던졌기 때문이다.」라고 확실히 말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요컴 박사는 수술을 받는 시점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한창 성장할 유소년기 때의 투구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의학적 근거는 야구에서 큰 잣대가 되지 못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의사들도 그러하니 하물며 팬들이라면 의학적 근거를 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팬은 의학적 소견이 없어도 나름의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요.
말하자면 "의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의 의견과 제 의견은 크게 다른 것인데, 견해야 뭐 얼마든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언론사에 말씀 하려는 내용중.. 박정진,윤규진 선수에 진단 내용이 의학적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진단내용 정도는 당연히 의학적 근거로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선수가 회복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못한지.. 보통 재활을 대략 얼마나 해야 할지.. 선수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수는 있으니깐요.
공감합니다.
동감입니다
동감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