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천 년 꽃집
김은정
꽃향기가 밀려오는 카라치의 봄날
길가에 작은 꽃집이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다 헤진 모자를 쓰고
누런 도티를 입고 치아가 없는 주인의 꽃집엔
꽃들이 만발하게 피어 있습니다
흰 벌레가 축축한 흙바닥에서 독창을 하는 꽃집
봄햇살이 페사와리 차팔*을 끌고 춤을 추는 곳
죽은 꽃들도 환대하는 꽃집
꽃이 피자마자 꽃집 주인이 되는 꽃집
노랑, 검정 얼룩무늬 꿀벌들이 지키고 있는 꽃집
산 꽃도 죽은 꽃도 알라꽃도 예수꽃도 브라만꽃도 모두 부활의 천 년 속에서 영원히 꽃 피어 있는 꽃집
새들이 땅 속의 벌레처럼 느릿느릿 날아다니는 꽃집 구름이 꽃 수술 속에서 얌전히 꽃밥을 먹고 있는 꽃집
이곳은 울 아빠의 꽃집입니다
아빠는 모든 꽃들의 이름을 다 외웁니다
꽃들의 생일날도 빠트리지 않고 다 챙깁니다
언니, 오빠 꽃들이 이름 없는 꽃들을 찾아다니며 꽃말을 찍어내고 꽃의 인세를 지불하고 있을 때
아빠는 꽃삽을 들고 한달음에 달려가
꽃씨를 심고 키우고 물을 주고 꽃의 고막을 키워주고 꽃의 눈을 높여주고
꽃의 발등에 떨어진 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오래 세어준답니다
난 꽃을 다 알지,
두꺼비처럼 두툼한 손으로 꽃의 머리를
알사탕처럼 달콤하게 어루만지는 그곳은
아빠의 꽃집
꽃이 다 사라지는 영원이 없는
막 들어가면 영원이 되는 꽃집입니다
김은정
경남 사천 출생. 1996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삼천포고등학교 교사.
시집 『너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