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청도에 오고 얼마 안 있어 지인이 책 한 권을 권했습니다.
그때(1992년) 새로 나온 책인데, 너무 감명깊게 읽은 것이라 그대도 함 읽어 보라고 합니다. 당시 칭다오는 척박한 동네라 한국 tv도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시간만 나면 이것 저것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하다못해 만화까지..신문도 공수해 왔는데 비록 하루 늦은 소식이라도 그게 어디입니까. 월 450위안의 비용이 아깝지도 않았습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내용은 그의 유년의 기억을 소설로 그린 자화상입니다. 4,50년대 우리나라의 사회상,풍습,사상이 그의 발 길을 따라 고스란히 찍혀져 있습니다. 아마 그는 어릴때 그 어려웠던 시절, 즐겨 먹었던 싱아가 어른이 된 지금, 이제는 더 이상 찾지 않아 잊혀져 가고 있는 그 맛이 안타까웠는가 봅니다. 싱아는 단순한 풀이 아니라 분명히 그에게는 지나 온 추억이요 향수일 것입니다.저는 싱아라는 풀은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릅니다. 허나 그를 통해 싱아로 대표되는 잃어 버리고 싶지 않은 또 잃어 버릴 수도 없는 그 추억과 향수의 맛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요즘 교민사회가 좀 뒤숭숭합니다. 괜히 지은 죄도 없으면서 온 몸이 긴장을 합니다. 6월에 칭다오에서 열리는 SCO(상해협력기구) 정상회의 때문입니다. 생활에 위축을 느끼는 것은 외국인인 우리 뿐만 아닙니다. 일사불란한 감시와 단속, 통제에 현지 중국인도 바짝 얼어 있습니다. 거의 4반세기 넘게 여기 살았는데도 아직 적응이 잘 안 됩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역시 우리나라가 참 자유롭고 맘 편한 나라구나 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업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 년 넘게 시달렸던 사드 후유증이 좀 사라지나 했더니 그만 이번 정상회의 때문에 도로아미타불이 될까 전전긍긍입니다. 무엇보다 생산과 물류는 기업의 생명줄인데, 아직은 괜찮으나 앞으로 한 달 넘게 어떤 통제가 있을 지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단도리 하느라 모두 부산합니다. 더해서 사그러들었던 환경단속이 다시 시작 되었습니다. 귀찮다 못해 다 때려 치우고 싶다는 말이 나올만도 합니다.

"그 많던 싱아는..."이란 책이 나오기 몇 달 전.
따뜻한 늦 봄인 딱 이맘때에 저는 여기 칭다오로 건너왔습니다. 벌써 한국인 몇 백명이 터를 잡고 있더군요. 당시 칭다오 개인 GDP가 약 $200 이었습니다. 공인들의 기본 급여가 평균 60위안, 이것 저것 보조금을 합하면 120~140위안 이었습니다. 환율은 $1=8.7위안, 1위안=94한화 였습니다. 달러와 한국돈 가치가 많이 높아 사업이나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칭다오의 작년(2017년) 개인소득이 약 $19,000 입니다. 올 해 말 정도가 되면 대망의 2만불 시대가 도래하겠군요. 현재 환율은 $1=6.3위안,1위안=170한화. 아마 여기서 사업하거나 생활하시는 분들은 금방 피부 계산이 되실 겁니다.
그 사이 칭다오 교민은 몇 백에서 몇 천,2만,4만,6만, 이렇게 늘어나다가 08년 부터 줄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97년 이전 과거로 돌아가서 2만 여명 만이 남았습니다. 산동성 전체에 진출한 우리 기업수도 사업자 등록을 기준으로 3만 여개를 정점으로 점점 줄더니 08년에는 1만 5천개, 3년전에는 3천 여개, 지금은 더 줄어 2천 여개 남았습니다. 그럼 살아남은 기업은 액기스 기업일까. 아닙니다, 현재 영위하고 있는 기업 중 중국내수를 위한 몇몇 공장을 제외하고는 도전적 성장전략 보다 보수적 방어에 전념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즉 더 이상 발전적 도전을 포기한 기업이 더 많습니다. 오래 전부터 예견된 일이기는 하나 막상 닥치니 교민사회 전체에 활력을 뺏어버립니다.
저는 교민이 제일 많이 사는 청양(城陽區)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넘어가서 늦도록 돌아다닙니다. 거리에서나 식당에서,또 오락장소에서 삼삼오오 어울려 즐기는 2,30대 청년들을 많이 봅니다. 몇 년전까지는 아마 어느 회사의 주재원이거니 당연시 여겼었는데, 기업이 줄어들고 특히나 현지채용이 늘어나는 이 싯점에 도데체 저들은 어떤 비즈니스를 하고 있을까 항상 궁금합니다. 이민을 받지 않는 이곳 중국진출의 뿌리는 제조업인데, 제조업이 사라져 가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나그네 같은 삶만 영위하겠지요.
칭다오에 살면서..
봉다리 생맥주에 까라(蛤蜊.geli) 한 접시가 최고의 안주였던 시절이 제일 활력 넘치고 생기발랄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까라도 점점 잊혀져 가는군요. 생뚱맞게 "양꼬치 N 칭다오" 뭐 이딴 것이나 나오고...
뱀꼬리>
맥주와 바지락.. 통풍에 최악의 조합입니다.
청도 원주민들 중 관절염이 많은 것은 바닷가라서 만이 아닙니다.
첫댓글 아항~~~.. 까라 가 뭔가 했더니 바지락을 말하는가 보군요... 아항~~.. 맥주 안주로 바지락 말린 것을
즐겨 먹는가 보군요... 아항~.. 웬 한밤중에 이리 잠이 없으신가 했는데 중국과 한국은 시차가 1시간이...
청양에서 황도로 연결되는 중간에 위치한 홍도라는 해안가가 유명한 바지락산지입니다. 말린 바지락이 아닌 생물 바지락! 엄청나게 채취를 하다보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자명한 결과일 겁니다.
바지락은 삶기도하고 찌기도 하고 볶기도 합니다.^^
말리지는 않아요.ㅜ
일송정님 역시 한국이 좋지요?^^
아항~~~.. 뱀꼬리 가 먼강 했더니 독사도 아니고 살모사도 아니고 구렁이는 더더구자 아니고 바로 추신이군요
저는 맥주 안주로 나오는 즐겨먹기인 줄 알았더니 ....
이제 바야흐로 스프링 입니다. 스프링이 무르녹아 벌써 여름 아닌가 착각이 되기도 해요.
날씨만 그런게 아니라 세계의 흐름도 겨울인지 봄인지 여름인지 분간을 못하겠습니다.
대륙은 중국은 폭풍전야 의 조용함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좀 멀리 보시면 여러 계획도 가능하실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봅니다
저의 좁은 소견인진 몰라도 삶을 보면 위기에서 기회를 즐길 수도 있다고 보지요
스프링님의 건투를 항상 기대합니다
언젠가 뵈올 때에 반갑게 악수를 하기를 고대합니
뱀꼬리..ㅎㅎ
선컴님도 건투 하십시오^^
바닷가 어느 허름한 집에서 붉은 다라에 살아 있는 여러 가지 해물을 채반에 골라 담아 쪄달라면 쪄주고 구어달라면 구어주고 복아달라면 볶아주고,,,,,식당에서 주문한 까라는 왜그리 짜던지 그래도 한접시 잘 까먹었었습니다^^ 파란 바다, 푸른 노산, 빨간 지붕의 칭다오에서 일하시고 공부하시는 교민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
그곳이 노산 가는 해변가 어촌이었을겁니다. 지금도 성황중입니다^^
까라~ 소진에 일정 기여했었지요~ 옛날에….
아직도 까라는 있지요? 남아 있는 까라에 맥주 한 잔 마시러 가렵니다. 조만간…. ^^
강빵님의 추억은 남다르지요^^
정말 오랫만입니다. 얼굴은 기억나지만.... 못 뵌지가 몇 년인지요.. ^^
싱아~정식 명칭이 싱아…. 저도 무척 궁금하였습니다 유년시절 많이 먹었습니다. (먹거리가 없으니…. ㅋ)
제가 살던 곳에서는 시엉(셩?)…. 암튼 "시영"이라고 불렀지요. 산 계곡에 많이 있었습니다. 가재 잡으러 가면서 즐겨 먹던 옛 추억이…. 고맙습니다. 싱아…. 유년시절 저것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요즘은 신거 안 먹습니다. ^^
오랜만에 안부 전합니다
여전히 그곳이 그립고
선생님을 존경하고ㅡㅡ
또 12월 송년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모두가 잘 있습니다
솔이아빠 열심히 일하고
진이는 경사에서 곧 걍위가 된다네요
내년 1년 휴직하고 영국 1년을 가서 살거랍니다
솔이는 7월초 제대하기전 일본 여행후 돌아와
외무 영사에 도전하겠답니다
이미 중국어 영어는 끝내고ㅡㅡ
저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무역회사 일 있으면 일보고 민턴하고 놀러다니고ㅡㅡ
늘 건강을 소망합니다
열심히 사시는 하오펑여우님...화이팅입니다^^
아드님의 표정에서 엄마의 얼굴이 보이네요. ^^
좋은 글입니다..